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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해경 Jan 12. 2024

공소시효 만료 (1/2회)

(단편소설)

   "2002년 11월 20일 오전 7시 50분경, 자욱한 아침 안갯속에서 안동에서 서울방향으로 가는 음성 IC부근에서 기아 모닝 승용차가 중앙분리대를 들이받는 사고가 발생했습니다. 이 사고로 중앙분리대가 반대 차선으로 넘어가면서 지나가던 2대의 승용차량이 분리대에 부딪쳤습니다. 모닝 승용차 운전자로 보이는 최 모 씨(52세)와 동승자 박 모 씨(51세)가 부상을 입어 인근 119구급차에 의해 한양대학교 음성병원으로 이송됐으나 숨진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다행히 반대편 차량의 운전자들은 경미한 상처를 입었지만 역시 병원으로 옮겨졌습니다. 자세한 사고 경위는 음성경찰서 교통사고 조사반에서 조사 중입니다. KBS 뉴스 이 영철입니다."  


  안동 면 단위의 이 골짜기에 큰 사고소식이 전해졌다. 음성경찰서 교통사고 조사반에서 사건을 이첩받은 나는 잠시 마음이 흔들렸다. 중학교 친구의 부모님이 돌아가신 것이다. 사인은 "아침안개로 인한 운전미숙"으로 결론이 났다. 마을이 한동안 시끄러울 것 같다. 


  사고를 당했던 친구 영민이가 사고 후 한 달 만에 전화를 했다. 

"너 요즘 많이 바쁘냐?"

"사고담당 경찰이 항상 눈코 뜰 새 없지, 뭐."

"그렇지? 그런데 내가 부탁하나 해도 되냐?"

"뭔데? 말해봐라."

"너도 알다시피 우리 부모님이 오랫동안 학교서 매점하고, 집에서 하숙을 하셨잖아. 그런데 통장에 돈이 없다. 어찌 된 일인지 모르겠어. 사망신고하고 은행에 조회했더니만 단돈 오십이만 삼천 원 있더라. 하도 이상해서 한 달간 고민하다가 너에게 전화한다. 너 좀 알아볼 수 있냐?"

"부모님 이름으로 된 모든 부동산, 은행 다 조회한 거 맞아?"

"응. 부동산은 깨끗하더라. 너도 알다시피 우리 부모님은 이북 피난민 출신이잖아. 절대 부동산에 투자하지 않아. 항상 통일되면 평안도 고향에 돌아가신다고, 여기에 집이고 땅이고 살 필요가 없다고 늘 말씀하셨거든."

"집안 다 찾아봤나? 창고 속, 이불속, 장롱 속, 부엌 등" 내 말이 끝나기도 전에 친구는 말한다.

"고향 동네 몇 년 뒤면 수몰된다면서? 임하댐 때문에? 동생이 버리고 떠날 집이라고 마당까지 다 파봤다고 하네. 신기하지 않아?"

"신기한 게 아니고 이상하구먼. 알겠다. 내가 알아볼 수 있는 대로 알아볼게."      

 영민이 부모님의 교통사고와 돈을 연결시켜 보면, 뭔가 범죄의 냄새가 난다. 영민이 부모님의 죽음으로 누가 최대의 수혜자가 될 수 있을까? 만약 돈의 거처를 안다고 전제할 때, 최대의 수혜자는 영민이 동생인 영철이, 아니면 영민이다. 그런데 두 형제는 사이가 너무 좋다. 돈 문제로 서로를 속이지는 않는다. 영민이 부모님이 돌아가시고 난 이 한 달 동안, 마을에서 누가 가장 형편이 펴졌나? 음, 우리 집이잖아! 교사인 아내와 경찰인 나의 봉급을 합쳐서, 이제 우리 집은 경희아버지의 소작인에서 벗어났다. 그런데도 아버지는 아직도 경희아버지 앞에서 굽실거린다. 왜 그러실까? 소작인이라는 겹겹의 세월의 옷이 아직도 아버지를 옥죄고 계시나? 참! 권 기철이가 카센터를 오픈했지! 일을 열심히 배우더니만 드디어 자기 가게를 가지게 되었더군. 축하할 일이지 이게 조사할 일인가? 

      

  영민이는 중학교의 같은 문예반 친구이다. 영민이의 부모님이 서울로 올라가신 그날이 영민이가 사우디아라비아에서 돌아오는 날이었다. 영민이가 장례식장에서 나를 만나 한 고백을 나는 기억한다.     

