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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살 것인가? 17(자문 구하기에 대해)

(패트릭 몰리 저) 자문 구하기에 대하여

by 김해경

어떤 사람은 자신들의 삶 전체를 "스스로 보스가 된다"는 목적에 바쳐왔기 때문에, 누군가에게 자문을 구하려 하지 않는다. 어떤 이들은 선천적으로 확신에 차 있기 때문에, 다른 누군가가 자신의 삶에 개입하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 또 다른 사람은 자문에 관심이 있으나, 자문이 실제로 무엇인지, 그리고 그것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 분명하게 알지 못한다.


우리는 매일 도덕적으로, 영적으로, 관계적으로, 그리고 경제적으로 실패한다. 성공하기를 원치 않아서가 아니라, 우리에게는 맹점과 약점이 있기 때문이다. 우리 자신은 스스로 그 맹점과 약점들을 다룰 수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렇지 못하다. 우리는 가족, 사업, 직업, 저축을 잃는다. 그리고 그것은 하나님의 관계에 손상을 입힌다. 그럼에도 우리는 "어떻게? 어째서? 무엇을? 누가?"라고 묻지 않는다. 사실 그것들은 묻기가 매우 어려운 질문들이다.


어떤 이들은 심각한 실패를 경험한다. 그들은 격정의 순간에 갑자기 불꽃이 되어, 부서지고 타서 없어진다. 그러나 문제에 빠지는 보다 일반적인 방식은, 수많은 결정들, 즉 감지되지 않은 채 이루어지는 결정들로 인한 것, 때문이다. 그것은 바위 위에 떨어지는 물처럼 천천히 사람을 마모시킨다. 우리는 뻔뻔스럽거나 무분별하지 않으나, 교묘하게 오랜 시간에 걸쳐 꼼수를 부리고, 타협하며, 자기를 속이고, 잘못된 생각을 하는 거미줄에 걸린다. 그리고 그런 상태가 그 누구에 의해서도 도전을 받지 않은 채 지속된다.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에게 믿음 안에 굳게 서는 법과 넘어지지 않게 조심하는 법을 가르친다.

"단단한 음식은 장성한 자의 것이니, 그들은 지각을 사용함으로 연단을 받아, 선악을 분별하는 자들이니라" (히 5:14)

그러나 사람들은 넘어진다. 그 이유는 그들이 자신들의 행위나 믿음에 관해 누군가에게 답해야 할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늘 악이 숨어있는, 그리고 때로는 종종 성공하는 세상에서, 어떻게 우리가 삶에 질서를 세워, 가장 큰 성공의 가능성을 확보할 수 있을까? 그 질문에 대한 답은 자문이다.


자문의 목적 및 정의

자문의 목적은 우리의 삶의 방식이 매일 조금씩 더 그리스도를 닮아가고, 우리가 그분과의 친밀한 교제 속에서, 더 성숙한 삶을 사는 데에 있다. 우리의 추구, 헌신, 희생, 그리고 애정의 대상은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이시다. 예수님은 우리가 사랑을 바쳐야 할 마땅한 분이시다. 예수님과의 친밀한 교제가 없는 것은, 그 어떤 성공이라도 별 볼 일 없는 성취에 불과하다. 우리는 자문을 통해, 매일의 삶의 경험 속에서, 예수님의 권능과 임재의 온전함을 얻기를 갈망하고, 추구하며, 그것을 얻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우리를 향한 예수님의 은총을 보다 신중하게 우리의 것으로 만들기 위해, 누군가에게, 우리가 주 예수께 보다 순종하고 헌신할 수 있도록, 도와달라고 요청하는 것이 자문의 목적이다.


자문이란 우리의 삶의 모든 중요한 분야와 관련해, 자격 있는 사람에게 정기적으로 보고하는 것이다.

1) 보고하다

우리가 개인적인 삶의 중요한 분야에 대해 정기적으로 보고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양 떼처럼 방황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누군가에게 우리의 삶을 살펴보게 하는 것은, 독립적인 사람이 되고자 하는 우리의 갈망에 부합하지는 않는다. 우리는 그리스도인처럼 살기를 바라면서도, 종종 나와 예수님 사이에 거리를 두기를 바란다. 그러나 성경의 길은 성도들 사이의 자문을 강조한다.

