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n] 팀원들이 몽땅 퇴사했다

by 제인


입사 동기의 A의 송별회 회식 자리였다. 우리는 공채로 입사하여 올해로 10년을 채웠고, 공채 교육 시절 같이 입문교육을 들은 뒤로 부서를 돌고 돌아 지난 1월 극적으로 같은 팀이 되었다. 몇 주 지나지 않아 점심 후 티타임에 동기가 나를 따로 불렀다. "오늘 커피는 내가 살게.", "나 할 말 있어." 어이, 이봐. 나는 안다. 이 흐름은 분명 퇴사 고백이다. 같은 팀이 된 지 이제 겨우 3주 지났는데 퇴사라니! 그래도 떠나는 이를 붙잡고 하소연할 수 없기에, 아쉬운 표정을 잔뜩 짓고 말한다. 드디어 탈출이구나, 축하해! 그렇게 고백을 받은 뒤 얼마 지나지 않아 송별회 회식 자리였다. 오미크론 덕분에 회식은 팀장님, 나, 퇴사 동기와 그와 같은 파트의 후배 넷 뿐이었다. 조촐한 송별회 자리였지만, 사실 내가 이 팀으로 전배 오기 두 달 전에도 팀의 주무가 퇴사하여 마음이 싱숭생숭했던 터이다. "저까지 나가서 정말 죄송해요.." 좋은 직장에서 오퍼가 들어와 이직을 하는 상황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동기는 연신 퇴사해서 죄송하다는 말의 반복이었다. 겉치레이기보다는, 이런 타이밍에 팀장님 밑의 두 번째 퇴사자가 되어 정말 미안하다는 마음의 전달이었다. "내가 비전을 보여주지 못해서 그렇지.. 그 점은 정말 아쉽다." 팀장님의 간결한 고백이자 이별의 말.


그런데 그 회식자리에서 정말 놀라웠던 것은, 오늘 참석하지 않은 동료 B의 추가 퇴사(?) 소식이었다. 경력직으로 이직해온지 4개월 차이자, 이제 우리 팀에 합류한 지 겨우 1달이 되어가는 그도 퇴사를 결심했다는 것이 다. 팀에 팀원이라곤 6명이 전부인데 이런 소식조차 알지도 못하고 낌새도 채지 못했다니! 팀장님 아래 최고참이자 ENFP로 항상 팀원들과 모닝커피를 주도하는 내가 차마 알지 못한 소식이라니. 그동안 업무에 몰두한답시고 너무나 소원했던 것인가, B는 대체 왜 이리도 빨리 퇴사를 마음먹은 것인가. 혼돈에 빠졌다. 별다른 말도 하지 않고 이제 팀에 적응하며 활기를 보이는 듯하다가 밀접 접촉, 확진 등등으로 2주 연속 얼굴을 보지 못하고 다시 만난 그는 무척 수척해진 모습이었다. 동기의 송별회 취기가 다 가시기도 전에 며칠 뒤, B도 모닝커피를 사겠다며 팀원들을 데리고 가 퇴사 소식을 전했다.


"저는 미련이 없어요. 이곳이 아니다 싶으면 뒤도 안 돌아봐요. 앞으로 뭘 할지는 모르겠어요. 근데, 제 커리어랑 분위기를 보면 여긴 아니에요. 그건 확실해요."


글로벌 기업에서 이직해 온 그에게 이곳의 분위기는 너무나도 경직되어있고, 예상되었던 업무와는 전혀 다른 카테고리의 업무를 맡으며 혼돈이 왔던 것이다. 혹독했던 팀장과 프레셔가 강했던 조직문화, 그리고 또 한차례의 업무 변경으로 그녀는 단호하게 선을 그었다. 여기서는 내가 생각했던 삶이 그려지지 않는다.

30대 중반이고, 가족이 있었지만, 그의 선택은 무척 단호했다. 이렇게나 단순하게 선택하고 결정할 수 있는 추진력에 감탄했고, 선택을 할 수 있는 본인의 기준점을 확고히 가지고 있다는 것도 부러웠다. 10년 차인 나는.. 이곳이 맞나?



B와 둘이서 마지막 점심으로 평양냉면을 먹고 사무실로 돌아와 혼자 복도를 걷고 있었다. 옆팀 후배가 내 팔을 붙잡더니 빈 회의실로 들어간다. "선배, 선배팀 C 유학 간다는 거 알고 계셨어요?" 아이 정말 농담이 과하다~ 나 지금 A 송별회 한지 일주일밖에 안됐고, B 퇴사 소식 며칠 전에 알았는데, 무슨 C 유학이야~ 지금 우리가 스무 살이니~ 너 나한테 그런 농담하면 안 돼~


우리 팀 막내였던 C는 퇴사 선언 이틀 만에 B와 함께 동시 퇴사를 했다.


