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근 동산 2(제시카 윤)

by 김해경

어느 주일날 아침에 내가 말하기를 "예수님, 주일날 제가 가야 되는 그 교회는 예배의 감격이 있지 않아요. 그러나 저는 그 교단에서 녹봉을 받으니, 오늘은 그곳으로 가야만 해요"라고 했다.

주님께서 말씀하셨다.

"그 교회 안에는 나 말고는 다 있단다."

나는 웃다가 슬퍼졌다.

"예수님, 제가 주님의 심정을 조금이라도 알아드리면 안 될까요? 비록 무지한 고기 덩어리 같은 저이지만, 제 어깨에 조금만 기대주세요."

나는 눈물이 났다. (나:제시카 윤 목사)


너는 더 큰 영광을 사모하라

천국은 침노하는 자의 것이다.

힘쓰고 애쓰는 자들만이 영토를 넓히는 곳이다.

너의 희생의 땀, 회개의 눈물, 생명을 바친 피,

그 보화로서 네 천국의 영토가 확장이 되느니라.


불타 없어질 허무한 것으로 네 집을 짓지 말고

불타 없어지지 않는 것으로 네 집을 지으라.

원수가 던지는 바스러질 창에 놀라거나 흔들리지 말고

네가 가진 것을 굳게 잡아 놓치지 말라.

결단코, 결단코, 결단코 내 신부에게 향한 나의 사랑을 의심치 말아 다오.

그것이 네가 굳게 잡아야 하는 푯대이니라.

그 푯대가 너를 천국인 우리의 나라로 너를 인도해 주니라.


세상 것의 판단과 잣대는 세상의 눈으로 하고

영적인 것의 판단과 잣대는 영적인 눈으로 한단다.

그러나 하나님의 사람은 결코 사람을 판단하면 안 된다.

그래야만 아무도 너를 판단하지 않기 때문이란다.


다른 사람을 용서해야 하는 마음은 너의 선택이 아니라 나의 명령이란다.

너는 나를 입으로 주인님이라고 부르면서 어찌하여 내가 너에게

용서하라는 그 명령은 순종하고 듣지 않느냐?

그 불순종의 영을 내 이름과 내 피로 쫓아내거라.


세상의 하찮은 것들에 마음 붓지 말고

너는 오직 하늘의 보화에 기뻐하라.


이마에 예수 그리스도의 인을 맞은 모든 자는 그 속에 각 자의 십자가를 지니고 있단다.

섶 십자가, 짚 십자가, 나무 십자가, 돌 십자가, 금 십자가, 은 십자가, 백금 십자가, 보석이 박힌 십자가 등 모두가 다른 재료로 스스로가 자기 인생에서 각자의 공력으로 십자가를 지니게 된단다.


나의 사랑하는 신부야!

나를 기억하지 않는 모든 시간은 너의 잠자는 시간이다.

그러니 너는 깨어 있어야 하느니라

단 한순간도, 먹어도 마셔도, 일어서도 앉아서도, 나를 생각하고 내 사랑으로 옷 입거라.


첫사랑을 잃어버린 어느 목사님에게

(캐나다에서 할머니들이 대부분인 조그만 교회에서 10년째 사역을 하시며 자신이 이런 시골교회에 오래 남겨져, 버려진 듯한 감정을 가지고, 첫사랑을 잃어버린 어느 목사님의 3일 금식 이후에 주님께서 주신 예언)

사랑하는 아들아!

너는 이제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으라. 네 옷이 희어졌느냐 완전히는 아니니라. 이제 병뚜껑의 마개가 열리듯 너의 회개의 파이프의 입구가 열렸으니 너는 계속 부르짖어라. 네 눈의 회개의 눈물로 너의 때묻은 낡은 구원의 옷을 씻을 수가 있단다.


이제는 네가 금식의 힘을 알았으니 겸허한 마음으로 너는 내 앞에 무릎을 꿇어라. 허무한 것들에 무릎을 꿇지 말고 네 하나님의 거룩함 앞에 무릎을 꿇어라.


