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보, 아니 이 털실 옷이 왜 이리 비싸요? 내가 뜨개질해도 이 보다 더 잘할 수 있는데"
옆에 서 있던 여직원이 상냥한 미소를 띠며 말한다.
"요즈음 수공예 제품이 많이 비쌉니다. 시간과 수고가 동반되니까요. 이 옷이 마음에 들지 않으시면 이 쪽 옷들을 보시기 바랍니다"
남편도 놀라는 눈치이다. 준이가 준 돈으로는 이 털실 옷 한 벌 사면 남편의 옷을 살 수가 없다. 어느새 나는 남편의 손을 이끌고 남성복 코너로 가고 있다.
나는 손솜씨가 좋았다. 길고 긴 겨울밤을 준이를 위해 털실뭉치를 이리 굴리고 저리 굴리면서 그가 입을 털 재킷을 짰다. 아침이 되어 눈에 붙은 눈곱을 떼며 겨우 일어서는 준이를 나의 앞에 세우고는, 짜던 털옷을 준이의 몸에 대어 보면서 품이 맞는지를 걱정하곤 했다. 그렇게 몇 날 며칠밤을 하얗게 지새워서 피곤 때문에 흩트려진 눈빛이었다가도 “준아, 이제 한번 입어보자”라고 말할 때는 어디에서 그렇게 반짝이는 눈빛이 나오는지, 준이가 오히려 깜짝 놀라곤 했다. 그런데 준이는 그런 손으로 짠 털실 옷이 싫었다. 짓궂은 아이들은 준이의 털실 옷에서 털실 한 오라기를 뽑아내어 흔들어댔고, 간혹 진흙더미에 넘어질 때에는, 이 진흙이 털실에 끈질기게 들어붙어 길동이를 난처하게 만들었다. 자주 세탁하기도 힘든 털실 옷에 묻은 흙을 털어내기 위해, 털고 또 털다 보니 이제 보푸라기가 온 옷을 뒤덮고 있는 상황이 되기도 했다. 그럴 때마다 나는 보일락 말락 한숨을 내쉬면서, 또다시 밤새 그 옷을 풀어, 가루비누 푼 물에 담가 때를 뺀 후, 이를 여러 번 헹구어 냈다. 그리고는 큰 솥에 물을 팔팔 끓이면서, 물 끓일 때 나오는 그 증기에 털실을 갖다 대어 털실에 생명을 주는 지난한 일을 되풀이했다. 그리고는 그 실로 이번에는 준이의 바지를 짰다. 이 털실은 준이와 한 몸이 되어 준이의 재킷이 되었다가 바지가 되었다가, 조끼가 되었다가, 털모자와 장갑이 되어 언제까지나 준이에게서 떨어지지 않았다. 준이는 이런 털실이 지긋지긋했다. 특히 털실로 짠 바지는 금세 무릎이 불룩 튀어나와 옷의 형태가 볼품없어졌고, 후줄근한 인상을 사람들에게 주었다. 그래서 준이는 점점 아이들 앞에 당당히 나서기를 부끄러워하는 아이가 되었다. 또 같은 반의 눈썰미가 있는 아이들은 준이에게 나타나는 털실의 변화를 재미있어하며 준이를 놀렸다.
“야, 준아. 이 고동색 조끼는 저번에 바지였잖아. 너 혹시 그 실로 팬티까지 짜서 입은 거 아니야? 그 남은 실로는 조끼를 짰고. 얼레꼴레요. 재킷이 바~지. 바지가 팬~티. 팬티가 조~끼” 이러면서 아이들은 준이의 주위를 강강술래 하듯 손을 잡고 빙빙 돌았다. 준이는 쥐구멍이라도 있으면 숨고 싶은 마음이었다. 그래서 그날 집에 오자마자 조끼를 벗어던지면서 나에게 고함을 질렀다.
