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 밖으로 바라보이는 나무들은 초록, 노랑, 주홍으로 색깔 이동이 한참이다. 온전히 색깔을 바꾼 옷을 입은 나무들, 혹은 겨울철 벌거벗은 몸의 나무들은 자신들이 낯설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 본다. 왜냐하면 중2의 남자아이들이 요즘 나에게는 낯선 존재이기 때문이다.
학교는 생각지도, 준비되지도 않은 온라인 수업의 몸살을 앓고 난 후 조금 성숙해졌다. 다양한 온라인 수업매체들을 다루는데 익숙해지기 시작하자마자, 이제 다시 온라인과 오프라인 병행 교육으로 사람을 더 정신없게 만들고 있다. 대부분의 선생님들이 학년을 걸쳐 수업을 하기 때문에, 매일 나오는 3학년과 격주로 등교하는 1, 2학년의 수업을 준비하다 보니, 온라인 수업과 오프라인 수업 두 가지를 준비하고 수업해야 한다.
이번 주 학교에 등교한 2학년들은 지금 나와는 수업이 없다. 나는 올해 3학년과 1학년의 수업을 맡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작년 한 해를 같이 한 그 정 때문인지, 아님 내가 만만해서인지 이 아이들이 수시로 나를 찾아온다.
어느 날 내 어학실에 들린 지우가 구석에서 먼지를 잔뜩 뒤집어쓴 웅크린 자루 포대를 발견했다.
“선생님 이거 뭐예요?”
“으응, 그거? 아~ 그거 건방 포대인데~”
“건빵요? 어떤지 봐요, 선생님”
“그래. 상태가 어떤지 보자.”
혹시 있을지도 모를 쥐 때문에 몇 겹으로 꽁꽁 묶어놓은 비닐을 풀고 건빵 포대를 가위로 자른 뒤, 한 움큼 집어내니 새하얀, 통통한 건빵이 배시시 웃으면서 나타났다.
“와~ 엄청 맛있어요.”
한 움큼 건네받은 지우는 무슨 로또 당첨이라도 된 듯이 기뻐 어쩔 줄을 모른다.
나도 한 개를 입에 넣어보니 그런대로 먹을만했다.
“그래? 그렇게도 맛있어? 매일 와라, 내가 줄게”
“와~ 선생님~ 좋아요~”
또 한 움큼을 받아가면서 지우는 좋아서 펄쩍펄쩍 뛰었다.
이것이 사건의 발단이다. 작년의 대면 수업 때 나는 수업시간에 아이들에게 사탕을 주었다. 질문했을 때 대답을 잘하는 아이, 집중하는 아이, 특히 학습결손이 있지만 따라잡기 위해 열심히 노력하는 아이에게는 무언가 주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다. 그래서 업소용 대용량 사탕을 사서 주기 시작했는데, 이게 폭발적인 인기를 누렸다. 사탕 하나가 무엇이길래, 아이들이 이 사탕에 목숨을 거는 것 같아 흥미롭고도 놀라웠다. 사탕 하나 못 사 먹을 처지의 아이들이 아닌데도, 수업시간에 사탕이 촉진제의 역할을 톡톡히 해 주어서, 나는 오히려 이런 아이들이 고맙고도 감사했다. 그런데 문제는 사탕껍질이다. 항상 사탕을 주면서, ‘껍질은 쓰레기통에 버려야 된다’라고 말할 때는 찰떡같이 모두 “예”라고 하고서는, 수업 후 어학실 밖에 나가보면 사탕껍질이 복도 계단 여기저기에 흩날리고 있었다. 대부분 경우, 남학생들이 그 범인이다. 여학생들은 까서 껍질을 쓰레기통에 버리거나 아예 호주머니에 사탕을 넣어두는데, 남자아이들은 받은 사탕을 다른 아이들 앞에 한번 흔들어 보이고는, 꼭 수업 후 교실로 올라가면서 사탕을 까먹기 원했다. 즉 남학생들은 자기의 전리품을 좀 더 간직하고 싶어 했고, 또 이 전리품을 가지지 못한 아이들 앞에서 한껏 부러움을 받으며, 보란 듯이 사탕을 까서 입에 넣기를 즐기는 것 같았다. 이런 날이 계속되자 청소하시는 여사님께 미안해서라도 무슨 조치를 취해야겠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런데 마침 그때 전교사 대상의 연수에 초청받아 오신 강사 선생님께서 본인도 학생들의 학습의욕 고취용으로 사탕, 쵸코렛, 학용품 다 사용해 보았는데 가장 좋은 물품은 건빵인 것 같다고 말씀하셨다. 학생들이 시장할 때나 조별 활동 시 한 움큼의 건빵은 막대한 효과를 발휘하며, 특히 쓰레기가 없는 것이 큰 장점이라고 주장하셨다. 그래서 나는 그날 바로 건빵 두 포대를 주문하였고, 내년에는 이 건빵을 사용하리라고 기대했었는데, 코로나로 인해 학생들을 만나지 못했고, 건빵은 점차 잊힌 존재가 되었다. 그런데 이 건빵의 존재를 되살린 것이 지우이다.(지우는 가끔 내 방의 냉장고도 마음대로 열어서 나의 간식거리 상태가 어떤지를 체크한다)
다음 날 3학년 1교시 수업시간이었다. 나도 그날 바빠서 아침을 먹지 못해 시장했다.
“얘들아 오늘 아침 먹고 왔니? 배 고프지 않아? 건빵 먹을래?”
