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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해경 Sep 11. 2023

구이, 회, 튀김이

"오늘도 밥 한 꼬집만 주세요~"

" 응, 알았어."


초등학교 4학년 여학생과 요 며칠간 나누는 똑같은 대화이다. 이 아이가 사용하는 이 '한 꼬집'이란 단어가 어찌 이리 정겹고 사랑스러운지! 꼭 그 아이를 표현하는 단어 같아 더욱 내 마음에 쏙 들어온다.  


며칠 전, 이 아이가 살아있는 무엇인가를 키우자고 했다. 

"햄스터 어때요?"

"안 되지! 번식력이 장난이 아니어서 금방 이 방을 햄스터 왕국으로 만들걸."

"그럼 거북이는요?"

"거북이~ 생태계 파괴의 주범이 아니야?"

"그럼, 물고기는요?"

"물고기?(딱히 거절할 명분이 떠 오르지 않는다) 음~ 물갈이는 너희들이 할 거지?"

"당연하죠! 제가 당장 가서 사 올게요!"


7월부터 운영한 무료솜사탕 때문에 4학년 아이들 서너 명이 이곳을 드나들기 시작했다. 숨바꼭질을 하기도 하고 노래를 부르기도 하고, 심지어 자기들끼리 춤연습을 하기도 하면서, 남편과 나만의 공간에 깔깔거리는 웃음이라는 새로운 음을 넣기 시작했다. 잔잔하던 생활에 리듬 있는 곡조가 들어오기 시작한 것이다. 그래서인지 그 말소리, 표정들이 어찌나 사랑스러운지! 그중의 한 명인, 4학년이라는 나이에 비해 키가 아주 크면서도, 키만큼 이해력도 뛰어난 이 아이가 오늘 나에게 이렇게 제안한 것이다. 


이 아이는 다른 한 명의 친구와 함께 헐레벌떡 마트로 달려가더니만, 금붕어 한 마리를 둥근 통과 함께 사 왔다.

"이름이 통통이예요. 귀엽죠?"

눈을 반짝이며 금붕어를 가리키는 아이의 표정에서 기쁨이 너울대며 춤추는 것을 바라보면서, 나도 아이들에게서 전이된 기쁨으로 충만해졌다.

"야! 귀엽다!"

아이들을 키우면서 누구나 통과의례처럼 거치는 금붕어 키우기! 그러나 나의 의식 속에는 이 금붕어 키우기가 해피엔딩으로 끝난 적이 없는 것 같다. 며칠 있다가 생생하던 금붕어가 갑자기 힘이 빠져 흐느적거리다가 서서히 죽어간다든지, 아니면 어느 날 아침 눈 떠보니 죽어있는 금붕어를 발견하다든지, 또는 열심히 물갈이를 해 주다가 나중에는 모든 이의 무관심의 산물로 금붕어가 있는지조차 깜빡해서 자의적이든 타의적이든 금붕어 죽이기에 동참했다든지 하는 우울한 그림만이 내 머릿속에 그려져 있기 때문이다. 

"이 금붕어, 건강한 거 맞지?"

그래서 나는 다시 한번 아이들에게 내 무의식의 산물을 깨뜨리고 싶어 확답을 듣고자 했다.

"방금 사 왔잖아요. 아저씨가 팔팔한 고기를 주셨다고 하더라고요."

"그래?" 이 순간 왜 물고기를 판 그 어른에게까지도 의심이 드는지. '혹 처리해야 하는 물고기를 아이들 둘만 갔기 때문에 준 것은 아닐까? 아이고! 쓸데없는 생각! 버리자 버려!'


지극정성으로 물고기에게 밥을 잔뜩 넣어주고 난 후, 아이들은 룰루랄라 하며 집으로 돌아갔다. 나는 아이들이 돌아간 후에도 몇 번씩이나 조그만 어항을 들여다보면서 물고기가 활발하게 움직이고 있는지를 점검했다.


한밤중에 그 아이에게서 문자가 왔다.

"통통이 잘 있나요?"

"응. 아직까지는 잘 있어."


'아이들을 생각해서라도 제발 통통아 건강하게 오래오래 살아라!'


다음날 눈을 뜨자마자 물고기에게로 달려갔다.

"아앗!"

통통이가 죽어있다.

문자를 보냈다.

"통통이가 죽었어!"

 아이는 학교를 마친 후 와서, 죽은 통통이를 화단에다 묻었다.


