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식 요리사 되기1

'한식조리기능사' 시험을 준비하며.

by 김해경

중국의 한 아버지가 아들을 불러 이렇게 물었다.

"아들아, 너의 아내들 중 누가 가장 마음에 드니?"

아들은 잠시 생각하더니 다음과 같이 대답했다고 한다.

"음식을 맛있게 만드는 아내요"


며칠 전 둘째 아이가 전화통화를 하면서 이렇게 말한다.

"엄마, 음식 잘 만드는 것이 일상생활에서 가장 중요한 것 같아. 안 먹고는 안 되니까."


의사 한분이 이렇게 강연하는 것을 들은 적이 있다.

"많이 웃으세요. 걸으세요. 그리고 잘 드세요. 그러면 질병 없이 건강하게 사실수 있습니다."


먹는 것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그 가정에 내려오는 가족병력이라는 것도 결국은 어릴 적 그 사람이 어떤 음식을 먹고 자랐느냐에 좌우된다고 한다. 즉 엄마가 해준 음식은 대물림이 되게 되고, 이러한 음식으로 인해 유사한 질병이 그 가정에 계속 내려오게 된다는 것이다. 음식이 약이 될 수도, 독이 될 수도 있다는 말이다.


타고난 손맛을 가지고 태어난 사람은 복 있는 사람이다. 그 한 사람으로 인해 그 주위의 사람들은 음식으로 인한 행복감을 누릴 수 있기 때문이다. 타고난 복이 있는 사람이 아닌 나는 오히려 주위 사람들을 힘들게 하는 부류에 속했다고 할 수 있다. '이 음식 맛이 왜 이래?'의 질타의 눈길을 오히려 가족들로부터 받았기 때문이다.


어떤 사람은 연애할 때 맛있는 음식점에 가서 맛있는 음식을 많이 사 먹는다고 한다. 적어도 맛있는 음식이 어떤 것이라는 공통된 기준을 두 사람이 함께 가질 수 있기 때문이다. 내 남편과 나는 사귈 당시에 만날 때마다 김밥, 가락국수만 먹다 보니 맛있는 음식이 어떤 것인지에 대한 공통된 개념조차 없었다. 결혼하고 나서는 직장생활로 인한 시간 부족으로, 날마다 시장을 반찬으로 허겁 지겁 먹고살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요즈음 같이 방송이나 유튜브의 음식 프로그램이 많이 있던 시대도 아니어서, 그냥 엄마가 해주던 음식을 기억을 더듬어서 대강 흉내 내는 정도였다.


세월이 약인지라 시간이 흐르다 보니, 누적된 경험으로 인해 이제 내가 만든 음식들도 나쁘지 않은, 괜찮다는 평가를 남편으로부터 받고 있다.


그런데 요즈음 나는 한식 요리학원을 다닌다. 내 고정관념 속에서의 요리학원을 다닌다는 사람들은 신부수업을 하든지, 아님 삶의 여유가 있는 사람들이었다. 아이들도 다 떠나고 남편과 나, 단 두 사람이 살면서 갑자기 요리학원이라니 무슨 생뚱맞은 생각이냐고 할지 몰라도, 나는 남은 인생 동안이라도 좀 더 품위 있게, 건강하고 맛있는 먹거리를 먹으면서 살고 싶다는 생각을 하고 있다. 또 다른 이유로는 우연히 나이 드신 분들이 나오는 프로그램을 보다가 한 분이 이렇게 탄식하는 소리를 들은 기억 때문이다.


"진작 손자, 손녀들에게 올 때마다 용돈을 좀 주었어야 했는데, 그러지 못한 것이 지금에야 후회가 됩니다. 이 아이들이 저를 보러 올 생각을 하지 않아요. 와 봐야 전혀 본인들에게 도움이 되지 않으니까요. 그저 명절에 마지못해 얼굴을 빼꼼 내밉니다. 할머니, 할아버지에게 와서 용돈 받아가는 재미라도 있다면 아이들이 그렇지 않을 것인데~ 참 인생 헛살지 않았나 하는 생각도 듭니다."


나도 손자, 손녀들에게 줄 충분한 돈을 가지고 있지 않다. 그러나 그들이 올 때마다 맛있는 음식을 해 준다면 그들의 기억 속에 할머니, 할아버지에게로 오는 것은 즐거운 일, 오고 싶은 일로 저장되지 않을까?


'한식조리기능사반'이 내가 등록한 강좌명이다. 기능사란 명칭 하에 1차가 필기시험, 2차가 실기시험으로 모두를 통과해야만 자격증을 획득할 수 있다. 일종의 국가시험이어서인지 1,2차 모두가 만만치 않는 과정이다. 필기시험을 앞두고 정말 오래간만에 열심히 공부했다. 20명이 한 반으로 함께 실습을 하고 있는데, 나만 떨어진다면 여간 창피한 일이 아닐 것 같아서였다. 필기시험 원서접수를 하는 날, 공부한 것이 아까워서 양식조리기능사 시험까지 등록해 하루에 두 종류의 시험을 연이어 쳤다. 컴퓨터로 치는 시험이어서 답안 제출과 동시에 합격, 불합격이 뜬다. 오래간만에 엄청 긴장하고, 오래간만에 두 시험 다 합격하여서 큰 기쁨을 만끽했다. 너무 과하게 공부한 탓에 합격점수인 60점을 훌쩍 넘는 점수를 받았다.


실습 시간, 50분~60분 안에 두 종류의 음식을 제출해야 한다. 그런데 그냥 집에서 대충 만드는 음식이 아니라 가로 몇 cm, 세로 몇 cm라고 음식재료의 규격이 맞아야 한다. 심지어 요리 선생님도 일일이 자를 가지고 썰고 자른 재료의 길이를 재어 보이시면서 이 크기, 이 길이를 강조하셨다. 그 순간 거의 모든 실습생들의 얼굴이 화석같이 굳어졌다. 정해진 시간 내에 제출하는 것도 어려운데, 음식의 모든 재료가 규격에 맞아야만 실기시험을 통과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냥 요리를 잘하는 것보다는 그래도 '자격증도 땄다'는 좀 더 있어 보이기 위한 나의 생각은 지나치게 위험한 발상이라는 후회가 실습 첫 시간에 흑암처럼 나의 마음을 뒤덮었다. "아~ 밑반찬 만들기 같은 그냥 그런 요리를 배울걸." 하는 생각이, 도마 위에 놓인 오징어 다리의 빨대들처럼 내 생각에 꽉 달라붙는 것을 떼어 놓을 수가 없었다.


새로운 요리에 대해 배울 때마다 '내가 과연 저 요리를 해낼 수 있을까?' 하는 마음이 들다가도, 어쨌든 비슷하게라도 제출하는 나 자신이 점점 대견해지기도 한다. Misson Impossible을 Misson Possible로 바꾸어 나가는 요즈음의 매일이 나에게는 큰 변화의 시간이기도 하다. 실기시험이라는 큰 산을 어떻게 넘을 수 있을는지, 나는 요즘 큰 도전에 직면해 있다. 한식 요리도 어려운데, 요리 선생님의 말씀에 의하면 훨씬 더 어렵다는 양식요리까지 나는 앞으로 태산을 두 개 넘어야만 한다.


" 태산이 높다 하되 하늘 아래 뫼이로다.

오르고 또 오르면 못 오를 리 없건마는

사람이 제 아니 오르고 뫼만 높다 하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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