"형제들아 사람이 만일 무슨 범죄 한 일이 드러나거든, 신령한 너희는 온유한 심령으로 그러한 자를 바로잡고, 너 자신을 살펴보아, 너도 시험을 받을까 두려워하라. 너희가 짐을 서로 지라. 그리하여 그리스도의 법을 성취하라. " (갈 6:1~2)

"아무 일에든지 다툼이나 허영으로 하지 말고, 오직 겸손한 마음으로 각각 자기보다 남을 낫게 여기고, 각각 자기 일을 돌볼뿐더러, 또한 각각 다른 사람들의 일을 돌보아, 나의 기쁨을 충만하게 하라" (빌 2:3~4)

"새 계명을 너희에게 주노니, 서로 사랑하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요 13:34)

"두 사람이 한 사람보다 나음은, 그들이 수고함으로 좋은 상을 얻을 것임이라. 혹시 그들이 넘어지면, 하나가 그 동무를 붙들어 일으키려니와, 홀로 있어 넘어지고, 붙들어 일으킬 자가 없는 자에게는 화가 있으리라" (전 4:9~10)

"친구의 아픈 책망은 충직으로 말미암는 것이나, 원수의 잦은 입맞춤은 거짓에서 난 것이니라" (잠 27:6)

"철이 철을 날카롭게 하는 것 같이, 사람이 그의 친구의 얼굴을 빛나게 하느니라." (잠 27:17)


우리는 어떤 보고를 해야 하는가?

자문관계에서 제공하는 보고는, 일차적으로 우리가 세운 목표와 우리가 그것을 따라 살아가야 하는 기준에 관한 것이다. 우리는 우리의 삶을 향한 하나님의 목적과, 하나님이 우리를 위해 갖고 계신 우선순위를 돕는 목표들을 정해야 한다. 우리에게는 이런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지금 어떻게 일하고 있는지에 관해 보고할 수 있는 누군가가 필요하다.


성경은 모든 그리스도인에게 해당하는 성품과 행위를 위한 일반적인 지침들을 상세하게 설명해 주고 있다. 우리에게는 살아가는 동안, 그런 기준들을 따라 살도록 도전하고 격려해 줄 사람들이 필요하다. 대략적으로 우리가 누군가에게 보고해야 할 것들로 목적, 목표, 우선순위, 기준, 성품, 행위에 관한 것이다.


빙산처럼, 우리 삶의 아름다운 부분은 10%뿐이고, 우리는 사람들에게 그 부분만 보도록 허락한다. 그러나 우리의 실제 삶의 대부분, 즉 종종 다른 그리스도인들의 정밀한 검사로부터 감추어져 있는 삶을 살아가는 곳은, 수면 아래에 있다. 거칠고, 수면 아래에 있는 삶은, 종종 관계에 구멍을 내고, 영적인 삶을 훼손시킨다. 눈에 보이지 않고, 신중하게 성찰하지 않은 삶이 우리를 침몰시킨다. 우리가 삶의 그런 분야들과 관련해 누군가에게 자문을 받지 않는다면 말이다. 우리는 수면 아래의 위험들 주변을 항해하도록, 도와줄 누군가가 필요하다.


보이는 당신: 뉴스, 스포츠, 날씨 등 진부한 차원

진짜 당신: 성찰하지 않는 삶. 은밀한 생각. 목적. 우선순위. 목표들. 야망. 동기. 하나님과의 관계. 가정생활에서의 관계. 시간과 돈의 사용. 도덕적, 영적 행위. 오만. 두려움. 분노. 문제. 고통. 좌절.


모든 사람에게 자문이 필요한 분야는 다음과 같다.

하나님과의 관계. 결혼을 했다면 배우자와의 관계. 자녀들이 있다면 자녀들과의 관계. 돈과 시간의 사용. 도덕적이고 윤리적인 행동. 개인적으로 갈등하고 있는 문제.


실제로 갈등하고 있는 문제는 무엇인가? 약점은 무엇인가? 당신의 맹점에 대해 알고 싶지 않은가? 개인적으로 위험한 분야는 무엇인가?

이것들이야말로 자문 파트너가 정기적으로 물어야 할 질문들인 것이다.


2) 정기적으로

'정기적으로'란 말의 의미는 자문 파트너와의 접촉이 자주, 그리고 어느 정도는 조직적으로 이루어져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가능하다면 매주 만나는 것을 추천한다.


이런 질문들은 특히 처음에는 부자연스러워 보인다. 개인적인 관심, 연민 그리고 우정이 뒤따르지 않는다면, 이런 질문들은 매우 어색한 것이 될 것이다. 그러나 자문의 궁극적인 목적은, 우리가 우리의 모든 삶의 방식에서 더욱 주님과 같이 되고, 그분과 더욱 친밀해지는 것임을 기억하라.


