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9월 2일.
하늘이 너무 예쁜 날이다. 파란 가을 하늘에 아무렇게나 누운 흰구름들. 그들을 바라보는 우리에게도 마냥 그 파란 하늘에 몸과 마음을 던져 편안히 쉬기를 유혹하는 구름들. 나는 마음을 열어 하늘을 담는다.
"선생님, 어디 계세요?"
"응. 얘들아, 이 사진 있는 곳으로 와라."
나는 단톡방에 사진을 올린다.
10시에 정문이 열리지만, 8시 20분인 지금, 벌써 여러 학교에서 온 학생들로 북적대는 입장문 앞에서 나는 나의 아이들을 기다린다. 코로나 이후 3년 만에 시행된다는 현장체험학습이다. 오래간만에 가지게 된 기회의 소중함도 있지만, 나는 너무나 쾌청한 날씨 때문에 더욱 마음이 설렌다. 학교의 틀 안에 갇혀있던 몸과 마음을 자유롭게 풀어놓을 수 있기 때문에, 학생에게도, 선생님에게도 오늘은 즐거운 날이다.
올해 5월 5일, 미국의 딸 가족과 에버랜드에 와서 고생한 경험 때문에(브런치 2022년 5월 7일 에버랜드) 나는 오늘의 에버랜드 일정에도 그다지 큰 기대를 하지 않았다. 오히려 자연 속에 있을 수 있다는 사실이 내게는 만족스러웠다. 그래서 돗자리와 먹을거리, 책 두 권을 챙겼다. 좀 조용한 곳에 돗자리를 깔고, 주섬주섬 먹거리를 입으로 넣으며, 눈으로는 책을 읽고, 피부의 세포들은 가을 공기의 청량함을 즐기며, 자연이 주는 깨끗한 공기를 들이킨다면, 그리고 가끔씩 눈을 들어 파란 하늘을 쳐다본다면, 오늘 하루는 행복한 신선놀음이 될 것 같았다.
21명(코로나로 1명, 다른 질병으로 1명이 결석함)이 지정장소에 다 모였다. 교복을 벗고 한껏 치장한 아이들은 대부분 친한 친구끼리 짝을 지어 모여 온다. 이러한 활기찬 분위기 가운데서도 섬처럼 혼자 동떨어져 있는 아이들이 몇 명 눈에 들어온다. 나는 이 혼자인 아이들이 이 북적대는 끼리 문화 속에서 혼자 돌아다니며 느낄 외로움을 생각하니 마음이 아파졌다.
나는 아이들에게 비상식량으로 건빵 20개씩을 작은 비닐봉지에 넣어 건네주면서(대부분의 아이들이 들뜬 기분에, 또 이른 약속시간에 맞추기 위해 아침을 거르고 올 것 같았다. 나도 아이들보다 먼저 도착하기 위해 아침을 거의 먹지 못 했다.) 출석체크를 하고 입장권을 건네준다. 굳게 닫힌 정문 앞에, 아이들은 길게 줄을 선다. 우리는 거의 1시간가량을 기다려야 한다. 9월의 아침 햇살이 생각보다 따갑다. 햇살을 온몸으로 받으며 서 있는 아이들의 이마에는 어느새 땀방울이 맺히고, 아이들은 그 땀을 손바닥으로 쓸어내리면서도 끊이지 않고 재잘대며 친구와 수다를 떤다.
빛 가운데 있는 어둠은 더욱 눈에 띈다.
"얘들아, 가능하면 친구들과 함께 다녀라"
나는 이 말을 하면서 몇몇 아이들에게는 개별적으로 누구와 함께 다니기를 부탁한다. 물론 내 부탁을 받은 아이들은 알겠다고 고개를 끄덕인다.
정각 10시. 세상에 종말이 와도 변하지 않을 것 같은 이곳의 규칙이 적용되는 순간, 문이 활짝 열리고 아이들은 밀물처럼 문 안으로 빨려 들어가기 시작한다. 거대한 물결은 순식간에 분말처럼 부서져 이곳저곳으로 흩어진다.
"선생님, 어떡하실래요? 전 놀이기구 타러 갈래요."
가장 나이 어린 처녀 선생님은 아이들처럼 들떠있다. (우리 일행은 세 명이다. 이 나이 어린 처녀 선생님과 50대인 다른 여선생님, 그리고 나. 2학년 12반 중 3반만 1학년과 함께 에버랜드로 왔고 나머지 9반은 롯데월드로 갔다.) 나와 다른 선생님은 서로 얼굴을 쳐다보면서 잠시 망설였다.
"우리도 이 선생님 따라가 봅시다."
다른 여선생님이 나의 팔을 이끈다. 그래서 나의 계획은 물거품이 되고, 우리는 함께 스마트 줄 서기를 신청하면서, 가장 줄이 짧은 곳을 찾아다니며, 여러 가지 놀이기구를 탔다. 범퍼카, 스카이댄싱, 아마존 익스프레스, 사파리 월드, VR어드벤처, 슈퍼 윙스, 그리고 동물원에서 여러 동물들 보기 등. 지금까지 에버랜드에 온 여러 번의 방문 가운데서 나는 오늘 가장 많은 체험을 했다. 우리 세 명은 함께 웃고, 함께 떠들고, 함께 먹으며, 학생들보다 더 깔깔거리며 함께 시간을 보냈다.
