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것이 때가 있다.
"범사에 기한이 있고 천하 만사가 다 때가 있나니 날 때가 있고 죽을 때가 있으며 심을 때가 있고 심은 것을 뽑을 때가 있으며 죽일 때가 있고 치료할 때가 있으며 헐 때가 있고 세울 때가 있으며 울 때가 있고 웃을 때가 있으며 슬퍼할 때가 있고 춤출 때가 있으며 돌을 던져 버릴 때가 있고 돌을 거둘 때가 있으며 안을 때가 있고 안는 일을 멀리 할 때가 있으며 찾을 때가 있고 잃을 때가 있으며 지킬 때가 있고 버릴 때가 있으며 찢을 때가 있고 꿰맬 때가 있으며 잠잠할 때가 있고 말할 때가 있으며 사랑할 때가 있고 미워할 때가 있으며 전쟁할 때가 있고 평화할 때가 있느니라"(전도서 3:1~8)
각 사람마다 각 사람에게 해당하는 때가 있다고 한다. 어떤 사람은 웃는 때를 맞아 그래도 사는 것이 즐겁고, 어떤 사람은 슬픈 일을 만나 사는 것이 힘들고 슬프다. 어떤 사람은 미친 사람 널 뛰듯이, 이 두 감정 사이를 오락가락하기도 한다. 어느 누구도 자신의 인생이 어떻게 펼쳐질지를 명확하게 알 수는 없다. 그러나 더없이 감사한 일은 이러한 때들이 한 때이지 영원하지 않다는 것이다. 인생의 변화무쌍 때문에 오늘 웃던 사람이 내일은 울고, 오늘 울던 사람이 내일은 웃을 수가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어떤 의미에서는 인생이 공평한지도 모른다.
인생을 살아가면서 사람들은 대략 세 가지 문제로 인생의 어려움을 겪는데, 첫째가 재정적 어려움이다. '돈만 좀 더 있으면 내 인생의 모든 문제들이 해결될 텐데'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정말 많다. 그래서 돈 때문에 속이고 사기 치고 배반하고 살인한다. 현대 범죄의 원인 중 상당 부분이 돈과 연관이 있다.
내가 아는 한 분은 공무원으로 정년퇴임을 하셨다. 한 달마다 꼬박꼬박 나오는 연금으로 노후 걱정 없이 편안하게 사실 수 있는 토대를 마련하신 분이시다. 그런데 어느 날 그분의 부인으로부터 전화가 왔다.
"지금 병원에 입원해 계세요."
"아니 무슨 일인데요?"
"눈이 실명되셨어요."
병원으로 달려가 그분을 뵈었다. 풍채가 좋으셨던 분인데 쇠약해지셔서 알아보기가 힘들 지경이었다. 목소리로 겨우 그 사람이 누구인지를 알아차리셨다. 정년 퇴임하신 지 이제 이년 조금 지난 시점이었는데 달라지셔도 너무 달라지셨다. 더군다나 실명까지. 부인의 설명으로는 정년 퇴임하시고 한 달이 지나지 않아 어느 분의 권유로 버섯 농사를 시작하셨다고 한다. 매달 받으실 연금을 일시불로 받아서 버섯재배 농가를 지으셨고 온 정성을 다 하셨다. 그러나 경험이 없어서인지, 온도가 맞지 않아서인지 버섯농사가 폭삭 망하게 되었다.
'아이고, 내 돈, 내 돈'하시다가 갑자기 실명까지 오게 되었다는 것이다.
"지금 돈 한 뭉치 갖다 주시면 눈이 떠질 것 같으세요?"
돈 때문에 온 병이라 같이 문병 간 사람 중 한 명이 이렇게 물었다.
"으응. 돈 한 뭉치 주면 내 눈이 떠질 것 같아."
그분은 얼굴이 환해지시면서 이렇게 대답하셨다. 그리고 몇 달 후 그분이 돌아가셨다는 부고를 받았다.
돈이 멀쩡한 생사람을 잡은 경우이다.
