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떻게 살 것인가? 7(돈에 대해)

(패드릭 몰리 저) 돈에 대하여

by 김해경

성경에 기도에 관한 구절은 500여 개이나, 돈과 소유를 다루는 법에 관한 성경 구절은 2,350개 이상이라고 한다.


그런데 돈의 문제는 예수님께서 하신 다음과 같은 말씀으로 잘 요약된다.

"한 사람이 두 주인을 섬기지 못할 것이나, 혹 이를 미워하고 저를 사랑하거나, 혹 이를 중히 여기고 저를 경히 여김이라. 너희가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기지 못하느니라(마 6:24)"


'섬기다'라는 단어는 문자적으로든 비유적으로든, 자발적으로든 비자발적으로든, 누군가의 종이 되는 것을 의미한다. "너희가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기지 못한다"는 말은 우선순위를 정하거나 선택의 문제가 아니라, 그리스도인은 오직 한 주인만을 섬겨야 된다는 절대명령의 말씀이다. 즉 우리는 하나님의 종이거나 아니면 돈의 종이거나, 둘 중에 하나가 될 뿐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사람들은 하나님을 잘 섬기면서도, 여전히 부를 얻기 위한 나의 계획을 잘 추구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이 문제에 대해 솔로몬은 이렇게 말한다.

"은을 사랑하는 자는 은으로 만족하지 못하고, 풍요를 사랑하는 자는 소득으로 만족하지 아니하나니, 이것도 헛되도다(전 5:10)"

즉 돈에는 중독성이 있어, 강한 마력을 지닌 술이나 마약만큼이나, 우리를 쉽고 완벽하게 중독에 빠뜨리는, 일종의 아편과 같기 때문이다. 우리를 나쁘게 변화시키는 돈의 위력은, 우리를 선하게 변화시키는 예수 그리스도의 능력과 흡사하다. 돈은 우리의 삶을 그리스도께서 하시듯 좋고 영원한 방식이 아니라, 불길이 나방을 유혹해 자기 가까이 끌어들여 결국 태워 없애는 방식으로 우리를 지배한다. 돈은 사람들을 노예로 만든다. 돈은 우리가 죽을 때까지 우리를 부려먹는다. 돈은 우리의 영혼을 지옥불에 던져 넣은 후, 좀 더 큰 규모로 멋진 삶을 즐기고자 하는 야심에 찬 또 다른 사람을 찾아 나선다.


예수님이 돈에 대해 많은 말씀을 하신 것은 그것이 사람들에게 가장 교활하고 매력적이며 설득력 있는 유혹거리가 되었기 때문이다. 돈은 육체적 쾌락을 위한 단순한 유혹거리가 아니라, 무감각하고 무정한 주인에게 정복당하도록 만드는 잔인한 유혹거리이다. 돈은 우리에게 죄로부터의 구원, 참된 평화, 삶의 의미와 목적에 대한 영혼의 깊은 굶주림을, 만족시켜 주지를 못한다.


그래서 어떤 사람의 진짜 인격을 알아보기 위해서는 그 사람이 그의 시간과 돈을 어떻게 사용하고 있는지 알아보는 것이 가장 결정적 단서라는 말이 있다. 돈은 권총이나 모르핀이 그러하듯 도덕적으로는 중립적이다. 경찰관에 들린 권총은 정의의 도구이지만, 범죄자의 손에 들린 권총은 악의 도구가 된다. 마찬가지로 군인의 상처에 처방된 모르핀은 생명을 구하지만, 마약 중독자의 팔뚝에 들어간 모르핀은 생명에 치명적 악을 끼치게 된다. 그러므로 사람이 돈에 지배당하는 것이니라, 사람이 돈을 지배하여 잘 사용할 수만 있다면, 돈은 유용한 도구가 될 수 있다.