“엄마, 나 털실 옷 입기 싫어”
그 당시 막 나일론 소재의 옷들이 유행하는 시기여서 반의 거의 모든 아이들이 나일론 소재의 구김 없는 옷들을 입고 있었다. 그것들은 언제 봐도 금방 산 새 옷 같아서 준이를 더욱 주눅 들게 했다. 또한 수제 털실 옷이 아니라 공장에서 짠 나일론 소재의 스웨터들이 길거리 좌판마다 흘러넘쳤으며, 이는 투박한 털실 옷에 비해 훨씬 더 세련되고 멋있어 보였다. 1970년대의 한국은 산업화의 물결이 온 나라를 휩쓸고 있던 때였다. 갑자기 공장이 우후죽순처럼 세워졌고, 농촌에서 도시로의 인구유입이 활발해졌으며, 그들이 다 공장 노동자가 되어 대량생산이 이루어지던 때였다. 무거운 사기그릇, 놋그릇들이 가벼운 스테인리스 양푼이로 대치되었으며, 사람들은 물건들이 가볍고도 쉽게 망가지지 않는, 실용적인 물건들에 매혹되던 시기였다. 그런 때 준이는 이제 모든 사람들이 외면하는 수제 털실 옷을 입고 초등학교를 다녀야만 했다.
나는 시집와서 8년 만에 준이를 낳았다. 앞 마을에 살던 남편에게 시집와 1년도 채 살지 않아 6.25 사변이 터졌다. 남편은 군대로 징발되었고 거의 3년간 생사를 알지 못하다가, 피난 간 부산의 피난민 수용소에서 기적적으로 다시 만나게 된 것이다. 다행히도 남편은 바지런한 사람이었다. 손바닥만 한 자투리땅을 얻어 채소를 가꾸어 장에 내다 팔았으며, 어디든 품을 팔 수 있는 곳은 몸을 아끼지 않고 일을 했다. 나는 동네 아줌마들의 옷을 수선해 주거나, 털실로 옷을 짜주면서 한 푼 두 푼 돈을 모으기 시작하여, 준이가 초등학교 입학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자그마한 집 한 칸을 마련할 수 있었다. 그런데 그 집이 한적한 들판 옆, 몇 가구가 옹기종기 모여 있는 곳에 있던 집이어서 때때로 밤중에 도둑이 들었다. 한밤중, 장독대의 계단을 내려오는 발자국 소리를 들을 때마다 뜨개질을 막 끝내고 잠자리에 들려던 나는 마음을 조리며, 자는 남편을 흔들어 깨웠고, 남편은 "누구야" 소리를 질렀다. 잠에서 깬 준이는 놀라 요란하게 울어대었고, 몇 집 안 되는 온 동네 사람들은 준이의 놀음 소리에 놀라 잠을 깼곤 했다. 오히려 도둑을 당황하게 만드는 그런 동네였다.
준이는 나의 털실 옷 때문에 아이들과 어울려 운동장에서 뛰놀지 못했다. 쉬는 시간마다 책상에 앉아 있다 보니 자연히 책을 읽게 되었고, 집에 와서는 집 옆 들판을 쫓아다니며 고추잠자리, 메뚜기를 잡거나, 이리저리 분주히 움직이는 개미를 찾아 개미집을 파 헤지거나, 아님 장독대의 계단에 양푼이나 양동이를 갖다 놓아 도둑이 내려오는 것을 막는 장치를 만들면서 놀았다.