돈 다음으로 사람들이 힘들어하는 것은 자식 문제이다. 자식농사는 누구도 마음대로 되지 않는다. 자식 문제는 가슴에 멍울로 남아, 만져질 때마다 쓰리고 아프다. 내 친구는 아들만 둘이다. 이 두 아들을 세상에서 뛰어난 인물로 만들어 보겠다는 친구의 바람은 간절했다. 벌써 서넛 살 때부터 영어책을 읽어주었고 문화센터를 뛰어다녔으며, 초등학교 취학 후에는 학원으로, 과외로, 아이에게 열심을 쏟았다. 초등학교 시절에는 엄마의 치맛바람 때문인지 반장도 하고, 또한 공부도 꽤나 하는 것 같았다. 그런데 문제는 중학교에서 시작되었다. 소위 논다는 친구와 사귀기 시작하더니 아이가 학교를 겉돌기 시작했고, 학교 안에서도 크고 작은 문제들을 일으키기 시작했다. 내 친구의 사전에는 결코 있어서는 안 되는 '학교폭력 위원회'에 가해자로 참석하게 되었고, 아이는 학교를 그만두겠다며 등교거부를 시작했다. 친구는 자식을 향한 자신의 희생과 노력이 처절히 무너지는 것을 경험하면서 1+1=2가 되어야 하는 공식이 성립되지 않음에 처음에는 놀라고 당황하다가, 자식과 자신에게 분노하고 원망하더니, 이제는 체념의 단계를 거쳐 두 손에 그렇게도 꽉 쥐고 있던 자식에 대한 욕망과 기대를 놓아버린 허탈과 절망의 상태에 빠져있다. 도대체 어떤 말로 그녀를 위로할 수 있을까?
다음은 건강이다. 세상에서 승승장구하던 희영씨는 어느 날 샤워하다가 우연히 만져진 가슴의 혹으로 인해 10여 년을 암 요양병원에서 지내고 있다. 유방암 수술로 완치된 듯했으나, 전이에 전이를 거듭함으로 인해 꽃다운 나이에 시작된 병원생활에 아직도 마침표를 찍지 못하고 있다. 다른 사람들은 다 멀쩡히 싸돌아 다니는데, 자신만은 병원에 갇힌 생활이 속상하고 억울해서 '왜 하필 나에게 이런 일이?'라는 의문을 수없이 되풀이하고 되풀이했다고 한다. 착하고 예쁜 그녀가 병마의 덫에 걸려 아직도 왜 빠져나오지 못하는지에 대해 어느 누구도 그 해답을 주지 못 하고 있다. 그러나 그 가운데서도 하루하루 최선을 다하며 살아가려고 애써는 그녀를 보노라면 참으로 그녀의 인내와 의지력에 감탄하며, 큰 응원의 박수를 보내지 않을 수가 없다.
인생이라는 얼기설기 짜이는 베틀에서 때로는 우리의 씨실과 날실이 엉켜서 아름답지 못한 무늬를 그리기도 하고, 심지어 때로는 씨실이나 날실 중 하나가 끊어지는 응급상황이 발생하기도 한다. 돈, 자식, 건강 때문에, 혹은 인간관계의 실패로 인해, 우리의 베에는 누가 보아도 알 수 있는, 눈에 띄는 구멍이 생기기도 한다.
"It's not a long lane that has no turning.(구부러지지 않은 길은 없다.)
우리는 누구나 인생의 굴곡을 겪는다.
인생의 구멍에서 가까스로 빠져나오기도 하고, 혹은 지금 구멍에 빠져 있기도 하고, 혹은 구멍이 곧 나의 인생길 앞에 나타나기도 할 것이다.
나는 어떻게 할 것인가?
어느 외국 잡지에 실린 유머를 소개하고자 한다.
늦게 온 배관공이 도착하기가 무섭게 물었다.
"그래, 누수는 어떻게 되었습니까?"
"별로 큰 일은 아니오." 비꼬는 듯한 대꾸로 주인은 말했다.
"당신을 기다리는 동안 우리 아이들에게 수영하는 법을 가르쳤다오."
현재의 불행이 뒤집혀 엉뚱한 행운의 원인이 된다는 의미를 이런 유머로 나타내고 있다.
그러기 위해서는
이러한 상황을 타개할 수 있는 지혜와 명철이 나에게 있어야 하지 않을까?
"지혜를 얻는 자와 명철을 얻는 자는 복이 있나니
이는 지혜를 얻는 것이 은을 얻는 것보다 낫고 그 이익이 정금보다 나음이니라. 지혜는 진주보다 귀하니 네가 사모하는 모든 것으로도 이에 비교할 수 없도다. 그의 오른손에는 장수가 있고 그의 왼손에는 부귀가 있나니 그 길은 즐거운 길이요 그의 지름길은 다 평강이니라. 지혜는 그 얻은 자에게 생명나무라. 지혜를 가진 자는 복되도다.(잠언 3:13~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