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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해경 Jan 01. 2024

중1과의 전쟁!(5)

마지막 회

40대 초반의 한창 일할 선생님이 도저히 이반을 담당하지 못하겠다고 병가를 사용하여 학교를 잠시 쉬겠다고 했으니, 학교에서도 난리가 난 것 같았다. 내가 간 그 주(나는 수요일부터 시작했다) 금요일에 이 학급을 가르치는 모든 교과선생님들이 모여 대책회의를 했다. 이런저런 여러 가지 대책들이 논의되고 난 후, 한 가지 방법을 채택했다. 즉 수업을 방해하고 떠드는 학생이 있을 경우 그 학생의 동의를 받아서 명단을 작성하는 것이다. 나도 이 방법이 좋을 것 같았다. 왜냐하면 수업 들어갔다 나온 선생님들에게 이 시간 수업방해한 학생이 누구인지 명단을 받아서, 쉬는 시간에 불러 야단을 치려고 하면, 하나 같이 자신은 절대 수업방해를 한 적이 없다고 시치미를 떼기 때문이다. 직접적인 증거가 없고, 또 절대적으로 자신은 그런 적이 없다고 우기는데, 나도 마냥 혼내기가 곤란했다. 이 악동들의 특징이 임기응변에 강하고, 그때그때마다 거짓말을 능수능란하게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제부터는 아이도 동의하고 작성한 명단이니, 그들이 발뺌할 건더기가 없어지는 셈이다. 차마 담임인 나는 아이들이 얄밉지만 이름 적기가 별로 내키지 않아서 작성하지 않았는데, 내 옆자리의 수학선생님은 시간마다 꼬박꼬박 이름과 이름을 적게 된 사유를 열심히 적어 오셨다. 그만큼 이 수학선생님에게는 쌓여있는 감정이 많다는 것이다. 이 수학선생님도 두 달 기한으로 들어온 기간제 선생님이셨는데, 아이들이 이 선생님을 하찮게 대하는 것 같았다. 심지어 그 악동 중 한 명은 선생님에게 이런 말까지 했다는 것이다

"선생님 가시고 나면 저 열심히 공부할 거예요."

참으로 나쁜 아이이다. 이 수학선생님은 아주 열심히 가르치시는 분이신데(대체로 기간제선생님들이 더 열심히 가르치시는 것 같다. 정교사들은 자리에 대한 위협이 없지만, 이들은 실력, 성실, 열정으로 무장하지 않으면 버틸 수가 없기 때문이다.) 그런 선생님에게 대놓고 이런 말을 해서 자존감에 큰 상처를 주니, 그 선생님은 이 악동들이 지긋지긋해서 빨리 이 학교를 그만두고 싶다고 나에게 말하곤 했다. 거의 보름동안 악동들의 이름이 차곡차곡 쌓여 갈 때, 또 하나의 예기치 않은, 하나님이 준비하신 사건이 일어났다.

"선생님, 저 예나엄마입니다. 철민이와 진우를 학교폭력으로 신고하고 싶어요!"

"네? 무슨 일이죠?"

"겨울이 되어서 예나에게 패딩을 사 줬더니, 철민이가 허락도 없이 패딩을 빼앗아 입고, 달라고 해도 주지 않고, 나중에는 진우까지 가세해 예나를 놀리면서 패딩을 아무렇게나 팽개쳤다고 해요. 또 점심시간에 나온 요플레를 허락도 없이 가져가서 철민이가 먹고, 빈 요플레를 예나에게 버리라고 줬다고 하네요. 그리고 예나가 대든다고, 예나 등을 발로 차서 블라우스에 발자국을 내어 왔어요. 이런 못 뗀 아이들이 어디 있나요! 이런 일이 한두 번이 아니에요. 호성이도, 정민이도 그 네 명이 예나를 집단적으로 괴롭힌다고 합니다. 예나 물건을 허락 없이 수시로 가져가서 낙서를 마구 해 놓고요. 너무 속상해서 견딜 수가 없어요!"

"아이고, 이 나쁜 놈들이. 잘 알겠습니다. 확인 후 다시 연락드리겠습니다."

전화를 끊자마자 또 다른 전화가 왔다.

"선생님! 희원이 엄마입니다. 철민이 때문에 희원이가 학교를 가기 싫어해요. 희원이에게 언어폭력을 심하게 해요. 찐따, 바보, 멍청이라고 매일 놀려요. 이 아이를 좀 제재하는 방법이 없을까요? 학폭으로 신고하고 싶어요."

"아! 예, 잘 알겠습니다. 확인 후 연락드리겠습니다."


그날 이후, 연달아 엄마들이 계속 전화를 했다. 

