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사가 행복해지는 법

by 김해경

"ㄱ ㅅ ㄱ ㅎ ㅂ ㅎ ㅇ ㅎ ㅅ ㅇ ㅎ ㅂ ㅎ ㄷ "

신학기를 준비하는 교사 연수에 단골로 등장하는 말이다. 이 초성들이 무엇을 말하는 것일까?

정답은 "교사가 행복해야 학생이 행복하다"이다. 이 구호는 웬만한 신참교사까지 다 아는 문구이다. 그런데 문제는 '어떻게 하면 교사가 행복할 수 있을까?' 하는 것이다.


며칠 전 교감선생님이 나를 불러서 물어볼 말이 있다고 하신다.

"수업시간에 남학생들과 싸운 적이 있나요? 계속 싸운다고 합니다."

"네? "

"온라인 수업시간에 선생님이 다른 수업에 잘못 들어가셨다가 나중에 들어오셨으면서 화를 내셨다고 합니다. 그런 적이 있으신가요?"

"네?"

정말 무슨 이런 소리가 다 있나 싶어 어안이 벙벙했다.

"그런 적이 있으신가요?"

정말 신문하는 분위기이다. 나는 머릿속으로는 열심히 내 수업을 되짚어 보면서 '도대체 이런 말들이 어디에서, 누구에게서 나온 것일까? 나의 수업 중에서 이런 말들이 나올 수업이 있었던가를 생각해 내려고 노력한다.

"아뇨. 그런 적이 없습니다."

"한 번도 없으신가요?"

"네. 지금 생각으로는 그런 적이 한 번도 없습니다. 단지 한 학생이 과제를 제출했는데 온라인 상으로는 결과가 늦게 올라와서 '너 왜 과제를 하지 않았니?'라고 물은 적이 있습니다. 그런데 나중에 다시 확인해 보니 했더라고요. 그 날 학생의 엄마가 담임선생님에게 과제를 제출했는데 왜 내지 않았다고 했느냐고 항의성 전화를 했다는 말은 들은 적이 있습니다."

나는 나의 머릿속 생각 끝에 걸려든 나의 죄를 고백한다.

"그래요?"

마치 죄인을 취급하듯 묻는 교감선생님의 태도가 더 속상해, 울컥하면서 속에서 설움이 올라온다.

"아니 도대체 어떻게 이런 말이~"

내가 흥분하여 교감선생님에게 말하려고 하니

"선생님은 감정적으로 격해지는 게 있어요. 그리고 그 말투가 강하고 세서 상대방이 그렇게 느낄 수도 있을 겁니다. 앞으로 수업에서 부드러운 말투를 사용하시고 ~"

이런 상황에서도 감정적이 되지 않을 만큼 훈련되지 못한 나 자신의 초라한 모습을 직면하게 되는 순간이다. 그리고 30년 이상 서울, 경기권에 살아오면서도 아직도 사투리를 벗어나지 못하는 이 끈질긴 습관이, 그리고 말투까지도 바꾸어야 한다는 절실함을 느끼지 못한 나의 우둔함이 커다란 쇠망치가 되어 나의 심장을 산산조각내고 있다. 그 뒤의 교감선생님의 말들은 나의 격한 감정의 강물 속에 종이배가 되어 떠내려가고, 나는 아직도 감정의 격랑 속에 사로잡힌 채 대화는 끝이 났다.


몇몇 선생님들과 같이 먹는 점심밥이 모래알과 같다. 나는 '도대체 어떻게 이런 말을, 누가 했을까?'에 맞추어져 생각의 소용돌이 속에서 휘청거리고 있었다.


작년은 유난히도 힘든 한 해였다. 온라인 수업과 오프라인 수업을 병행하면서 1학기에는 1학년부터 3학년까지, 세 개 학년의 말하기 수업(speaking)을 맡게 되었다.(원어민과의 코티칭 수업이었음) 계속 학습자료를 만들어야 했으며, 전교생의 말하기 수행평가를 하고 전교생, 즉 600여 명의 평가서를 작성했다. 2학기에는 1학년 동아리 1개 반과 1학년 예술 체육 1개 반, 3학년 말하기 수업(이 수업만 원어민과의 코티칭 수업임)과 3학년의 진로 영어를 맡았다. 1학년 동아리, 예술 체육은 외부강사 선생님과 코티칭 하는 수업인데, 코로나 때문에 대면 수업이 잘 이루어지지 않아서, 결국 강사님이 만든 동영상을 보여주며 내가 설명하는 수업이 되었다.