향방 없이 달리지 말고 무엇을 하든지 간에 나를 향한 너의 사랑을 보여다오. 작은 일에 충성하는 자에게 내가 큰 일을 맡길 것이니라. 이것이 내 나라의 법칙이다. 그러니 지금 내가 너에게 준 목양에 최선을 다하라. 그러나 너는 목양보다는 다른 일로 더욱 바쁘구나. 너와 나는 바라보는 곳의 시선이 같지 않구나. 내가 보는 곳을 네가 보길 원하건만 ,내게 값없는 것에 너는 마음을 주는구나. 더욱더 철저한 회개를 한 이후에야 내가 바라보는 것을 네가 같이 바라보게 되리라. 나는 내 마음과 합한 자를 원한다. 그렇지 못하면 내가 너를 들어서 쓸 수가 없구나. 그리스도인 내가 교회를 위해 내 생명을 주었듯이 너도 네 소시의 짝인 아내를 위해 네 생명을 주듯이 사랑해야 한다. 어찌 도랑물을 흘리듯이 다른 곳에 눈을 팔 수 있겠느냐. 나는 결코 이를 죄 없다 하지 않는 공의의 여호와니라. 너는 이것에 대해 더욱더 깊은 회개를 하여야 할지니라.


목사님과 함께 3일 금식을 마친 사모님을 향한 예언

사랑하는 딸아!

내가 너의 금식을 받았다. 너는 음식으로 하는 금식보다 행위로 하는 금식이 필요하구나. 일주일에 단 하루라도 날을 정하여 타인에게 "하라"라는 명령의 소리를 하지 않는 온전한 하루를 나에게 다오. 그것이 지금 내가 네게 바라는 금행이란다. 이것이 네게 힘들 것이나, 나에 대한 너의 사랑으로 말미암아 너는 반드시 할 수가 있다. 연습을 하면 차츰 쉬워질 것이니라.

나에 대한 너의 사랑을 보여다오. 이를 통하여 내가 반드시 너의 영을 키우고 성장시키리라. 너는 더욱더 내게 많은 감사를 드릴지라. 감사로 제사를 드리는 자가 나를 영화롭게 하느니라.


예수님이 신부에게 원하는 소망

첫째, 너는 매일 예수 그리스도의 피가 뿌려진 완전한 제사를 나에게 드리라.

둘재, 너는 매일 기도를 쉬는 죄를 결코 범치 말아라.

셋째, 너는 이 땅에서 네발이 흙을 닫고 서 있는 동안에는 죄를 짓지 않고 살 수가 없다. 그러나 매일 죄를 짓는 즉시 회개를 할지니라. 그래야만 그 죄의 쓴 뿌리가 네 속에 내리지 못하느니라.

넷째, 너는 매일 어떠한 경우에도 하나님과 사람들 앞에서 겸손한 자가 되어라. 자존심은 마귀의 가장 고귀한 성품이다. 마귀는 스스로를 그렇게 생각한다.


예수님의 명령

너는 기도한 이후에 빠르게 나가지 말라

너는 나의 음성을 들은 이후에 말씀을 선포할지니라.

너는 나의 명령을 받은 다음에 실행하라.

너는 어떤 일이든 반드시 나의 응답을 받고 하라.


그 돌무더기는 사람의 마음이니라. 간음한 여인에게도 사람들은 돌을 던졌고, 나의 충성된 종 스데반에게도 사람들은 돌을 던졌느니라. 보라! 앞으로 내 신부에게 돌이 떨어질 때마다 내 눈은 돌을 던진 자의 그 손과 얼굴을 기억할 것이다. 그리고 내가 결코 그 짓을 죄 없다 하지 않으리라. 그들은 팔을 휘저으며 돌을 던질 때에, 그것이 자기 스스로에게 던지는 돌인 줄 모르고 던질 것이다. 그러나 그들을 두려워하지 말고 담대하라. 너를 축복하는 자에게 내가 축복을 할 것이며, 너를 저주하는 자에게 내가 저주를 내리리라. 이는 내 신부가 내게로부터 받는 분복이니라. 그러므로 너는 아무것도 취할 가치가 없는 사람의 마음에서 무엇을 찾으려고 하지 마라. 풀에 밤 사이에 이슬이 내리더라도 아침에 해가 뜨면 사라져 버리듯이, 인간의 사랑과 우정은 아무리 쌓이더라도 환난의 열이 피어오르면, 각자의 상처 속에 없어져 버리느니라. 그러나 이 돌무더기 속에 간혹 보석 같은 마음의 돌들이 하나씩 들어 있느니라. 각 보석은 다른 소명과 품성을 지니고 있단다.


사람의 마음은 처음에는 다 돌멩이의 가치이나, 그 삶에서 자신의 영이 어떤 다른 사람의 속에 있는 영을 그리스도 안에서 진심으로 사랑하기 시작하면, 자신의 속에 있는 그 돌멩이가 차츰 보석으로 바뀌느니라.


