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 케네디 공항에서의 하룻밤 노숙
코로나 19로 인해 하늘길도 땅길로 막혀버렸다. 삶의 정형화된 패턴 속에 갇혀버린 답답함이 점점 무겁게 다가올 때, 나는 나의 마음을 시원케 할 생수를 간혹 추억 속에서 길어 올린다. 이 사건도 나의 메마른 마음을 적셔준 한 모금의 생수였다.
“아직도 기상상태가 좋지 않습니다 조금 더 기다려 주시기 바랍니다
(The weather is still bad. Please wait a little longer.)”
비행기가 이륙하지 못하고 계속 활주로를 맴돌고 있다. 비행기 기내에서는 중국어의 성조가 이상하게 나의 신경 줄을 곤두세운다. 나는 4 좌석의 중간에 앉아있었는데, 앞, 뒤 좌, 우에서 중국어의 물결이 삼킬 듯이 넘실댄다. 이 물결이 나를 휩쓸어 미지의 곳으로 끌고 가, 그곳에서 허우적거릴 것 같은 압박감을 나는 느낀다. 이 비행기는 홍콩을 거쳐 한국에 도착하기로 되어있는데, 한국말은 어느 곳에서도 거의 들리지를 않는다. ‘뉴욕의 맨해튼 거리를 걸어갈 때에 그렇게 흔하게 들리던 한국어들이 다 어디로 사라져 버린 것일까? 나만 이 홍콩 비행기를 탔나?’ 괜히 불안해졌다. 나만 뭔가 잘못된 선택을 한 것 같았다.
12시 30분 이륙 예정이던 비행기가 아직도 활주로를 돌고 있다. 시곗바늘이 오후 3시 30분을 가리킨다. 시간이 많이 지나서 이제 하늘을 날고 있나 싶어 창 밖을 바라보면 아직도 눈을 잔뜩 뒤집어쓰고 있는 케네디 공항이다. 무슨 이런 일이. 나는 4시간을 꾹 참고 있다가 마침내 중국인 스튜어디어스를 불렀다.
“아니, 왜 비행기가 이륙하지 않나요? 벌써 4시간이 지났습니다. (Why isn't the plane taking off? It's already been 4 hours.)”
“미안합니다. 기내방송에 나오는 대로 아직도 기상상태가 좋지 않습니다. (I'm sorry. The weather is still bad as broadcasted.)”
도대체 어떻게 하겠다는 말인지, 비행기는 계속 활주로만 돌고 있을 뿐이다. 정말 답답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아무도 스튜어디어스에게 질문을 하거나 항의하는 사람이 없다. 나만 스튜어디어스를 불러서 항의 아닌 항의를 했지, 중국인들은 계속 자기들끼리 떠들어대고 있다. ‘중국인들은 이런 시간문제에 대해 너그러운 사람들인가? 그래서 만만디란 말이 나온 것일까? 그들에게는 이런 상황이 별로 대단치 않은 일인가?’ 머릿속에서 수많은 의문들이 솟아올랐다.
이 비행기는 아직도 활주로를 돌고 있고, 밖은 벌써 어둑어둑해져 공항의 가로수들은 불을 밝혔다. 그때 기내방송이 다시 나왔다.
“신사숙녀 여러분, 폭설로 인한 기후변화 때문에 비행기의 이륙이 내일로 연기되었습니다. 저녁 밥값으로 15달러를 드립니다. 내일 공항으로 다시 오시기를 바랍니다. 조심히 가십시오.(Ladies and gentlemen, the takeoff has been postponed until tomorrow due to the heavy snow. We'll give you fifteen dollars for dinner. Please come back to the airport tomorrow. Take care.)”
중국인들은 한 마디의 항의도 없이 모두 짐을 주섬주섬 챙기더니 내리기 시작했다. 꼭 6시간이 지났다. 시계를 보니 오후 6시 30분. 이 비행기 기장님의 무한한 인내력과 가상한 노력을 칭찬해야 할지, 아님 이런 황당한 일을 아무렇지도 않은 일로 치부하는 중국인들의 대범함에 감탄을 해야 할지. 나는 한동안 너무 기가 차서 자리에서 일어서지를 못 했다. 나의 기내 좌석이 조금 앞부분에 있어서 출입문을 향해 내 옆을 지나가는 모든 사람의 얼굴들을 하나씩 하나씩 바라보면서, 치밀어 오르는 화를 간신히 억누르고 있었다. ‘아니 어떻게 이들은 이런 일을 아무 일도 아닌 것처럼 여길까?' 6시간 동안 똑같은 활주로를 계속 빙빙 돈 이 비행기도, 또 아무 일 없는 듯이 내리는 이 중국사람들도, 나에게는 그 어느 것 하나도 이해되지 않았다. 그때 내 옆을 지나는 남녀 대학생 한 쌍의 “이제 어떻게 해야 해? " 하는 한국말 소리가 들렸다. 나는 벌떡 일어나 그들에게 말을 걸었다.
