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의 배다른 동생인 그는 명석한 두뇌와 잘생긴 외모, 화려한 화술로 가는 곳마다 사람들의 이목을 끌었다. 그러나 그는 하늘에 두둥실 떠다니는 구름같이 큰 꿈은 있으나 땅에 단단히 내린 뿌리가 없었고, 논리 정연한 말로 남은 설득하나 자신은 설득하지 못했고, 다른 사람들의 불의한 일에 분노했으나, 제 일에 어둠이 깃들어지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았다. 그의 탄식은 화려한 공작새의 깃털을 떠받쳐서 고급스럽고도 우아하게 보이게끔 반사해줄 하얀 벽이 없다는 것이었다. 그의 말을 빌리자면 ‘그는 허허벌판에 서서 바람에 휘둘리고 있는 가련한 한 마리의 화려한 수컷 공작새’였다.
엄마는 비록 배다른 동생이었지만 그의 재능을 귀히 여겨 그가 궁하여 손을 내밀 때마다 그의 손을 채워주고 잡아 주었다. 비록 엄마도 박넝쿨 주렁주렁 매달린 흥부의 집에 살고 있었지만, 언제가 그가 능력을 발휘하여 세상에서 큰 인물이 될 것이라는 근거 없는 믿음까지 가지고 있는 것 같았다.
비가 내리는 어느 가을 저녁, 마음조차 비에 젖은 듯 모든 식구가 침울해져 거실 한 귀퉁이에 놓인 찌그러진 티브이 상자만 바라보고 있을 때였다. “삐이이삑” 피아노곡 ‘엘리제를 위하여’의 ‘따라라라라라 따라라라’에서 ‘따라라라’ 이 부분의 음률에 맞추어 벨을 누르는 사람은 그였다. 서울로 올라갔는지 꽤 오래되었기에 그의 갑작스러운 출현에 엄마는 놀라는 눈치였다. 이 집의 가장 형인 나는 엄마 외에는 별로 좋아하는 사람이 없는 그의 방문이 달갑지가 않아서 어기적어기적하며 현관문으로 나아갔다. 문에 손을 대자마자 무엇이 그렇게 급했던지 문을 힘껏 끌어당기는 완강한 힘을 느낄 수 있었다. 문이 열어 젖혀지고 한 손에는 큰 선물꾸러미를, 한 손에는 우산을 들고 함박웃음을 띈 채, 그는 멋진 양복을 입고 떡 하니 서 있었다.
“아이고 야가 누구고? 너 언제 내려왔노?”
엄마는 반가워서 그를 두 팔로 껴안았다. 엄마를 제외한 우리 다섯 명의 식구들은 일단 그의 몰골이 초라하지 않아서, 또 그의 손에 들려진 선물꾸러미 때문에, 이번의 그의 방문은 가난한 우리 집 살림을 더욱더 힘들게 할 방문은 아니라는 사실 때문에, 조금 안심이 되었다.
“누님, 저 이제 호텔 지배인이 되었어요.”
“뭐라꼬? 그 정말 좋은 소식 이데이. 어떤 호텔이고?”
그의 말을 빌리자면 큰 호텔은 아니지만 서울 근교의 호텔로 그런대로 괜찮은 호텔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희일이, 희이, 희삼이, 희사 너희들 이제 내가 돌봐줄 테니 걱정하지 말라’고 큰소리를 치는 것이었다. 그러면서 펼쳐 놓은 선물꾸러미 속에는 엄마의 멋진 숄, 아빠의 하얀 와이셔츠, 우리 네 명 아이들의 알록달록 형형색색의 스웨터가 들어 있었다. 엄마의 주름살이 진 얼굴이 오래간만에 활짝 피어났다.
“나는 니가 성공할 줄 알았데이. 정말 장하데이.”
