[Off] 6살, 영어뮤지컬에 도전하다

그리고 실패한 이야기

by 제인


율ㅇ는 참으로 얌전한 아이다. 혈액형으로 따지면 스몰 a형이고 MBTI는 예측컨데 ISTJ 일 것이다. (참고로 난 ENFP 이다)

태어났을 때 부터 기질이 그랬다. 엄마/아빠 모두 ENFP 인간인데 태어난 아기는 1살부터 ISTJ의 유형을 보였다. 체계적이고 경험적이며 소극적이고 매사 꼼꼼하고 논리적이다. 아기가 무슨, 이라고 하겠지만 율이는 절대 기분에 휩쓸리지 않으며 사전 고지하지 않은 체계와 규율이 무너지면 세상이 무너지는 아이이다.


아니, 지금 영어뮤지컬 도전하던 이야기 아니였나요.


무척이나 소극적이고 얌전하지만 나름 집에서는 아이도처럼 춤추고 노는 걸 좋아하는 아이에게, 나는 즐겁고 신나는 영어 액티비티 교육을 제공하고 싶었다. 물론 전문가의 영역을 빌려서. 키즈 소셜 플랫폼에서 마음에 딱 드는 영어뮤지컬 클래스를 발견했다. ‘오즈의 마법사’ 영어뮤지컬. 총 3개월의 과정이고, 영어로 춤/노래/뮤지컬을 완성할 수 있는 수업! 마음에 쏙 들어 수업을 신청하고, 오즈의 마법사 동화책을 사서 밤마다 읽어주었다.

첫수업, 6살 인생에서 새로운 장소와 선생님은 너무 두려웠다. 입구부터 엉엉 울며 겨우 들어갔으나 다행히 춤과 노래, 액티비티 중심이라 웃으며 교실에서 나왔다. 그 주에 나는 처음으로 숙제라는 것을 했고, 영어 알파벳으로 제이크의 이름을 쓰는 법을 알려줬다. 더듬더듬 배운 영어를 글씨로 쓰는데, 나는 너무 뿌듯한 나머지 사진을 열심히 찍어 인스타 스토리에 박제했다. #영어뮤지컬 #6살의도전


오즈의 마법사의 메인 넘버인 ‘over the rainbow’가사를 큼지막하게 적어 식탁 앞에 붙여놨다. 안무 동영상도 틈틈이 보면서 연습도 했다. 대학로에서 하는 오즈의 마법사 뮤지컬도 보러 가고, 유튜브에서 클래식 무비도 봤다. 매일매일 밤마다 장편동화 오즈의 마법사를 읽었다.


사실 일요일 오전 뮤지컬 수업은 조금 벅찼다. 아침 이른 시간이기도 했고, 무엇보다 수업 끝난 뒤 율이가 너무 힘들어했다. 선생님이 영어로 말해서 그런가보다, 지레 짐작했다. 수업이 중반쯤 왔을 때, 선생님의 확진으로 줌 수업으로 대체된 날이었다. 첫 영어수업 참관날, 율이는 너무너무나도 힘들어했다. 한국말로 말하기도 어려워 하는 아이인데, 영어를 말하기는 x10000배쯤 힘들었으리라. 스크립트 연습 시간에는 아무 말도 못하고 내 옷자락만 꾹 쥐고 있었다. 수업이 끝난 뒤 펑펑 울면서 품에 안기는데, 앗차 싶었다. 영어 알파벳 쓰기도 힘든 아이에게 영어 뮤지컬 대본 암기라니! 6살쯤이면 자연스럽게 배우고 익혀서 말할거라 생각했던 나의 오만이고 자만이었다.


끝까지 완주를 하는게 중요할지, 영어 혐오자의 트라우마를 만들게 될지, 선택을 해야만 하는 순간이라고 생각이 들었다.


나는 완주를 포기했다. 완주를 강요하다간 영엉 영어 문장을 입밖으로 내지 못할 것 같았다. That’s OK 처럼 쉬운 문장 조차 말하지 못했으니까.

율이에게 자존심이 상하지 않도록 천천히 말해줬다. “율아, 영어 수업 재미있기는 한데, 영어 외워서 말하는게 아직 쉽지가 않네~? 그래도 처음 해보는 영어 뮤지컬인데 노래도 많이 외우고, 춤도 잘 추고 정말 잘하고 있어! 앞으로 영어 외워서 말하는게 점점 더 많을텐데 괜찮아?” 나름 자존심을 지키고 싶어하는 말을 웅얼거렸지만, 이건 순간을 극복해야하는 단계가 아니었다. 맞지 않는 레벨이었다.


요새는 유치원에서 나눠준 영어 카드와 자료들을 식사시간에 잘 보이는 곳에 붙여놓고 자주 말하고, 일주일에 두어번은 영어로 30분 정도씩 말하기도 한다. 내 영어도 엉망진창이지만, 그런 분위기와 바이브 속에 아이를 던져놓는다. 몇가지 단어는 주워서 배우고, 몇가지 말들은 아이돌 가사를 통해 배운다. 에스파 덕분에 Savage 부터 배운 건 좀… 그렇지만, 자연스럽고 즐거운 분위기를 만들어주고 싶어서 마음으로는 노력한다.


아직 6살. 마음은 초조한데 매일의 습관부터 만들어줘야지. 다짐으로 마무리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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