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부서진 심령과 통회하는 심령을 원한다. 나는 우리의 밖에 있는 양이든, 우리의 안에 있는 양이든지 간에, 그들을 위해서 울고 금식하며 무릎 꿇고 내 양을 먹이고 치는 그런 참 목자를 원한단다. 숫자에 연연해하지 말고, 단 서너 명을 두고 목회하더라도 참 목자의 마음과 그 중심이 나를 사랑하는 마음으로 목양을 하며, 그 삶 속에 나를 진심으로 따르는 순종의 삶을 실제로 사는 그런 자들을 나는 원한다.
나의 음성과 성령의 감동을 거역하는 것은 자기 자신이라는 우상을 섬기는 것이다. 말씀을 실천하지 않는 것은 알고도 자기 자신을 속이는 것이니 마치 사술의 죄와 같다.
가르치는 자들은 더 큰 심판을 받는단다. 아예 무지해서 모르는 것이 아니라, 알고 행하지 않으니 그 불순종이 내게는 더욱 가증한 것이다. 그 무리들은 마음으로는 바리새인과 사두개인의 후손들이며, 영적으로는 독사의 자식들이다. 그것은 나를 십자가에 두 번 못을 박는 것이다.
몇 푼 안 되는 돈을 받고 피값을 주고 산 나의 교회를 팔아서 넘기는 자들, 평생을 나 위해서 섬긴다고 말만 해놓고, 나이가 들어서는 영적인 참다운 제사장을 선정하여 받아야 하는 목회자 교체를 할 때에, 마음을 찢는 할례조차 받지 못한 제 자식에게 세습하려고 나의 피값을 주고 산 나의 교회를 넘기는 자들, 게다가 사람들의 눈이 무서워서 서로서로의 자식들을 자기 교회의 후계자로 바꿔치기하는 자들.
내 마음이 분해서, 이런 짖지 않는 개들의 악행을 하는 거름 무더기 종들의 행위들은 입에 올리기도 싫구나. 그렇게 살고 이 땅의 마지막을 장식한 무리들은 결코 내 진주문 안으로 들어오지 못한다. 나는 장님이 아니다. 내 이름을 알아서 그들은 유황불 못은 면한다. 그러나 내가 알았던 처음 사랑의 깨끗한 모습을 가진 그들이 아니므로, 나는 썩어서 부패되어 변해 버린 그들의 모습을 도무지 알지 못한다라고 할 것이다. 나는 거짓을 말하지 않는다. 변질된 그 목자들은 원수가 사용하는 도구들이다. 그런 자들은 결코 진주 문 안에는 들어올 수가 없다. 바깥 어둡고 깜깜한 곳이 그들의 종착역이다.
그들이 자기 열심으로 이 땅에서 어떠한 공적을 쌓았다고 할지라도, 자기 영광인지 내 아버지의 영광인지 두리뭉실 넘어가는 거짓 삯꾼들, 첫사랑을 떨군 자들, 또한 사람 자신만의 열심과 특심으로 사역한다는 착각에 사로잡혀, 일에 노예가 된 자들, 생명구원은 중심에 없고, 교인과 헌금의 숫자 놀음에 만족해하는 자들, 목양 빼고 모든 다른 잡동사니 일거리로 바쁜 자들, 이들은 내 아버지가 원하는 참복음인 회개와 그에 따른 열매, 세상의 복과 하늘의 복의 차이, 천국행과 지옥행의 참조건, 성도의 거룩, 성결 등을 하나님의 심정으로 울리는 양각 나팔 소리를 낼 줄 아는 파수군이 되지 못한 자들이다. 세상에서 받는 임시 축복이나 운운하면서, 내 양들에게 정작 매일 해야만 하는 참 회개를 선포하지 않는 목사들이다.
이 무리들은 큰 심판을 받기 때문에, 착각하고 산 자신의 인생으로 인하여 마지막, 날 제 머리를 쥐어뜯는 엄청난 놀람과 충격이 있을 것이다.