그날 이후 우리 집은 어려운 일이 생길 때마다 그의 이름을 들먹이게 되었다. 엄마에게 그는 성공의 신화여서 우리 네 명의 아이들이 자라서 그와 같이 성공하기를 원한다는 말을 입에 달고 사셨다. 아빠는 사람이 뜻을 품으면 성공하게 된다는 사실에 감동되어서 본인도 늦으나마 좀 더 큰 뜻을 품게 되었다고 하셨고(아빠는 은행 앞 구두닦이에서 호텔 앞 구두닦이로 장소를 옮기셨다), 우리 네 명은 든든한 후원자가 생긴 것에 기뻐했다. 몇 달간 그는 얼마간의 돈을 엄마에게 보내왔다. 비록 엄마가 그동안 그에게 준 돈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었지만 그래도 엄마는 흐뭇해 마지않았다. 그러나 얼마 후 그로부터 이런 전갈이 왔다. ‘호텔에서 보내주는 연수에 참여하게 되어서 당분간 소식을 전할 수 없습니다. 스위스로의 해외 연수입니다.’
나는 고등학교 졸업 후 호텔업계로 진출했다. 그와 같이 지배인이 되는 것이 나의 꿈이었다. 그와 같이 나도 서울의 호텔로 진출하는 것이 내 인생의 목표였다. 아니 이왕이면 나도 스위스로 해외연수를 간다는 더 큰 비전을 품고 있었다. 나는 최선을 다했다. 그래서 우리 호텔 최고의 서비스맨으로 뽑혀 일주일간 서울의 유명 호텔로 연수를 가게 되었다. 우리 가족 모두는 너무나 기뻐했다.
“이 모든 것이 걔 때문이데이, 걔가 희일이에게 꿈과 목표를 심어준 것이지”
내가 서울로 출발하는 날 아침, 나의 등 뒤에 대고 엄마가 한 말이었다.
나는 처음 와 보는 서울이 신기하기만 했다. 특히 서울의 이 특급호텔은 나의 입을 쫙 벌리게 만드는 규모의 웅장함과 디자인의 세련됨이 있었다. 나는 그가 더욱 생각이 났다. 서울이라는 곳을 보니, 비록 그의 호텔이 서울 근교라고 할지라도 지방과는 비교가 되지 않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스위스 연수를 떠난 지 벌써 5년째. 지금쯤은 돌아오지 않았을까? 이전의 호텔로 한번 전화를 걸어볼까? 혹시 그의 근황을 알고 있지나 않을까? 서울의 멋스러움에 감탄한 나는 서울 외곽의 호텔 지배인이라는 위치도 나에게는 하늘만큼 숭상할만한 자리였다.
나는 전철이라는 것도 신기했다. 어제 연수생 몇 명과 함께 남산타워를 보러 갔다. 타고 내리는 수많은 사람을 바라보며, 또한 그들의 바쁜 걸음걸이는 보며, 서울 사람들은 모두 큰일을 하고 있는 사람들 같았다.
“여기 이 볼펜으로 말할 것 같으면 볼펜 똥이 흘러내리지를 않고요. 마지막까지 한결같이 또렷한 선으로 여러분들을 위해 봉사할 겁니다. 무지갯빛의 볼펜 일곱 자루에~” 나의 무릎에도 볼펜이 놓인다. 그런데 그 사람의 목덜미에 하트 모양의 점이 있다. 엄마의 말이 떠 오른다. “너거 외삼촌의 목덜미에 있는 그 하트 모양의 점은 복점인 거라.” 나는 그를 쳐다본다. 바짝 야윈 몸매에 마구 헝클어진 머리카락, 세상 풍파에 찌들어진 초점 없는 눈빛. 그러나 어딘지 낯설지 않은 모습. 나의 심장이 발끝으로 떨어지는 소리가 들렸다. 황급히 그를 외면했다.
“아! 이 철미씨요? 잠깐만요. 오래된 지배인님이 말씀하실 겁니다.
전화 바꿨습니다. 아~ 네. 그 사람은 5년쯤 전에 퇴사했습니다. 부지배인 자리까지 올라갔었는데 회사 공금에 손을 대었어요. 네~ 지금은 모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