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떻게 살 것인가? 8(두려움에 대해)

(패드릭 몰리 저) 두려움에 대하여

by 김해경

"우리가 유일하게 두려워해야 할 것은 두려움 그 자체이다--프랭클린 델러노 루스벨트"


루스벨트 대통령은 귀족 가문 출신이다. 부유하고 영향력 있었던 그의 부모는 그에게 특권 계급의 사람들이 그런 행운을 누리지 못하는 이들을 도와야 할 보다 큰 책임을 지니고 있다고 가르쳤다. 하바드 대학 시절에 루스벨트는 수줍음 많은 10대였음에도 불구하고, 스포츠 활동과 학교 신문에 관여하면서, 대학 생활을 알차게 보냈다. 루스벨트가 주 상원의원과 해군 부사령관을 역임하면서, 한창 탁월한 공인으로 인정받고 있을 즈음에, 그에게 비극이 닥쳐왔다. 그는 아주 심한 소아마비에 걸렸다. 그 이후로 이어진 어두운 날들은 그를 뒤틀린 몸의 고통 속에 가뒀다. 그러나 결단력이 있었던 루스벨트는, 당시에 많은 이들이 이제 그의 경력이 끝났다고 여겼음에도, 놀라운 용기를 발휘해 다시 손을 사용하게 되었고, 이어서 목발을 짚고 걷는 법을 배웠다. 그의 삶은 이미 황폐해져 있었고, 상황이 그러했는 만큼 그가 나머지 삶을 자기 연민에 빠져 뒹군다고 한들 그 누구도 비난할 수 없었다. 그러나 그는 자신의 장애와 더불어 싸웠고, 두려움을 이겨냈다. 불과 8년 후에 그는 뉴욕의 주지사가 되었다. 소아마비에 걸려 몸이 마비된 후 11년째 되던 해에, 수없이 많은 날 동안 극심한 고통을 견디고, 정계에서 은퇴하라는 요구를 견디어 낸 끝에, 두려움의 사람이자 용기의 사람인 루스벨트는 제32대 미국 대통령직에 올라 취임선서를 하게 되었다. 당시 미국은 대공황의 늪에 빠져 있었고, 네 가정 중 한 가정이 실직 상태였으며, 모두 극심한 두려움에 사로잡혀 있었다. 루스벨트는 그런 상황에서, 취임식을 하면서 한 취임사 중 하나가 바로 이 말이다.

"우리가 유일하게 두려워해야 할 것은 두려움 그 자체이다."


오늘날 우리 중 많은 이들이 사적인 대공황을 겪고 있을 수 있다. 지금 상황이 사는 것보다 죽는 게 나아 보이는 상황에 부닥쳤을 수도 있을 것이다. 모든 것이 사라지고,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야 한다는 생각에 당신의 손이 떨리고 있을 수도 있다. 오늘 바로 문 앞에 닥친 문제로, 대부분의 사람들이 소진되고 있을 수 있다.


모든 이가 두려움이라는 감정과 싸운다. 거절에 대한 두려움, 실패에 대한 두려움, 갑작스러운 재앙에 대한 두려움, 사람들에 대한 두려움, 잘못되어 가고 있는 자녀에 대한 두려움, 실직에 대한 두려움, 건강에 대한 두려움 등 대부분의 두려움은 사람을 불구로 만든다. 두려움 자체는 만약 그것이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을 믿지 못하게 만들지만 않는다면, 악한 것이 아니다. 그러나 그것이 악한 것이 될 수 있다.


두려움은 우리가 거의 이해하지 못하는 과정을 통해 우리에게 영향을 준다. 그래서 도대체 두려움이란 것이 무엇이며, 어떻게 그것과 싸울 것인지에 대해 살펴보기를 원한다.


1) 두려움이란?

