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3 학기말고사를 맞이하여
엿장수가 요란한 가위 소리를 내며, 일사불란하게 어느 한 가락도 길지도 짧지도 않게 잘라놓았던 딱딱한 엿가락들이, 한여름날 쨍쨍 내리쬐는 태양빛과, 살듯 말 듯 쥐었다가 놓았다는 반복하는 동네 아줌마들의 손바닥 속에서 모양이 뒤틀어지고 볼품없이 늘어나듯, 시험칠 때의 시간표도 균형 잡힌 사지를 한쪽은 늘어놓고 한쪽은 좁혀놓아 모두가 시간표에 맞추느라 허둥지둥하는 날이다. 시험 치는 학생들을 위한 학교 최고의 배려로 쉬는 시간을 15분이나 더 늘려 25분간의 휴식시간을 주면서, 혹시나 아직도 다 하지 못한 시험공부를 좀 더 준비하기를 학수고대하건만, 학생들은 오래간만에 주어진 긴 휴식시간을 최대한 즐기려고 하니 동상이몽(同床異夢)도 이런 동상이몽(同床異夢)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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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예비종이 울리기 조금 전, 부감독으로 교실에 미리 들어간다. 학생들을 앉히고 조용히 시켜 놓음으로, 정감독이 들어왔을 때에 부감독의 역할을 충실히 이행했음을 각인시킨다. 정감독은 시험지와 컴퓨터용 답지를 들고 정시 종소리와 함께 교실에 들어서면서, 교실 상태를 먼저 확인한다. 그리고는 나와 잠깐 눈인사를 나눈다. 하지만 마음속 인사는 '이 시간 별일 없겠죠?'이다.
학생들은 매시간 정감독과 부감독이 누구인지에 괜히 신경을 쓴다. 아이들은 어떤 선생님이 들어오느냐에 따라 시험 행동을 변경하려는지, 아님 자신이 좋아하는 선생님이 들어오면 기분이 좋아서 시험을 더 잘 보게 되는지, 또 그 역으로도 성립되는지, 매번 다음 시간에는 어떤 선생님이 들어오는지를 갑론을박한다. 시험성적은 자신의 유효한 공부량에 의해 좌우되는데, 이 아이들의 성적은 자칫 정감독과 부감독에 달려 있는 것처럼 보인다.
컴퓨터 속에 살고 있는 여자들에게는 시험기간이 자신들의 목소리를 뽐내는 때이다.(방송용으로 컴퓨터 합성 목소리를 사용함)
"감독 선생님은 답지와 문제지를 학생들에게 배부해 주시기 바랍니다."
그녀의 낭랑한 목소리가 스피커를 통해 우리에게 명령하고, 우리는 그녀의 말에 복종한다. 부감독은 주로 컴퓨터용 답지를 학생들에게 나누어주고, 정감독은 시험지를 배부한다. 아무래도 비중 있는 것을 정감독이 나누어주도록 구분해 놓음으로 관리자들은 정감독에게 권위와 함께 책임감을 지운다. 사람을 부리는 모든 조직은 당근과 채찍을 항상 함께 내민다. '당신은 좀 더 중요한 사람이요. 다른 사람들 앞에서 당신의 권위를 높여주겠소. 대신 그에 상당하는 책임도 함께 지시오'라는 식이다. 나는 정감독보다는 좀 더 가벼운 마음으로 아이들 한 명 한 명을 바라본다. 사실 수업시간에는 내가 전달해야 할 지식량이 있고, 그 지식을 토대로 학생 각자에게 배움의 불길을 일으키기 위해 성냥질(성냥질이란 여러 가지 프로그램을 이용하여 학생들의 흥미를 일으키고 수업에 몰임 하게 하는 행위임)을 해댄다. 한 명, 한 명을 공급자의 입장에서 의무감을 가지고 바라보아서인지, 아이들의 표정이 조금이라도 안 좋으면 '왜 저래? 수업에 무슨 문제가 있는 거야?'라는 생각 때문에 군더더기 없는 교감이 이루어지기가 쉽지 않았다. 그러나 오늘 나는 정말 아무 부담 없이 한 명, 한 명의 모습을 있는 그대로 바라본다.
