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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해경 May 31. 2023

한식조리기능사 시험 4(마지막 회)

실기시험

2021년 3월 6일 토요일. 한식조리기능사 실기시험을 치러 가는 날이다. 학원에서 실습을 한 번 하고, 집에서 대충 한번 더 만들어 보고 난 후, 나는 시험응시를 했다. 50명, 20명 수용인원이 되는 반은 접속 불가능 후 곧 '접수완료'라는 문자가 떠서, 나는 모든 수험생들이 기피하는 10명 수용반에 등록할 수밖에 없었다. 학교 수업 때문에 평일에는 또한 시험이 불가능하니, 남는 요일은 오직 토요일. 그날, 양주의 처음 들어보는 어느 대학까지 먼 초행길을 운전해 주는 남편과 함께 갔다.


시험 시작 전 하얀 위생복을 입고 위생모를 쓰고 앞치마를 두르고, 시험장 옆방에서 출석점검을 했다. 

"감독님, 수험생이 8명밖에 없나요?"

나는 너무 놀라 이렇게 질문을 했다.

"왜요? 8명이면 안 되나요?"

감독이라는 사람이 뿌루퉁하게 대답을 한다.

감독관 4명에 수험생 8명! 완전 최악의 상황이 발생한 것이다.

'아이고, 시험장을 못 잡아 난리인데, 이곳은 오히려 기피장소이다 보니 미달사태가 일어났구나!'

수험생들의 얼굴에 다 그늘이 진다. 나도 눈앞이 캄캄했다. 


22. 홍합초: 시험시간 20분. 생홍합을 진간장에 졸인 요리이다. 아래 사진은 선생님이 한 요리이고

이것은 수업 시간에 내가 한 요리이다.

채점기준이 '위생상태 및 안전관리'가 5점, '조리기술'이 30점, '작품의 평가'가 15점으로 각 품목당 50점. 두 품목을 합쳐서 100점이 된다. 홍합초 요리는 좀 쉬운 품목이다.


23. 너비아니구이: 시험시간 25분. 어려운 품목이다. 덩어리 쇠고기 100g을 받아 칼등으로 두들겨 6조각을 만들고, 양념한 후 석쇠에 구워내는 요리이다. 석쇠로 굽는 요리는 다 어렵다. 자칫 하다가는 불에 타 시커멓게 된다. 화력조절을 할 줄 아는 기술이 필요하다. 너비아니의 크기는 0.5cm x4 cmx 5cm여야 한다. 고기는 불에 익으면 줄어들기 때문에 이를 감안하여 조금 더 크게 조각을 만들 필요가 있다. 

 24. 제육구이: 시험시간 30분. 덩어리 돼지고기를 칼등으로 두들겨 가로 4.5cm, 세로 5.5cm, 두께 0.4cm로 만들어 전량을 제출해야 한다. 돼지고기 조각에 고추장 양념을 하여 역시 석쇠에 굽는다. 양념한 고기를 석쇠에 굽게 되면 일어나는 현상이 불에 시커멓게 타게 된다는 것이다. '어떻게 하면 태우지 않고 구워내는가'가 관건이다. 그렇다고 설익혀서 내면 감점이다. 어려운 품목이다. 고기는 불에 익힐 때 줄어드는 것을 감안해 역시 길이를 만들어야 한다. 

25. 북어구이: 시험시간 20분.  북어를 유장처리해서 초벌구이를 한 후, 고추장 양념을 발라 다시 석쇠에 구워내는 요리이다.  양념 후의 석쇠구이는 양념장이 타지 않도록 주의하고 또 주의해야 한다. 북어 길이는 5cm이며, 완성품 3개를 제출한다. 