어린 시절 외롭기만 했던 그 습관들이 오히려 준이에게 보탬이 되어 준이는 공부 잘하는 아이, 살아있는 생명에 관심이 있는 아이, 무엇인가 만들고 고치기를 좋아하는 아이가 되어 자연스럽게 과학자의 길을 가게 되었다. 나는 아침마다 실험 도구를 사야 한다고 손을 벌리는 아들 때문에, 집안의 돈이란 돈은 모조리 빨려 들어가는 회오리바람에 정신이 아득했지만, 한편으로는 그 회오리바람이 나의 마음속에서 훈훈한 순풍으로 바뀌어지는 희열을 맛보기도 했다. 준이 아버지는 한 겨울이 되면 내년 봄에 살 채소 밭뙈기를 보러 다니면서도, 틈날 때마다 리어카를 빌려 골목골목을 다니면서 채소 행상을 했다. 그렇게 한두 푼이라도 아들에게 보탬이 되는 것이 아비의 도리이자 또한 그의 기쁨이었기 때문이다. "무요, 배추 사려"라고 골목골목을 외치며 다닐 때에도 그의 마음속은 하얀 가운을 걸친 늠름한 아들의 모습으로 가득 차 있어서, 겨울철의 매서운 바람도, 리어카의 무거운 무게도 다 흐물흐물 녹아내리고 있었다. 그렇게 준이는 나와 남편의 피와 살을 먹고 점점 과학자로 키워지고 있었다.
몇 달 전, 학교 기숙사에서 오래간만에 준이가 집으로 돌아왔다. 준이는 약간 흥분되어 있었다.
"아버지, 저 얼마 있다가 결혼을 전제로 사귀는 사람을 데리고 올 겁니다. 저의 지도교수님의 무남독녀 딸이에요. 그 집에서는 저를 좋게 생각하는 것 같아요."
나와 남편은 생각지도 못 한 소식에 뛸 듯이 기뻤다. 그렇지 않아도 이웃사람들이 은근히 준이를 탐내 하며 사위 삼기를 원했다. 동네의 편물 집이 된 나의 안방에는 항상 대여섯 명의 동네 아줌마들이 모여 나에게 털실 뜨기를 배우거나, 혹은 옷 한 벌 떠주기를 부탁하러 오곤 했다. 그들은 세상 돌아가는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가 슬쩍 자신의 조카딸이 예쁘다는 둥, 우리 집 셋째 딸은 세상 어디 내놓아도 나무랄 데가 없다는 둥 하면서 나의 표정을 살폈다. 그럴 때마다 나는 '어림없다'는 생각으로 들은 척도 하지 않았다. 하늘 같은 준이를 이 골목 사람들에게 내어줄 수는 없었다. 대한민국 최고의 학교인 카*** 에서 박사과정을 하고 있는 내 아들은 적어도 최상류 층의 자녀들과 어울리는 신분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준이의 지도교수님이 우리 준이를 좋아하다니, 앞으로 우리 준이의 앞길은 탄탄대로임에 틀림이 없다. 나는 흥분이 되어 밤잠을 설쳤다. 그런 나의 마음에 사돈댁에 비해 너무 기운 것 같은 우리의 가정 모습이 스쳐 지나갔다.
우리 집 주위의 들판은 이제 다 아파트 단지로 개발되었다. 그러나 우리가 살고 있는 이 50여 호 되는 동네는 아직도 꾸불꾸불 골목길에 삐뚤삐뚤 집들이 얽혀있다. 얼마 전 동네 입구에 있는 주민센터 직원이 나와 이 동네가 70년대를 배경으로 하는 영화 촬영지로 선정되었다고 말했다. 낡고 허름한 한옥들이 아파트 단지 사이에 끼여 잔뜩 웅크리고 있는 모습은 때론 낯선이 에게는 신선한 충격 거리가 되는 모양이다. 그래서 '동네 골목 보존협회'인지 뭔지 하는 사람들이 요즘 이 동네를 번질나게 드나들고 있다고 한다. 나는 그 소식을 들을 때마다 콧방귀를 뀌었다. '그 사람들 아파트에서 등 뜨시고 배부르니 한 번씩 와 보는 이 동네가 신기한 모양이지? 겨울철 뜨거운 물 사용하려면 보일러 돌리고 물을 반 양동이나 받은 후에야 나오는 뜨거운 물로 겨우 머리를 감는데, 그 사람들 틀자마자 쏴아 쏴아 쏟아지는 물에 샤워하고 와서 이 동네를 보니 옛날 돌아가신 부모님이 그리워지고, 그래서 그 추억들을 간직하고 싶어서 이 동네를 보존하려나 보지?' 이런저런 불편을 감수하며 살고 있는 동네 사람들에게 이 상태 그대로 있어달라고 하는 그들의 요구가 나에게는 어처구니없는 소리로 들렸다.
