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해경 Sep 02. 2023

꽃게의 성깔

"꽃게가 필요하나? 좀 사 가지고 갈까?"

남편의 전화다.

"웬 꽃게예요?"

"여기 사람들이 줄을 길게 서 있어."

"그래요? 사 오실 수 있다면 사 오세요."

길을 갈 때 앞만 보거나, 아니면 아래인 땅만 보고 걷는 남편이 꽃게를 사 온다니 신통방통했다. 


문을 들어서는 남편의 손에는 검은 비닐봉지가 들려있고, 그 봉지 안에 살아서 움직이는 꽃게 7마리가 들어있다. 

"정말 무슨 일로 꽃게를 다 사가지고 오세요?"


남편의 설명으로는 집으로 들어오는데 아파트 앞에 사람들이 줄을 길게 서 있었다고 한다. 오래전 아파트 앞에 주차된 차에서 복숭아 한 상자를 산 경험이 있기 때문에, 남편은 이번에도 복숭아려니 해서 줄을 섰는데 알고 보니 그 줄이 꽃게 사는 줄이었다나? 그래서 좀 당황해서 나에게 전화를 했고, 꽃게 2kg을 사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런데 사람들이 정말 줄에 많이 서 있어. 나까지 2kg 팔고, 다음 사람부터는 1kg만 판다고 하더라."

남편은 마치 어디 로또에 당첨된 사람처럼 기분이 좋아 보인다. 장사꾼의 상술인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나에게는 들었는데, 남편은 선택된 자가 누리는 포만감으로 충만해있다. 남편 바로 뒤에 서 있던 사람은 "2kg, 2kg!"를 외쳐 됐다니, 이 얼마나 자발적인 광고 효과인가!


게가 눈앞에서 살아 퍼덕이니, 일단 나는 당황이 되었다. 그래서 황급히 남편에게 물었다.

" 이 게를 지금 삶아 드려요?"

"음~ 간장게장 하는 게 어때? 오래 먹을 수 있잖아!"


지금까지는 죽은 꽃게를 양념하거나, 간장에 재웠는데, 살아 꿈틀대는 꽃게를 간장에 재우기는 처음이다. 그래서 먼저 가위로 필요 없는 집게 부분이나 다리의 먹을 수 없는 아랫부분을 제거하기로 했다. 그런데 야! 꽃게 성깔이 보통이 아니다. 다리의 아랫부분을 가위로 절단하고 나니 싱크대위로 다리 전체가 '투욱'하며 떨어진다. 나는 놀라서, 처음에는 내가 다리 전체를 건드렸나 했는데 그게 아니었다. 다리의 아랫부분을 가위로 절단하는 순간 게는 자신의 다리 전체를 잘라내는 성깔을 부린다. 다리를 잘라내고서라도 생명은 부지하겠다는 게의 처절한 생존법칙인 것을 나는 그 순간 알게 된 것이다. 깜짝 놀라서 어안이 벙벙해 있는 나를 살아있는 게는 눈을 희번덕거리며 노려보는 것 같아 무서워서, 잠시 가위질을 멈추었다.

'아이고, 이일을 어떡하나? 이 살아있는 생물이 나를 위협하네~'

중간에 이일을 그만둘 수도 없고, 나머지 남은 게들도 어쨌든 손질을 해서 게들을 간장 속으로 밀어 넣어야 하는 임무를 나는 완수해야 한다. 난생처음으로 싱싱한 간장게장을 한번 먹어 보려고 했는데, 이런 난간이 버티고 있을 줄이야!


밀폐용기 속에 담긴 나의 간장게장은 다리가 없는 몸통뿐인 놈들이다. '아니, 도대체 다른 사람들은 게 요리를 어떻게 하나?' 싶어 다 담그고 난 뒤 인터넷으로 정보검색을 해 보니, 이 초짜가 알지 못하는 비법이 있었다.

먼저 살아있는 게를 냉동실에 집어넣어 잠시 기절을 시켜야 한다. 그리고 기절한 게를 잘 씻고 가위질해서 간장에 넣는다는 것이다. 나는 살아서 의식이 시퍼런 놈들을 가위질 해댔으니, 이 게가 얼마나 발버둥을 쳤을까? 무식하면 용감하다는 말이 나에게 딱 맞는 말이다. 


앞으로 음식점에서 간장게장을 먹을 때 다리가 하나도 없는 게를 대할 때면  '나 같은 초짜가 싱싱한 게를 이 지경으로 만들었구나'라고 생각할 수 있게 되었다. 그래서 "여기 다리들 다 어디 갔나요?"라고 주인을 닦달할 필요가 없어지게 된 것이다.


살아있는 생물, 이 게를 다루는데도 자기에게 맞지 않으면 이렇게 자신의 손발을 스스로 절단하는 성깔을 부리는데, 만물의 영장이라고 하는 살아있는 사람들을 대한다는 것은 얼마나 조심스러운 일인지를 나는 7마리의 꽃게를 다루면서 다시금 생각해 보게 된다.

몸통뿐인 나의 간장게장



P.S. 방금 이 글을 읽고 문자를 보낸 분에 의하면 1마리 990원에 마트에서 팔아 사람들이 난리 났다고 했는데 남편은 7마리에 2만 원을 주고 사 왔다. 왕창 바가지를 덮어쓴 건가? 


작가의 이전글 기꺼이 고개 숙여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