26. 더덕구이: 시험시간 30분. 더덕을 껍질 벗겨 5cm 길이로 잘라, 방망이로 밀어 납작하게 펴야 한다. 북어구이와 같은 방법으로 먼저 유장처리해 애벌구이를 한 후, 고추장 양념을 발라 석쇠에 구워낸다. 타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 

27. 생선양념구이: 시험시간 30분. 아주 작은 조기새끼 한 마리를 준다. 그런데 원형이 손상되지 않도록 아가미로 내장을 끄집어내고, 비늘 긁고, 지느러미를 제거해야 한다. 이러한 생선손질이 어렵다. 유장처리해 초벌로 한 번 구운 후, 양념장을 발라 다시 석쇠에 구워낸다. (모든 구이는 석쇠를 사용한다. 석쇠구이를 집에서 연습하려 하면, 레인지 위에 양념장이 떨어져 레인지 위는 즉시 엉망진창이 되는 것을 감수해야 한다.)

28. 잡채: 시험시간 35분. 당면에 들어가는 속으로 숙주, 양파, 당근, 오이, 통도라지, 소고기, 표고버섯, 목이버섯, 달걀지단이 있다. 손이 많이 가는 품목이다. 즉 시간이 부족할 수도 있다. 또한 시험에 자주 출제되는 품목이기도 하다.

29. 탕평채: 시험시간 35분. 청포묵에 삶아 양념한 숙주와 미나리, 채 썰고 양념하여 볶은 소고기, 구워 부순 김을 섞어 초간장에 버무린 음식이다. 모든 음식의 문제는 내 마음대로 조리하는 것이 아니라 지정된 순서대로 조리를 해야 한다. 또 가스레인지 화구가 2개 있어도 2개를 사용하면 실격이다. 화구 1개 만을 사용하며, 냄비, 프라이팬도 1개 만을 사용하여(조리대 위에 비치된 몇 개의 종지, 대접, 밥그릇, 접시는 사용가능함) 시간 내에 만들어 내어야 한다. 사용할 수 있는 도구는 한정되어 있고, 순서는 정해져 있으며, 또 시간까지 한정되어 있기 때문에 이 시험이 어려운 것이다. 

30. 칠절판: 시험시간 40분. 주어진 밀가루로 직경 8cm인 밀전병 6개를 만들어야 한다. 오이, 당근, 소고기는  0.2cm x0.2cm x5cm 길이로 잘라 양념하여 볶아내며, 달걀 황백지단도 같은 길이가 되어야 한다. 석이버섯은 곱게 채를 썰면 된다. 만들기 어려운 품목이다. 

31. 오징어볶음: 시험시간 30분. 오징어는 0.3cm 폭으로 어슷하게 칼집을 넣고, 크기는 4cm x 1.5cm 정도로 썰어야 한다. 양파는 폭 1cm로 썬다. 칼집 넣어 삶은 오징어에 홍고추, 풋고추, 양파, 파를 넣고 고추장 양념장으로 볶아내는 요리이다. 집에서 오징어를 삶을 때 칼집을 넣은 적이 거의 없던 나는 예쁘게 칼집을 넣는 일이 쉽지 않았다. 칼집을 잘못 넣으면 오징어가 뚝뚝 잘라지거나, 아니면 오돌토돌하게 예쁜 모양이 나오지 않는다. 여러 마리의 오징어가 연습용으로 희생되었다. 대신 실패한 오징어를 먹어치우는 남편은 즐거워하는 것 같았다.


1. 기초조리실무로 재료 썰기. 2. 밥 조리로 콩나물밥, 비빔밥.  3. 죽 조리로 장국죽. 4. 국, 탕 조리로 완자탕, 두부젓국찌개, 생선찌개. 5. 전, 적 조리로 생선 전, 육원전, 표고 전, 섭산적, 화양적, 지짐누름적, 풋고추 전. 6. 생채, 회 조리로 더덕생채, 겨자채, 육회, 미나리강회. 7. 초 조리로 두부조림, 홍합초. 8. 구이 조리로 너비아니구이, 제육구이, 북어구이, 더덕구이, 생선양념구이. 9. 숙채 조리로 잡채, 탕평채, 칠절판. 10. 볶음 조리로 오징어볶음이 있다. 

종류가 다른 10 가지의 품목 중에서 두 가지의 조리가 시험과제로 출제된다. 