"선생님! 저 윤수엄마입니다. 혹시 저번 담임선생님에게 무슨 말을 들으셨나요?"

"무슨 말을요?"

"아이참, 저번 담임선생님에게 꼭 부탁드린다고 말씀드렸는데, 선생님에게 전달이 되지 않았나 봅니다. 2학년 반편성할 때 절대 그 반의 말썽꾸러기 5명과는 같은 반이 되지 않도록 해달라고 부탁드렸었어요. 선생님, 꼭 들어주세요. 우리 아이가 전학 가려다가, 지금까지 꾹 참고  견딘 겁니다. 2학년 때 절대 같은 반이 되지 않도록 배려 부탁드립니다."

"아! 네, 잘 알겠습니다. 참고로 하겠습니다."

내가 새롭게 이 반을 맡게 되었다는 소리를 들은 학부모들이 매일 전화해서 2학년 반 편성 때 누구누구와는 같은 반이 되지 않도록 배려해 달라고 거듭거듭 부탁했다. 그 명단에 이 악동 5명의 이름이 거의 대부분 거론되었다. 어떤 여자 아이는 진로선생님과 상담도 여러 차례 했고, 제발 가까운 학교로 전학 갈 수 있기를 학수고대한다는 것이다. (실제로 이 아이는 나중에 직접 교장실에 찾아가 전학 보내달라고 했다고 한다. 조건이 되지 않으면 전학을 갈 수가 없는데, 이 아이는 교장선생님의 허락이 있으면 전학이 가능하다고 생각한 것 같았다.)


처음에는 아이들을 불러서 훈계하고 끝내려다가, 1학년 부장님이 그냥 이 아이들을 2학년으로 올려 보내어서는 안 되겠다고 생각하신 것 같았다. 그래서 나에게 엄마들이 학폭신고하겠다면 말리지 말라고 한다. 봇물같이 쏟아지는 학부모의 원성을 계기로, 이 악동들을 한번 혼내야겠다는 마음을 굳힌 것 같았다. 그 결심 속에는 학부모의 원성도 있지만, 11월까지 담임하다가 병가를 쓰게 만든 이 악동들에 대한 미움도 묻어나 있었다. 그래서 가장 먼저 학폭신고를 말한 예나엄마에게 부장선생님이 직접 전화하셨다. '정말 학폭을 원하시느냐'라고 질문을 하기 위해서였다. 예나엄마는 나에게 전화할 때는 화가 많이 나 있었는데, 며칠이 지나서인지 조금 수그러지신 것 같았다.

"같이 아이를 키우는 입장에서 이 4명의 아이들(여자인 경미 제외) 부모들에게 자기의 아이들이 학교에서 어떻게 행동하는지, 그 실태를 알고 있는지 알고 싶고, 또 직접 만나서 사과를 받고 싶어요. 만약 이 일이 수월하게 이루어지지 않으면 학폭으로 신고할 겁니다."

부장선생님은 희원이 엄마에게도 전화를 했다.

"희원이가 절대 학폭신고 하지 말라고 해요. 그러면 나중에 자기를 더 괴롭힐 것이라고 하면서요."

교무실 전체 분위기는 희원이 엄마까지도 같이 이 아이들을 혼내주는데 한 역할을 담당해 주기를 원했지만, 신고 이후가 두려워서 그냥 덮고 지나가겠다고 하니, 억지로 권유할 수도 없는 형편이었다.


며칠 후 예나엄마, 아빠가 참석하고, 진우, 정민이, 호성이 엄마, 그리고 철민이 엄마, 아빠가 함께 학교의 학부모운영위원회실에 모였다.(철민이는 두 여학생의 부모로부터 같은 날 동시에 이름이 거론되었기 때문에 철민이 아빠까지 오신 것 같았다.) 마침 수업방해 명단의 증거도 있고, 또 예나엄마가 그동안 당한 일을 조목조목 적어와서 4명의 부모 앞에서  하나하나 거론했기 때문에, 이 4명의 부모들도 조금 긴장하는 것 같았다. 잘못하여 이 사건이 학폭으로 넘어가면, 자식의 이름이 영구히 생활기록부에 남아있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너무 속상해서 약간 울먹이는 예나 엄마의 목소리에 나도 마음이 아팠다. 그리고 속으로 '이 나쁜 놈들, 제발 나쁜 짓 그만하고, 제발 좀 바뀌어라!' 하는 울분이 목구멍까지 치솟았다. 예나엄마의 말을 들은 진우, 정민이, 호성이, 철민이 부모는 '다시는 그런 일이 없도록 하겠다'며 '미안하고 죄송하다'라고 사과했다. 그동안 당한 고통에 비해 사과의 무게는 좀 가볍게 여겨졌다. 그러나 일단 학폭신고를 하지 않겠다는 예나부모님 때문에 학부모의 사과와 예나에 대한 아이들의 사과편지를 받는 것 외에는 또 다른 방도가 달리 없었다. 그렇게 사건은 일단락되었다.


