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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해경 May 06. 2024

말을 해라, 말을!

1년 8개월 29일 된 손녀 리아와 30대의 리아 엄마(나의 딸)와 60대의 리아 할머니(나)의 대화이다.


리아엄마: 우리 리아 많이 잤지? 낮잠을 2시간 이상이나 자면 밤에 언제 자려고 그래? 리아 이제 일어나야지!!          

리아: 앙앙~(엄마가 깨우자 몸을 뒤척이며 운다. 아직 더 자고 싶다는 항변이다.)

리아 엄마: 안 돼, 리아야. 일어나. 이제 일어나서 밥 먹어야 해.(리아엄마 마음속에는 '리아야. 밤에 안 자고 애 먹이면 안 돼. 엄마, 아빠 다 피곤해서 안 되지. 낮잠 적당히 자고 밤에 잘 시간에 자야지!'이다.)

리아 할머니: 그래 리아야, 이제 일어나야지!(리아야, 할머니도 내 딸이 힘들까 봐 걱정된다. 밤에 네가 잘 자야 할머니 딸도 회사생활 잘 할거 아니니?)

리아:앙앙, 앙앙(아직 더 자고 싶단 말이에요!)

리아엄마는 결심한 듯 리아를 더 흔들어 깨운다.


눈을 뜬 리아는 엄마와 모바일폰으로 자신을 빤히 쳐다보고 있는 할머니를 쳐다보며 울음을 삼킨다. 이 두 사람의 단호한 얼굴표정에 리아는 한풀 기가 꺾인 듯, 울음소리가 조금 잦아든다.


리아 엄마: 리아야, 맘마 먹어야지.

이제 완전히 깨어 정신을 차린 리아는 고개를 끄덕인다.

리아 엄마: 리아야, 비빔밥 먹자!(어린아이에게 가장 간편하게 영양을 보충할 수 있는 방법은 비빔밥이다. 쇠고기, 야채 등을 모두 버무린 밥을 준비하며, 아이가 무럭무럭 자라기를 기대한다.)

리아 엄마는 리아의 밥을 준비하기 위해 열심히 움직이고, 나는 화면으로 리아를 쳐다보며 회유한다.

리아 할머니: 리아야. 맘마 많이 먹고 쑥쑥 커야지!

리아: 앙앙앙~(갑자기 울음을 터뜨린다)

당황한 리아 할머니: 갑자기 리아가 왜 이러니?(리아 엄마에게 빨리 공을 건네며, 책임 회피를 한다.)

리아 엄마: 리아야, 왜 그래? 배 고파서 그래? 자, 여기 리아밥. 자, 우리 리아, 맘마 먹자!

리아: 앙앙앙~ (더 큰 소리로 울어댄다.)

역시 당황한 리아 엄마: 리아야 왜 그래? 비빔밥 싫어?

리아: 앙앙, 노(No), 앙앙~


'엄마, 아빠, 멍멍이, 곰, 반짝, 바이(Bye), 포도, 바나나'등 몇 개의 과일이름을 말할 줄 아는 리아의 유일한 일상언어는 '노(No)'이다. 예스(Yes) 보다 노(No)란 말이 하기가 더 쉬운 건지, 아니면 확실한 자신의 의사표현을 하기 시작하는 단계여서 그런지 모르지만, 리아는 노(No)란 말을 가장 많이 사용하여 자신의 의사를 표현한다.(이 말을 리아또래의 아들을 가진 한국에 있는 엄마에게 말했더니만, 그 아들도 '아니!'란 말을 요즈음 가장 많이 사용한다고 한다. 참 신기하다. 이 또래의 아이들은 부정언어를 먼저 익혀 자신의 의사를 표현하는 것 같다.)


리아 엄마: 아! 리아가 비빔밥이 싫구나. 그래, 리아야, 그럼 짜장밥을 줄까?

리아의 울음소리가 조금 잦아든다.

리아엄마는 다시 짜장밥을 준비하기 위해 부지런히 움직인다. 리아할머니는 그 모습을 쳐다보며 '아이고, 애 키우기 힘들다. 쬐그만 것이 아무거나 먹을 일이지 뭐가 벌써 이래라, 저래라 하나? 저렇게 까탈스럽게 크으면 안 되는데. 옛날의 나는 딸들에게 내 마음대로 먹였는데. 아이고, 요즈음 시대는 달라.'라고 속으로 중얼댄다.

그렇지만 한 마디도 입 밖으로 내지 않는다. 얼마 전 리아 엄마가 한 말이 생각나기 때문이다.


"엄마, 내가 전화해서 리아흉 본다고 리아가 할머니에게 전화하는 것을 싫어해요!"

"뭣이라고? 리아가 말귀를 다 알아듣는다고? 고 쬐그만 것이"


이 할머니도 리아에게 사랑을 받고 싶지, 리아가 싫어하는 할머니가 되기는 싫은 것이다. 


리아 엄마: 자, 리아야. 맘마 먹어야지.

그런데 리아는 계속 운다.

리아 엄마는 답답해하면서

리아 엄마: 리아야, 왜 그래? 엄마한테 말을 해야지, 말을!

리아: 앙앙앙~ (아직 말을 못 해요!!)

리아 할머니: 쟤 왜 저러니? 왜 저렇게 우니? (속으로는 '이럴 때 엉덩이를 딱 한방 때리면 좋을 텐데'라고 생각한다.)

리아 엄마: 나도 몰라요. 왜 우는지. 저번에는 이래도 울고 저래도 울었어요. 나중에 알고 보니 내 무릎 위에 앉아서 먹고 싶었나 봐요.

리아 할머니: 그럼 무릎에 앉혀 봐.

리아를 무릎에 앉혀도 계속 운다.

리아 할머니: 김가루를 뿌려준다고 해 봐!

리아 엄마: 리아야, 김가루를 뿌려줄까?

리아: 엉엉, 노(No), 노(No).


리아가 말을 하지 못하니까, 도대체 왜 우는지 이유를 알 수 없는 리아 엄마와 리아 할머니는 울어대는 리아를 망연자실 쳐다보고만 있다.

리아 엄마: 엄마, 그만 들어가세요.(리아의 예쁜 모습을 보여주기 원했던 리아 엄마는 좀 미안했던지 전화를 끊자고 한다.)

리아 할머니: 그래, 알겠다!(애를 키운 경험이 있는 이 할머니도 해결책을 제시하지 못해 역시 미안한 마음으로, 현장을 벗어난다.)


잠시 후, 딸에게서 영상이 왔다.

그리고 딸의 메시지다.

"짜장이랑 섞어 달라는 거였나 봐요. 

너무 짜증 내길래 두고 방안에 들어갔다 나오니까 혼자서 퍼서 먹고 있네요.

내가 그릇 잡아주려고 했더니 치우래요. 본인이 알아서 하겠데요. ㅋㅋㅋㅋㅋ"


'에고, 리아야, 빨리 말을 해라, 말을! 애매하게 사람 잡지 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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