하나님의 인간에게 향하는 사랑은 그의 본질이지만, 인간의 하나님에게 향한 사랑은 결국 선택이다. 그리고 모든 인간은 반드시 자신이 선택한 결과에 책임을 지고 각자의 마지막 날에 하나님의 보좌 앞에서 심판을 받는 것이 정한 이치이다.


모든 인간의 속에는 마음의 밭이 있다.

수많은 나의 종들이 씨를 부릴 것이나, 그 밭 위에서 성령의 휘날리는 바람 속에서 씨를 부리는 자는 몇이 되지 않구나.

그 밭 위에서 나의 은혜로 촉촉이 내리는 단비 속에서 씨를 가꾸는 자는 더욱 적구나.

그 밭 위에서 내 사랑의 따뜻한 불씨 속에서 씨를 지켜보는 자는 더더욱 적구나.

내가 어느 때에 어느 곳에서 이런 충성된 나의 종을 찾아보겠느냐?

그래서 이스라엘을 지키는 나 여호와는 등불을 켜고, 나의 포도원 안에서 이렇게 하는 나의 신실한 종을 찾고 또 찾는단다.


나는 너의 혼과 영이 같은 크기의 규모로 성장이 되기를 원한단다. 네 영이 자라는 속도와 크기로 너의 혼도 같이 자라주어야만 흔들림이나 요동함이 없단다. 많은 사람들이 영의 세계를 입장한 이후에 거기에만 치우쳐서, 혼의 옳은 행실은 따라주지 않는데 영계에만 집착하여, 그 부분만 넘치게 자라 버리면 건강하고 튼튼하지 않게 성장한단다. 영계의 맛은 보았으나 깨끗하고 정결하지 않은 행실로 영계를 자꾸 들락거리면, 그러다가 결국은 미혹의 영이 들어와서 헛것을 보고 거짓 선지자로 전락해 버리기가 쉽단다. 그러니 처음은 성령으로 시작하였으나, 나중은 자고 하고 교만해져서 원수의 영으로 전락해 버리니, 내 마음이 정말로 아프단다. 너의 육과 혼의 행실을 죽이고, 회개로 더욱 정결케 되어서, 겸손으로 스스로를 동이고, 겸허한 마음으로 영의 세계를 출입하라. 너의 영적인 순결을 내게 보이라.


네가 나의 눈에 가치 없는 것들을 다 가치 없게 생각하고

나의 눈에 가치가 있는 것들을 가치 있게 생각하니

너는 그 마음과 가치관을 변치 말거라.


좋은 일을 할 때에 왼손이 하는 것을 오른손이 모르게 하라는 말을 꼭 기억하라.

그렇지 않으면 스스로가 한 일에 자긍하여 섰다고 착각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은밀한 곳에서 보는 내가 다 기억하고 있느니라.


네가 너의 두 손에 가진 모든 것을 나에게 건네줄 때, 두 손으로 움켜쥐고 있는 것들을 내 앞에서 내려놓을 때에, 내가 나의 것으로 너에게 돌려줄 수 있느니라. 이것이 내 나라의 법칙이란다. 내가 다시 너에게 돌려줄 때에는 그것이 온전한 것이고, 너에게 임할 참다운 축복이며, 내 나라에서 좀과 등록이 없이 간직될 것이니라. 네가 썩어질 것으로 심어 영생의 것으로 다시 거두는 방법은 이 길 밖에는 없단다. 움켜쥔 모든 것들을 털어버려라. 그것이 무엇이든 간에 네 생명보다 귀하겠느냐? 보라. 나는 결코 나와 너를 해하거나 손해 보지 않게 하느니라.


살아있는 매 순간 나를 항상 사랑하라. 그러면 네가 깨어 있을 것이니라. 나를 사랑하는 자가 나의 사랑을 입을 것이니라.