나는 큰 빌딩과 커다란 성회를 원하지 않는다. 나는 화려하고 아름다운 옷을 입고, 마음을 벌리는 것이 아니라 입을 벌리는, 그런 찬양대를 원하지 않는다. 나는 엄청나게 비싼 사운드 시스템을 통해서 선포되는, 교인들의 귀나 간지럽히는 가짜 복음 밖에 전하지 않는 예배를 원하지 않는다.
행하지 않는 죽은 믿음의 소유자는 아무리 다른 사람을 카운슬링해도, 나의 능력이 일어나지 않는다. 또한 성령께서 마음에 빛을 비춰주셔야 죄가 깨달아지고 회개가 나온다.
기도원을 찾아오는 목회자들 중의 대부분이 문제를 가진 나의 종들이다. 그러나 그런 종들을 몇십 년을 항상 보고 듣다가, 기도원 목사들은 결국은 마음이 굳어진다. 그러다 보니 그들은 어떤 주의 종도 존경하지 않게 되었고, 섬기고 싶은 마음도 잃어버렸단다. 기도원의 일들이 나에 대한 사랑이 아니라 직업이 되어 버린 것이다.
그래서 믿음이 없는 자가 그렇게 되면 마음에 화인을 맞게 되고, 믿음이 있는 자가 그렇게 되면 마음에 굳은살이 생기느니라. 사람이 하나님의 종을 판단하는 것은 큰 죄이다. 주의 종들에게 기름을 부은 내가 있다는 것을 기억해야만 한다. 궁극적으로 나의 종들은 사람이 판단할 필요가 없다. 내가 모든 것을 불꽃같은 눈동자로 다 감찰하고 있지 않느냐?
사과나무에서는 사과밖에 열릴 수 없듯이, 내게 불순종하고 선악과를 따 먹은 아담의 후예이니 불순종의 열매가 열리는 것이 당연하고, 나도 그것을 안다. 그러나 내 백성들은 회개를 하는 것이 중요하다. 지은 죄를 철저히 회개하고, 그 행실을 고치면 오히려 내가 그를 불쌍히 여기고 긍휼을 베풀어서, 귀히 여기고 신앙을 성숙시킨다. 그러나 입으로만 하는 생각만의 회개는 내게는 아무런 보이지 않는 청결이고, 울리는 꽹과리 소리에 지나지 않는다. 꽹과리를 아무리 쳐대도 그 뜻이 실려 있지 않으니, 나중에는 네 귀가 아파서 짜증이 나지 않겠느냐? 내게도 마찬가지이니라.
필요한 것이 있었다면 당신께서 채워 주셨겠지요. 당신께서 주시지 않은 것들은 제게 필요하지 않은 것들이라고 믿습니다. (제시카 윤 목사님의 고백)
잠자는 자는 깨어나고, 깨어있는 자는 충성을 기약하고, 충성을 기약하는 자에게는 내가 생명의 면류관을 예비하고 있느니라.
성령의 말씀이 너희 속에 있으니, 이 말씀이 너희의 보배이고, 이 보배를 너희 질그릇 같은 육신에 가지고 있느니라. 그것이 이 땅에서 성도가 가지는 분복이니라. 그것은 값으로 매길 수가 없느니라. 말씀은 금은보다 귀하고 값진, 나의 선물이니라.
나는 이 진리를 은밀한 곳에서 전하지 않았다. 모든 사람들에게 나의 청함은 나갔단다. 보라! 목마른 자들, 굶주린 자들, 헐벗은 자들, 모두가 내게 와서 삶의 무거운 짐을 내게 내려놓고 쉬라고 했다. 그리고 내 안에서 쉼을 발견하고 안식에 거하라고 하였다. 그러면 진리와 화평을 생수같이 퍼부어 주었다.