"한국사람이세요? "
"네."
"어떻게 하실 건가요?"
"모르겠어요. 미국에 놀러 온 거라서 딱히 친척이 없어요."
"그래요? 그럼 같이 의논합시다."
어쨌든 한국인을 만났다는 데에서 힘이 났다. 이 낯선 땅에서 동지를 얻은 기분이었다.
"케** 퍼** 사무실에 가서 표를 바꿔 달라고 합시다."
"그게 가능할까요?"
그러면서 그들은 주춤한다. 이 젊은 대학생들은 '거의 가능하지 않는 일을 왜 하느냐' 하는 표정들이었다.
그러나 나는 이 대학생 두 명을 앞장 세워 몰고서, 물어물어 케** 퍼** 사무실을 찾아갔다. 공항 지하에 있는 사무실을 막 들어서려는데, 뚱뚱한 흑인 여성이 옷을 입고 퇴근할 채비를 하고 있었다.
"비행기표를 바꾸러 왔습니다.(I'm here to change my flight.)"
"What's the problem?(무슨 문제인가요?)"
나는 내가 아는 모든 단어를 동원해서 이렇게 말했다.
"너도 알다시피 눈 때문에 비행기가 결항되었다. 그래서 우리의 모든 계획은 엉망이 되었다. 우리는 내일 낮까지 비행기를 기다릴 수 없다. 빨리 가는 다른 비행기로 바꾸고 싶다"
그랬더니 이 사무원이 이해한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Then which flight do you want to switch to? (그럼 어떤 비행기로 바꾸기를 원하냐?)"
"Korean Air (대한항공)."
그녀는 고개를 끄덕이더니 몇 군데로 전화를 걸었다. 그리고는 말했다.
"All right. I changed your flight to Korean Air. Go to the terminal 1.(좋아, 너의 비행기를 대한항공으로 바꾸었어. 1 터미널로 가라)"
우리는 마음속으로 ‘야호’를 외쳤다. 나와 그 대학생들은 인터넷 할인표를 샀기 때문에, 거의 70만 원 정도의 표값 차이가 나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래서 정말 횡재한 기분이었다. 7 터미널에서 1 터미널로 공항버스를 타고 움직였다. 질척거리는 눈 길 위로 무거운 짐가방을 끙끙거리며 끌면서도 마음만은 날아갈 것 같았다. 도로 위에는 눈들이 쌓여져 갔고, 아직도 눈은 하염없이 내리고 있었다.
1 터미널에 도착하여 대한항공 사무실을 찾았다.
“어서 오십시오. 전화받았습니다. 수하물은 여기 맡기시고, 오늘 밤은 공항에서 주무셔야 합니다. 여기 각 개인에게 간이침대와 모포 2장을 드립니다. 출발은 내일 아침 9시 30분입니다.” 우리는 일단 말이 통하는 우리나라 사람이 우리의 귀향을 책임져 준다는 사실만으로도 안심이 되었다. 그제야 저녁을 먹기 위해, 받은 15불로 햄버거와 음료수를 샀다. 우걱우걱 햄버거를 먹으며, 서로를 조금씩 알아가게 되었다. 이 남녀 대학생들은 같은 과 동기이고 전공은 영어라고 한다. 그 순간 ‘이거 뭐지?’하는 생각이 조금 들었다. 내가 흑인 아줌마를 설득하기 위해 열심히 생존 영어로 이런저런 대화를 할 때 그들은 입도 벙긋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고마운 젊은이들, 교과서 속 활자 영어를 실생활에 사용할 수 있도록 이 아줌마에게 실습의 기회를 준 것이로구먼. 참으로 대단한 배려심이네.’ 이렇게 생각하니 그들이 미워보이지 않았고, 하룻밤을 같이 보낼 동지로 보였다.