그리고 네 이웃을 사랑하라

"가난한 자를 불쌍히 여기는 것은 여호와께 꾸어드리는 것이니 그의 선행을 그에게 갚아 주시리라(잠언 19:17)"


네가 마땅히 보아야 할 것은 이 세상에서는 보이지 않는 숨겨진 것들이다. 왜냐하면 네 눈에 보이는 것들은 잠시 잠깐 있을 것이요, 네 눈에 보이지 않는 그것들이 영원하게 진짜 존재하는 것들이기 때문이란다. 그러나 그 귀한 진리를 깨닫고 영이 깨어있는 자가 이 세상에는 너무나 희귀하구나. 사물의 그 참 가치를 알고 난 이후에, 힘들고 어렵더라도 그것에 합당한 열매를 힘써 맺는 자들이 나를 기쁘게 하는 자들이고, 이 세상을 이긴 자가 되느니라. 내 백성들이 어떻게 하면 이기는 자가 될 것인지 다들 머리로는 잘 알고 있단다. 그러나 선택하여 그 결단을 내리고 행하는 자는 너무나 적은 소수이니라. 설령 머리로 알고 있다손 치더라도, 그 진리가 가슴에 내려가기 까지 너무나 많은 시간이 걸리는구나.


원수의 영에게 속아서 이 땅에 영원히 살 것처럼 나에게 돌아오지 않는 내 백성들을 생각하면, 내 가슴이 천만 갈래로 찢어진단다. 기억하라. 오직 이긴 자만이 그 좁은 문으로 들어올 자격이 주어지느니라. 좁은 문으로 들어온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란다.


나를 믿는다고 입으로 고백하면서도 행동은 제 마음이 원하는 대로 다 하는 자들이 스스로를 성도로, 집사나 장로로, 목사로, 선교사로 착각을 하고 사는구나. 잘 들으라. 말씀과 행위의 열매가 일치하지 않는 자들은 스스로를 속이는 죽은 믿음이니라. 이 죽은 믿음은 결코 나의 진주 문 안으로 통과할 수 없단다. 왜냐하면 내 아버지 하나님은 산 자의 하나님이지, 죽은 자의 하나님이 아니기 때문이란다. 거듭난 사람이 아는 그 말씀과 행위의 열매가 일치하는 자들, 살아있는 믿음을 가진 자들만이 나의 진주 문을 통과하여 성 안으로 들어올 수 있단다. 그 성 안에 살면서 생명나무의 달마다 열리는 열두 가지 실과를 먹을 수 있는 축복이 허락된단다.


십자가에서 흘린 나의 보배로운 피는 죽은 믿음을 위하여 흘린 피가 아니다. 죽은 믿음을 가진 모든 자들은 유황 불못은 면하나, 그들은 반드시 바깥 어두운 곳에서 슬피 울며 이를 갈고 있을 것이다. 캄캄하고 어두운 그곳을 이 세상에서 제 스스로가 선택하였는지도 모른 채 들어갈 그 모든 자들이, 너를 핍박하며 너에게 돌을 던지리라. 그러나 나는 악하고 게으른 자들에게 분명히 선포하기를 캄캄한 어두운 곳으로 쫓아내리라고 밝혔었다.


한번 구원은 영원한 구원이라고 스스로를 속이며, 개차반 같은 자신의 영육 간의 불의를 정당화시키는 무리들이 있다. 바다의 모래 같은 수많은 사람의 무리들이, 불의를 하는 자는 그대로 불의를 하고, 더러운 자는 그대로 더럽고, 의로운 자는 그대로 의를 행하고, 거룩한 자는 그대로 거룩하리라.


그들은 힘써 자기의 의를 좇기에 급급해서 나의 진실하고 살아있는 생명의 의가 무엇인지조차도 모르는 자들이며, 현대판 바리새인들이다. 경건의 모양은 갖추고 있으나, 경건의 능력은 부인하는 자들이니라. 이제 이 나의 마음을 읽은 이후에 눈물로 회개하며 다시 나에게 돌아오는 극소수의 무리도 있느니라. 그러니 너는 더럽고 불의를 행하는 그 자들의 돌을 맞을 각오가 되어 있느냐?


'할렐루야'는 '모두가 하나가 되어 하나님을 찬양하자'라는 뜻이다. 누군가가 할렐루야 하고 노래하고 있는데, 거기에 함께 노래하지 않는다면 그 사람들은 죄를 짓는 것이 된다. 함께 노래할 수 있는데도 부르지 않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경시하는 것이다. 자기의 창조자이신 하나님을 찬미하지 않는 것은 거만한 일이며, 인간으로서 타당치 못한 일이다.


이 땅은 천국에 들어가기 위해서 훈련을 받는 장소란다. 나는 내 자녀들이 이 땅에서 훈련받을 때에, 필요한 것들은 다 공급한다. 문제는 내 자녀들이 자신에게 필요한 것은 기도하지 않고, 자기가 원하는 것만 구하는 것이다.