여러 가지 수업을 맡다 보니 도대체 어떤 수업에서 저런 말들이 나온 것인지 알 수가 없다. 그런데 나는 솔직히 내 수업에 대한 자부심이 있다. 내가 사용하는 교과서의 연구위원으로 활동하면서 내가 만든 수업자료가 이 교과서의 홈페이지에 당당히 올라가 있고, 이 교과서를 사용하는 전국의 선생님들은 이 자료를 활용할 수가 있다. 연구위원으로 3년간 활동하면서, 1,2, 3학년 모든 학년의 수업자료를 몇몇 다른 학교의 선생님들과 함께 제작했고, 덧붙여 평가문항은 단독으로 만들었다. 또한 교육 심포지엄에서 나의 수업사례를 발표한 적도 있다. 자랑이 아니라 지금 나는 피고인의 심정으로 나를 대변하는 것이다.


내가 있는 곳은 고등학교 비평준화 지역이다. 아이들은 고등학교 합격이 결정되는 12월 중순 이후부터는 느슨해지기가 싶다. 그래서 12월, 그다음 해 1월의 중3 수업은 진행하기가 쉽지 않다. 이 시기의 대면 수업은 1, 2학년에게 다 양보되고, 3학년은 오롯이 온라인 수업으로 채워진다. 아이들은 단지 고등학교가 결정된 것뿐인데, 마치 인생이 다 된 것처럼 '선생님, 공부 그만해요'를 외친다. 그런데 고등학교 간 아이들이 간혹 찾아와서 하는 말은 '고등학교 영어가 장난이 아니에요'이다. 이를 잘 알고 있는 나는 아이들을 그냥 내버려 둘 수가 없다. 마지막 날 수업까지도 나는 최선을 다 했다. 그런데 무슨 이런 소리가.


학부모 운영위원회의 회의가 있고 난 뒤 이 말이 나왔다. 우리 학교에는 3명의 운영위원 학부모님이 계신다. 나는 그분들의 헌신이 학교발전에 큰 도움이 된다고 생각한다. 올바른 교육은 학교, 지역사회, 학부모, 이 세공동체가 하나의 목표를 향하여 함께 나아갈 때, 그 효과는 작은, 터지기 쉬운 풍선이 아니라 거대한 열기구가 되어 꿈을 향해 순적히 날아갈 수 있기 때문이다.


며칠을 곱씹어 생각한 끝에 찾아낸 나의 실마리는 이러하다. 작년 2학기, 진로시간에 진로 영어라는 명목으로 진로에 관련한 영어수업을 하게 되었다. 아이들은 정규 영어수업 외에 또 한 시간의 영어수업을 듣는다는 것이 쉽지가 않는 것 같았다. 그래서 공부하기 싫을 때마다 남학생들은 나에게 태클을 걸었다.

"선생님, 진로시간에 왜 영어를 해요?"

"나도 모른다. 교장선생님에게 물어봐라."

솔직히 나도 심적으로 진로 영어에 크게 동의하지 못해서인지, 아이들의 목구멍으로 술술 넘어가는 대답을 하지 않았다. 온라인으로 이를 듣는 학부모님은 아이들과 내가 싸우는 것으로 들렸고, 특히 '교장선생님에게 반항하는 것 같이 보이는 교사를 교장선생님에게 말해주고 싶었던 것이 아닐까' 하는 추측을 하게 된다. 그리고 딱 한번 수업이 헷갈려서 다른 수업을 열었다가 금방 다시 정상적인 수업을 개설한 적이 있는데, 절대 화낸 적이 없다. 오히려 나의 실수를 미안하다고 학생들에게 사과했는데, 매번 수업을 잘 못 여는 무능한 교사로 오도하니 기가 찰 노릇이다.


수업 시작종이 울렸는데도 복도에 서 있는 학생에게 "빨리 들어오지 않고 뭐하니?"라면서 등을 살짝 밀었을 뿐인데, 그 학부모가 국가인권위원회에 교사 폭력으로 진정서를 넣었다. 학교가 시끄러웠고 관리자도, 그 선생님도, 그 학급의 학생들도 몇 달간 힘들었다. 결국 교사 무혐의로 결과가 나왔지만, 곤욕을 겪은 그 선생님은 다른 학교로 가셨다. 한 선생님은 말 안 듣는 학생에게 애교스러운 욕을 딱 한 마디 했는데, 학부모가 교육청에 진정서를 넣어서, 결국 그 선생님은 교사를 그만두셨다.