3) 자격 있는 사람

자격 있는 사람에게 자문을 구한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할까? 자문 파트너의 포괄적인 자격은 그들이 그리스도를 사랑하고, 당신이 성공하기를 바라며, 또한 자문의 필요성을 이해해야 한다는 것이다. 적절한 사람에게 자문을 구하는 것은, 우리의 영적 삶의 질에서 극적인 차이를 만들어 낼 수 있다.


어떤 사람이 이상적인 자문 파트너가 될 수 있을까?

재능과 지혜를 가진 사람, 당신이 존경하는 사람, 당신이 좋은 느낌을 받고, 그들의 판단을 신뢰할 수 있는 사람을 택하라. 가장 곤란한 일은 자신에게 가장 어려운 질문을 하도록 권한을 부여한 사람을 의심하는 것이다.

"지혜로운 자와 동행하면 지혜를 얻고, 미련한 자와 사귀면 해를 받느니라" (잠 13:20)


주님과 우리의 관계에서 우리에게 도움을 줄 수 있는 사람이, 우리의 재정 문제에 대해서도 도움을 줄 수 있다고 기대하지 마라. 기존의 친구가 자문 파트너를 위한 좋은 후보자일 가능성은 크다. 그러나 비록 전혀 모르는 사람을 택할지라도, 그와 친구가 될 가능성은 아주 높다. 하지만 배우자 이외의 다른 이성과 자문 관계를 맺어서는 안 된다. 이성으로, 가까운 교제를 맺고자 하는 유혹에 빠지는 것은 재앙을 불러들이는 것이 되기 때문이다. 배우자는 부서지기 쉽고 민감할 수 있는 개인적인 약점이라는 분야에서 특별히 자문으로 도움이 된다. 그럼에도 도덕적, 영적, 재정적, 관계적 문제 등 모든 분야에서 자문을 해줄 수 있는 이를 택하는 것을 잊지 마라. 가족과 주님과의 관계에서 큰 성공을 거두었음에도 불구하고, 재정적으로 어리석은 결정을 함으로써 파산한다면, 이 얼마나 비극적인 일인가! 자문에서 분야의 2/3는 충분히 좋은 것은 아니다.


그런데 이런 말이 있다.

"누군가에게 그것에 대해 말을 했다면, 그것은 온천하에 말해진 것이다."

우리가 다른 사람에게 좀처럼 자신을 드러내려고 하지 않는 한 가지 이유는 비밀 때문이다. 누군가에게 자신의 참된 모습을 드러내려고 할 경우, 내가 그 사람을 신뢰할 수 있음을 절대적으로 확신할 수 있기를 바란다. 친구에게 배신당하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 많은 이들은 자문에 응하는 위험을 감내하지 못한다. 우리가 기대하는 파트너와 함께, 이 측면에 관해 이야기를 나누는 것이 반드시 필요하다.


자문 파트너를 맺을 수 있는 사람을 찾아라! '보스'를 찾기보다는 서로 도울 수 있는 '동료'를 찾으라. 어떤 문제가 있을 경우, 그 문제와 관련된 사람에게 도와달라고 요청하는 것은 피하라. 예를 들자면, 누군가에게 돈을 빌렸다면, 그 사람은 당신이 돈 문제와 관련해 자문을 구해야 할 적절한 대상이 아니다. 자문을 위한 최적의 규모는 서너 사람이다. 그러나 과도해지지 마라. 너무 많은 자문 관계를 맺어, 우리의 삶이 '숙제'로 가득 차 있는 느낌을 갖지 않게 할 필요가 있다. 만약 네 사람으로 이루어진 자문을 만들었다면, 그 서로 다른 사람들의, 서로 다른 재능들이, 우리의 중요한 분야들 모두를 충분히 커버할 수 있을 것이다.


4) 이곳과 저곳

우리가 이곳(이 땅)에서 자문에 대해 관심을 가져야 할 궁극적인 이유는 그곳(하나님 앞)에서 우리가 무언가를 설명해야 하기 때문이다.