나는 피곤하고 무거운 짐을 지고 마귀에게 속아서, 그 짐이 얼마나 자신들을 천천히 죽여 가고 있는지를 모르고, 속아서 그 짐을 힘겹게 지고 있는지를 깨닫고, 그들이 내게로 돌아오기를 원한다. 그 모든 무거운 짐을 내 앞에 내려놓고, 그들의 삶 속에 내가 어떻게 그 풀리지 않는 실타래를 푸는지를, 믿음으로 바라보기만 하면 되는 것이다. 나는 전능의 신이라. 내가 풀지 못하는 인생의 실타래가 어디 있겠느냐?
그리고 난 이후에는 내가 주는 짐을 지면 된다. 그러나 내 짐은 가볍고 내 멍에는 쉽다. 내 짐은 그들의 영을 살리고, 기쁨 속에 즐거움을 주는 짐이다. 영원히 살 수 있는 영생을 줄 길로 인도하는 짐이다. 반드시 천국에서 상과 면류관으로 약속이 되어 있는 짐이다.
내 백성에게 이제 원수 마귀가 잡고 있는 사망의 길로 끌어들이는 원수의 영에 더 이상 속지 말고, 그 세상의 짐을 끄집어서 마귀에게 도로 던져주어 버리라고 해라. 그 이후에 나의 이름을 부르며, 내 얼굴을 찾으며, 내 앞에 겸손히 엎드리라고 해라! 단 한 번의 선택이 영원을 좌우한다는 것을 반드시 알아야 하고, 기억해야 한다.
이제 사망의 쏘는 독은 사라지고 없다. 너희의 죄악은 너희를 관할할 수 없다. 그 사망의 값은 내가 모두 완전한 나의 공의로운 죽음으로서 다 치렀다. 이사야 49장을 꼭 읽어보거라.
용서는 선택의 문제가 아니고 하나님께 대한 순종의 문제이다.
(실제적인 예) 미국의 한 장로님이 미국에서 영주권 취득문제가 빨리 해결되지 않아 불법체류자의 신분으로 전락되었고, 생활고 때문에 발생한 사소한 사건으로 말미암아 조만간 법정에 출두령이 떨어진 상태이셨다. 그런데 조바심 속에서 법정을 갈 때마다 판사가 한 달씩 계속 판결을 미루는 것이었다. 일단 법정에서 집으로 돌아오면, 또다시 다음 달 법정에 설 시간까지 또 조바심을 내면서 기다려야만 하는 것이었다. 이런 상황에서 한 가정의 가장으로서의 책임감과 불안한 환경 때문에 불면증에 시달리고, 식사를 제대로 하지 못하는 상황이었다.
제시카 윤목사님을 통한 하나님의 말씀: 이것은 용서의 문제이다. 그를 온전히 용서하라. 너희가 너희에게 죄지은 자를 용서함같이 나도 너희의 죄를 용서하느니라.
장로님: 제가 그전에 섬기고 봉사하던 교회에서 시무하시던 목사님을 도저히 용서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몇몇 성도들과 같이 그 교회를 나와 버렸어요. 지금은 다른 교회에서 그분들과 같이 봉사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저는 아직도 옛날 그 전의 목사님의 잘못을 용서할 수가 없어요. 용서가 안 됩니다.
예수님: 성도에게서의 용서는 네가 하고 안 하고 하는 선택의 문제가 아니다. 그것은 형제를 용서하라는 나의 계명이다. 너는 그 계명에 순종해야만 한다. 너의 믿음과 관련된 이 문제는 이미 내 앞에서 순종과 불순종의 문제이다.
제시카: 예전에 나와 버렸다는 그 교회의 목사님을 찾아가세요. 당신은 그 목사님의 가슴에 피멍을 드렸습니다. 가셔서 겸손하게 무릎을 꿇으시고, 진정한 사과를 올리고, 오히려 용서를 구하셔야만 합니다.
장로님: 그래서 그 목사님께서 저를 용서를 안 하면 어떻게 합니까?
제시카: 그렇다면 그것은 그 목사님과 하나님과의 문제입니다. 그러나 당신은 그 목사님께 반드시 용서를 구해야 합니다. 용서를 구할 때 힘이 드시면, 그 목사님을 바라보지 마시고, 그 목사님 뒤에 계시는 하나님의 얼굴을 바라보십시오.
