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밖으로 보이는 나무는 새 옷으로 단장을 했다. 지금까지의 파릇파릇한 애송이의 모습에서 알록달록 화려하게 치장한 여인의 모습으로 가을바람에 온 몸을 맡기고 있다.
‘그래 나무야, 너 참 좋은 때이구나.’
빨간 머플러를 두른 나무, 머리를 온통 노랗게 물들인 나무, 조금 삐친 듯 새침한 갈색으로 치장하고서는 눈을 내리깔고 지나가는 사람들을 은근슬쩍 바라보는 나무, 모두가 지금의 젊음을 마음껏 누리는 모습이다.
나의 지나간 젊음은 이들 나무에 비해 너무 소박했다. 멋의 상징인 하이힐은 몇 번 신다가 ‘편한 것이 최고’라고 외치며 운동화로 대치되었고, 몇 번의 마스카라와 진한 눈 화장은 깨끗이 지워야만 눈이 건강할 수 있다는 ‘눈 건강설’로 인해 슬그머니 자취를 감추었고, 지지고 볶는 파마와 알록달록하게 머리카락 군데군데를 염색하던 그 당시의 헤어스타일은 ‘정신 사납다’는 엄마의 부정적인 의견 때문에 시도조차 해보지 못 한 채, 대학 4년 동안 지겹도록 똑같은 긴 생머리로, 그리고 진한 립스틱 한 번 그려보지 않은 채, 내 젊음은 물에 물 탄 듯이, 그렇게 맹물 같이 흘러가 버렸다.
“ 귀 몇 군데 더 뚫고 싶지만 남편이 말려서 지금 참고 있는 거예요”
내 옆자리에 앉은 선생님의 귀에 크고 작은 귀걸이가 4개나 걸려 있다. 그런데 더 뚫고 싶은데 참고 있다고 한다. 아마 귀 뚫는 것도 중독이 되나 보다.
언젠가 너무 예쁜 사람을 만나 ‘너무 예뻐요’라고 감탄했더니 그 옆 친구가 "지금 얼굴은 성형 발인데 오히려 성형하기 전이 더 예뻤어요"라고 한다.
"아니, 성형하기 전이 더 예뻤다면 정말 타고난 미인인데, 무슨 성형이 필요했나요? "
의아해하는 나의 질문에 그 친구는 '이 부분을 좀 고치면 더 예뻐지지 않을까?' 하고 손대기 시작하면서 이 부분도, 이 부분도, 계속 이 부분도 하다가 모든 부분을 손대었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성형도 중독이라고 말한다.
성형은 감히 내 사전에 없는 단어이고, 머리카락으로 가리면 과연 귀를 뚫었는지 아닌지도 알지 못하는 그 귀 뚫는 것조차도 시도해 보지를 못 했다. 언젠가 여성잡지를 읽다가 '여자가 더 예뻐 보이는 3가지 팁‘이라는 글을 읽은 적이 있다. 첫째 어떤 헤어스타일을 하느냐, 둘째 어떤 옷을 입느냐, 셋째 어떤 귀걸이를 하느냐 라고 했다. 첫째와 둘째는 너무 뻔한 내용이라서 '이걸 기사라고 썼냐'라는 반발심이 올라왔는데, 세 번째의 귀걸이 문제는 내가 생각지도 못 한 내용이었다. ' 아하, 귀걸이가 아름다움에 한몫을 하는구나 '라고 그때 처음 알게 되었다. 그래도 귀를 뚫지 못했다. 예뻐지고 싶은 마음은 굴뚝같은데 '혹 부작용이 나면 어떡하나? 남들이 어떻게 생각할까? 돈은 얼마나 들까?'등의 생각만 하다가 세월이 다 흘러가 버렸다.