"네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사람이 무슨 무익한 말을 하든지, 심판 날에 이에 대하여 심문을 받으리니" (마 12:36)

"이러므로 우리 각 사람이 자기 일을 하나님께 직고 하리라" (롬 14:12)

"하나님께서 각 사람에게 그 행한 대로 보응하시되~ 곧 나의 복음에 이른바와 같이 하나님이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사람들의 은밀한 것을 심판하시는 그날이라" (롬 2:6,16)


언젠가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께 우리의 모든 것에 대해 설명을 드리게 될 것이다. 이곳에서의 삶이 신실할수록,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그리스도의 심판대 앞에 설 때, 더 많은 보상(상급)을 해주실 것이다. 자문 관계는 우리가 이곳(이 땅)에서 하나님을 기쁘게 해 드리는 방식으로 살아갈 수 있도록 도울 것이다.


실천적 차원에서, 매일의 평안과 기쁨은 우리가 자신의 삶의 중요한 분야들에서 유지하는 신실함과 균형에서 나온다. 그 문제가 도덕적인 것이든, 영적인 것이든, 관계적인 것이든, 재정적인 것이든 간에(사실상 이것들은 우리 삶의 실패의 네 가지 커다란 부분이다.) 우리가 그것들을 재능과 지혜를 갖고서 다룰 때, 우리는 개인적인 만족감을 경험하게 된다. 그러므로 자문관계를 통해 얻는 다른 이의 도움이 없다면, 우리 중 아무도 자신의 온전한 가능성에 이르지 못한다.


우리들 중 많은 이들이 너무 많은 시간을 궤도 이탈 된 상태에서 살아간다. 우리는 삶을 적절한 궤도에 올려놓기 위해, 계속해서 방향과 고도를 수정할 필요가 있다. 자문 파트너들이 던지는 질문은 우리가 방향을 수정해 올바른 궤도 위에 머물 수 있게 해 준다. 그렇지 않을 경우, 우리는 방향을 잃고 헤매게 될 위험에 빠지게 되는 것이다.


상담과 자문의 차이

많은 사람들이 문제에 빠지는 것은, 그들이 기독교 상담을 받고서는 그것으로 자기들이 할 일을 다했다고 여기기 때문이다. 솔직히 말하자면, 상담은 우리가 내리는 판단에 가치를 더해주기는 하나, 상담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상담자에게 그가 나에게 대답해 줄 수 있을 것 같은 문제에 관한 정보만 제공하거나, 그 정보마저도 내가 이미 갖고 있는 결론에 동의할 만한 방식으로 조작한다. 그런 까닭에 우리는 탁월한 상담을 받고서도, 여전히 우리 자신이 원하는 일을 한다. 만약 우리가 우리를 사랑하는 어떤 이들로 하여금 삶의 중요한 분야에서 우리에게 충분히 자문하게 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계속해서 은밀한 삶, 즉 그리스도의 가르침에 대해 책임을 지지 않는 삶을 이어나가게 될 것이다. 그 어떤 이도 혼자 힘으로 그리스도인다운 삶을 살아가지 못한다. 자신의 생각에만 빠져 사는 경우, 우리는 자신에게 자신의 무오류성을 확신시킬 수는 있을 것이다.

그러나 " 만물보다 거짓되고 심히 부패한 것이 마음이라. 누가 능히 이를 알리요?" (렘 17:9)라고 말씀은 말한다.


조언을 구하는 일에는 내가 주도권을 쥘 수 있다. 그러나 자문을 구하는 것은 다른 사람에게 주도권을 쥘 권리와 책임을 넘기는 것이다. 자문을 구하는 것은 우리에게 제기된 질문들에 답하는 것이다. 지금 우리는 누구에게 우리의 문제에 관한 질문을 던지고 있는가?


교제와 자문의 차이

자문은 우리가 신뢰하는 소수의 사람들 앞에서 '어항 속 금붕어'처럼 살아가기로 한 우리 자신의 의도적 결정으로부터 나온다. 자문은 누군가에게 어려운 질문을 하도록 허락할 뿐만 아니라, 또한 그런 어려운 질문을 하는 것이 우리의 관계의 기초를 형성하도록 허락하는 것을 의미한다. 때때로 상황이 어려워질 수도 있으나, 그 관계가 갖고 있는 교제의 측면이, 자문의 역할을 침묵시키게 해서는 안된다.


교제는 우리 삶의 중요한 부분에 관한 질문을 제기하지 않는다. 교제는 그런 일을 해달라는 요구를 받은 적이 없으며, 또한 다른 이의 삶의 사적인 영역 안으로 들어가도 좋다는 허락을 얻었다고도 여겨지지도 않는다. 자문이 없는 교제의 가치는 매우 제한적이다.


우리 가운데 나타나는 수많은 영적, 도덕적 실패들은, 우리가 문제를 갖고 있으며, 따라서 자문을 받을 필요가 있음을 암시해 준다. 그런데도 왜 우리는 자문을 받지 않을까?