"얘들아, 물고기가 왜 죽었을까? 우리 한번 생각해 보자"

아이들과 이런저런 이야기를 한 후 내린 결론은 숨을 쉬지 못해서(너무나 당연한 말인데), 즉 기포기가 없어서였다. 그래서 이번에는 제대로 된 장비를 갖추고 물고기를 키우기로 했다. 

"당근마켓에서 어항을 찾아볼까요?"

"응, 한번 찾아봐."


나보다 아이들이 검색을 더 잘한다. 아이들은 기포제, 수초, 어항, 물고기밥까지 포함된 상품을 찾았다. 아이들과 함께 차를 타고 어항을 가지러 갔다. 단돈 9천 원에. 아이들은 다시 마트에 뛰어가 이제는 금붕어 두 마리를 사 왔다. 물고기 파는 사람이 한 마리는 외로워서 죽기가 쉽다고 했단다. 기포기를 설치한 어항의 모습이다. 

제법 어항다운 어항이 되었다. 

"얘들아, 물고기 이름을 정해야 하지 않아?"

아이들은 조금 쑥떡 대더니만 "이거예요!" 하고 작은 칠판을 내민다.

"구이, 회, 튀김이! 엥?"


분명히 금붕어 두 마리를 사 왔는데 하얀 작은 물체가 돌아다녔다. 

"도대체 이 하얀 작은 물체는 뭐야?"

아이들을 포함한 나까지도 이 작은 물체가 뭔지를 궁금해했다. 그래서 아이들은 이 작은 물체의 이름까지 지은 것이다.

나는 솔직히 그 이름들이 마음에 들지 않았지만, 아이들의 기발한 아이디어가 좋아서 수긍하기로 했다.  


한밤중, 그 아이에게서 문자가 왔다.

"그 하얀 물체, 기생충일 수 있어요. 잡아 주세요~ 그리고 3일 동안은 물고기 밥 주심 안 돼요!"

하얀 물체를 잡으러 갔더니만 거의 보이지가 않는다. '이 물체가 어디 갔나?'


다음날 아이들이 와서 그 하얀 물체를 다시 찾아보았지만 역시 보이지가 않았다. 그래서 내린 결론은 '그게 기생충이기보다는 금붕어에게 딸려온 아주 작은 새끼물고기일 수 있다. 안 보이는 것은 밥을 먹지 못 한 금붕어에게 잡아먹혔다!'라고.  


남편이 한참을 보이지가 않아 찾았더니만, 어항 앞에 앉아 금붕어를 바라보고 있다.  

"뭐 해요?"

"금붕어가 잘 살고 있는지 보고 있었어. 그리고 별명도 지었어!"

별명은 생명, 기쁨이란다. 아이들은 "구이야, 회야!"라고 부르고 우리는 속으로 "생명아, 기쁨아!"라고 부른다. 


그런데 이 생명이와 기쁨이가 잘 살고 있는지 오밤중에 일어나 가 보니, 기포기가 돌아가지 않고 있다. '무슨 이런 일이!' 이리저리 살펴보니 기포기가 불량품이다. 돌아가다가 내뿜는 힘 때문인지 기포기의 호스가 저절로 빠지는 것이다.  '아이고! 이 일을 어떻게 하나?' 

남편이 방법을 모색했다. 이렇게.

그런데 이렇게 테이프로 단단히 감는 단도리를 했는데도 빠질 때가 있다. 그럴 때는  얼른 손으로 다시 끼어 넣어야 한다.  영 불안하다. 


며칠 뒤에 아이들이 여과기를 사 왔다. 혹시 기포기가 돌아가지 않으면 이 여과기의 물방울로 산소공급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신통방통한 아이들이다.

 요즈음 남편과 나는 눈을 뜨자마자, 밤사이 구이와 회가 무사한지 어항 앞으로 달려간다. 사랑스러운 구이와 회는 우리의 염려를 없애주려, 열심히 움직여주는 통 큰 서비스를 제공한다.

우리의 구이와 회가 인물이 얼마나 출중한지, 나는 이리저리 증명사진을 박아준다.

어느 날 새벽기도를 하기 위해 자리에 앉았는데 내 입에서

"구이와 회가 건강하게 해 주시고~ "


아악! 이건 아니다. 지금 중보기도해야 할 사람이 부지기수인데 웬 구이와 회야! 

정신을 차려야겠다! 


얼른 구이와 회를 가슴에서 파 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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