대한 항공은 일찌감치 비행기 운행을 중단한다고 미리미리 승객들에게 알림을 보내었다고 한다. 그날 밤 공항에는 우리처럼 갑자기 일정이 취소된 사람들, 마땅히 갈 곳이 없는 사람들 열댓 명이 간이침대 위에 모포를 뒤집어써고 누웠다. 케네디 공항은 난방시설이 잘 되어 있지 않았다. 좀 추웠다. 그러나 공항에서의 노숙이라는 내 인생 최초의 진기한 경험을 즐기기로 마음먹었다. 그것도 존 F 케네디 공항에서. 나는 두터운 패딩을 꺼내 입고 누워 미국에서의 시간들을 되짚어 보았다. 오래간만에 딸과 함께 보낸 시간들로 마음이 훈훈해지면서 몸도 덩달아 따뜻해지는 기분이었다.
‘딸아, 엄마는 아직 미국에 있다. 너 엄마 데리고 여기저기 다닌다고 고생 많았지? 푹 쉬어라. 이 위험한 폭설 속으로 너를 다시 부를 수가 없구나. 눈 속을 운전한다는 것이 얼마나 위험한 줄 엄마가 더 잘 알거든. 엄마는 지금 이 상태로 만족해.’ 귀국 후 이 일을 알게 된 딸이 '왜 전화하지 않았느냐'라고 난리를 쳤지만, 그때는 이게 최선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헤어지면서 모든 이별의 감정을 소모한 후에 이를 다시 끄집어내는 것도 멋쩍은 일이고, 또 이제 자기 나름대로의 스케줄을 짜서, 다시 정돈된 생활 속으로 복귀하려는 딸아이의 옷자락을 다시 잡고 끄집어내는 행동도 마음에 내키지 않았다. 그렇게 이국땅의 공항에서 하룻밤을 노숙했다.
날이 밝았다. 어느새 눈이 그치고 반짝이는 햇살이 공항에 쏟아지고 있었다. 어제 있은 비행기의 결항 때문인지 사람들의 발걸음은 더욱 분주하였고 공항은 더욱 활기가 넘쳤다. 대학생들과 나는 간단한 아침 식사를 마친 후, 직원이 건네준 티켓으로 비행기를 탔다. 대학생들은 뒷자리를 배정받았는지 뒤로 가버렸고, 나는 앞 쪽 둘째 줄 창가 자리에 앉았다. 곧 비행기가 이륙할 것이라고 기내방송이 나온다. 그런데 나의 옆 두 자리에 아직도 사람이 오지 않았다. 조금 의아했다. 더욱 이상했던 것은 나의 옆, 4 좌석 자리에 단지 부부 두 명만이 앉아있었다. 그때 스튜어디어스는 아닌, 좀 더 직급이 높아 보이는 분이(왜냐하면 약간 나이 드신 여자분이셨고, 옷도 평상복을 입고 계셨기 때문이다) 그들 앞으로 오더니만 아주 정중하게 고개를 숙이고 인사를 했다.
“저희 비행기에 탑승하신 것에 감사를 드립니다. 여기 잡지와 간식을 가져왔습니다. 혹시 불편하신 것이 있으시면 저희를 불러주세요. 내리실 때까지 편안한 시간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그리고서는 다시 정중하게 인사를 하는 것이었다. 나는 이 처음 보는 광경에 놀라 이 부부가 무슨 연예인인가, 아님 유명한 정치인인가 싶어 찬찬히 쳐다보았지만, 이도 저도 아닌 것 같았다. 내가 알지 못하는 얼굴들이었다. 그리고 차림새도 특별하지 않았다. ‘그럼 이 분들이 대체 뭐지?’ 어쨌든 내가 알지 못하는 사람들이었지만, 그분들은 그런 대접을 받을만한 위치의 사람인가 보았다. 그 두 사람을 배려하여 4명이 앉을 좌석에 단지 그 부부만을 앉게 했고, 그 옆자리인 세 좌석은 쾌적함을 위해서인지, 아님 보안을 위해서인지, 원래는 비어있어야 할 자리인데, 난데없이 내가 자리배정을 받은 것 같았다. 신기한 경험의 연속이었다.