그런데 난데없이 나이 오십 중반에 귀 뚫을 일이 생겼다. 그것도 아주 당당하게, 모든 사람에게 정당한 이유 거리를 말하면서 말이다. 둘째 딸아이를 시집보내는데, 그 시어머니 되실 분이 아주 멋쟁이셨다. 첫아들을 장가보내면서 결혼식에 대한 본인 나름대로의 시나리오를 가지고 계셨다. 즉 '신랑 엄마와 신부 엄마의 한복은 옷고름과 끝동은 같은 색으로, 신부 엄마의 한복 색깔은 밝고 따듯한 색, 신랑 엄마의 한복 색깔은 따뜻한 색에 대비되는 색으로, 그리고 양가집 엄마들이 화촉을 밝힐 때 오른손으로 촛불을 켜야 하니 오른손에 똑같은 진주 반지를 하고 더불어 똑같은 진주 귀걸이를 한다'는 것이었다. 청담동에서 만나 한복을 함께 맞추는데, 그분은 저고리 색은 겨자색, 치마 색은 남색, 옷고름과 끝동의 색은 회색으로 막힘없이 척척 주문하여서 한복집 주인마저도 그 색깔 감각에 놀라워했다.(한복에 대해 일가견이 있으시거나, 미리 어떤 옷을 입겠다고 생각을 많이 하신 경우라고 생각됨) 그런데 아무 생각 없이 나간 나는 한참을 머뭇거리다가 저고리는 연분홍, 치마는 더 진한 분홍으로, 그리고 옷고름과 끝동은 같은 회색으로 했다.
한복 색깔 고르는 일이 끝나자, 사돈은 나의 손가락 사이즈를 물으면서 귀걸이와 반지는 본인이 맞추어서 보내겠다고 한다. 나는 좀 당황하여 " 아직 귀를 뚫지 않았는데요 "라고 말하자
"아니 딸을 둘이나 가지신 딸 엄마가 귀를 아직 안 뚫으신 거예요? 귀를 뚫으셔야 합니다. 값진 귀걸이는 잃어버리지 않기 위해서도 뚫는 귀걸이로 하셔야 합니다. "
그래서 부랴부랴 귀를 뚫었다. 내심 좋았다. 드디어 나도 아름다움을 더해주는 귀걸이를 하게 되었다는 것이 기뻤다. 그 날 이후로 하루도 귀걸이를 하지 않은 날이 없다. 젊은 날에 다 하지 못한 날까지 모두 계수하여서 귀걸이를 주야장천 하고 다니리라는 묘한 오기까지 생겼기 때문이다.
며칠 전에 새치를 염색하기 위해 미용실에 갔다. 날마다 밤색, 흑색으로 정말 새치염색을 했는데, 며칠 전 학교에서 본 상담 선생님의 와인빛 머리색이 너무 예뻤다고 미용사에게 말하니 미용사는 '이때다' 싶은 모양이다.
”레드와인색으로 한번 해 보세요. 너무 멋지실 거예요. “
”아니 지금 염색약 다 제조해 놓으셨잖아요. “
”괜찮습니다. 다시 제조하면 되죠 "
그리고는 부리나케 다시 염색약을 제조한다. 물론 색깔 염색약이 새치염색약의 7배 이상은 비싼 가격이니, 미용사로서는 하나는 버려도 이게 더 이익이 된다고 생각하는 것 같았다.
'잘 못 되면 어떡하나? 아이들 앞에 서야 하는데 ' 오만가지 생각이 들었다.
약 두 시간 후 모습을 드러낸 머리 색깔은 나쁘지 않았다. 아니 보기 좋았다. 확실히 여자는 돈을 덧발라야 예뻐지는 존재인데, 나는 지난날 용기와 돈에서 소박했던 것은 아닐까?
화려하던 단풍잎들이 곧 앙상한 가지만 남은 모습으로 젊음을 걷어내리라. 그러나 내년이면 또다시 새싹을 틔우며 알록달록 젊음을 꿈꾸는 그들에게 나는 무한한 질시의 눈길을 보낸다. 조금 모자라게 지나가 버린 나의 젊음을 회상하며, 남은 인생은 단단한 가지만 남은 모습이지만, 더 많은 용기와 더 많은 풍성함을 꿈꾸는 나로 우뚝 서 있기를 소망한다.
"He turned the desert into pools of water and the parched ground into flowing springs."(Psalms108:3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