"너, 내가 유 경희를 얼마나 좋아했는지 너 알지?"(음, 나도 걔 좋아하지.) 나는 속으로 토를 달면서도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 사건의 결말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중학교 2학년 때였지. 하루는 문예반 선생님이 1학년 한 명을 데리고 왔었잖아. 니콘 카메라를 목에 건, 토기같이 동그랗고 커다란 눈에 양 볼에 보조개가 움푹 들어간 아이! 그 순간 모두들 숨을 꼴깍 삼킨 상태였잖아.(나는 숨이 멎는 줄 알았다.) 그 아이가 우리 학교에서 모든 아이들이 부러워하는 유 경희인 줄 그때 처음 알았어(영민아, 나는 그 집 옆에 살아서 너보다 경희를 더 잘 안다. 넌 그때 학교소문에 별로 관심이 없더구먼. 난 항상 경희를 주시하고 있었지.) 어쨌든 내 마음에 그 아이가 훅 들어오더라.(이 미친놈. 나는 초등학교 때부터 경희를 좋아했다) 그런데 나 별로 나대지 않잖아. 오히려 조용한 편이었지. 눈길은 주었을망정 경희에게 한 번도 말을 건 적은 없었어. (그게 경희에게 먹혔던 거 같아. 경희는 모든 아이들이 '경희, 경희' 하는데 너만 가만있으니까 오히려 너에게 관심을 가지더구먼. 넌 나보다 한수 위였어) 그런데 행운의 여신이 나에게 미소를 짓는 사건이 일어났잖아(그 행운의 여신이 획가닥 비극의 여신으로 바뀌어서 탈이지) 학교 창립기념일 축제로 시화전을 여는데, 선생님이 경희는 사진을 찍고 영민이가 그 밑에 짧은 글귀를 써넣으면 어떠냐고 부탁하셨지. 난 그때 너무 좋아서 삼일 밤을 잠 못 잤다.(어휴, 넌 어째 그리 친구인 내 심정은 몰랐냐? 나는 너무 억울해서 삼일 밤을 잠 못 잤거든) 그래서 나는 공식적으로 경희에게 말을 걸 명분이 생긴 거지(그때 넌 정신이 몽롱해서 다른 친구들이 다들 짜증 내고 힘들어한 것 몰랐지?) 나는 사진을 찍는답시고 함께 산으로, 들로 경희와 돌아다녔어. 정말 꿈같은 시간이었지(이놈아, 나는 네가 경희와 함께 산으로, 들로 다닐 동안 배가 아파 미칠 것만 같았다) 경희도 나를 좋아했어.(어쭈, 아주 단정하는구먼. 그래, 인정한다. 옆집에서, 경희의 흥얼거리는 노랫소리를 그때 많이 들었던 것 같아. 그때 경희가 정말 밉더라. 가서 엉덩이를 한방 쥐 차고 싶더라.) 그리고 나는 고등학교를 안동 시내로 갔잖아(그래 너 잘났다. 안동시내의 고등학교로 가는 것은 그 당시 잘 난 놈들의 전유물이었지. 나는 동네 고등학교로 갔다. 이제 네가 떠난 자리에 내가 들어가려고. 휴, 내 착각이었지. 또 안동 시내로 갈 만큼 우리 집이 넉넉하지 않았어. 밑에 동생이 세 명이나 있었잖아. 담임선생님이 좀 아까워하셨지만 뭐,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나 지금 경찰이야. 시골 동네에서는 그래도 유지잖아!) 우리는(우리? 우리 좋아하네) 경희와 나 말이야(으흠, 알겠어) 내가 고등학교에 간 후에도 종종 안동시내에서 만났지(그때 그 집에서 간혹 큰 소리가 났었다, 넌 모르겠지만. 하나밖에 없는 무남독녀가 저녁 늦게 들어온다고, 농협조합장인 경희아빠의 고함지르는 소리가 담 넘어 우리 집에까지 들렸어. 이 친구야, 그때 경희가 밤늦게까지 운 것을 넌 모르지? 나는 내 창자가 끊어질 것 같더라. 당장 너에게 찾아가고 싶더구먼. 왜 애꿎은 경희가 너 때문에 힘들어해야 하는지? 넌 참 뻔뻔하다.) 그리고 난 서울의 명문대학의 사범대학으로 진학했지. 그게 우리 엄마의 소원이었어. 