내가 이 악동들을 잡기 전, 솔직히 잡을 능력이 있는 것도 아니지만, 하나님은 학부모의 원성이 몰아치도록 해서 이 악동들의 기를 한번 꺾어놓으셨다. 


나는  아이들이 교실에 들어오기 전에 미리 교실에 가 앉아 있는다. 

아침 조례시간이 8시 50분인데, 8시 30분이면 교실에 어김없이 들어간다. 그리고 들어오는 아이들을 맞이한다. 

"조용히 책 읽든지, 숙제하든지 해라!"

아침부터 면학분위기를 잡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다. 아침에 분위기를 잡아놓지 않으면, 아침의 그 분위기가 그날 온종일 계속 지속될 수 있기 때문이다.

"선생님! 분위기가 많이 바뀌었어요. 오늘 수업다운 수업을 했어요."

우리 반을 맡은 교과선생님들에게서 간혹 이런 말을 듣기도 한다. 학부모상담이 있은 후 며칠 동안, 그 효과가 나타났다. 이 악동들이 얼마동안 숨죽이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또한 어찌 된 일인지, 이 악동들이 차례로 A형 혹은 B형 독감에 걸려 학교를 빠지기 시작했다. 독감에 걸리지 않은 악동은 교외 체험학습을 사용해 며칠 동안 교실에 나타나지 않았다. 마침내 교실의 평화가 이루어진 것이다. 


이 악동들 때문에 눌려 있던 아이들을 나는 책임자로 세우기 시작했다. 그 대표적인 예가 부반장인 현수이다. 반가대회가 있어서 현수에게 그 책임을 맡겼다. 반가연습을 본 선생님들이 현수의 역량에 놀랐다고 입을 모았다.

"현수가 아이들을 정말 잘 다루고 있어요. 말 안 듣는 아이들도 잘 달래가면서 연습시키고 있더라고요. 그런데 그 아이가 왜 이때까지 잠잠히 있었는지 알 수 없더군요."

악화가 양화를 구축한다고, 이 반의 순하고 재능 있는 아이들이 힘들게 억눌러 있었던 탓이었다. 


현수가 반가대회 있기 하루 전날, 외국으로 온 가정이 이사를 갔다.(현수아빠의 해외 파견근무 때문) 그래도 현수가 다른 착실한 친구에게 자신의 반가책임을 맡겨 놓고 가서 그나마 다행이었다. 그런데 여학생 싱어 2명이 합창 중간에 듀엣으로 노래를 부르기로 되어 있었는데, 이 아이들도 독감으로 학교에 나오지 못하게 되었다. 나는 약간 멘붕이 왔다. 다른 반들은 정말 열심히 한 마음으로 뭉쳐 연습을 하는데, 우리 반은 지리멸렬 수준인 것이다.


어제 금요일, 반가대회를 했다. 다들 난리였다. 요즘 아이들은 반가합창대회임에도 불구하고 으레 퍼포먼스를 동반한 한 편의 뮤지컬을 만든다. 그만큼 볼거리에 익숙한 세대라는 것이다. 5번째로 등장한 우리 반은 거의 12명이 독감과 기타 질병으로 빠지고, 22명 정도만 무대 위에 서게 되었다. 공동체의 이익과 단합이라는 단어에 익숙하지 못 한 아이들, 그저 자기 한 몸 살아남기 위해 발버둥 친 아이들이어서 그런지, 연습 때에도 보면 개사한 가사를 다 암기하는 아이가 많지를 않았다. 즉 내 한 몸 괜찮으면 그것으로 만족하지, 학급을 위해 자신을 헌신하겠다는 아이들이 많지 않다는 것이다. 공동체보다 자신의 살길이 더 시급했던 아이들이어서 그런가 보다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지만, 한편으로는 아이들의 그런 모습에 화가 나고, 섭섭하기도 했다. 