3주 만에 우리 팀 3명이 퇴사를 했다. 팀원의 50%였다. 팀장님은 자아비판을 공개적으로 하기 시작했고, 나는 충격에서 헤어 나오지 못하고 있으며, 나의 후배이자 입사 6개월 차인 신입사원은 도대체 이게 무슨 영문인지 눈을 끔뻑거리고 있다.




바야흐로 퇴사의 시대. 이직의 황금기. 코로나 2년을 꽉 채운 22년의 봄은 그 어느 때보다도 이직의 황금기인 듯하다. 보라, 내가 있는 팀의 50%가 퇴사를 하지 않았는가? 디지털 트랜스포메이션의 흐름은 물론 각자의 개인기를 최대한 발휘하여 재테크이건, 크리에이티브한 콘텐츠의 제작자가 되건, 다양한 플랫폼과 기술을 활용한 자기 직업 개척의 시대가 활짝 열린 것이다. 각자의 시간이 늘어나고, 삶이 이대로 정체할 수는 없다는 강력한 동인에 의해 진짜로 움직이고 있다. 어찌 보면 코로나로 불확실이 늘어나는 상황이라 이직 카드가 무모해 보일 수 있지만, 이렇게 불확실한 시대라면 더 나은 삶을 위해 충분히 도전해 볼 시간이지 않겠냐는 실질적인 행동이 일어나고 있는 것이다.


10년 차인 A는 카테고리를 완전히 전환하며 한 단계 성장할 수 있는 업계로 직무를 옮겼고, 경력으로 입사한 B는 본인이 예상한 업무/조직문화와 다른 현실에 빠른 결정으로 퇴사를 결심했다. 막내였던 C는 어둡고 무거운 분위기의 조직문화에서 한없이 부정적으로 변하는 자신이 싫었고, 더 나은 삶이 있을 것이라는 기대로 퇴사를 결심했다. 셋 모두 더 나은 삶에 대한 기대로 퇴사를 결심했다.


지금 내가 일하고 있는 곳의 비전을 나는 그리고 있는 것일까? 저년차일때는 회사가 너무 싫었다. 근데 퇴사할 생각은 못했었다. 출근하는 걸음을 멈추고 싶었지만 카페에 들러 아이스라떼를 주문하고는 다시 엘리베이터를 타고 사무실 내 자리에 앉아 일을 했다. 내가 정한 나의 일을 그냥 관둘 수가 없어서. 10년을 맞이한 지금의 나는 어떤 비전을 그리고 오늘도 내일도 출근할 생각을 하고 있을까? 우선 지금 하고 있는 프로젝트를 잘 만들어서 성공시키고 싶고, 스스로 성공을 보고 싶고, 이 일로 성공을 인정받고 싶다. 그다음엔? 팀장을 달고 승진을 하고. 그다음엔 다음 프로젝트인가? 실무자인 나의 비전은 그려지지만 그다음은 잘 모르겠다. 10년차인 나도 이런데, 과연 후배들은 어떤 미래를 상상하며 출근을 하고 있을까.




옆팀 후배 D가 퇴사하고 싶다고 사내 메신저를 보낸다. 제발 퇴사하지 마 D야.. 너까지 퇴사하면 어떡하니.

근데 퇴사를 붙잡을 하나의 이유를 찾지 못하겠다. 내가 선배로써 해줄 수 있는 말이 무엇이 있을까.

일 잘하고 똑똑한 후배가, 이곳에서는 미래도 없고 일만 많고 프로젝트가 잘 돌아가지도 않는다며 키보드를 부술 듯이 메신저를 보낸다. 겨우 할 수 있는 말은 "이곳 아니라 다른 곳도 삶은 비슷해. 더 나은 삶이 있는 곳이 보이면, 그런 마음 생긴다면 응원할게. 그런데 지금이 싫다고 결정 내리지는 말자. 나는 너랑 같이 일하고 싶어. 우리 같이 재밌는 일 만들어서 함께 하자." 내 말이 효용을 가지려면 나는 일을 잘해야 한다. 나와 함께 일을 하고 싶게 만들어야 한다. 내가 좋아하는 후배들이 비전이 보이지 않는다는 이유로 퇴사를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저에게는 새로운 비전이 있어요'라는 말을 할 수 있게, 함께 만들어주는 사람이 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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