학교의 매점아줌마의 눈에 가장 높은 사람은 당연히 교장선생님이 아니겠어? 엄마는 내가 교장선생님이 되기를 원하셨던 거지. (너희 엄마가 매점아줌마라는 것을 졸업 후에야 알았다. 너, 참 내색을 안 하더구먼. 우리가 "이 과자 너무 오래된 것 같지 않아?" 혹은 "학교 밖 가게에서는 이 과자가 얼마인데, 매점 과자가 좀 비싼 것 같아." 하면 너의 얼굴빛이 갑자기 울그락 불그락해서 처음에서는 친구들이 다 놀랐지.  '과자라는 단어 자체에 알레르기 반응을 일으키는 희한한 애도 있구나.'라고 생각했어. 그래서 문예반 친구들이 너를 배려해서 과자라는 단어 대신에 '응과'라고 불렀잖아! '응과 먹자!' 이렇게 말이야. 나는 집에서 이 말을 했다가 우리 아버지에게 뒈지게 혼났다. "이놈의 새끼야, 뭘 처먹을 게 없어서 똥을 쳐 먹느냐"라고. 나 참! '응과'는 문예반의 '응, 과자'의 애칭인데 우리 아버지는 알지도 못하시면서 나를 부지깽이로 때리셨어. 이게 다 너 때문이야!) 우리 부모님은 피난 오셔서 처음에는 이 지역의 사과밭에서 막노동하셨잖아.(우리 부모님은 지금도 논밭에서 막노동하신다) 겨울에는 사과밭 일이 없어서 식당일을 돕고 계셨는데, 3월 초순에 마을발전 회장님, 지금 보니 경희아버지가 새로 오신 교장선생님의 환영회를 해야 한다고, 식당아주머니에게 한 상 차려주시기를 부탁하셨지(경희아버지는 내내 마을발전 회장이다. 늙어 죽을 때까지 혼자 다 해 먹어라!) 그런데 그날 주인아주머니가 대구에 볼일이 있어 가야 했어. 우리 엄마가 대신 가서 음식을 했는데, 이게 대박이 난거지. 새로 오신 교장선생님과 인사하고 보니, 교장선생님의 부모님 고향도 역시 평안도였어. 그런데 고3 아들 때문에 시골 골짜기로 따라오지 못 한 사모님 대신에, 부모님이 교장선생님의 식사 수발을 들다 보니 학교 안에 매점도 만들게 된 거지(야, 너희 집 사람들은 그때 귀도 없었냐? 식당아줌마가 울고불고 난리 났었지. 뜬 돌이 고인돌 뽑아낸다고, 매점을 해도 할 사람은 자기인데, 웬 근본 없는 것들이 들어와서 자기 자리를 차지하느냐고. 그때 마을사람들이 다 너희 집을 엄청 미워했지. 그 큰 행운의 열쇠가 왜 그 집에 가 꽂혔느냐고 말이야. 우리 엄마도 훌쩍훌쩍 우셨어. 그 식당에서 우리 엄마에게 일 좀 도와달라고 했는데, 엄마가 바쁘다고 거절하셨거든. 얼마나 애통하겠어!) 엄마는 억척이셨어. 학교선생님들이 발령받아 이 골짜기에 들어오고 보니, 마땅히 살집이 없다는 것을 아신 거야. 그래서 이장님의 방이 5개이고 큰 마당이 있는 지금의 집을 빌린 거야. 부모님, 나와 동생의 방을 제외하고 방 3개에는 늘 하숙생인 선생님들이 끊이지 않았어.(학교매점에 뒤이어 선생님들까지 싹쓸이해 간다고 사람들이 웅성댔어. 너의 집은 그때부터 동네에서 미운털이 박힌 거야!) 나는 서울에서도 늘 경희생각을 했었지(재수 옴 붙을 놈! 나는 돈 없어서 경찰대학 갔거든. 그곳의 그 모진 훈련을 받을 때도 경희생각하면서 이겨냈다!) 경희는 안동시내에 있는 대학을 갔더라. 그 아이의 실력이라면 서울에 있는 대학도 가능했는데.(너는 아직도 안동을 잘 모른다. '가시나는 밖으로 돌면 큰일 나제'를 모르는구먼) 4학년 여름방학 때, 경희를 만나서 아버지에게 인사를 하겠다고 했지. 결혼을 전제로 공식적으로 만나는 것을 허용받고 싶었어. 경희는 아직은 아니라고 펄쩍 뛰었지만, 불타는 내 마음을 주체할 수가 없었어.(경희아버지가 어떤 사람인데, 너도 참! 그 불에 네가 홀랑 탔잖아!) 