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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해경 Jun 04. 2023

바자회 같은 사람!

서울 도심의 하늘이 생각보다 푸르다.

2023년 5월 22일 117년 된 서울 어느 여자고등학교의 창립기념일, 교문을 들어서니 꽃이 먼저 사람을 반긴다.

교정 가득, 위아래의 선후배가 함께 만나  "하하 호호" 웃는 웃음소리와, 세월을 잠시 멈추고 옛일을 상기시키는 그녀들의 수다와, 오늘의  만남 속에서  세월에 대한 야속함의 항의의 깃발을 흔들어대는 그녀들의 몸짓 때문에 이곳의 공기는 미약하게 흔들리고 있다. 재학생까지도 이러한 흔들림에 함께 흔들려 이리저리 흔들거리며 돌아다니고 있고.

바자회는 재학생에서부터 백발의 선배에게까지 '마음껏 뛰어놀아보라'는 발 앞에 깔아놓은 한바탕의 장마당이다.

여자고등학교의 특성이 고스란히 묻어나는 바자회! 옷과 장신구가 바자회의 주된 상품이다.

연세 드신 선배들은 스탠드에 앉아 이런 분위기를 곱씹으며, 이 장마당을 즐기고 있고.

 스탠드에 앉아있는 선배들을 향해 '나 아직 건강해!' 하며 건강함을 과시하는 후배들은 부질없이 이리저리 돌아다니며 이 간섭, 저 간섭을 한다.

체육관 바깥까지 흔들림은 이어진다. 재학생들은 선배의 사랑을 먹기 위해, 줄 서 있다. 

 

바자회에서 사람들은 바깥세상에서 얻을 수 없는, 귀한 사랑을 서로 주고받고 있는 것이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얼마나 많은 바자회 같은 순간들을 만날 수 있을까? '바자회'라고 듣는 순간, 사람들의 마음은 기대감으로 흔들린다. 적은 비용으로 그 비용에 비해 훨씬 큰 만족감을 얻을 수 있다는 기대감 때문이다. 실제로 살다 보면 어떤 만남에서는 바자회 같은 기분을 경험할 때가 있다. 생각지도 않은, 기대감 이상의 만족과 기쁨을 누리는 일이 일어난 것이다. 특히 사람과의 만남에서 바자회 같은 기분을 느낀다는 것은 큰 축복이고 감사한 일이다.


작년에 어느 고등학교에서 6개월간을 근무했다. 고등학교의 제도도, 가르치는 내용도, 모든 것이 낯설었다. 그러나 함께 근무했던 선생님들이 너무 좋아, 나는 매일의 학교생활이 바자회 같다는 생각을 많이 했다. 기대 이상의 만남이었다. 


그러나 내가 만나는 사람들에게 나 자신이 바자회가 되기를 원한다면, 나이 들어가면서 나도 이제 철이 좀 든 것일까? 상대방이 기대감으로 설레고, 또 기대 이상의 만족과 기쁨을 나로부터 누리게 되는 그런 사람이 된다면, 하나님께 영광이 되지 않을까?


바자회 같은 사람! 그러나 모든 인간은 자기중심적이기 때문에 절대로 내 노력으로, 내 힘으로, 내 알량한 지식으로 될 수가 없다는 것을 나는 잘 안다. 나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는 발 빠르나, 남을 위해서는 느려터진 것이 나 자신의 실체임을 알기 때문이다.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행 1:8)" 인간을 지독히 사랑하셔서  인간의 죄의 대가로 본인의 목숨을 기꺼이 지불해 주신 예수님의 그 사랑을 알아가면 알아 갈수록, 우리도 예수님을 닮아가는 삶을 살아갈 수 있지 않을까? 그래서 바자회 같은 사람이 되지 않을까?

2023년 5월 29일 용인 한택식물원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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