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목한 부부
온라인으로 만나던 중1 아이들을 오프라인, 즉 대면 수업으로 만났다. 온라인으로 하기 힘들었던 수업을 대면 수업에서 할 수 있어서 정말 좋았다.
대면 수업 시에는 아이들 한 명, 한 명을 살펴볼 수가 있다. 누가 영어가 부족한 아이인지, 그 아이에게 어떤 길을 제시해야 할지를 고민하는 시간을 가질 수가 있기 때문이다. 나는 종이 교과서에는 없는, 발음이 소장된 디지털 교과서를 학생들이 다운로드하여, 문장 듣기를 반복하기를 강력히 추천했다. 영어도 언어이기 때문에 한국어를 배우는 과정과 거의 일치한다. 들은 단어가 없으면 뇌에 저장된 영어단어가 없고, Input이 없기 때문에 말하기는 거의 불가능하다. 즉 아기들이 태어났을 때 부모들이 계속 아기에게 단어를 들려줌으로, 아기의 뇌에 단어들이 저장되고, 그 단어들이 어느 순간 말로 나오는 것과 같은 이치이다.
오래전 신문에서 읽은 기사가 생각난다.
"네~ 저는 이 아이에게 해 준 것이 별로 없습니다. 가난하고 불우한 환경이었죠. 그러나 아이를 업고 다니면서 끊임없이 말을 해 주었습니다. 아직 아무 말도 하지 못하는 아이에게 길거리의 풍경에 대해, 흑인 민담에 대해, 심지어 나의 삶에 대해서."
1993년 여성으로, 또 흑인 최초로 노벨 문학상을 받은 '토니 모리슨(Toni Morrison)'의 엄마에 대한 인터뷰 기사로 기억한다. 물론 토니 모리슨의 생애를 살펴보면 어려운 형편 때문에 어릴 적부터 도서관에서 일하게 되었고, 책을 접하다 보니 꾸준히 책을 읽었으며, 또 책 읽기를 즐겨했다고 한다. 그러나 어린 시절, 엄마가 아직 말도 하지 못하는 토니 모리슨에게 끊임없이 이야기를 들려준 것도 '그녀가 세계적인 작가가 되는데 큰 일조를 하지 않았나'라는 생각을 나는 하게 된다.
영어가 느린 학생들, 즉 영어라는 언어에 노출이 적은 학생들을 지칭한다. 그들의 부모가 영어교육에 관심이 없거나 혹은 그 아이 자체가 무슨 이유 때문인지 몰라도 영어에 대한 거부감을 가지고 있어서 무의식적으로 초등학교 시절, 영어수업을 받아들이지 않은 학생들이다. 이들은 절대적으로 영어단어가 부족하다. 즉 알고 있는 단어 수가 너무 적어서, 듣기가 되지 않고 더더욱 읽기도 되지 않는다.
수업 후 읽기가 되지 않는 몇몇 아이들과 대화를 나누었다.
"한희야, 너 보건실에 다녀온다고 늦게 들어왔지? 이제 괜찮아?"
안경을 끼고 체구가 작고 야윈 여자아이인 한희가 대답한다.
"네. 조금 나은 것 같기도 하고 아닌 것 같기도 해요."
"너 혹시 영어단어 시험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은 것 아니니?"
나는 영어공부의 가장 기초가 되는 영어단어시험을 매 단원마다 친다. 아이들에게는 스트레스로 작용할 수도 있다.
"네, 약간 스트레스를 받기는 해요. 그런데 동생들 때문에 더 스트레스 받아요."
" 네가 동생들을 돌보고 있구나. 그런데 동생들이 너를 힘들게 하는가 봐?"
"네. 두 명의 동생이 있는데 제 말을 안 들어요. 공부하라고 하면 대들고 욕해요."
"아이고, 한희가 고생이 많구나.(마음속으로 '한희야, 동생들에게 공부하라고 할게 아니라 네가 지금 공부해야 되는데..) 네가 엄마 역할을 한다고 수고가 많다. 한희, 대단해!"
한희는 약간 부끄러워하면서 희미하게 고개를 끄덕인다. 두 동생 때문이라고 한희는 말하지만 무언가 알 수 없는 가정문제가 한희의 머릿속에 있는 것 같다. 나는 한희에게서 부모님의 부재를 느낀다. 또한 돌봄 받지 못하는 아이의 힘겨움을 본다. 한희 부모님은 돈 버신다고 너무 시간이 없으시다. 특히 세 아이를 부양하기 위해서. 그런데 그 돈이 이 세 아이를 온전케 할 수 있다고 생각하시는 걸까?
"경진아, 너는 왜 눈물이 그렁거리니?"