"선생님 두 분이 함께 해 주셔서 오늘 더 즐거웠어요."
우리는 아마존 익스프레서에서 온 몸에 물을 흠뻑 뒤집어쓰고도 서로를 쳐다보며 웃어댔다. 나이 어린 여선생님의 말대로 함께여서 우리는 더 신나고 즐거웠다.
3시 20분. 종례시간이다. 우리는 서둘러 각자의 약속 장소로 갔다.
아이들이 한 무리씩 약속 장소로 나타났다.
"얘들아, 재미있었니?"
고개를 끄덕이는 아이들의 표정이 밝다.
"어? 그런데 이 아이는 왜 안 와? 너희들 같이 다니지 않았니?"
몇몇 아이들에게 아직 오지 않은 아이에 대해 묻는다. 특히 내가 부탁한 섬과 같던 아이가 아직 나타나지 않았다.
"어떻게 된 거야?"
"같이 줄 서다가 헤어졌어요."
아이들은 나름대로 최선을 다 한 것 같은데, 찰떡같은 사이인 친구와는 떨어지지 않았는데, 모래알 같은 친구를 내가 억지로 붙였더니만, 어느 사이에 떨어졌는지 자신도 알지 못한다는 표정이다. 전화하고 찾고 기다렸다. 한 명은 커다란 인형을 산다고 늦었다고 하고, 한 명은 일찌감치 나보다 먼저 약속 장소에 혼자 덩그러니 나와 있었고, 마지막 한 명의 여학생이 제일 나중에 헐떡이며 나타났다. 그런데 이 아이의 표정이 거의 울상이다. 나는 그 아이에게 너무 미안하고(그 아이가 다른 친구의 전화번호를 묻는 전화가 왔었는데, 그것이 혼자 있다는 신호인 것을 나는 알지 못했다. 나는 그때 줄 서기를 하면서 즐거워하고 있었다.) 또한 혼자 헤매고 다니면서 얼마나 힘들었을까를 생각하니, 슬펐다.
"누구야. 집에 갈 때 선생님과 같이 타고 가자. 내가 데려다줄게."
나머지 두 명에게도 같이 가자고 말하니, 혼자 덩그러니 먼저 와 있던 아이는 굳이 택시를 타고 가겠다고 하고(이게 본인에게 더 편하다고 한다) 다른 한 명은 올 때 아버지가 데려다주셨는데, 갈 때도 아버지가 오신다고 기다리겠다고 한다.
나는 한 명의 아이와 함께 차를 탔다. (세 명을 제외한 나머지 학생들은 더 놀고 오겠다고 하면서 에버랜드에 남았다.) 옆에 앉은 아이와 두런두런 이런 이야기, 저런 이야기를 하면서, 나는 그 아이를 조금씩 알아갔다. 너무 착하고 때 묻지 않은, 그러나 인간관계에 우둔하여 소외된 아이. 점심시간에도 늘 혼자서 밥을 먹는다고 한다.
"누구야, 점심시간에 선생님과 함께 먹을까?"
"중학교 때도 선생님과 같이 먹은 적이 있어요."
이 아이는 학급 친구들과 관계를 맺지 못 한 시간이 오늘내일의 문제가 아니다. 아예 친구관계를 차단하고 지내는 것 같다.
"그럼 다른 반 친구는 있니?"
"다른 반에 한 명이 있는데 같은 학원에 다니는 아이예요. 그런데 그 친구는 또 다른 친구가 많아요."
"그래? 그럼 선생님이 4교시까지 수업이 있는 날 연락할 테니, 나와 같이 밥 먹자."
"네, 선생님."
"너 짜장면 좋아하니?"
"네."
"선생님은 에버랜드에 오면 잘 들리는 짜장면 집이 있어. 먹고 갈래?"
"네."
우리는 함께 짜장면을 시켰다. 나는 깨끗이 한 그릇을 다 비웠는데, 이 아이는 조금밖에 먹지를 않는다.
"왜 그렇게 조금 먹니?"
"저 원래 많이 먹지를 못 해요."
"그래? 그럼 억지로 먹지 마."
학교까지 차로 데려다주었다. 신호등을 건너 집으로 향하는 아이의 조금은 움츠러든 뒷모습을 바라본다.
'누구야, 언젠가 너의 순수함을 아는 좋은 친구가 생길 거야. 움츠러들지 말고 당당하렴'
등 뒤에다 대고 고함치고 싶은 욕망을 억누르며, 나는 집으로 향한다.
이 글을 쓰면서, 나는 오늘 찍은 사진들을 다시 바라본다. 너무나 아름다운 하늘을 후광처럼 두르고, 생명이 약동하며 솟구치는 아이들이 웃으면서 나를 쳐다본다. 눈이 시리도록 파란 하늘과 자유로움을 만끽하는 하얀 구름들. 아이들의 마음에도 이 파랗고 높은 인생의 청사진과 아무렇게나 흩어져 있으나 파란 하늘과 조화를 이루는 흰 구름처럼, 조화로운 자유를 인생 내내 간직하게 되기를, 또한 섬과 같던 아이들은 파란 바다 위를 마음껏 운행하는 마음이 되기를, 그리고 구름 같은 친구들이 여기저기 떠 있기를 나는 오늘 소망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