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ff] 관계가 성장한다

아이와의 유대가 시간이 흐를수록 성장한다는 것은 내게 참 낮설다

by 제인


지금까지 내 인생에서 연애경험은 딱 3번이었다. 첫 남자친구는 이대로 가다간 연애도 못해보겠어! 라면서 사귄 고등학교 선배였다. 좋다고 해주는 사람이 있어 덜컥 만났는데, 내키지 않은 사람과 사귀게 되니 관계는 엉망, 한두달도 못가서 헤어졌다. 두번째 연애는 진심이었다. 호감에서 썸으로, 썸에서 연애로. 열렬하게 좋아했고 사랑했다. 환희로 가득차고, 가끔의 다툼도 있었지만 좋은 연애였다. 그리고 나에게 마법의 24개월이 다가오고, 핸드폰 약정마냥 연애의 감정이 감쪽같이 사라졌다. 사랑의 유효기간이 24개월이라는 말은 요즘도 흔한 개념이려나. 신동엽이 그린라이트를 밝히며 연애 상담 프로그램이 흥하던 시절엔, 연애감정이 24개월이라는 말은 무척 보편적인 얘기처럼 들렸다. 첫 연애가 어쩌다보니 그런 타이밍으로 끝났나보다 했다. 하지만 두번째 연애도 24개월로 막이 내리는 걸 보고 알게됐다. 24개월은 싸이언스다. 그래서 핸드폰 약정이 24개월이고 할부도 24개월인 것이다!


가족과의 관계. 이미 엄마와 동생 그리고 나 셋은 적당히 돈독하고 적당히 멀다. 아주 세세한 일상을 털어놓으며 미주알 고주알 하지는 않지만 가장 친한 친구 이름 정도는 안다. 20대 이후로 관계가 깊어지거나 멀어지지 않고 적당히, 나름 쿨하면서도 소홀하지 않는 그런 딱 정당한 온도로 지내고 있다.


친구와의 관계는… 연애와 결혼, 그리고 출산 이후 와장창 무너져있다. 퇴근후는 아이를 보러 집으로, 주말은 아이를 봐야하니까 집에서. 친구들이 딱 8년 정도만 더 기다려 주면.. 다시 예전처럼 놀 수 있을 텐데 말이지.


자, 그렇다면 내 배로 낳은 아이와의 관계는?

이제 6년차를 맞이했다. 아이와 나의 지금 관계는 최상. 매일 매일 하루가 지날수록 어제보다도 더 사랑하는 사이.


아이를 처음 낳고 분만실에서 아이를 보여줄 때, 기분이 어떻냐고 한다면

나는 정말 기쁘고 반가운 마음에 활짝 웃으며 인사를 했다. “너였구나! 내 뱃속에서 있던 아이가! 정말 반가워!”

진짜로 너무 반가웠다. 어두운 뱃속에서 쉼없이 꼬물거리며 내 갈비뼈를 머리로 누르던 그 애가 너였구나! 되게… 쪼글거렸네!!!

병원에서, 조리원에서, 집으로 와서도 사실 낯설다. 이게 내 애라니, 내가 엄마라니, 근데 넌 말도 못하고 그냥 꼬물거리는데?! 잠도 거의 못자고 젖을 주고 기저귀를 갈아줘도 낯선 기분은 사실 금세 사라지지는 않는다. 이봐 아기, 내가 엄마인 건 알아보는 거 맞지?

그래서 출산을 하고 몇달 지나지 않아 기분 전환 겸 부산으로 1박2일 여행을 가도 그다지 아기가 보고싶어 울지는 않았고,

7개월만에 복직해서도 아이가 보고싶어서 회사에서 힘들거나 그렇지는 않았다.

회사에서 나온 근속휴가를 쓰려고 2살 아이를 집에 두고 보름간 이탈리아 여행을 다녀올때도 죄책감이 들긴 했지 그리워서 울지는 않았다.

그런데, 6살이 된 지금은? 회사에서도 당장 아이를 보러 집으로 가고 싶고, 까불이 표정을 지어도 너무 귀엽고 사랑스러워서 꼭 안아버린다.

단 하루짜리 full day 여행을 잡아 놓고도 이제 전전긍긍하고, 연말에 혼자 가겠다고 잡아둔 사이판 3박4일 여행도 아무래도 너무나도 마음에 걸린다.


이게, 갈수록 깊어지는 관계라는 거구나. 사람을 이렇게 오랜 기간 사귀면서, 점점 더 좋아진다는 거구나. 처음 깨닫는다.

아이라는 순수한 생명체가 귀엽기 때문에 만들 수 있는 관계가 아닐까. 6살은 다 큰 것 같이 구는데 (밥을 혼자 먹고, 화장실을 혼자 가고, 옷을 혼자 입는다) 여전히 등은 두뼘이고 발바닥은 내 손바닥 안에 들어온다.


율이가 3살일때도 그렇게나 사랑한다는 말을 부끄러워했다. 아니 애기가 뭘 안다고 사랑한다는 말을 부끄러워하지? 생각했다. 자주 말해주고, 자주 안아줘도 여전히 어색해했다. 특히 본인이 말하는 것은 더욱.

요새 율이랑은 장난처럼 사랑한다고 말한다. 갑자기 뒤를 돌아보고 사랑한다고 말하거나, 깜박 잊었다는 듯이 머리를 탁 치고 사랑해 라고 말하거나. 출근, 퇴근할때는 손으로 할 수 있는 사랑해 모션은 다 하고 출근한다. 장난처럼 사랑한다는 말을 편하게 많이 하니까 율이도 나를 따라한다. 그 어느때보다 사랑한고 많이 말해준다. 껴안고 매달리고 뽀뽀하고 손으로 하트를 만들고. 오늘도 잠들기 전 샤워를 마치고 나와서도 한참 사랑한다고 뺨을 부비고 얼굴을 쓰다듬어 주며, 나는 율이에게 세상에서 가장 사랑한다 말하고, 율이는 엄마를 세상에서 가장 사랑한다고 말한다. 참, 귀엽고도 사랑스러운 순간. 이 작은 존재가 사랑으로 가득해서 그 기쁨과 즐거움을 세상에 퍼트릴 수 있는 사람이 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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