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이번 학기에 큰 변화를 가졌다.
1. 고등학교 학생
오늘 반장선거를 했다. 반장에 남학생 한 명과 여학생 한 명인 두 명이, 부반장에도 똑같이 두 명의 후보가 나왔다. 우리 반은 여학생이 14명, 남학생이 9명이다. 즉 여학생의 파워가 더 센 반이다. 치열한 접전을 벌이다가 반장은 남학생이 한 표를 더 얻고, 부반장은 여학생이 한 표를 더 얻어, 반장에는 남학생이, 부반장에는 여학생이 당선되었다. 원래 반장에는 남학생 1명만이 지원해서 무투표 당선이 예상되었었다. 그런데 마지막에 부반장에 나섰던 여학생이 반장 후보로 변경하겠다고 선언하면서, 막상막하의 선거가 이루어진 것이다.
반장에 당선된 남학생은 놀란 가슴을 쓸어내리며, 반장이 된 것을 아주 기뻐했다. 나도 속으로 내심 기뻤다. 무투표 당선보다 아슬아슬하게 이긴 투표에서 맛보았을 그 감격이 반장이라는 이 소박한 권력(?)에 겸손함을 더해줄 것이고, 한 학기를 기쁨으로 봉사할 수가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반장 선거 후 청소당번을 조직하는데, 나는 반장, 부반장을 다 청소당번에 넣었다. 1학기 때, 반장, 부반장은 청소당번에 들지 않았다고 한다.(나는 2학기에 이 반을 맡게 되었다)
"얘들아, 반장, 부반장은 친구들을 잘 섬기는 자리야. 너희들이 커서 사회에 나가기 전에 섬기는 훈련을 하는 자리가 반장, 부반장이라고 생각하면 돼. 요즘 세상은 남을 잘 되게 해주는 사람이나 회사가 성공하는 세상이란다. 지금 남을 잘 섬기는 훈련이 되어 있어야 나중에 세상에서도 성공할 수가 있단다."
기존의 규칙을 뒤집은 새로운 규칙을 만들었는데도 반장, 부반장이 이를 잘 받아준다.
고등학교 2학년인 우리 반 아이들은 누구 하나 뛰어나게 걸출한 아이도 없고, 모나게 튀는 아이도 없다. 조용하게 자신의 할 일을 한다. 그런데 고등학교 아이들이 조용한 큰 이유 중 하나는 고등학교 아이들은 스마트폰의 소지가 자유로워서 그러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해 본다. 아이들이 쉬는 시간이면 폰을 들여다본다고 별로 떠드는 아이도, 싸돌아다니도 아이도 없다. 모두 앉아서 폰에 집중해 있다. 그러니 교실은 조용할 수밖에 없다. (폰의 자유로운 소지가 교육적으로 좋은지, 어떤지는 좀 더 관찰해 봐야겠다) 중학교 아이들은 쉬는 시간이면 난리를 치고 소동을 일으키는데 비해, 고등학교 아이들은 더할 나위 없이 조용하다. 학생관리 차원에서 본다면 선생님들에게는 너무나 좋은 아이들이다.
이 학교의 위치가 경제적으로 조금은 안정된 사람들이 사는 지역이어서인지, 영어를 못 읽는 학생은 없다. 그리고 아이들이 다 유순하다. 그 예로 투표용지를 다 만들었고 이제 투표를 시작하려고 하는데, 부반장으로 나온 아이가 갑자기 자신은 반장으로 나가고 싶다고 말한다. 반장은 후보자가 1명, 부반장은 후보자가 3명이니, 부반장 선거가 경쟁이 더 치열할 것은 불 보듯이 뻔한 일이다. 그래서 이 아이가 갑자기 마음을 바꾸었는지는 알 수가 없지만, 이 안을 받아들일 것인지 아닌지를 찬반투표를 했고, 우리 반 아이들은 이를 수용한다는 찬성에 더 많은 표를 던져 주었다. (내가 보기에는 좀 황당한 사건이었다.) 아이들이 상대방에 대해 반대하는 성향이 아니라 대체적으로 수용하는 성향을 가져서인지, 수업시간에도 선생님들의 눈에 거슬리는 행동을 하는 아이들이 별로 보이지 않는다.
2. 교재
고등학교 2학년 영어이다 보니, 선택한 교과서에서도 어려운 지문이 있는 단원만 뽑아서 공부를 하고, 나머지 시간에는 수능 문제지를 푼다. 요즈음의 수능 지문은 단순히 해석만 하는 지문이 아니라, 지문 속에 포함된 다양한 생각이나 주장, 사상을 알아야 그 지문을 완전히 이해할 수가 있다. 그 지문들을 미리 공부하면서, 그 지문에 연관된 이론, 사상, 근거들을 찾아보다 보니, 나도 덩달아 생각의 폭이 넓어지는 것 같아 기분이 좋다. 공부하기 좋아하는 나의 적성에는 딱 맞는 수업이다.
3. 통근 시간
요즈음 호사를 누리고 있다. 예전의 학교는 갈수록 교통난이 심해져, 어느 때에는 학교에 가는데 1시간 30분 이상이 걸린다. 학교에 도착하면 진이 빠져, 공부를 가르치기 위해 밑바닥에 고여있는 힘까지 끌어올려야 할 때도 있다. 그런데 이 학교는 집에서 15분 거리이다. 남편과 아침산책을 30분 정도 하고, 아침밥을 먹고, 어느 때에는 디저트까지 먹고 가도 여유만만하게 학교에 도착할 수가 있다. 집 가까이 학교가 있다는 것이 이렇게 좋을 수가 없다는 사실에 감격하며, 이러한 환경이 구비된 것에 고마움과 감사함을 느낀다.
새로운 기회가, 그것도 너무 좋은 환경이 나에게 주어진 것이 나는 놀랍고 놀랍다. 특히 담임으로 아이들을 맡게 된 것이 나는 너무 좋다. 이 아이들이 건강하게, 바르게 자라나, 본인의 꿈을 이룰 뿐만 아니라, 사회에 도움을 주는 사람으로 성장하게 되기를 바라며, 나의 반, 23명의 아이들을 나는 가슴에 품고 있다. 멀리 떠나 있는 나의 두 딸 대신에, 하나님이 나에게 23명의 자녀를 주신 것 같아서, 나의 반 아이들 한 명, 한 명이 너무나 예쁘다.
여름 끝자락에, 이렇게, 나는 기쁨의 자락을 붙잡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