진우는 시험지와 답지를 받자마자 엎드린다. 진우는 중3인데도 영어를 잘 읽지 못한다. 어떤 시점에서 이 아이가 어긋나기 시작했을까? 초등학교에서? 아님 중학교에서? 중1 때 영어 공부하기 싫어하는 진우를 억지로 남겨서 몇 번 공부를 시킨 적이 있다. 몇 글자 쓰다가 금방 정신줄을 놓는 진우와 씨름하는 것이 서로 힘들어서 흐지부지 되고 말았다. 지금은 국어시험 시간인데도 아예 풀 생각을 하지 않는다. '도대체 뭐가 진우의 정신줄을 끊임없이 흔들어대고 있는 것일까? 왜 진우는 매사에 의욕이 없는 것 일가?' 답답한 마음에 혼자 한숨을 내쉰다. '그런데 진우의 부모님은 나 보다 더 안타까워하지 않으실까?' 그의 부모님을 생각하니 마음이 짠해진다.
미영이는 참 외모가 예쁜 아이이다. 그런데 예쁜 외모만큼 행동이 예쁘지 않아서 실망할 때가 많다. 어학실에 내려올 때 필기도구를 전혀 가지고 오지 않는다. 매번 친구에게, 또 나에게 빌린다. 그래서 한 번은 필통에 연필, 볼펜까지 넣어서 이 아이에게 준 적이 있다.
"미영아, 선생님이 이 필통 너에게 줄 테니 다음 시간부터 꼭 이 필통을 가지고 내려와라"
"와! 진짜요? 좋아요, 선생님. 그렇게 할게요."
그런데 다음 시간에도 여전히 빈 손이다.
"미영아, 필통은?"
"아~ 그게~ 없어졌어요. 어디 갔는지 모르겠어요."
도대체 미영이는 마음에 무엇을 담아 두고 있는 것일까? 공부에 관한 모든 이야기들은 쑹쑹 구멍 뚫린 미영이의 마음을 통과하여 사라져 버린다. 벌써 답지를 완성하고 머리카락을 만지작거리고 있더니, 비스듬히 책상에 엎드린다. 딱 시작시간 11분이 지났을 때이다.
진규는 말이 없는 아이이다. 영어는 말하는 과목인데 영어를 소리 내어 말하지 않는다. 영어뿐만이 아니라 학교에서 누구와도 거의 말하지 않는다. 마침 1학년 때의 어학실 옆 짝이 승희였는데, 승희가 이 아이의 대변인 역할을 톡톡히 해냈다. 똑똑한 승희는 진규가 어떤 말을 하고 싶은지를 잘도 짐작하여 친구들에게, 그리고 나에게 말해주곤 했다. 3학년 되어 다시 만나보니, 그 진규가 조금 바뀌어 있어서, 나는 정말 기뻤다. 영어 말하기 수행평가에서도 제법 잘 말했고, 이제 자신의 의견을 수업시간에도 자주는 아니지만 말을 한다. 입의 빗장을 연 것이다. '진규야, 마음껏 하고 싶은 말을 하고 살려무나.' 진규가 문제를 다 풀고 시험지에 열심히 그림을 그리고 있다. 보기에 괜찮은 그림이다. 진규에게 이런 그림솜씨가 있었는지 나는 약간 놀라워한다.
수진이는 1학년 때나 지금이나 변함없이 꾸준하다. 매사에 성실하다. 이 아이의 짧게 자른 머리 모양 때문에 얼핏 보면 남자라고 착각하기 십상이다. 3년 동안 한 번도 머리를 기른 적이 없다. 이 아이의 성향이다. 이런 남성적인 성향 때문인지 이 아이는 공부뿐만이 아니라 운동도 잘한다. 3학년은 지금 고등학교를 결정해야 하는 시기이다. 얼마 전 복도에서 수진이를 만났다.
"수진아, 고등학교 어디로 정했니?"
"아직 못 정했어요."
"왜?"
"저 체육고등학교에 가고 싶거든요."
"뭐? 체육고등학교?"
수진이의 공부가 나는 조금 아깝다는 생각이 드는데, 수진이 부모님의 마음은 더했으면 더했지 덜하지는 않을 것 같았다. 수진이는 시험지를 보고 또 보면서 검토한다. 이 아이는 이러다가 문제까지도 다 외워버리는 것은 아닐까?