나는 둥근 큰 통에 건빵을 가득 담아 들고 학생들 앞에 섰다. 3학년 아이들의 반응은 천차만별이다. 2/3 정도는 ‘뭐 공짜인데 손해날 것 없다, 시중에서 거의 사 먹지 않는 건빵의 맛이 어떤지 이번 기회에 한 번 먹어볼까’하는 표정으로 두 손을 벌렸다. 나는 나의 건빵이 너무 하찮게 여겨지는 것을 막기 위해, 또 아이들의 탐욕을 막기 위해 없는 거짓말을 지어내었다.
“얘들아, 선생님이 먹어보니 딱 6개가 좋은 것 같아. 더 이상 먹으면 목이 막혀. 그러니 지금부터 모든 상은 건빵이고 개수는 6개야.”
몇몇 아이들은 더 많은 건빵을 원했지만 ‘규칙은 지켜져야 한다’는 말로 얼버무렸다. 나머지 1/3 정도의 학생들은 자신이 원하는 건빵 개수를 주문했다. 1개에서 6개 사이로. 그들의 이유로는 ‘목이 막힌다. 별로 건빵을 좋아하지 않는다, 배고프지 않다. 좀 고급스러워 보이지 않는다. 즉 허접해 보인다’등의 반응을 나타내었다. 반 전체 아이들에게 그들의 요구대로 건빵을 다 돌린 후, 나도 6개의 건빵을 먹어보니 배가 고파서인지 꿀맛이었다.
“얘들아 맛있는데. 그렇지 않아?”
역시 2/3 정도의 아이들만 만족의 대답으로 고개를 끄떡거린다. 이 아이들과 함께 공부하고, 함께 같은 음식을 먹으니 어쩐지 나의 마음이 좀 더 열리는 것 같이 느껴지는 것은 나만의 착각이었을까?
그날 점심시간이었다. 점심식사 후 양치질을 하고 수업을 준비하려는데, 2학년 남자아이들 한 무리가 어학실로 들어온다. 지우가 가장 앞장서서.
“무슨 일이야?”
“선생님, 건빵 먹으러 왔어요.”
“아니 오늘 점심 맛있던데, 그래도 부족해?”
나는 신기했다. 막 점심을, 그것도 맛있는 점심을 먹자마자, 3학년 한 학생의 말대로 이 허접한 건빵을 받으러 이렇게 떼를 지어 왔다는 것이 신기했다.
“그래도 건빵 먹고 싶어요.”
“그래? 주지. 단 6개씩이다.”
“네~”
그런데 가만히 보니 이 2학년 남학생들의 머리 모양이 다 똑같다. 모두 머리를 아주 짧게 잘랐다. 무리로 모여 서 있으니 무슨 군인들이 단체로 줄 서 있는 것 같았다.
나는 눈이 휘둥그레져서 물었다.
“아니, 머리들은 왜 이렇게 짧게 잘랐어? 이게 유행이야?”
아이들은 헤죽헤죽 웃으면서 “네”라고 대답한다.
‘질풍노도의 시기’라는 중 2 남학생들.
사람들은 무엇인가 새로운 결심을 하거나, 결단을 나타내는 수단으로 머리를 아주 짧게 깎는다. 소위 빡빡머리이다. 보는 사람들은 한순간 ‘뭐지?’ 하면서 잠깐 당황한다. 그리고는 ‘음, 무슨 결단을 한 모양이네, 아님 강하게 주장하는 생각이 있든지, 이것도 저것도 아님 율 브린너처럼 강한 인상을 남기기 위한 패션의 일부분인가?’라고 추측들을 하게 되는 것이다.
그런데 이 아이들의 얼굴에는 결연한 결심도, 결단도 없다. 헤벌레 웃는 모습들이 오히려 갓난아기 같이 천진난만하다. 그러나 마음 한 구석에서는 ‘이렇게 똑같이 머리를 짧게 깎으므로 서로의 공감대를 형성하나 보다, 그래서 내면의 불안한 감정들을 누그러뜨리며, 나를 이해하는, 나와 같은 모양의 친구가 있다는 동지의식을 느끼나 보다’라고 생각하니, 자신의 존재를 위해 이렇게 발버둥 치고 있는 아이들이 측은해 보였다. 또한 살짝 마음이 약해지려고도 했다. 그러나 ‘규칙은 지켜져야 하는 것’이라고 다짐하면서 각 아이들에게 건빵 6개씩을 주었다. 자신의 얼굴에 맞는 헤어스타일로 한껏 자신을 뽐내던 작년의 아이들이 모두 빡빡머리로 손을 내 밀고 있는 모습이 나의 마음을 짠하게 했다. 그래서 오히려 큰 소리쳤다.
“ 야, 모두 자신이 먹은 건빵 개수를 기억해야 한다. 그래서 졸업식 때 나랑 계산해야 해.”
2학년 학교 등교일 점심시간에는 이 무리의 아이들이 어김없이 어학실에 나타난다. 그리고 점점 그 숫자가 늘어가고 있다. 모두 다 머리를 짧게 깎고서. 건빵을 주면서 ‘졸업식 때 계산해야 하니까 먹은 개수를 기억해야 한다’라고 말하면 아이들은 6의 배수의 숫자들을 마구 외쳐댄다. 이들에게 건빵을 주면서 나는 점점 이런 생각이 든다. 이건 허접한 6개의 건빵이 아니라 사랑과 위로의 선물이라고. 이 요동치는 시기를 잘 통과하여 모두 어엿한 한 사람으로 든든히 세워지기를 소망하는 나의 격려의 선물이라고.
“나의 빡빡머리들, 모두 파이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