두려움과 용기는 정반대의 개념이다. 두려움은 우리를 마비시켜 역경을 그것 자체보다 더 심각하게 바라보도록 만드는 동요된 마음의 상태이고, 용기는 사람들로 하여금 확신과 결단력을 지니고 역경이나 재앙에 맞서게 해주는 마음의 상태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성경에는 반복적으로 우리에게 '두려워하지 말라'라고 말씀하고 계신다.

"두려워하지 말라!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것은 두려워하는 마음이 아니요, 오직 능력과 사랑과 절제하는 마음이니(딤후 1:7)"

성경의 모든 곳에서 '두려워하지 말라'는 격려를 받고 있는데, 어째서 우리는 온갖 종류의 두려움과 계속해서 씨름하고 있는 것인가에 대해 생각해 보기를 원한다.


'두려워하는 것'은 하나님을 온전하게 신뢰하지 않는 것이다. 그분은 우리에게 '두려워하지 말라'라고 가르치시면서, 만약 우리가 우리의 염려를 그분께 맡기면, 자신이 우리를 돌보아주시겠다고 약속하셨다.

"너희 염려를 다 주께 맡기라. 이는 그가 돌보심이라(벧전 5:7)"


2) 그런데 왜 우리는 하나님을 신뢰하지 않을까?

(1) 일생동안 속아왔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선의의 거짓말은 죄가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입으로 짓는 죄 중 으뜸인 것이 선의의 거짓말, 아첨하는 말이다. 사람들의 말의 60%는 거짓말이며, 10분에 한 번씩은 거짓말을 한다는 통계조사가 있다. (Discovery Channel, "How often does the average person tell a lie?" 디스커버리 채널의 '일반적인 사람이 얼마나 자주 거짓말을 하는가'의 조사. 2014년 2월 24일) 상황을 모면하기 위해서, 좋은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서, 혹은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 모든 사람은 선의의 거짓말을 한다. 우리는 일생동안 우리가 아는 모든 사람에게 속아왔다. 그러므로 성경의 '두려워하지 말라' 그리고 '하나님을 신뢰하라'는 말씀에도 '사실일까'하는 마음을 가진다. 왜냐하면 일생을 속아왔기 때문이다.


(2) 공짜점심은 없다

성경은 우리가 하나님을 신뢰하면, 그분이 우리의 모든 필요를 채우시고, 우리의 모든 길을 인도해 주시리라고 약속한다. 이 메시지는 우리의 관심을 끌지만, 문자 그대로 받아들이기가 어렵다고 느낀다. 그것은 마치 공짜점심을 주겠다는 말처럼 들리는데, 우리 모두는 세상에 공짜 점심 같은 것은 없다는 것을 아주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성경에는 공짜점심이 있다. 예수님은, 인간 자신이 지은 죄 때문에 당연히 인간이 지옥가야 만 하는데, 공짜 점심으로 오셔서, 우리가 죄를 회개하고 그분을 받아들이면, 우리를 모든 불의에서 깨끗하게 하시며, 영원한 생명을 주시겠다고 약속하신 것이다. 이 공짜 점심을 위해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예수님을 인정하고, 믿고, 받아들이는 것뿐이다!


현실세계에서의 우리의 의심의 마음은, 우리가 하나님을 온전하게 신뢰하지 못하게 만든다. 그리고 그것이 두려움으로 하여금 우리의 마음의 복도를 어슬렁거리게 만드는 것이다.


(3) 우리는 정말로 죄를 지었다.

우리는 그 사실을 알고 있다.

"만일 우리가 범죄 하지 아니하였다 하면 하나님을 거짓말하는 이로 만드는 것이니 (요한일서 1:10)"

우리는 정말로 하나님의 벌과 진노를 받아 마땅하다. 하나님은 그 죄에 대한 대가를 우리에게 주실 수 있는 분이시다. 우리가 하나님을 신뢰하기 어렵다고 여기는 것은, 우리는 실제로 죄를 지은 우리 자신이 잘 알고 있고, 하나님이 예수님을 통해 우리의 죄를 용서하시고 죄책감을 제거해 주실 만큼 은혜로우시다는 것을 알고 있지만, 죄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용서에 대한 말씀을 분명히 믿지 못하고 있다. 그러므로 죄에 대한 두려움은 하나님을 신뢰하지 못하게 하며, 두려움의 사이클이 우리를 덮치게 한다.