그래서 방언의 기도가 필요하다. 방언은 모든 영적인 세계로 들어가는 관문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방언은 자신의 영이 각자의 삶에 필요한 바를 하나님께 아뢰는 비밀의 기도이다. 자신이 뭘 간구하는지 모르지만, 원수의 영도 모르니까, 원수에게 공격을 준비할 기회를 주지 않아서 더 좋은 것이다. 그러나 보통 언어의 기도는 하나님도 알고 원수도 알아들으니, 악령들은 듣는 즉시 성도들을 방해할 계획을 자기들끼리 세운단다. 악의 영도 계급과 체계가 있고 서열도 있다. 루시퍼를 추종하는 무리들이 제 날이 얼마 남지 않은 것을 알고, 얼마나 내 백성들을 악랄하게 공격해 대는지. 그러나 끝가지 참고 견디는 자는 내가 지키고, 또 마지막 날에 면류관과 상을 받을 것이다. 간혹 성도가 너무 기특하면 내가 이 땅에서 미리 상을 베풀기도 한다. 그러나 천국에서 받는 상이 훨씬 더 좋고 값진 것이란다.


크리스천이라고 스스로를 칭하면서 행하지 않는 죽은 믿음을 가진 자는 대체로 핍박과 고통도 없단다. 내 계명을 지키면서 삶이 평안하다, 평안하다를 외치는 자는 다시 한번 자신의 믿음을 점검해 보아야 된다. 왜냐하면 좁고 협착한 그 길은 결코 평안하지 않는 길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폭풍의 눈 안은 극도로 잔잔하듯이, 완전히 내 안에서 순종하는 삶으로 들어온 사람은 환경에 지배가 되지 않기 때문에, 그 영혼에게 어떤 일이 닥쳐도 요동하지 않고, 내 안에서 평안할 수 있다. 그러나 이 믿음은 모두의 것이 아니니라. 각자가 자기 십자가를 지는 것만도 힘에 버거워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신앙의 네 단계를 말해주마.

첫째, 신앙의 첫 번째 단계에 속해 있는 무리들이다. 자기가 지고 가는 십자가는 대부분 외부로부터 있느니라. 그 십자가는 돈, 관계, 학력, 명예, 유혹, 음란 등등의 우상들과 그에 속한 유혹을 절단시키는 일이다. 외부로부터 오는 십자가도 지지 못하는 그들은 젖을 먹는 신앙인이다. 평생을 젖만 먹는 크리스천으로 살다가 자신의 마지막 날을 맞이하는 교인들도 많다. 그들은 성경책을 들고 교회만 왔다 갔다 하길 되풀이하는 중에, 나의 성소 안으로 들어오지 못하고, 평생을 나의 성막의 뜰만 밟다가, 마지막을 맞는 교인들로, 그 무리의 숫자가 가장 많단다. 교회에 제 스스로의 축복을 위해서 내는 헌금조차도 인색하여 손을 오므리는 무리들이란다. 영적으로 손이 마른 자들이니라. 그 넓은 길을 모르고 택해서 가고 있는 자들을 생각하면, 내 마음이 아프구나. 그러나 사람이 무엇으로 심든지 천국에서는 그대로 거두리라.


둘째, 신앙의 두 번째 단계는 그들보다 조금 나은 무리들이 있다. 나를 안다고 하는 종교인의 무리들이다. 신을 알고 앙망하는 마음이 있는 자들인데, 말씀을 듣고 하나님을 향한 예배의 제사를 드릴 때에, 제물을 씻는 물두멍까지는 회개하고 들어오는 자들이니라. 헌금도 하고 감사할 줄도 아는 무리들이지만, 나와 세상을 겸하여 즐겁게 섬기는 자들이니, 마음에 정함이 없어서 환난이 오면 신앙의 기쁨을 잃어버리고, 자신의 눈에 보이는 즐거움을 좇아가느니라. 한 발은 물두멍을 밟고 있고, 다른 한 발은 세상에서 제 마음의 즐거움을 밟고 있단다. 실컷 내 앞에서 회개하고 난 이후에 교회 문을 닫고 나가면, 또 실컷 세상이 주는 유혹에 속아서 넘어가는 염소의 무리들이니라. 자기 십자가가 무엇인지 알고 있지만, 그것을 지고 나를 따라오지 않기를 선택한 자들, 곧 쭉정들이란다. 내가 명하는 그 길은 좁고 힘들기 때문이다. 차지도 덥지도 않은 종교인들의 무리이다. 그들의 특징은 제 믿음이 섰다고 스스로에게 속아서, 가장 많이 남을 비판하고 핍박할 때에, 그것이 하나님을 잘 믿는 길이라고 굳게 믿고 있다. 현대판 세리와 바리새인들의 무리이다. 그들은 힘써 자기의 존재하지도 않는 의를 쫓기에 급급해서, 나의 진짜 음성과 가짜를 구분할 수 있는 능력도 없단다. 종교인들은 염소의 무리이다. 그들은 내 양이 아니기 때문에, 참 목자인 나의 음성을 들을 할례 받은 귀가 없단다. 그들은 내가 원하는 참다운 성결의 삶을 부인하는 염소들의 무리이다. 그러나 내가 마지막 날에 각 사람들에게 행한 대로 갚아 주리라. 신앙의 교만은 마귀의 가장 교활한 성품이다. 이를 모르고 추종하는 종교인인 그들도, 이 마귀의 가장 큰 공격의 대상이 되기 일쑤이다. 이들이 갈 곳은 이미 정해져 있느니라.