사람은 노동을 하거나, 돈을 빌려주고 대가를 받거나, 다른 이를 고용해서 그들의 노동을 통해 이익을 얻거나 아니면 돈을 벌기 위해 계산된 모험을 하는 방법으로 돈을 번다. 그런데 돈을 버는 번영에 대한 신학적 견해에는 세 가지가 있다.

1) 가난의 신학

돈에 대한 집착으로 해석되는 세속성을 혐오한다. 소유는 저주라고 믿으며 모든 형태의 물질주의를 거부한다.(무소유) 그들은 가난한 이를 돕는 것에 강력한 편향을 보이지만, 가진 것이 거의 없어서 실제로는 돕지 못한다.

2) 번영신학

우리가 부를 누리지 못하는 것은 구하지 않기 때문이라고 믿는다. 또한 물질적 축복을 누리지 못하는 자는 믿음이 부족해서라고 설명하며, 이들은 바치면 얻을 수 있다고 가르친다. 그래서 하나님이 당신을 축복하셔야 할 의무를 갖게 되는 구속력을 지닌 거래를 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3) 청지기 신학

하나님이 모든 것을 소유하고 계시고 통제하신다고 믿는다. 사람에게 소유는 영광일 뿐 권리가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의 관심사는 부를 거부하거나 축척하는 것이 아니라, 시편 112편의 사람처럼 "그가 재물을 흩어 빈궁한 자들에게 주었으니 그의 의가 영구히 있고 그의 뿔이 영광 중에 들리리로다(시편 112:9)"처럼 현명해져서 하나님의 뜻에 따라, 다른 사람을 잘 돕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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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가지 견해 비교를 통해, 그리스도인이 가져야 할 가장 좋은 생각은 청지기 신학이다. 청지기 신학은 하나님의 축복에 대한 아름다운 약속과 가난한 자를 돌보라는 권면을 함께 포함하고 있다. 가난의 신학은 희생적인 일의 역할을 과장하는 반면, 번영신학은 경제적 보상을 지나치게 강조한다. 청지기는 하나님의 부요하심을 즐기면서도, 늘 다른 이들을 사랑으로 돌보면서 균형 잡힌 삶을 이어나간다. 당신이 신실한 청지기가 될 때 하나님은 당신을 풍성한 삶으로 이끌어주실 것이다. 그러면 손바닥을 활짝 펴서 그것을 잘 관리할 책임이 우리에게 있는 것이다. 하나님이 맡기신 것을 하나님의 나라를 세우는데 도움이 되도록 사용하면 된다.


"너희를 위하여 보물을 땅에 쌓아두지 말라. 거기는 좀과 동록이 해하며 도둑이 구멍을 뚫고 도둑질하느니라. 오직 너희를 위하여 보물을 하늘에 쌓아두라. 거기는 좀이나 동록이 해하지 못하며 도둑이 구멍을 뚫지도 못하고 도둑질도 못하느니라. 네 보물이 있는 그곳에는 네 마음도 있느니라(마태 6:19~21)"


십일조는 가장 기본적인 헌금이다. 십일조에 대해서는 예수님도 분명하게 긍정하셨다.

"화 있을진저, 외식하는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이여. 너희가 박하와 회향과 근채의 십일조는 드리되, 율법의 더 중한 바 정의와 긍휼과 믿음은 버렸도다. 그러나 이것도 행하고 저것도 버리지 말아야 할지니라(마 23:23)"


만약 우리가 10%를 초과하는 헌금을 즐겁게 하지 못하는 경우라면 하지 마라. 그러나 그렇게 할 수만 있다면, 그것은 우리에게 복이 될 것이다. 규칙적으로 헌금하라. 또한 없어져도 괜찮을 만한 것 이상으로 헌금하는 것이야말로 가장 헌신적인 형태의 헌금이다. 하나님은 우리의 즐겨 바치는 헌금에 복을 내리실 것이다. 비록 그 복이 물질적인 것이기보다는 영적인 것이라 할지라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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