왜 사람들은 자신을 드러내려 하지 않는가


인간의 영혼은, 제멋대로 하도록 내버려 두면, 늘 자기만의 독립적인 길을 찾아 나선다. 그리스도께 사로잡힌 후에도, 우리는 육신에 속한 옛사람과 성령에 속한 새 사람 사이에서 벌어지는 일생의 싸움을 계속해 나간다. 우리의 옛사람은 정말로 자신을 드러내려 하지 않으며, 자신의 모든 것을 바쳐서라도 그런 개념에 저항하려 한다. 우리가 자신을 드러내려 하지 않는 데는 몇 가지 공통점이 있다.

1) 의지의 문제

자문이 이루어지기 위해서는 우리 스스로 의지를 갖고 임해야 한다. 죄와 자기기만에 대한 우리의 성향을 직시하고, 우리에게 다른 이의 도움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자문 프로그램을 계속해나갈 수가 없다. 우리는 프로그램을 시작할 수는 있으나, 몇 가지 어려운 순간을 맞고 나면, 그런 시끄럽고 불편한 질문들을 포기하게 된다.


2) 강한 개성의 문제

어떤 한 사람과 기꺼이 만나려 했으나, 그는 자신이 주님과, 아내와, 그리고 자녀들과 어떻게 지내고 있는지에 관한 어려운 질문들 앞에서, 자신의 자아를 내려놓고 밝히는 일에 실패했다."나를 위한 어떤 해결책이 있나요?"라고 묻는 대신에, 자신의 입장만을 옹호했다. 그의 강한 자아가, 그로 하여금 실패를 인정하고, 자신을 다른 이 앞에서 낮추도록 만들지 못하게 한 것이다.


3) 성공의 문제

성공한 사람들은 큰 위험 속에 있다. 자신의 능력을 확신하는 그들은, 자기들이 혼자서 다루기에 너무 큰 문제 같은 것은 없다고 여기는 경향이 있다. 유능하고, 자기에 대한 확신이 가득 차 있는 그들은, 어떻게든 일이 되도록 만들어나가기는 한다. 그러나 모든 사람에게는 맹점과 약점이 있다. 사업에서 성공했으니, 삶의 다른 모든 분야에서도 역시 성공적일 거라고 사람들은 여기게 되고, 본인들은 다른 이들로부터 적절한 자문을 얻기가 점점 어려워진다.


4) 상처의 문제

우정의 대가는 개인적으로 상처를 받을 수 있다는 것이다. 효과적인 자문의 값도 역시 개인적으로 상처를 받을 수 있다는 것이다. 우정 관계에서 상처를 받는 것은 자발적으로 이루어진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자문관계에서의 상처는 필수적이다. 왜냐하면 표면 아래에 감춰져 있는 자신의 일부를 드러내놓아야 하기 때문이다. 또한 상처받을 수 있다는 것은 우리의 자문 파트너로부터 승인을 얻지 못하는 위험을 감수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우리가 자신의 흠과 결을 드러내 보일 수 있는 누군가를 찾아가려 하지 않는 것은, 어찌 보면 자연스러운 일이다. 그런 의미에서 자문은 의지의 결단이다. 우리를 단련시키도록 허락하는 값을 지불함으로, 우리는 주 예수께로부터 오는 보다 큰 보상(상급)을 얻게 된다.


우리는 거부당하기를 원치 않는다. 그러나 거부당하는 것은, 우리가 자신을 다른 이들에게 드러낼 때 겪을 수 있는 아주 두려운 일들 중의 하나이다. 우리는 거부가 아니라 존경을 원한다. 그러므로 당신이 자신을 투명하게 드러내고, 상처받을 준비가 되기 전까지는, 당신의 파트너가 수면 아래의 영역에 대해 당신에게 자문을 해줄 수 없다는 점에 유념하라. 자문관계에서조차 우리가 어느 분야에서 우리의 파트너를 속이는 것은 가능하다. 그러나 우리의 계속해서 씨름하고 있는 분야를 드러내는 것은, 드러냄을 통해서만 올 수 있는 도움이 반드시 있다. 예수님은 우리가 치유되기를 원하시기 때문이다.


5) 구조의 문제

우리가 문제에 빠지는 이유는 해야 할 것을 이해하지 못해서가 아니라, 해야 한다고 이미 알고 있는 것을 하도록 훈련시키는 구조가 없기 때문이다. 지속적으로 자문관계를 맺는 사람들로부터, 우선순위와, 매주 맞아야 할 알레르기 주사 목록이 들어있어야만 한다.