3) 두려움의 사이클을 극복하는 법

성경말씀을 통해 이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예수님이 제자들을 먼저 보내신 후에,

"밤 사경에 예수께서 바다 위로 걸어서 제자들에게 오시니 제자들이 그가 바다 위로 걸어오심을 보고 놀라 유령이라 하며 무서워하여 소리 지르거늘, 예수께서 즉시 이르시되 안심하라 나니 두려워하지 말라, 베드로가 대답하여 이르되 주여 만일 주님시거든 나를 명하사 물 위로 오라 하소서 하니, 오라 하시니 베드로가 배에서 내려 물 위로 걸어서 예수께로 가되, 바람을 보고 무서워 빠져 가는지라 소리 질러 이르되 주여 나를 구원하소서 하니, 예수께서 즉시 손을 내밀어 그를 붙잡으시며 이르시되 믿음이 작은 자여 왜 의심하였느냐 하시고, 배에 함께 오르매 바람이 그치는지라(마태 14:25~32)"

(1) 두려움의 사이클의 첫 단계는 현실이다. 베드로가 바람을 보듯이 우리는 현실에 부는 바람을 본다.

(2) 베드로가 바람을 보고 보인 반응이 두려움이듯이, 우리도 현실에 대한 우리의 반응은 두려움인 것이다.

(3) 베드로가 물속으로 빠져들기 시작하듯이, 우리의 결과는 문제라는 소용돌이와 함께 물속으로 빠지는 결과를 가져온다.

(4) 베드로가 예수님께 간구했듯이, 네 번째 단계는 우리의 힘의 원천인 예수님께로 돌아서는 것이다. 두려움과 문제라는 깊은 물속으로 빠져들기 시작할 때, 과연 우리는 우리의 원천인 예수님께 돌아설 준비가 되어 있는가?

(5) 마지막은 구원의 단계이다. 우리가 마주하고 있는 바람이 아무리 거셀지라도, 폭풍이 아무리 클지라도, 우리가 아무리 두려워할지라도, 우리가 아무리 깊은 물속으로 빠져들지라도, 우리가 예수님을 향해 돌아서면, 예수님은 우리를 구원해 주신다.


"안심하라. 나니, 두려워하지 마라!"라고 하시는 예수님 때문에, 우리는 두려움의 절벽에서 용기의 절벽으로 건너가게 된다. 구원을 간구하는 베드로에게 예수님은 "믿음이 작은 자여 왜 의심하였느냐"라고 말씀하신다.


4) 믿음이란?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이지 않는 것들의 증거다(히 11:1)"

믿음은 늘 미래를 지향한다. 우리는 믿음으로 용기 있게 나가야 한다. 불확실한 미래는 의심과 두려움을 낳지만, 믿음은 우리를 영원히 하나님과 연합시켜 준다.

"우리는 미래가 어떻게 될지 모른다. 하지만 누가 미래를 좌우할지는 안다.(오래된 속담)"

"믿음의 주요, 또 온전케 하시는 이인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보자(히 12:2)"

"믿음은 근육과 같다. 그것은 사용할수록 커진다(빌 브라이트)"


에수님께 대한, 그리고 그분이 주관하시는 확실한 미래에 대한 믿음이 우리를 두려움의 절벽에서 용기의 절벽으로 건너가게 한다.