홍콩 경유 티켓이어서 미국으로 올 때 홍콩 공항에서 1시간 20분을 기다렸다. 밤 12시 10분에 내린 홍콩 공항은 썰렁했고, 나는 약간 지친 기분이었다. 그런데 이제 돌아가는 길에도 그 일을 그대로 되풀이해야만 한다고 생각하니, 벌써 몸도 마음도 힘들어졌다. 딸이 태워 주는 차 안에서 정말 이런 마음이 간절했다. ‘아~ 홍콩 공항에서 또 1시간 20분을 어떻게 기다리지? 올 때에도 비행기 멀미 때문에 비행기에서 뛰어내리고 싶었는데, 이 멀미를 어떻게 이겨내지? 그 시끄러운 중국말들은 또 어떻게 견디지? 오 제발, 하나님, 저 좀 도와주세요.’
나의 이 간절한 기도의 응답이었을까. 예상치 않은 폭설과 비행기의 결항. 그리고 난생처음인 공항에서의 노숙과 원하던 비행기에서의 호사스러운 자리배정. 나는 세 자리를 독차지하고서, 14시간의 비행 동안 거의 누워서 왔다. 직항이어서 기다릴 필요도 없었고, 누워서 오니 비행기 멀미도 없었으며, 또한 친숙한 우리말 때문에 마음이 너무 편했다.
둘째 딸을 우연히 미국에 유학 보내게 되었고, 없는 돈에 보낸 유학이어서, 한국에 있는 가족도, 미국에서 공부하는 딸도 모두 경제적으로 아주 힘든 시기를 보내야만 했다. 너무 오랫동안 보지 못한 딸을 보기 위해 미국을 한 번 방문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여행경비뿐만 아니라, 딸에게 약간의 용돈도 주고 와야 하는 처지였기에 쉽사리 발이 떼어지지 않았다. 그런데 학교에서 퇴근하는 어느 날, 내 뒤차가 난데없이 내 차의 뒤를 들이박았다. 그리고 그 사람이 나에게 합의금을 제시했다. 얼떨결에 일어난 일이라 약간 흠집난 뒤 범퍼와 약간 아픈 뒷목을 부여잡고 "오케이"라고 말했다. 그래서 일단 미국으로 출발할 수 있는 여행경비의 일부가 마련되었고, 출발해야겠다는 계기가 되었다. 나는 한 푼이라도 돈을 아껴야 하는 처지여서, 미국 가는 티켓을 싼 값으로 파는 인터넷 예매를 했다. 그러나 가는 길이 너무 힘들어서, 정말 어떻게 다시 돌아와야 할지가 절로 고민이 되었다. 그런데 예상치 못한 오아시스를 만났고, 힘든 그 시기에 새 힘을 얻은 경험을 하게 된 것이다.
'사막이 아름다운 것은 사막 어디엔가 오아시스가 숨겨져 있기 때문'이라는 말이 생각이 난다. 삶의 고됨으로 인해 한 움큼의 생수를 갈망할 때, 거저 값없이 주어진 이러한 위로 때문에, 이러한 예기치 못한 기쁨들 때문에, 우리의 인생길에도 푸르름이 깃들고 새들이 노래를 하게 된다.
사방이 둘러싸인 듯 도대체 출구가 없는 것 같이 보이는 요즈음, 지나온 시간 속에서 아름다운 추억들을 하나씩 구슬 꿰듯 꿰어보면 어떨까 하는 생각을 한다. 어느 누구나 살아오면서 한두 가지라도 다시금 되돌아보고 싶은 추억이 있기는 마련이다. 그러하듯이 반드시 미래라는 직물에도 이런 아름다운 무늬가 짜일 것은 당연한 일이 아닐까. 그래서 나그네가 아스라한 언덕길을 바라보며 옷 섬을 추스르듯, 나는 나의 마음을 추스르며 오늘도 묵묵히 나의 언덕길을 넘고자 한다. 어딘가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을 그 오아시스를 꿈꾸며.
(아 참! 언젠가 중국사람을 만나 이 사건을 이야기한 적이 있다.
“중국이라는 땅덩어리는 엄청 큽니다. 그래서 항상 사건사고가 일어나지요. 갑자기 홍수가 나서 기차 운행이 지연된다던지, 아님 산사태가 생겨서 버스길이 끊긴다던지. 그래서 중국인들에게는 그런 사건들이 그냥 그렇고 그런 일상적인 일로 생각될 겁니다.”)
In his heart a man plans his course, but the LORD determines his steps.(Proverbs 16: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