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민호 저 "기독교 세계관"
인본주의, 즉 인간이 세상의 중심이 된다는 참으로 이 그럴듯한 구호로 유토피아적인 세상이 구현될 줄 알았는데, 막상 뚜껑을 열어보면 오히려 사람이 더 피폐해져 있다. 옛시대의 사람들은 못 배워서, 가난해서 세상이 혼란한 줄 알았다. 그런데 지금 이 시대는 교육도 열려있고 경제 수준도 옛날에 비하면 엄청난 발전을 했는데도 사람들은 더 자신의 목숨을 끊으며 절망하고 있다. 인본주의 시대 풍조에서 자신이 법이라는 이 자율주의 사고는 가정, 도덕, 윤리를 무너뜨리고, 인간성마저 더 비인간화시키는 비참한 결과를 초래한 것이다. 자신의 행복이 최우선이 되다 보니 이해관계가 상충되고, 자신의 이익에 반하는 집단이나 단체 혹은 사람들에게는 맹수처럼 물어뜯고 비난하는 것이 당연한 것처럼 여겨지는 풍조가 만연한 사회가 된 것이다.
인본주의자들은 철저히 신을 배격하고 신으로부터 자유해야만 한다고 생각한다. 그래야만 사람이 자유롭고 행복할 수 있다고 그들은 생각한 것이다. 그러나 인본주의 안에서 참된 행복은 찾아볼 수 없고, 진정한 의미에서 "사람답게"라는 인간의 존엄성도 상실하게 된다.
그렇다면 인본주의를 어떻게 극복할 것인가?
이를 극복하는 방법은 전제를 회복하는 것이다. 하나님의 계시인 성경으로 돌아가야 하고, 하나님 사랑으로 돌아가야 한다. 하나님 사랑에서 출발하지 않으면 반드시 인본주의에 빠지게 된다. 왜냐하면 하나님 사랑과 이웃 사랑이 앞서지 않을 경우, 하나님과 이웃에 대한 책임과 의무는 등한시되고, 도리어 자신은 누려야만 한다는 권리만 주장하게 되기 때문이다.
우리가 오로지 하나님 사랑에서 출발할 때, 자연히 책임과 의무가 앞서고, 인권은 뒤따르게 된다.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는 율법의 이중 강령이 마음속에 들어오면, 믿음의 사람은 자기 권리보다 "하나님과 이웃을 어떻게 섬길까?"에 관한 책임과 의무가 앞서게 된다. 이는 자연스럽게 참된 기독교, 곧 신본주의에 도달하게 되는 것이다.
신본주의와 인본주의를 가르는 본질은 "자기 사랑이 우선인가? 아니면 하나님 사랑과 이웃 사랑이 우선인가?"에 달려 있다. 바울의 "우리 중에 누구든지 자기를 위하여 사는 자가 없고 자기를 위하여 죽는 자도 없도다(롬 14:7)" "누구든지 자기의 유익을 구하지 말고 남의 유익을 구하라(고전 10:24)"라는 가르침에 믿음의 사람은 주목할 필요가 있다.
책임과 의무의 이행은 억압이 아니다.
이는 그리스도인으로서 마땅한 사명이다.
인본주의자들은 "나는 책임을 덜 지는 삶을 살겠다. 의무도 덜 이행하는 삶을 살겠다"라고 외치며 투쟁하고 있다. 그러나 참된 그리스도인은 "내가 감당해야 할 책임을 지겠다. 내가 이행해야 할 의무를 지겠다"라고 외친다. 그리고 사랑의 계명을 따라 자기희생의 길을 걷는다. 실제로 예수님은 자기 십자가를 질 것을 가르치셨다.
믿음의 사람은 결국 십자가를 지는 삶을 통해 인본주의를 극복할 수 있다. 물론 십자가의 삶이란 제도를 통해 혹은 순전한 사람의 의지만을 가지고 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이 삶은 하나님 사랑이 마음속에 부은 바가 됐을 때, 성령께서 주시는 자원하는 마음을 통해서만 가능하다. 그러므로 인본주의자들이 생각하는 행복한 세상은 결국 십자가 안에서만 성취된다. 인본주의자들은 "책임과 의무는 다 회피하겠다. 나만 행복하면 돼!"라고 생각하지만, 그런 생각과 태도로는 결단코 진정한 행복에 도달할 수 없다. 십자가의 원리인 자신의 행복을 포기할 때, 신기하게도 자신도 행복하고 다른 사람도 행복한 놀라운 일이 일어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