옆에 서 있는 경진이를 보니 눈에 눈물이 가득하다. 약간 뚱뚱하고 행동이 느린 남학생이며, 가장 영어가 안 되는 아이이다.
"아빠 때문에요."
"왜? 아빠가 너를 힘들게 하니?"
나는 한편으로는 가슴이 덜컹했다. 왜냐하면 몇 년 전, 졸업한 아이 중 한 명이 생각났기 때문이다.
민철이. 그 아이도 체구가 아주 왜소하고 안경 낀, 그리고 결국 3년 내내 영어를 읽지 못하고 졸업한 아이이다. 여러 번 개인적으로 불러서 기초 영어단어 책도 주면서 영어공부를 독려했지만, 아무 효과도 보지 못한 아이이기도 하다.(나는 아이들에게 어느 한 부분이 무너지면 모든 면에서 자신감을 잃기 쉽고, 자존감이 낮아질 수 있기 때문에 영어에서 무너지지 않기를, 그냥 영어를 읽을 수 있는 단계까지만 가기를, 즉 기본만 되기를 원한다고 말한다)
"민철아, 너 영어를 못 읽어서 어떡하니? 고등학교에 가서 3년 내내 영어시간이 힘들 수도 있다."
"네, 선생님. 알아요. 그런데 공부할 마음이 없어요."
사실 민철이는 영어과목뿐만 아니라 모든 과목에서 성적이 저조하다.
"요즘 뭐에 관심이 있니?"
"저 요즘 알바해요."
"중학생이 할 수 있는 아르바이트가 뭐가 있니?"
"전단지 붙이기요."
"그래? 얼마나 버니?"
"만 오천 원인데 순댓국 한 그릇 사 먹으면 별로 돈이 안 남아요."
" 뭐? 만 오천 원! 그 알바 당장 그만둬라. 선생님이 순댓국 정도는 사 줄 수 있다. 그 시간에 공부 좀 해라."
민철이의 부모님은 이혼하셨다. 아빠는 재혼하셨고 새엄마와 함께 세 식구가 산다. 부모님이 다 밤늦게까지
일하셔서 민철이는 아침에 살며시 일어나 학교로 온다. 아침은 거의 거른다. 나는 먹을 것을 간혹 챙겨주며 그 아이를 격려했다. 시간은 어김없이 흘러 민철이는 졸업하고, 고등학교로 진학한다.
새 학기 준비로 바쁜 2월 어느 날, 민철이에게서 전화가 왔다.
"선생님, 저 이사 가요. 아주 시골로."
"이사 간다고? 어디로? 왜? 곧 고등학교 입학인데 지금 시골로 간다고?"
"아빠가 저를 호적에서 팠어요. 그래서 외할머니에게로 가요."
"호적에서 팠다니 그게 무슨 소리니? 너 지금 어디야? 만나서 이야기하자."
민철이의 목소리가 좋지 않아서 만나자고 했다. '호적에서 팠다'는 말은 대체 또 무슨 소리인가?
핼쑥한 얼굴로 나타난 민철이는 '먼저 너 뭐 먹고 싶니?'라는 나의 질문에 '스테이크'라고 답한다. 그래서 내 평생 몇 번 가보지 않은 스테이크 전문집에 데려갔다. 가격은 왜 그리 비싼지. 그러나 힘들어하는 민철이에게 위로가 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가격은 잊기로 했다.
민철이의 말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민철이는 초등학교 때에는 아빠가 자신을 자주 때렸다고 한다. 민철이 아빠도 이혼하고 그 상처를 술 마시고는 민철이에게 풀지 않았나 생각된다. 아빠와의 갈등이 쭉 있어왔지만, 중 3이 되면서 그 갈등이 점점 증폭되었다. 그래서 며칠 전에는 도저히 너를 자식으로 인정할 수 없으니 너를 호적에서 파겠다고 아빠가 말했고, 그 말을 행동에 옮기셨단다. 민철이는 이제 외할머니 호적 밑에 들어가 있다는 것이다. 자기는 아빠와는 아무 상관이 없는 아이가 되었고, 그래서 친엄마의 엄마인 시골 외딴곳에 사시는 외할머니 집으로 간다는 것이다. '아이고 무슨 이런 아빠가 다 있나?' 이런 말이 속에서 솟구치는 것을 꾹 참고 민철이에게 말했다.
"그렇구나. 너도, 아빠도 모두 힘들었겠다. 그래 너 어떡하려고 하니?"
"내려가야죠. 이제 이 곳은 저와는 아무 상관이 없으니까요."
모든 것을 체념한 듯 말하는 민철이의 아픔이 느껴져 나도 며칠간 마음이 좋지 않았다. 나는 민철이가 생각날 때마다 민철이의 마음에 난 상처들이 치유되기를 기도한다.