장로님: 그것이 주님의 뜻이라면 그렇게 순종하겠습니다.
제시카: 잘 생각하셨어요. 혹시라도 그 목사님께서 용서를 해 주신다고 말씀하시면, 꼭 축복기도를 간청하세요. 그 목사님께서 어떤 축복의 말씀으로 하시든 간에, 그런 반전의 기도는 우리 하나님께서 기뻐 받으십니다. 주님의 이름으로 용서할 수 없는 사람끼리 용서하고, 화목이 이루어질 수 없는 상황에서 화목이 이루어질 때에, 우리 하나님께서는 기뻐하시고, 그런 기도에 응답하시길 주저하지 않으십니다. 속히 응답해 주시길 원하십니다. 살아계신 하나님을 꼭 체험하십시오.
장로님: 잘 알겠습니다. 지금 즉시 그 목사님을 찾아가겠습니다.
제시카: 할렐루야, 우리의 주님께 감사와 영광을 올립니다.
장로님은 정말로 그 목사님을 만나서 진실한 마음으로 용서를 빌었으며, 그 결과로 그다음 주에 있은 법정에서 더 이상 연기되지 않았고, 가벼운 판결을 경험하셨다.
너는 각별히 말을 조심하거라. 무슨 말을 하든지 말을 적게 하고, 보기는 속히 하라. 말을 많이 하면 실수를 면하기 어려우니라. 너는 무엇이든지 내게 물어보고, 나의 인도함을 받아야 한다.
영적인 어두움은 금식하고, 회개하고, 성경의 말씀을 많이 읽으면 쫓아낼 수 있다. 이런 류는 금식 이외에는 방법이 없다.
상담 시 다음을 주의해라.
첫째, 나에게 물어서 정한 상담을 할 시간의 길이를 잘 지켜서 말의 실수를 면하라.
둘째. 상담자들이 원수의 영과 동행하여 와서, 자기는 그 영을 나의 이름으로 쫓아낸 이후에 영의 치유와 자유함을 받고, 쫓겨난 그 영을 남겨두고 갈 수 있다. 상담과 축사의 사역 이전에 반드시 네 집과 가족들, 그리고 네 영에게 너는 기도로서 성령의 전신갑주를 입고, 또 그 자리에 있는 옆 주위의 사람들에게는 나의 보혈의 피로서 보호의 막을 씌워라. 특히 너는 영의 세계가 열려 있으니, 더욱 주의해라. 미리 준비기도하고 스스로에게 성령의 전신갑주를 입히지 않으면 안 된다.
상담 후 너에게 덤비던 그 짐승의 영이 아직 어린 새끼일 때에, 그 속에 자리 잡기 전에, 빨리 쫓아 내거라. 그리고 하나님의 전신 갑주를 입거라.
첫째. 진리의 허리띠를 띠어라.
둘째, 가슴에 의의 흉배를 붙이라.
셋째, 발에는 평화의 복음을 전할 신을 신어라
넷째, 손에는 악한 영의 모든 불화살을 막아낼 믿음의 방패를 들어라.
다섯째, 머리에는 구원의 투구를 쓰라.
여섯째, 하나님의 말씀인 성령의 칼을 쥐어라.
그리고 너와 네 사랑하는 가족들에게 내 보혈의 피를 막으로 덮어라. 나 예수의 피는 어둠과 사망의 영이 비켜간다. 이것을 꼭 명심하라.
오늘날도 자신이 가르치는 대로 행하며 살지 않는 죽은 믿음을 가진 수많은 가짜 목회자들과 삯꾼 목사들에게도 2,000년 전 성경에 일어난 일이 그대로 일어나고 있다. 수많은 가짜 삯꾼들이 성령의 능력은 믿지 않고, 성경의 지식은 있어서, 나 예수의 흉내를 내려다가 오히려 그 귀신들에게 봉변을 당해서, 가정과 삶이 부수어지는 경우도 많으니라. 그러나 나 예수는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다. 2,000년 전의 그때에도 나는 가짜를 사용하지 않았던 것처럼, 2,000년이 지난 지금도 나는 가짜들을 사용하지 않는다.