두 싱어 대신에 급조된 다른 두 여학생이 듀엣으로 노래를 했다. 12 학급 중 가장 차분하고(숫자가 적다 보니) 가장 조용히 합창을 한 것이다. 다른 면으로 보면 가장 합창다운 합창을 했다고도 할 수 있다. (다른 반들은 행동들이 요란했다) 물론 순위에 들지 않은 것은 당연한 결과이고, 아이들은 다른 반의 합창을 보고 조금 기가 죽은 표정이었다. 나도 기분이 썩 좋지를 않아서 아이들을 위로할 마음도 들지 않았다. 그런데 교감선생님과 다른 선생님들이 우리 반의 합창이 끝나자마자 나를 보고 "수고 많았어요."라고 하는데 갑자기 눈물이 핑 돌았다. '이 눈물의 정체는 무엇이지?'라고 한편으로는 당황하면서, 한편으로는 생각을 했다. 어둑한 시간에 1학년 교무실의 문을 가장 먼저 열며 출근하고, 가장 늦게까지 남아 일처리를 하는 나의 모습이 오버랩되면서, 그동안 쌓였던 긴장이 눈물로 흘러나온 것 같았다. (1학년 자유학기의 생기부(생활기록부) 기록이 또 얼마나 많은가! 모든 선생님들이 고개 숙여 생기부를 작성한다고 눈코 뜰 새 없이 바쁘다 보니까,  막판에 들어온 나는 서류작성에 모르는 것이 많이 있어도 물어불 상대가 마땅히 없었다. 그나마 나를 잘 도와주던 수학기간제 선생님은 생기부 작성이 있기 전에 기한이 되어서 그만두셨고, 원래 담임선생님이 오셨는데 아직 몸이 불편해서인지 나보다 일처리가 더 늦어 물어볼 수가 없고, 나 옆의 선생님은 정말 일처리를 잘하시는 것 같은데, 다른  실에 계시다가 학교 끝날 시간에 잠깐 얼굴을 비치는 상황이었다. 나는 양옆의 선생님들에게 차근차근 묻고 싶었는데, 그럴 상대가 없으니, 일처리를 하면서도 이게 맞는 건지, 아닌지를 몰라 답답했다. 그래서 어떤 서류 하나는 정보를 정확하게 가르쳐주는 사람이 없어서 실수에 실수를 거듭하여 세 번이나 같은 서류를 작성해야만 했다. 한 번은 잘못된 결재정보 때문에, 한 번은 나에게 준 권한(행정실에서 돈을 사용하도록 주는 권한인데 엉뚱한 항목으로 나에게 줘서, 내가 우리 반 아이들의 반가 대회용 모자를 사기 위해 사용한 돈으로 인해 예산이 마이너스가 되어 행정실에서 일 학년 부로 연락이 옴.)이 잘못되어서, 그래서 세 번째로 서류를 겨우 완성하다 보니 내가 일순간 바보가 된 기분이 들었다. 누구보다도 먼저 일처리를 하기 원하는 나인데, 이게 원활하게 되지 않으니 스트레스를 받아, 소화가 잘되지 않았다. 아마 이런 마음고생까지 생각이 나서 그 순간  눈물이 나지 않았나 싶다. 물론 주위의 선생님들은 내가 눈물을 흘리는 것을 알지는 못 했다.) 그리고 월말이라 독감과 질병결석, 코로나 한 명, 교외체험학습에 부반장의 면제(학교제적)까지 덧붙여진 출석부 정리를 혼자 교무실에 남아 어느 정도 정리하고 난 후에야, 오픈채팅으로 "너희들 너무 수고 많았어. 고생했어."라고 아이들을 위로할 수 있는 마음의 여유를 가지게 되었다.


이제 정말 이 아이들과 함께 할 시간이 며칠 남지 않았다. 아이들에게 미리 롤링페이퍼를 작성하게 했다. 모든 아이들이 다른 친구의 롤링 페이퍼에 그 친구의 장점들을 적게 한 것이다. 생기부를 작성하는 도중에 나도 한 명, 한 명에게 그 아이에게 꼭 필요한, 그러나 가능하면 좋은 의미의 말들을 적기 시작했다. 그리고 밋밋한 롤링 페이퍼를 색연필로  테두리를 하고 예쁜 스티커를 붙여 장식했다. 이제 빈 수업시간에 아래층으로 내려가 라미네이팅(코팅)할 일이 남았다. 방학식날, 종이액자에 넣어 한 명, 한 명에게 줄 예정이다. 


남은 기간 동안 이 아이들을 더욱 사랑해야겠다고 나는 마음먹고 있다. 비록 남에게 해를 끼친 악동들이라 할지라도 사랑으로 그들을 감싸려고 한다.  그들의 잘못된 습관이 하루아침에 변화되지는 않겠지만(그래도 많이 좋아지고 있음은 확실하다), 언젠가 다른 사람들을 배려하고 도와주는, 그리고 순간순간 최선을 다하는 멋진 아이들로 변화될 것을 기대하고 꿈꾸면서 말이다. 2023년 연말이 나에게는 그렇게 소란스럽게 지나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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