나는 아이들의 등 뒤를 바라본다. 의자 위에 아이들이 앉아 있는 것이 아니라 그들의 꿈 풍선이 앉아있는 것 같다. 수진이의 꿈 풍선은 헬륨이 가득 차 있다. 언제든 날아오를 준비가 되어있다. 그러나 아직 어디로 날아가야 할지 방향을 잡지 못하고 있다. 진규는 요즘 열심히 헬륨을 채우고 있다. '그의 꿈 풍선은 머지않아 창공으로 날아오르겠지.' 미영이는 꿈 풍선을 가지고 있긴 한데, 도대체 헬륨을 채울 생각을 하지 않는다. '미영이가 하늘로 날아올라 넓은 세계가 있음을 본다면 얼마나 좋을까?' 진우는 과연 꿈 풍선을 가지고나 있는지 걱정이 된다. "Jonathan Livingston Seagull(갈매기의 꿈)"에 이런 구절이 나온다. "높이 나는 새가 멀리 본다. (The bird that flies high sees the farthest.) " 과연 '이 아이들의 꿈 풍선은 모두 높이 날아오를 수 있을까? 순풍만이 있는 것이 아닌데, 때로는 비바람 불고 천둥 번개칠 때, 이 아이들을 보호해 줄 피난처는 있는지? 모두 인생의 어려움을 잘 이겨낼 수 있을는지? 혹 이들의 풍선이 잘못된 방향으로 가면 어떡하지?' 나는 이들의 등 뒤를 하나하나씩 바라보며 꼬리에 꼬리를 무는 생각들을 하고 있다.
"시험 종료 10분 전입니다. 학생들은 마킹을 해 주시기 바랍니다. 선생님은 혹 일부 혹은 전부 마킹하지 않은 학생이 있는지 확인하기 바랍니다."
컴 여사의 목소리가 다시 울려 퍼지자, 교실의 지루한 공기가 잠시 흔들리다가 서서히 다시 가라앉는다. 문제를 다 푼 아이들은 책상 위에 엎드리거나, 시험지 위에 낙서를 하거나, 혹은 시험지의 그 필체를 그대로 흉내 내어 써 보거나, 볼펜을 이리저리 만지면서 자신만의 시간 보내기를 하고 있다. 그런 그들의 머리 위로 시간이 차곡차곡 쌓여져 간다.
대학교 때 이런 생각을 한 적이 있다. 나름대로 열심히 시험 준비를 했는데, 막상 시험지를 받아 드니 눈 앞이 깜깜했다. 대학교 강의 내용의 그 방대함 속에서 교수님이 생각하는 중요 관점과 내가 생각하는 중요 관점이 확연히 달라서, 내가 준비한 내용으로는 문제의 서술형 답을 제대로 작성할 수가 없었다. 그래서 그날 시험 친 후 속상해 한 기억이 있다. 그때 떠오른 생각이 '두뇌 헬멧이라는 게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내가 공부한 양을 측정하고, 또 그 공부한 내용의 중요성까지도 측정해서 나에게 점수를 준다면 공정하지 않을까?' 시험의 공정성에 대해 어쩌면 이 아이들 중에서도 나와 같은 생각을 하는 아이들이 있을 수도 있지 않을까?
"시험 종료입니다. 답안지를 번호대로 거두어 제출하기 바랍니다"
컴 여사의 마지막 멘트가 스피커를 통해 흘러나오자 아이들은 억눌렸던 호흡과 억눌렸던 생각들을 풀어놓기 위해 손을 들고 기지개를 켠다. 본인의 쓴 답이 정답인지 아닌지를 확인하기 위해, 답지를 제출하자마자 아이들은 주위 아이들에게 '몇 번 답 뭐냐?'라고 소곤댄다. 그 소곤거림이 군데군데서 들린다. 정감독선생님은 아이들의 분출하는 욕구를 억누르기 위해 주의를 주면서, 답안지의 매수를 확인한다.
"수고 많으셨습니다."
서로 인사를 나누며, 이 한 시간 무사했음을 자축한다.
시험칠 때의 시간은 이렇게 뜀박질과 숨 고르기를 반복하며 우리의 주위를 돌다가 서서히 집으로 돌아가는 달리기 선수와 같다. 그 선수의 호흡에 맞추어 나도 함께 뜀박질과 숨 고르기를 하는 땀 흘리는 시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