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과 이웃되어주기

by 김해경

국내의 유명한 한 대학의 동문끼리 결혼을 주선하는 어느 결혼 매체가 성황리에 있다는 소식을 SNS를 통해 접한 적이 있다. 반응은 두 갈래. 특권층의 세습을 조장하는 가진 자들의 차별화 시도. 원래 결혼이란 '소수의 사랑에 눈먼 자들의 사랑 결혼'을 제외하면 끼리끼리 만나서 좀 더 나은 사회계층으로의 신분상승을 꿈꾸는 두 동지의 만남'이라는 점에서 끼리끼리를 에둘러 말할 필요도 없이 알아서 연결해 주니 참으로 편리하고도 약삭빠른 업체. 이는 보는 주관에 따라 다 맞는 말이라고 생각한다.


여자들은 대부분 '백마 탄 왕자'를 결혼상대로 꿈꾼다. 영화의 장면에서 새하얀 백마를 탄 왕자가 먼지구름을 일으키며 달려와 여자를 힘껏 껴안고 백마 위에 앉힌 뒤, 역시나 먼지구름을 일으키며 사라지는 장면을 홀린 듯이 바라보며, 엔딩 자막이 다 사라질 때까지 박수를 친다. 우리는 장밋빛 미래만이 펼쳐질 것 같은 그 여자의 인생을 함께 축하하면서, 또한 자신의 격에 어울리지 않는 여자를 선택한 왕자님의 그 순수한 사랑에 감동한다. 수많은 영화와 소설이 있겠지만, 나 또한 대학 졸업을 앞두고 혼자서 본 영화 " 사관과 신사(An officer and a Gentleman)"의 끝장면에 눈물을 흘리면서, 리처드 기어에게 무한한 감동의 찬사를 보내었다. 그 당시 마땅히 사귀는 사람은 없고, 결혼해야 한다는 부모님의 압박은 계속되는 상황에서, 저런 순수한 사랑을 가진 자, 그러면서도 나보다 신분적으로 나은 왕자님이 나를 좀 선택해주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마음이 있어서인지 이 영화가 그 당시 나에게 큰 감동을 준 것으로 기억된다.


연애결혼은 상대방을 잘 알지 못하고 감정에 끌려서 하는 결혼이기 때문에 잘하면 대박, 못 하면 쪽박이라는 말이 있다. 그래서인지 어느 정도 지위를 갖춘 가정에서는 아예 연애결혼 금지라는 규율을 가진 가정도 있다. 이 말은 어떤 의미에서는 연애결혼이 가져오는 위험 부담률을 미리 제거할 뿐만 아니라, 결혼할 상대방의 모든 조건을 미리 걸러내고 골라서 가장 적합한 사람을 찾겠다는 지독히도 계산적이며 이해타산적인 셈법을 숨기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러므로 친구나 혹은 아는 사람을 통하거나 중매업체를 통한 만남은 이런 일차적인 걸러냄의 과정을 통과한 만남이어서 대부분의 사람들이 선호하는 만남이기도 하다.


사람은 만남에서도 자기중심적이어서 상대방으로부터 무엇인가 이익을 얻기 원하며, 자신에게 득이 되는 만남이 되기를 원한다. 아니면 Give and Take가 어느 정도 교차적으로 일어나 서로가 win-win 하기를 원한다. 그렇지 않을 경우 그 만남은 오래가지 못하게 되고 한 사람은 배신의 상처를 안고 떠나가게 된다.


지난주, 영어로 자신을 소개하는 시간을 중1 영어수업 시간에 가졌다. 그 소개의 한 부분에 자신의 Motto를 소개하는 부분이 있었는데 한 여학생이 "착하게 살지 말자"가 자신의 모토라고 했다. 나는 약간 놀랐다. 이 아이가 얼마나 착하게 살아서 상처를 많이 받았으면 이 나이에 벌써 이런 모토를 정하였나 싶어 그 아이에게 물어보았다.


"착하게 살아서 손해 본 것이 많은 모양이지? 왜 이런 생각을 했니?"

"초등학교 때 친구들에게 잘해 줬는데, 아이들이 나빴어요."

"그랬구나. 힘들었겠다. 그런데 너 마지막 하고 싶은 말에 '친구들이 너에게 잘해주었으면 좋겠다'라고 적었는데, 너 또 네가 생각하는 만큼 잘해주지 않는 친구들을 볼 때 상처 받을 수도 있겠구나. 얘야, 사람은 마음이 아침저녁으로 바뀐단다. 상대방으로부터 너무 많은 것을 기대하지 말고, 네가 할 수 있는 만큼만 친구에게 해 주렴. 너무 과하게 하다 보면 기대감도 커서 실망감도 크단다. "

아이는 고개를 끄떡이긴 했지만 크게 이해한 눈치는 아니었다. 이 아이는 벌써 배신의 상처를 가지고 있었다.