셋째, 신앙의 세 번째 단계는 성도들의 무리이다. 이들은 자기의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는 무리들이다. 그러나 결국 천국의 백성들이 될 모두가 져야 할 마지막 십자가는 자기 파쇄이다. 자기 스스로를 부인하고, 날마다 죽어서 자아파쇄의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라 오는 무리의 사람들을 나는 '성도'라고 부른다. 성도들은 성소까지 들어올 줄을 알고 또 그것을 기뻐한다. 그들은 단단한 식물을 먹을 수 있는 장성한 사람들이다. 이 단계를 걷고 있는 내 백성들은 적은 무리이다. 내 아버지게서는 이 무리들에게 천국을 주시길 기뻐하신다. 모태 신앙, 목사, 장로, 권사, 선교사, 평신도 등의 직함과 신앙의 단계는 상관이 없고, 교회를 다닌 연수에도 아무런 상관이 없는 것이 신앙의 단계이다. 그 숫자가 적은 알곡의 무리들이 있단다. 그러나 이 소수의 무리들조차도 대부분 이 단계에서 만족하고, 생애의 마지막 날을 맞고 천국으로, 성도의 삶을 마치고 온다.


종교인들은 세상에 대하여 자신이 행동한 것과 행동하지 않았던 것들에 대해 하나님께 회개를 한다. 성도들은 하나님에 대하여 자신이 행동한 것과 행동하지 못한 것에 관해 하나님께 회개를 한다. 이것이 교인과 성도로서의 각기 다른 부류의 사람들의 차이이다.


넷째, 신앙의 네 번째 단계는 참으로 간혹 있는 사람이다. 선지자이며 나의 신부들이다. 제 십자가를 지고 괴로워하지도 않고 매일 기쁨과 감사로 나를 따라오면서, 영의 신령한 찬양과 기도 속에서 매 순간 나와 사랑을 나누는 사람들이 있단다. 삶을 오직 나에게만 올인한 사람들이다. 성소의 안에 있는 찢어진 휘장을 넘어서 지성소까지 들어올 즐 아는 사람들이다.


사랑하는 딸아! 지성소가 어디인지 아니? 지성소는 나의 마음이란다. 이들은 내 마음과 합한 자들이다. 나는 이들을 바라보고 있으면 인간 창조를 한 위로를 받는다. 이들은 이 땅에 살더라도 이미 천국에 그 처소들이 예비되어 있는 자들이다. 이들은 나의 기쁨의 포도원에 심긴 극상품의 아주 희귀한 종자 씨이다. 이들은 이 세상에 살지만, 이 세상에 속하지 않는 이긴 자들이다. 하나님의 눈이 머물러 있는 사람들이며, 어디로 행하든지 낮과 밤에 구름기둥과 불기둥이 저들을 위하여 예비되어 있단다. 내가 말하는 이 사람들은 결코 무리가 아니다. 이들은 성읍에 한 명이고, 족속에 두 명일 정도로 진실로 적은 숫자이다. 휴거의 양각 나팔 소리를 알고 기다리는, 들림의 취함을 받을 사람들인데 지극히 적은 극소수이니라. 이 종자씨를 추수하기 위해서 수천 년을 이어온 나의 사역이 있었느니라. 이들은 내 나라에서 왕 노릇을 할 사람들이며 궁창의 별과 같이 빛날 사람들이다.

제목 없는 디자인.jpg












작가의 이전글잠근 동산 1(제시카 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