"여보, 우리 이사 갑시다."
"아니 자다가 갑자기 이사라니, 무슨 소리요?"
"준이 장가보낸다고 모아 놓은 돈을 이번에 좀 씁니다. 이 옛날 동네를 벗어나서 아파트로 이사 갑시다. 앞으로 준이 결혼식도 있고 하니, 준이 체면을 좀 세워 줍시다."
준이 체면이라는 말에 남편도 모로 돌아누우며 "끙" 하는 깊은 호흡을 내쉰다. 준이의 체면이 아니라 며느리 될 사람 앞에 나는 나 자신의 체면을 세우고 싶은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준이를 핑곗거리로 내세웠다. 남편도 준이의 결혼에 대해 이런저런 생각을 하고 있는 모양이다. 한편으로는 좋으면서도 한편으로는 고민이 되나 보다.
"엄마, 무리 안 하셔도 되어요. 우리 집 형편 사정을 교수님은 다 알고 계셔요. 이사 안 하셔도 된다니까요."
한사코 말리는 준이의 말을 귓등으로 흘리며 우리는 이웃 아파트로 이사를 했다. 이 아파트도 지은 지 오래되었지만 그래도 한옥보다 좋았다. 겨울철 동파될까 봐 마당 한 구석에 있는 수도관을 꽁꽁 싸맬 필요도 없었고, 한지 사이를 넘나드는 찬 겨울바람에 콧잔등이 싸늘하여져 이불을 얼굴 위로 끌어당길 필요도 없었으며, 뜨거운 물을 데우기 위해 보일러를 작용하지 않아도 되었다.
준이의 여자를 만나기 이주일 전, 백화점을 다녀온 나는 요즘 거의 밤을 새우다시피 하고 있다. 준이가 준 돈으로 남편의 번듯한 양복 한 벌을 사고 보니, 남는 돈이 얼마 되지 않았다. 준이는 박사과정을 하면서 학부에서 대학생들에게 강의를 몇 시간 하고 있다. 변변치 않은 강사 월급에서 부모님께 꼬박꼬박 용돈을 주는 준이는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아들이다. 그 아들의 체면을 위해 나는 나 자신이 입을 옷은 직접 만들기로 했다. 남편의 채소장사의 부족한 수입에 큰 보탬이 되어준 털실이 오늘따라 더욱 예쁘게 보인다. 털실 꾸러미를 돌리면서 부지런히 손을 놀린다. 백화점에서 본 자줏빛 털실 원피스와 원피스 위에 걸쳐진 긴 검정 재킷을 나는 직접 뜨기로 마음먹었다. '백화점 그 털실 옷 보다 내 옷이 더 멋질 거야' 나는 나 자신의 솜씨를 자랑스러워하며, 몇십만 원을 내 손으로 벌고 있다는 생각에 뿌듯한 자부심을 느꼈다.
일주일 만에 나는 나 자신이 입을 자줏빛 원피스와 그 위에 걸칠 긴 검정 재킷을 완성하였다. 나는 완성된 그 옷들을 입고 다시 그 백화점을 방문했다.
"아니, 아주머니 어디서 이 옷을 사셨어요. 색깔은 거의 같은데 저의 매장의 털실 옷보다 훨씬 더 고급스러워 보여요. 너무 잘 어울리세요."
여직원의 호들갑 섞인 칭찬을 들으며, 나는 나 자신의 생각이 옳았음을 확인하니 정말 기분이 좋았다.
'그래, 이왕 시작한 것, 그 며느리 될 아이에게도 한 벌 떠주자.' 나는 남은 일주일을 또다시 밤을 새우다시피 했다. 마침내 연분홍 원피스에 진분홍 쟈켓을 완성하였다. '준이도 아마 깜짝 놀라겠지'
"아버지, 저 소개할 사람을 데리고 왔습니다."