영안이 열린 자는 인간의 5감 외에 2감을 더 가지고 있다. 하나는 예고(Premonition)의 감각이고 다른 하나는 실현(Realization)의 감각이다. 7감을 가지고, 너는 울리는 호각소리로 예언을 하고, 또한 퍼지는 나팔소리로 미래의 일을 예견할 눈이 있다.
너는 눈에 보이는 것들에 의해서 네 마음을 좌우로 판단하지 말아라. 세상 사람이든, 믿는 사람이든지 간에, 사람은 눈에 보이는 것을 받은 것이 아니면, 다 고마워하지 않는다. 중보기도의 가치를 알지 못한다. 오직 물질과 눈에 보이는 것들에만 익숙해져 있어서, 보이지 않는 세계가 더욱 중요하고, 보이지 않는 세계가 물질세계의 위를 통제하고 지배한다는 것을 알지 못한다. 그래서 내 백성들에게는 나를 아는 지식이 없다. 그들은 양식이 주려서 궁핍한 것이 아니고, 영이 주려서 목이 마르고 결핍하다는 것을 모른다. 그리고 나의 지혜를 구하지 않는다. 모든 일에 자신의 생각과 판단이 앞서서, 내게 인도를 구하지도 않는다. 나의 복음은 멸망을 당하는 사람들에게는 미련한 것 같이 들리나, 구원을 얻을 사람들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으로 들리기 때문이다. 그러나 나는 이 땅에서 그들을 모두 지켜준다. 모두에게 골고루 햇빛을 주고, 단비를 부어준다. 왜냐하면 사람은 잠시 있다가 사라져 버리는 아침의 이슬 같은 존재이기 때문이다. 내가 그들의 무지를 불쌍히 여기고, 긍휼을 베푸는 것이니라.
영이 성숙되기 위해서는 희생의 눈물, 헌신의 눈물, 나의 왕국의 건설을 위해서 흘리는 땀과 노력들이 동반되어야만 한다. 너는 오늘 금식을 하거라. 네 영이 졸지 않고 깨어 있기 위해서, 너에게 꼭 필요하구나.
영적으로 쫓길 때에는, 말씀을 많이 읽어라. 좌우에 날이 선 그 말씀의 검이 있어야만 네가 공격을 할 수 있다. 영의 성장은 시간의 길고 짧음에 있지 않다. 그것은 너의 마음의 선에 대한 결심과, 악은 어떤 모양이라도 제하고 끊어내는 결단에 달려 있단다. 항상 긴장하고, 겸손하며, 오직 그분에게 순종함으로, 모든 영광을 하늘에 계신 우리의 아버지께로만 돌려라. 수많은 무리들이 능력과 기적을 체험하고, 자고 해져서, 시간이 감에 따라 변질이 되어서, 결국 나중은 처음보다 훨씬 부패하고 악하게 되어, 원수가 쓰는 도구로 전락하느니라. 섰다 하는 자는 넘어지고, 교만은 패망의 선봉이 된다.
그들은 내가 핏값 주고 산 내가 사랑하는 백성들이니, 곧 우리의 백성이니라. 그런데 그들은 원수의 영에 속아서, 눌리고 억압받아, 마음속에 미움과 분쟁이 있는 자들, 믿음의 신앙생활에서 기쁨을 잃어버린 자들, 마귀에 시달리는 자들, 염려와 걱정으로 휴식의 밤을 잃은 자들, 버림받고 소외되어 향방을 잃은 자들이 되어있다. 흑암의 세력에 눌린 내 백성들에게 나는 빛이 되고자, 이 세상에 왔느니라.
너는 기도와 말씀 읽기를 게을리하면 안 된다. 너의 검은 기도할 때에 더욱 날쌔어지고 힘을 얻느니라.