편리함을 위해 동일한 시간과 장소에서 만나라. 그리고 그것이 매주 반복적인 약속이 되도록, 달력에 표기해 두라.


시작하기

자문을 위한 주간 체크리스트를 소지하라. 이것이 자문의 논의를 이끌어줄 중요한 자료가 된다. 체크리스트는 비록 단순해 보일지라도, 실제로 그것을 행하는 것이 아주 중요하다. 자문 관계를 시작한 사람들 중 15% 미만의 사람들만이 이 과정을 시작하고, 계속 유지한다. 자문에는 노력, 헌신, 그리고 많은 인내가 필요하다. 그러나 그로 인한 보상은, 그것이 지불하는 값 이상의 가치에 해당하는 보상을 줄 것이다.


자문은 단순한 상담이나 교제를 넘어선다. 자문에는 우리에게 제기된 질문들에 답하는 것이 요구된다. 자문은 우리가 우리의 믿음에 따라 행동할 수 있게 해주는, 그리고 제어되지 않은 채 선회하지 않게 해주는, 우리 삶의 중요한 요소가 될 것이다.


자문을 위한 체크리스트

1) 시작하는 질문

▪하나님이 이번 주에도 복을 내리셨는가? 무슨 일이 있었는가?

▪이번 주에는 어떤 문제로 어려움을 겪었는가? 무엇이 잘못되었는가?

2) 영적인 삶

▪하나님의 말씀을 지속적으로 읽었는가? (얼마나 자주? 얼마나 오랫동안? 어째서 하지 못했는가? 다음 주에는 어떠할 것 같은가?)

▪기도: 당신 자신, 다른 이들, 찬양, 예배, 고백, 감사를 위한 당신의 기도에 대해 묘사해 보라. 그리스도와 당신의 관계는 어떻게 발전하고 있는가?

▪유혹: 이번 주에 어떤 유혹을 받았는가? 그 유혹에 어떻게 대응했는가?

3) 가정생활

▪배우자: 해당된다면, 당신의 배우자와의 관계는 어떠한가?(시간, 의미 있는 대화, 태도, 친밀함, 실망, 짜증, 교회와 그리스도의 관계)

▪자녀: 해당된다면, 당신의 자녀들과의 관계는 어떠한가? (격려하기, 함께하는 시간의 양과 질, 교육, 자녀의 영적 안녕)

▪재정: 당신의 재정상태는 어떠한가? (채무, 나눔, 저축, 소비, 청지기)

▪시간: 시간을 받을 만한 사람에게 시간을 주었는가?

4) 직장생활

▪일:요즘 일의 상황은 어떠한가?(직업, 관계, 유혹, 스트레스, 문제, 과로)

5) 사역

▪제자 만들기: 이번 주에

(1) 누군가에게 그리스도 안에 살도록(구원을 얻어 그분 안에 거하라고) 권한 적이 있는가?

(2) 그들을 그리스도처럼 살도록(그분 안에서 성숙하도록 훈련을 받으라고) 준비시킨 적이 있는가?

(3) 그들을 그리스도를 위해 살도록(다른 이들을 제자 삼고, 사랑하고, 섬기라고) 보낸 적이 있는가?

▪증인: 당신의 믿음을 누군가에게 전한 적이 있는가?

▪섬김: 이번 주에 다른 누군가를 위해, 그 어떤 보상도 받을 수 없는 일을 한 적이 있는가?(가난한 이들을 돌봄, 격려, 자비, 다른 이들을 섬김)

▪고백: 고백하지 않은 죄가 있는가?

▪교회: 이번 주에 교회에서 예배를 드렸는가? 예수님에 대한 당신의 믿음이 강화되었는가?

6) 중요한 관심사

▪하나님의 뜻: 당신은 자신이 하나님의 뜻의 중심에 있다고 느끼고, 그분의 임재를 경험하고 있는가?

▪생각: 어떤 은밀한 생각과 씨름하고 있는가?

▪우선순위: 우선순위는 제대로 정해져 있는가?

▪고위험성: 개인적으로 위험성이 큰 어떤 분야에서 일하고 있는가?

▪투명성: 보이는 당신과 진짜 당신은 일치하는가?(그렇지 않다면, 어떤 방식으로 그러한가?)

7) 기도

▪10분 내지 15분 기도를 드림으로써 마치라. 이번 주에 관심을 가져야 할 것들에 집중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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