준이가 사람을 데리고 아파트 문을 들어선다. 콧날이 오뚝하며, 눈은 크지도 작지도 않다. 그러나 시선이 또렷하다. 꽉 다문 입은 약간 고집스러워 보인다. 윗사람의 말에 무조건 순종하도록 길러지지는 않았다. 나름대로의 생각이 얼굴에 깊은 음영으로 서려있다. 옆에 서 있는 준이에게서 오히려 더 선한 기운이 뿜어져 나온다.
'그래, 내 자식이 너무 물에 물 탄 듯 하니, 한쪽은 좀 강단이 있는 것도 필요하지'
여자아이는 약간 당황한 듯하다가, 고개를 숙여 인사를 한다. 그리고는 조금 안절부절을 못한다. 나는 '이 아이가 외모와 다르게 부끄러움을 타나보다' 싶어 약간 어리둥절했다. 내가 정성스럽게 짜 덮어 씌운 소파 덮개의 끄트러미에 앉은 그 아이의 얼굴이 점차 붉어진다. 그러더니 입을 막고 기침을 한다. 11월 초순이지만 아직 독감이 유행할 시기는 아니다. 그 아이는 계속 코를 훌쩍거리더니만 준이에게 눈짓을 보낸다. 그리고 무어라고 준이에게 소곤댄다.
"엄마. 수진이가 털실 알레르기가 있다고 하네요. 다음에 다시 인사드리고 싶다고 하는데 괜찮으세요?"
나는 빨간 목단 꽃무늬를 넣어 화려하게 짠 소파 덮개와 산수화를 넣어 짠 고동색 털실 커튼과 나의 털실 옷을 바라보며, 맥없이 고개를 끄떡거린다. 남편도 당황한 표정이다. 수진이를 부축해서 나가는 준이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나는 옆자리에 놓아둔, 정성껏 포장한 선물꾸러미를 만지작 거린다.
준이는 12월 초에 결혼식을 올렸다. 결혼식의 모든 준비를 거의 희진이네 집에서 하다시피 했다. 나와 남편은 '결혼식 준비를 이렇게 신세 지면서 하는 것이 아닌 것 같다'라고 하면, 그들은
"무슨 말씀을 그렇게 하셔요. 이렇게 준이를 훌륭하게 잘 키우신 것만 해도 정말 큰 일을 하신 겁니다."라고 손사래를 치며 말했다. 결혼 후 준이는 처가에서 마련해준 아파트로 들어갔다. 바로 사돈이 사는 같은 아파트의 다른 동이다. 수진이는 이상하게도 나만 보면 알레르기가 돋는다고 한다. 그래서 준이는 간혹 혼자서 집에 왔다가 금방 떠나 버린다.
나는 요즘 잠과의 협상에서 늘 지는 쪽이다. 잠은 나를 쉽사리 그의 세계로 받아들이지를 않는다. 죽은 듯이 누운 나의 시야에 나의 평생에 도움과 위로가 되어준 털실뭉치가 들어와 꽂힌다. 천장에 달린 고동색 털실 커턴이 약간 기울어져 있는 것 같다. 집안 곳곳에 달려있는 내가 만든 털실 뜨개들이 천천히 원을 그리며 눈 앞을 맴돈다. 어느새 준이의 얼굴도 함께 맴돈다. 그 위에 수진이의 얼굴이 겹친다. 모로 돌아누운 남편의 어깨가 오늘따라 더욱더 쪼그라들어 보인다. 남편의 마대자루 같은 거친 손을 슬그머니 잡아본다. 그러렁 거리는 남편의 숨소리가 끊어질 듯 이어지며 밤의 정적에 잔잔한 파문을 일으킨다. 나의 마음에도 한 가닥의 파문이 일더니, 점차로 커져 나를 서서히 집어삼킨다. 나의 눈망울에 서서히 물기가 맺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