네가 어디로 가든지 네가 처음 가는 곳에 묵게 되면, 도착 즉시로 그곳을 위하여 기도를 하거라. 네가 평안을 빌기에 합당한 곳이면, 내가 평안으로 그곳이나 그 집을 축복해 주마. 평안을 빌기에 합당한 곳이 아니면, 네가 빈 그 평안이 도로 돌아서 네 머리로 올 것이니라.
너는 어떤 곳에 도착하든지, 먼저 그 특정한 영의 세력을 파악하여, 내 이름으로 그것을 묶고 다스려야 한다. 그리고 매일 밤 자기 전에, 내게 올리는 기도의 향을 멈추면 안 된다. 모든 제사장들도 나의 단에 아침과 저녁으로 감람유의 등불을 피워서 기도의 향을 올리는 제사를 올렸느니라.
첫째. 어디를 가든지 처음 도착하는 곳에서는 반드시 기도로 그곳을 다스리는 영을 정복하며 다스려라.
둘째, 잠자리에 들기 전에는 반드시 하루를 마무리하는 회개와 그날의 나쁜 영을 내어 쫓는 감사의 기도를 올리므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라. 이 두 가지를 명심하면, 평안한 나그네 길이 될 것이다. 바쁘더라도, 시간을 들여서라도, 반드시 진정과 신령이 실린 기도의 예배를 올려야만 산다. 사람은 떡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의 입으로부터 나오는 말씀으로 산다는 것을 잊지 말거라.
또한 가정예배는 그 가족을 사랑의 한 띠로 묶는 예배이기 때문에, 영적 세계에서는 아주 중요하단다. 강한 힘과 능력을 분출하는 영적인 의미가 있느니라. 한 사람이면 패하거니와, 두 사람이면 능히 당하나니, 삼겹줄은 쉽게 끊어지지 아니하느니라. 교회의 화평과 근원은 각 가정의 화평으로부터 시작되느니라.
수많은 내 백성이 믿음이 연약한 고로, 한 발은 세상에 두고, 나머지 한 발은 나에게 두고 있다. 그들은 너무 많은 것들에 대해서 인식하지 못하고, 두려워하며, 불신하며, 불안해하며, 많은 염려와 공포 속에서 왔다 갔다 하면서 살고 있단다. 그래서 내 마음이 항상 아프구나. 나를 온전히 믿고 사랑하는 자인지, 아니면 믿지도 않고 사랑하지도 못하는 자인지는, 나에게 너무나 중요하다. 그것이 그들의 천국문과 상급에 직결되어 있는 문제이기 때문이다.
가끔씩 마음속에 떠오르는 사람들을 위해서도 기도해 주라. 그들은 그때에 그 기도가 반드시 필요한 사람들이다. 주로 생명에 관계되든지, 영의 불꽃이 꺼져버린 경우든지, 원수가 그 영을 취하여 가기 직전이든지, 등의 절대 위기의 순간에 있는 사람들이다. 그때에는 아무도, 그들을 위해서 기도를 했던 사람도, 기도를 하는 사람도 없는 자들이란다. 그러니 그때에는 무조건 순종하고, 그들을 위해서 기도해 주기를 게을리하지 말라.
네가 어느 장소에 들어서는 순간, 그리스도인 나의 빛이 그곳에 있는 그들의 마음에 비칠 수 있는 그런 사람이 되거라.