그날, 시험 치는 내내 감독관이 밀착 체크를 했다. (그럴 수밖에 없다. 4명의 감독관이 8명의 수험생을 감독하자니 그들도 그렇게 할 수밖에 없는 것 같았다. 임무에 충실해야 하니까.) 그런데 시간이 좀 지나니, 작품을 제출해야 하는 제한시간 때문에 정신이 없어서, 감독관이 옆에 있든 없든 상관할 겨를이 없었다. 머릿속으로는 조리 순서를 생각해야 하고, 손은 재빨리 놀려 음식을 만들어야 하며, 틈틈이 조리 중 나온 음식쓰레기는 깨끗이 정리하여 '위생상태 및 안전관리 점수'인 5점에서 감점을 받지 않도록 신경을 써야 한다. 다른 시험장은 어떤지 몰라도 수험생이 적어서인지 감독관들이 "제한시간이 다 되어 갑니다. 제출할 준비를 해야 해요!"라고 말해주어서 고마웠다. 조리하느라 앞에 걸어둔 시계를 쳐다볼 시간조차 없었기 때문이다. 제한시간이 되기 3분 전쯤에 나는 작품을 제출했다. 이때의 1분은 1시간만큼이나 소중한 시간이었다. 나는 세 번째로 내 작품을 옆 방에 놓고 나왔다. 


그날 남자 아저씨 1명, 젊은 아가씨 3명, 나를 포함한 아줌마 4명인 모든 수험생들이 제시간 안에 작품을 제출했는지 어떤지는 알지 못한다. 우연히 같이 나오게 된 한 아줌마와 이야기를 나누게 되었다. 그 사람은 이번이 두 번째 시험이라고 말했다. 나는 완자탕에서 기름이 둥둥 뜨는 실수를 했기 때문에 합격에 대한 자신이 없었다. '아! 나도 두 번째 시험을 준비해야 하나?' 하는 마음이 들었다. 풀이 죽어 나오는 나를 보고, 차에서 기다리던 남편은 "괜찮아! 괜찮아!"라고 했지만, 나는 그날 괜찮지가 않았다. 


그런데 3월 17일 발표일, 나의 응시원서에 "합격"이라는 글자가 떠 있었다. 너무 신기하고 기뻐서 학원선생님에게 전화를 했다.

"선생님, 합격했어요!!"

축하한다는 말과 함께 지금까지 들어온 소식으로는 18명 중(27명의 수강생 중 이론시험에 합격한 18명) 5~6명 정도가 합격한 것 같다고 말씀하셨다. 너무 힘들었던  조리과정들이라, 실기시험에 합격한 것이 온 세상을 얻은 것 같은 기분이었다. 


어떻게 내가 합격했는지에 대한 여러 가지 생각을 하다가, 나는 이런 결론을 내렸다.

"이 8명의 수험생 중 이 수험생이 나이가 가장 많구먼. 이 할머니를 합격시켜 줘도 이 나이에 음식점을 하겠어? 어디 취직을 하겠어? 왜 이 조리기능사 시험을 치려고 하지? 젊은 사람이야 앞으로 취직해서 욕먹으면 안 되니까 깐깐하게 해서 합격을 시켜야겠지만, 이 할머니는 합격시켜도 누구에게 별다른 해를 끼치지는 않을 거야. 노인에게 기쁨을 좀 준다고 조리기능사 협회가 무너지기야 하겠어? 이 나이에 고생하시니 점수를 좀 후하게 줄까?"  


감독관들이 이렇게 생각했는지는 잘 모르겠다. 그러나 어쨌든 그 어려운 조리과정에서 해방된 것만 해도 나는 너무 기뻤다. 그러나 시간이 지날수록, 고생해서 딴 이 자격증은 쳐다보고 기뻐하기만 해도 되는 자격증인지에 대해서는 나는 아직도 확신이 없다. 


아니면 이 자격증을 자격증 되게 하기 위해서는 어디 취직이라도 해야 되는 것인지, 나는 잘 모르겠다. 

며칠 전(2023년 5월 22일) 창림기념 바자회를 하는 어느 학교를 방문했을 때 먹은 점심식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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