경희아버지는 내 얼굴을 보려고도 하지 않으시고 '태생도 고얀 놈이, 어디 감히! 땅 한 마지기 없는 놈이 어디 우리 경희를!'이라고 호통만 치시더군. 문 밖에서 3시간을 기다리다가 갔어.(이 거지 같은 놈아, 너 때문에 그 집이 쑥대밭이 되었다. 경희아버지, 완전 골통 양반이다. 아직도 양반, 상놈 따지고, 땅 한 평 없으면 다 상놈으로 본다. 양반은 모름지기 땅 부자로, 그 땅을 소작인에게 주고 소작료를 받아야 진짜 양반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야. 너 때문에 경희가 밤새 울고불고 난리가 났었다. 너는 도대체 무슨 배짱으로 사건을 일으키나? 죽어나는 것은 경희였어. 외출금지까지 받았으니. 이 대책 없는 놈아!) 서울에 올라가서도 나는 곧 죽을 것 같더라고. 구구절절이 계속 편지를 썼는데 답장이 오지 않는 거야.(친구야, 그 문제는 미안하다. 넌 모르겠지만 우리 집도 경희네 집의 소작인이야. 그 집 논밭을 부쳐 먹고살거든. 어릴 적 경희와 소꿉장난하는데 경희아버지가 나를 부르더니 이렇게 말씀하시더군. "우리 경희는 너의 아씨야. 네가 잘 모셔야 한다!" 아버지도 경희에게 함부로 다가가지 말라고 신신당부하셨어. 우리 밥줄이 끊어진다고. 나도 네가 대문 앞에 힘없이 서 있는 것, 다 봤다. 그리고 다음날, 나를 부르시더니만 문 앞에서 기다리다가 집배원이 편지를 가져오면 받아서 즉시 본인에게 가져오라고 하시더군. 누구 명령인데 어기냐? 참 열심히도 편지를 보내더군.) 4학년 마지막 학기를 어떻게 보내었는지 모르겠어. 나에게 편지도, 하숙집으로 시외전화도 없었어. 나는 거의 절망상태였어. 어느 날 술에 취해 하숙집에 와 쓰러졌는데, 아침에 눈을 뜨니 하숙집 딸 정미가 내 옆에 누워있는 거야. 내가 실수를 한 건 아닌지 정말 당황했어. 그날 이후로 정미는 나에게 자꾸 찰싹 들어붙는 거야. 허한 마음, 구멍이 뚫린 마음에 정미가 들어오기 시작하더라. 그러다가 졸업하고, 발령받고, 정미와 결혼하게 되었어.(너의 사랑이 그 정도였어? 나는 아직도 일편단심인데. 차마 넘지 못할 산이어서 바라만 보다가, 나를 좋아한다는 여자와 덜컥 결혼했지. 경희는 너의 결혼소식을 듣고 거의 1년을 정신 나간 여자같이 지내더군. 너는 모를 거야. 내 마음은 아프지만, 경희가 널 정말 사랑한 것 같았어. 휴!) 첫째 아들을 낳고, 하루는 정미가 이렇게 고백하는 거야. "당신, 나를 받아줘서 정말 고마워요. 저는 당신이 우리 하숙집 문을 넘어서는 순간부터 사랑했어요. 명문대생만 있는 우리 집에서 엄마는 사윗감을 구하기 원했지만, 고등학교만 졸업하고 곧바로 엄마를 돕기 시작한 저에게는 그들은 모두 오르지 못할 나무였어요. 그런데 당신만은 포기가 되지 않는 거예요. 그러나 당신은 이미 사랑하는 사람이 있더군요. 거의 매일 편지가 오가는 것을 봤어요. 그런데 4학년 여름방학에 고향을 다녀온 당신의 모습은 처량하기 짝이 없었어요. 세상 다 산 사람처럼 맥이 다 풀린 모습이었어요. 저는 화가 났어요. '내 사랑하는 사람을 누가 이렇게 만들었나.' 속이 상했어요. 그래서 그다음부터는 당신에게 오는 편지를 일절 전해주지 않았어요. 간혹 오는 시외전화의 그 여자에게도 당신이 지금 부재중이라고 말했어요. 당신을 더 이상 그 여자에게 휘둘리도록 내버려 두고 싶지  않았어요. 당신이 술에 취해 곯아떨어진 그날, 저는 당신 곁에 가 누웠어요. 당신을 다독거려 줬죠. 물론 아무 일도 없었어요. 그런데 당신은 매우 불안해하며 뭔가를 책임져야 할 사람인 것처럼 쩔쩔 매더 군요. 