나는 사람의 눈과 정반대이다. 나는 사람을 볼 때에 가장 먼저 그 사람의 영이 살아있는지 죽어있는지, 아니면 잠자고 있는지를 먼저 본다. 비록 같이 움직이지 않지만, 잠자는 영은 죽은 영과는 다르단다. 영이 잠자는 자는 생명이 살아 있지만, 영이 죽어 있는 자는 생명이 그 안에 없단다. 나는 그다음에는 마음을 본다. 선한지 악한지는 나에게 중요하지 않다. 그러나 그 마음이 나를 구원의 주로 믿는지 안 믿는지, 그것이 나에게는 아주 중요하다. 그리고 나는 사람의 외모를 보지 않는다. 모두 흙이기 때문이다. 악한지 선한지가 중요하지 않다는 말은 내가 새 마음을 주면 되기 때문이다. 나를 구원의 주로 믿고 그들의 삶에 나를 영접한 자들은, 완전히 새로운 피조물이기 때문에, 내가 새 마음을 준다. 그 새 마음에 모두가 자신의 새 인생에 대한 그림을 나와 같이 손을 포개고 그려 나가는 거란다. 처음에는 자기 스스로가 붓을 잡고 그려대지만, 점점 시간이 갈수록 자신의 손에 힘을 빼고, 나의 손을 의지하기 시작한다. "그는 흥하여야 하겠고, 나는 쇠하여야 하리라"는 세례요한의 고백과 같은 것이다. 그리고 만약 내가 그려주는 인생의 그림이 되기를 원한다면, 내게 순종하는 삶을 살아야 한다. 만약 불순종하면, 네 손에 힘이 들어가서, 내가 원하는 너의 인생을 그릴 수가 없다. 왜냐하면 이 작품은 우리들의 작품이기 때문에, 우리의 두 손이 같이 완성해야 된다. 매 순간 삶의 어떤 결정을 내리기 전에, 나에게 물어보아야 한다.
나는 내 신부가 혼자 있을 때에 항상 마음가짐이나 몸가짐을 깨끗하고 정결하게, 나의 신부답게 살았으면 좋겠구나!
믿음이란 이 세상에서 어떤 곤란이나 어려움, 삶의 곤비한 빗물이 너를 흠뻑 적셔도, 그 구름 위에 있는, 나의 변함없이 따뜻하게 빛나는 나의 사랑을 믿고 신뢰해 주는 그 마음을 말한다.
너는 절대로 숫자에 연연하면 안 된다. 단 한 명이라도 내가 네게 보내는 나의 양 떼들을 먹이고 치고 섬기는 일에 너는 너의 생명을 바쳐서 최선을 다하여야 한다. 마치 네가 그들의 영혼들의 행위록에 있는 기록들의 계산 시에, 그들을 위해 정산할 자처럼, 나의 심장을 가지고, 그들을 섬기고 사랑해 다오. 이것이 네게 아름답고, 그래야 네가 산다.
내가 반드시 오늘도 너와 동행하고, 다시 너의 입에 나의 말을 담아주마. 너는 아무런 염려와 걱정을 떨어 버리고, 그냥 내 말을 선포하라. 내가 너의 목소리에 나의 뜻을 실어줄 것이다.
너는 설교를 준비할 때에, 잡동사니 설교책들을 읽지 말고, 오로지 성경만을 읽고 묵상하고, 무릎 꿇고 하는 많은 기도로, 나의 임재와 성령의 능력만을 바라라.
심장이 멈추는 순간, 사람의 영은 처음 들어왔었던 코를 통하여 빠져나온다. 아버지께서 흙으로 사람을 지으시고 난 이후에, 생기를 그 코에 불어넣으셨다. 그리고 내 아버지의 보좌 앞으로 반드시 누구나 나아와서 무릎을 꿇어야만 한다. 그 누구도 예외는 없다. 에녹과 엘리야만 그냥 올라왔었다. 그러나 그들마저도 나의 때가 오면, 그 생령이 육체에서 빠져나와야 할 때가 온다. 그것은 요한계시록에 갇혀 있는 감추어진 비밀의 때이다. 모든 육신은 흙으로부터 취함을 입었기 때문에 마지막 날에 다 흙으로 돌아간다. 내게 예외는 없다. 나는 모든 것이 완전하다.
각자의 사람은 자기 스스로의 믿음이나마 신실하게 잘 지키다가 내 나라로 왔으면 좋겠구나. 중요한 것은 사람이 만든 교리나 머릿속 지식이 아니고, 나를 사랑하는 그 마음이다. 판단하는 것은 내 아버지의 몫이다. 오직 그분만이 지혜중의 참 지혜시요, 모든 것이 해보다도 밝게 빛나는 영광의 주이시다. 해 아래서 감추인 것이 드러나지 않을 것이 없고, 달 아래에서 숨겨진 것이 나타나지 않을 것이 없느니라. 그분을 찬양하고 그분께만 영광을 돌리는 것이 모든 피조물의 본연의 참 의무이다.