경진이도 혹시?
" 경진아, 아빠가 너를 어떻게 하니?"
나는 민철이에게 학습된 기억 때문에 놀라서 경진이에게 다시 물었다.
"아빠가 술을 많이 마셔요."
"그래? 그래서?"
"건강에 안 좋잖아요."
경진이의 눈물은 아빠의 건강을 염려해서인지, 아님 아빠의 술주정 때문인지, 혹은 그로 인한 가정불화 때문인지 알 수가 없다. 그러나 경진이는 계속 눈물을 흘린다. 그때 벨이 울리고 다음 수업시간을 알린다. 쉬는 시간 동안의 대화 나눔이라 더 깊은 이야기를 할 시간이 없었다.
"경진아, 네가 우니 선생님도 슬퍼서 눈물이 나와. 힘내고. 다음에 또 이야기하자."
울먹이며 어학실 문을 나가는 경진이의 등 뒤를 바라보며, 나는 내가 어른인 것에 대해서, 그리고 경진이 아빠의 술마심에 대해서, 경진이에게 내가 사과해야 한다는 미안한 마음에 한동안 사로잡혀 있었다.
'문제 부모는 있어도 문제학생은 없다'는 말을 많이 듣는다. 민철이, 한희, 경진이, 이들의 머릿속에는 힘든 가정사가 실타래같이 엉켜 있다. 그들에게 영어공부가 무엇 그리 중요할까? 눈은 선생님을 바라보며, 몸은 교실 안에 앉아있어도, 그들의 생각은 엉켜진 실타래의 한 끝을 잡고 실마리를 풀어 보려고 끙끙대고 있지는 않을까?
요즘 부모의 경제력이 아이의 미래를 결정하는 시대가 되었다고 모두들 말한다. 특히나 영어교육에서 그 격차가 확연한 통계를 나는 본 적도 있다. 그래서 모든 부모들은 어떻게 하든 돈을 벌려고 아등바등한다. 즉 그들의 경제력이 아이의 미래를 장밋빛으로 만들어 줄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화목한 부부가 행복한 아이를 만든다"는 문구를 5월 21일 부부의 날 캐치프레이즈로 사용하고 있다. 부부가 화목하면 아이들은 정서적으로 안정이 되기 때문에, 공부에 집중할 수가 있고, 공부 효과도 남다르다. 그래서 가난한 가정이지만 아이들이 잘 자란 가정은 대부분 부부관계가 좋은 가정이다. 즉 돈은 아이에게 일시적인 성공은 가져다줄 수 있지만, 부부간의 사랑은 자녀를 좋은 사람으로 만들어, 자녀의 성공을 지속시키거나, 점점 더 나은 길로 나갈 수 있도록 한다는 것이다. 부부가 불화하면서도 자식이 잘 되기를 바라는 것은 연목구어(緣木求魚), 즉 나무에서 물고기를 구하는 것과 같다고 한다.
부부간에 사랑을 간직하고 유지한다는 것은 정말 쉬운 일이 아니다.
부부싸움은 아직도 상대방에 대한 기대치를 버리지 않았다는 표시이면서도 나를 따르라는 자기주장이지만, 아이들에게는 큰 재앙이 될 수도 있다. 부부싸움이 없다는 부부는 상대방에 대한 기대치를 버렸거나 체념했든지, 아님 성숙되어 상대방을 품고 용납한 경우이다. 뒤돌아보면 나도 신혼초에 많이 다투었다. 달라도 너무 다른 상대방을 받아들이기가 쉽지 않았기 때문이다. 세월이 한참 지난 다음에야 나도 있는 그대로의 그를 받아들이고 용납하게 된 것이다. 허송세월을 보낸 지혜 없는 나! 그러하다면 민철이, 한희, 용진이의 부모님도 좀 더 세월이 지나야만 화목한 부부가 되어, 아이들의 마음속에 그림자를 만들지 않는 지혜로운 부모가 되는 것일까? 그 세월이 오기까지 중1 나의 아이들이 폭풍우 부는 언덕 위에 꿋꿋이 서 있는 나무로 자라줄 수 있을까?
창 밖을 보니 비가 오고 바람이 불고 있다.
나는 한주간 만난 나의 중1 아이들을 생각한다.
(덧붙이는 말 : "엄마, 아빠, 우리에게 별로 해 준 것이 없는 것 같아요. 하나님이 우리를 키우셨어요!" 반듯하고도 예쁘게 자란 내 두 딸들이 간혹 나에게 하는 말이다. 그럼 내 중1 아이들에게도 하나님이 필요한 것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