나는 그런 당신이 너무 재미있어, 그냥 모르는 척하기로 했었어요. 그리고 당신은 서서히 나를 받아들이더군요. 나는 지금도 당신을 너무너무 사랑해요. 당신이 어쨌든 나를 받아준 것에 지금도 너무너무 감사해요." 나는 아내의 고백을 듣는데, 왜 자꾸 속이 메슥거리는지 알 수가 없었어. (너의 아내는 용감하다! 나는 오르지 못할 나무는 절대 오르지 못하는 줄로 알고 있었는데!) 정미의 고백을 들은 후, 나는 이 땅을 떠나 있고 싶었어.(떠날 곳이 있는 네가 부러웠다!) 그동안 잠자고 있던 땅에 대한 갈망, 땅만 있었다면 경희를 잡을 수도 있었을 것이라는 아픔이 스멀스멀 올라오는 것을 막아낼 수가 없었어. 마침 사우디아라비아에 한창 건설 붐이 일어나고 있었잖아. 언제 내 땅이 생길지 모르지만, 내 땅은 내가 측량하고 싶다는 욕망 때문에, 틈틈이 학원을 다니면서 취득한 측량기술자 자격증을 그때 활용하고 싶었어. 엄마의 소망이었던 교사직을 잠시 내려놓고, 이제 내 소망을 쫓아가고 싶었지.(휴! 넌 너 하고 싶은 것은 다 했네!) 첫아들 정환이가 너무 어려 아내는 친정에 남아야 할 것 같았어. 오히려 잘 된 일이지. 장모님도 이제 연세 때문에 하숙하는 일을 버거워하셨는데, 아내가 전적으로 도와드린다면 오히려 만족하실 것이고, 아내는 엄마 옆에서 정환이를 키우고 싶어 했거든. 그래서 마음이 홀가분했어. 사우디아라비아의 그 사막 땅에 가 마음껏 그 넓은 땅을 밟아 보고 싶었어. 그곳에서 어린 왕자를 만나, 한 송이 꽃의 소중함에 눈물 흘리던 그 어린 왕자에게 안겨, 나의 잃어버린 꽃에 대해 위로를 받고 싶었어.(그래. 위로, 좋지! 그래서 넌 행복한 사나이야. 그런데  도대체 나는 언제 위로를 받지?) 나는 4년간의 사우디아라비아에서의 생활을 청산하고 한국으로 돌아왔어. 나는 약간 다리를  절어. 그 넓은 사막을 돌아다니며 땅을 측량하느라 다리에 무리가 간 거지. 그러나 이제 마음의 상처는 아물었어. 사막에 바람이 불면 하루아침에 새로운 둔덕이 생기고, 다음날 마법같이 사라지지. 달빛 아래 여우는  돌아다니며 "빼빼 빼" 하는 울음소리를 내더군. 사막은 나에게 영원히 지속되는 것이 어디 있느냐고 말하는 것 같았어. 끊임없이 변화하는 환경에 적응하라고 하는 것 같았지. 사막여우의 그 울음소리는 내 마음속에 있는 경희를 향한 그리움도, 땅에 대한 욕망도, 정미를 향한 미움도 "빼빼 빼"라고 말하는 것 같았어. 나는 서서히 경희를 내 마음속에서 뺐어. 땅에 대한 욕망도 뺐어. 정미에 대한 미움도 뺐어. 오히려 정미에 대해서는 연민의 정이 느껴지더군. '내가 경희를 사랑한 것보다 정미가 나를 사랑한 강도가 더 센 것은 아닐까'하는 생각까지 들었어.(와! 너 대단하다. 그렇게 깨끗이 정리정돈을 하다니. 나라는 인간은 왜 이 모양이지. 아직도 정리가 안 된다!) ‘이제 새로운 마음으로 시작하리라. 교직에 복귀하여 엄마의 소원을 이루어드리리라’고 생각했지. 그런데 사고가 난 거야. 부모님은 몇 초라도 빨리 나를 보고 싶으셨던 것이지. 그 먼 길을 고물 차를 끌고 오실 생각을 하시다니!" 


  어깨를 들썩이며 훌쩍이는 영민이를 바라보며, 지평선 하나가 새롭게 쫘악 그어지는 것을 느꼈다. 그는 지평선 저쪽으로 넘어가 버렸고, 나만 외로이 지평선 이쪽에서 떠돌고 있다. 


2회에서 계속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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