우리는 세상을 살아가다 보면 참으로 많은 배신의 아픔을 가지게 된다. 특히 부부간에도 셈법에서 손해가 났다고 생각하면 끊임없이 불평을 하기도 한다. 내가 아는 한 분이 있다. 열심히 공부해서 남들이 다 부러워하는 사회적 지위를 달성했다. 그런데 그 직업이 앞으로 점점 경제적으로 풍족해질 직업이지만, 출발점에서는 경제적인 여유가 없는 직업이다. 그는 가난한 가정의 6남매의 장남으로 가문을 일으켜야 한다는 의무감이 투철한 사람으로, 미래의 경제적 풍요로움을 담보로 해서 재력이 있는 여성을 결혼 상대자로 원했다. 동생들을 공부시키기 위해서는 그 당시 당장 시급한 것이 돈이었던 것 같았다. 그런데 결혼한 여성이 자신이 생각한 것보다 경제적으로 빈약했던 모양이다. 부부간의 불화가 끊이지 않았다.


요 근래에 보기 드물게 나에게 감동을 준 한 사람이 있다. 암 요양 병동이 바로 내가 다니는 교회 앞에 있어서 코로나 이전에는 암환자와 그 가족들이 많이 교회에 드나들었다. 그런데 암이 들어서 예수님을 믿기 시작한 한 여자분이 계셨다. 6개월만 산다는 선고를 받으신 분이신데, 정말 하나님의 은혜인지 아님 그 남편분의 지극한 간호 때문인지 거의 11년을 사시다가 올 1월에 돌아가셨다. 장례식을 하고 그 남편 분과 이야기를 나눌 기회를 가졌다.

"이혼한 사람과 한 결혼입니다. 이 사람의 두 자녀를 다 양육하고 한 명은 작년에 출가를 시켰습니다. 직업군인으로 있다가 이 사람을 만났습니다. 저 보다 3살 연상이죠. 그런데 사귄 지 얼마 되지 않아서 이 사람이 위급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간병해야 했기에 직업군인을 그만둘 수밖에 없었습니다. 30년이 되면 연금액이 달라지는데, 제가 그만 둘 때는 29년 차였어요. 군대의 모든 사람들이 만류했지만 이 사람의 간병이 저에게는 더 소중했습니다. 마지막 호스피스 병동에까지 거의 10여 년을 혼자 간병했네요."

자신의 긴 인생을 한 사람을 보살피는데 매진한 그가 참으로 거룩한 사람으로 보였다. 그의 표정에는 어떤 생색도, 어떤 자랑의 빛도 없었다.


착한 사마리아인의 이야기가 성경에 나온다.(누가복음 10:25~37)

예수님께서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며 힘을 다하며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고 또 네 이웃을 너 자신 같이 사랑하라(누가 10: 27)"는 말씀에 대한 율법 교사의 질문인 "내 이웃이 누구니이까?"에 대한 대답으로 이 이야기를 하신다. 그러면서 마지막에 예수님이 하시는 말씀은 "네 생각에는 이 세 사람 중에서 누가 강도 만난 자의 이웃이 되겠느냐?"라고 되물으신다.


모든 사람은 누가 나에게 득이 될 이웃인지에 관심이 있다면, 예수님은 너의 도움을 필요로 하는 누구에게 너는 이웃이 되겠느냐고 초점을 바꾸고 계신다. 나는 간병하신 그 남편 분이 그 순간 선한 사마리아인으로 여겨졌다.

"혹 또 다른 암환자를 돌보실 의향이 있으신지요?"

내 머릿속에는 마땅한 보호자가 없어 어려움을 겪는 몇몇 암 환우들의 얼굴이 떠 올랐다.

'아~ 이들에게도 이런 사람을 붙여주셔야 하는데.' 암 환우들에 대한 애처로운 마음 때문에 이 질문을 불쑥하게 된 것이다.

" 아픈 사람이 더 힘들죠."

그의 대답이다. 나는 '아이고 이제는 힘들죠.' 혹은 '몸서리납니다'등의 대답을 생각했다가 큰 충격을 받았다.

자신이 돌보는 일보다 암 환우 본인들이 훨씬 더 힘들 거라는 그의 대답은 나의 생각 속에는 없는 예외적인 답이었던 것이다.


나의 부족함을 느끼게 만든 그이다. 나도 남편에게 농담 반 진담 반으로 "나, 결혼에서 득 본 것 없다"란 깃발을 때때로 흔드는 속물근성을 아직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아무런 대가 없이 자신을 희생할 수 있는 사랑이 나에게도 넘쳐나기를 원한다. 그러나 인간의 한계를 벗어나는 이 사랑은 내 힘으로 도저히 이룰 수 없기에, 나는 오늘도 사랑의 근원이 되시는 예수님을 바라본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3월의 중학교 교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