우리는 사람들을 두려워한다. 사람들은 '우리가 받아야 할 필요가 없는 것을 받게 하거나, 마땅히 받을 만한 것을 빼앗아 갈 힘'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사람들을 두려워해야 하는 충분한 이유를 가지고 있다. 그들은 우리에게 부당한 일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동일한 이유에서 우리는 하나님을 두려워해야 한다. 하나님에 대한 두려움이란 하나님이 정말 어떤 분이신지에 대한 이해와 하나님이 아닌 모든 것에 대한 미움이 포함된다.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은 악을 미워하는 것이라(잠 8:13)" 말씀처럼 우리는 하나님의 선과 악을 구별할 수 있는 분별력을 가지고, 하나님을 두려워해야 한다. 하나님은 우리가 받을 만한 것을 우리에게 주실 힘을 갖고 계신다. 우리의 죄에 대해 징벌할 수 있으신 분이시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 징벌을 철회하시고, 대신 예수님을 보내어, 우리의 죄를 위해 대속적 죽음을 겪게 하셨다. 예수님 때문에 영생이라는 값진 선물을 값없이 받은 것이다. 삶과 죽음에 대한 힘을 갖고 계시고, 우리의 죄를 심판할 힘을 갖고 계시며, 영원한 집을 준비하시면서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그의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롬 8:28)"는 말씀을 우리에게 주신 하나님을 우리는 진정으로 두려워해야 한다. 또한 하나님은 "그러나 이 모든 일에 우리를 사랑하시는 이로 말미암아 우리가 넉넉히 이기느니라(롬 8:37)"라고 말씀하신다.


"사람을 두려워하면 올무에 걸리게 되거니와 여호와를 의지하는 자는 안전하리라(잠 29:25)"

"우리를 사람에 대한 두려움에서 구해낼 수 있는 것은 오직 하나님에 대한 두려움뿐이다.(존 위더스푼)"


사람들은 비록 우리가 받아야 할 이유가 없는 것을 우리에게 줄 수 있거나, 마땅히 받아야 할 것을 받지 못하게 할 수는 있으나, 그 어떤 영속적인 방법으로 우리를 해치지 못한다. 우리는 사람을 두려워하기보다는 하나님을 두려워해야 한다. 하나님은 우리가 받을 만한 것을 우리에게 주실 수 있는 분이시기 때문이다.


비록 상황은 변하지 않았다고 할지라도 우리의 태도는 바뀌어야 한다.

예수님도 십자가를 지시기 전에 "아버지여, 만일 아버지의 뜻이라면 이 잔을 내게서 옮기시옵소서. 그러나 내 원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원대로 되기를 원하나이다(눅22:42)"의 기도 후, 고뇌는 남아있지만 두려움은 없었다. 이 사실이 우리에게 희망의 빛을 보여준다.


1. 안개를 뚫고 믿음의 다리로 나아가라.

2. 용기의 절벽까지 기어올라라.

3. 우리의 상황과 태도를 하나님께, 그리고 그분의 뜻에 굴복시켜라.

4. 하나님이 행동하시기를 인내하며 기다리라.


우리는 우리의 감정을 두려움이 아니라, 상황에 대한 고뇌와 고민에만 국한시킬 수 있다. 두려움에 대한 모든 기회는, 하나님을 신뢰하고, 두려움의 절벽에서 믿음의 다리를 건너 용기의 절벽에 이를 기회이기도 하다. 우리는 '바람'을 볼 것이다. 우리는 두려워하고 물에 빠지기 시작할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우리가 하나님을 신뢰하고 그분을 향해 "주여, 나를 구원하소서!"라고 외칠 기회가 될 것이다. 우리는 주님의 구원을 볼 것이다. 비록 그 시간이 내 시간표와 맞지 않다고 할지라도!

"사랑하는 자들아, 주께는 하루가 천년 같고 천 년이 하루 같다는 이 사실을 잊지 말라(벧후 3:8)"


"내가 가는 길을 그가 아시나니, 그가 나를 단련하신 후에는 내가 정금같이 되어 나오리라(욥 23: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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