" 어떤 아이 엄마들은 너무 까탈스러워요. 그래서 그 아이에 대해서는 교육을 거의 포기하다시피 합니다. 그냥 별 탈 없이 잘 데리고 있다가 집에 보냅니다."

내가 아는 어린이집 선생님의 말이다.

그 말을 들었을 때 나는 속으로 이렇게 생각했다.

'아니 그래도 교육을 포기하다니. 세 살 버릇이 여든까지 간다는데, 이때 아이를 바로 잡아주지 않다니. 그래서 요즘 중학교에도 이상한 아이들이 많이 들어오는구나. 그런 아이는 초등학교에서도 그냥 패스된 것이 분명해.'


같이 점심을 먹던 선생님이 다른 학교에서 있었던 일을 말씀하신다. 한 선생님이 학원에서 근무하시다가 학교로 오셨는데, 일 년을 근무한 뒤 다시 학원으로 가시면서 하시는 말이

"학부모들의 비위를 맞출 수가 없어요. 학원에서는 학부모들이 체벌 가능하다는 서약서까지 쓰면서 학원을 보내려고 하는데, 학교에서는 말 한마디 하는 것도 너무 조심스러워요."


나는 이 글을 쓰면서, 이제 억울한 심정은 사그라지고, '나도 혹 단편적인 사실로 한 사람을 매도한 일은 없지 않았나'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우리 인간은 다 부족한데도 자신의 생각이 다 옳은 것처럼 어떤 사건이나 사람을 판단하고 정죄하는 오만함을 가지고 있다. 그래서 세상에는 날마다 억울한 일들로, 공의롭지 못한 일들로 고통받는 사람들이 끊이지 않는다.


물론 나는 생각한다. 학생들의 인권은 존중되어야 한다. 동시에 교사들의 인권도 존중되어야만 한다. 그리고 감사하게도 통제 불가능한 학부모님들보다 선량하신 학부모님들이 더 많은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교사가 행복해지기 위해서는 '관리자들은 동료 교사의 입장에서 교사들을 믿어주고 지지해 준다면 교사는 어떤 어려움도 이겨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살아가면서 밖으로부터의 오해는 없을 수가 없다. 그러나 가까운 사람으로부터의 불신임은 흔들리고 있는 마음나무를 오히려 뿌리째 뽑아내는 것과 같은 위력을 나타낸다.


학생과 학부모로부터 이런저런 오해를 받을 때에, 즉 학생들은 미숙하기 때문에 잘 못 판단할 수 있고, 또한 학부모님들은 단편적인 면만을 보고 판단할 수도 있다. 그러나 관리자는 함께 생활하는 학교 가족으로서, 애매한 곤경에 빠진 교사들을 좀 보듬어주고 위로해준다면, 교사들의 마음의 생채기들은 좀 더 빨리 치유될 수 있지 않을까?


그래서 관리자, 리더라는 위치가 쉽지가 않다.

"Ability will enable a man to get to the top, but it takes character to keep him there."

(능력은 사람이 정상에 오를 수 있게 해 줄 것이지만, 그를 그곳에 머무르게 하는 데는 인격이 필요합니다.)


우연의 일치인지, 교감선생님으로부터 그런 말을 들은 날이 나의 생일날이었다. 나는 생각지도 않은 뜻밖의 생일선물을 받은 것이다. 그날 저녁, 남편과의 저녁식사 약속은 취소되었고, 나는 이 선물을 받아들이느라 며칠간을 끙끙 앓아야 했다. 이제 나는 평온하다. 내가 가장 귀히 여기는 나의 마음의 자세, 이러한 일들 때문에 놓칠뻔한 나의 다짐, 즉 다른 사람을 사랑하고 그의 약점까지도 긍휼히 여기자는 나의 마음의 다짐을 다시 한번 다잡는 시간을 가졌다. 심적으로 좀 더 강해지고, 좀 더 넓어진 나, 이것이 하나님이 나에게 주신 생일선물이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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