나를 사랑하기 때문에 나를 위해서 흘리는 너의 눈물들이 천국의 눈물병 안에 모여 있단다. 사람의 모든 눈물도 살아있는 생명의 눈물과 죽어서 생명이 없는 눈물이 있다. 살아있는 눈물은 나 때문에 흘리는 모든 성도들의 눈물이고, 죽어있는 눈물은 자신을 위해서 흘리는 모든 육신에 속한 세상 사람들의 눈물이다.
너는 늘 마음과 성품을 다하여 나를 사랑하고 섬겨야 한다. 삶의 우선순위가 바뀌면 향방 없이 달려가는 자가 된다. 그러면 마지막에 도착하는 종착지가 달라진다.
사람이 몇천 명이 있는 교회도 신부는 단 한 명도 없는 교회가 많다. 그러나 열명도 안 되는 작은 교회도 신부가 두세 명 되는 교회도 있느니라. 교회 사람들의 머리 숫자는 신부의 수와 아무런 상관이 없다. 교회에는 반드시 신부가 있어야 하고 교회가 교회다울 때에 가장 찬란하게 빛이 난단다. 그러나 어둡고 불이 꺼진 교회가 얼마나 많은지 모른다. 그런 교회들을 생각하면 내 마음이 답답하구나. 나만 빼고 다 있는 교회가 많다.
교회다운 교회를 알려고 한다면 그 교회의 목사의 영적 상태를 보면 된다. 썩은 나무에 깃들은 살아있는 새는 없다. 양의 꼴이 썩어있는 것을 먹이면, 건강한 양이라도 결국은 다 병이 들게 된다. 너는 교회의 모든 사람들을 다 볼 필요가 없다. 그냥 당회장 목사 한 명의 영만 보면 된다.
가정불화의 목사님과 사모님에게
"너희 부부 둘은 아직 내가 원하는 그 강을 건너가지 못했다. 반드시 건너가야 할 그 언약의 강을 너희들은 오직 바라보기만 한채 서서, 두 발을 강물에 담그지도 못하고 있구나. 축복의 그 땅으로 들어가지도 못하는구나. 내가 축복의 그 땅을 준비하였을 때에는 나는 너희들이 그 땅으로 같이 들어가서 정복하고 다스리길 원했었단다. 그러나 너희들은 함께 한 점인 나를 바라보지 않았고, 서로가 서로의 얼굴에 묻어 있는 허물들을 바라보기에 바빠서, 나를 온전히 찾을 마음도, 열망도 없었구나. 나는 그 사실이 너무나 실망스럽다. 만약 내가 지금 강림한다면, 너희들은 결코 들림을 받지 못한다. 나는 남편이 앞서는 것도 원치 않고, 또 반대로 아내가 앞서는 것도 원치 않는다. 너희들은 함께 나란히 서서 나의 얼굴을 찾아야 한다. 서로의 얼굴을 바라보는 일을 멈추고, 이제는 둘이서 나를 바라보거라. 그리하여야 나를 발견할 수 있단다. 나의 임재가 없는 목회는 아무리 달음박질 하여도 제자리걸음이고, 아무리 교인을 주어 넣더라도, 밑이 빠진 장독에 물을 붓는 것이나 마찬가지란다. 그러니 너희가 일찍 일어나고 늦게 눕는 수고를 하더라도, 그 심은 열매가 익기도 전에 땅에 떨어져 버리는 목회를 하고 있는 것이다. 너희들은 이미 목욕을 한 자이니, 매일 발을 씻는 회개를 하며, 그 이후에 나의 임재를 찾아라. 나를 전심으로 구하라. 그리하면 내가 찾은 바 될 것이다. 나를 전심으로 찾아라. 그리하면 내가 응답할 것이다. 너희 둘은 각자에게 가장 작은 소자라고 생각하라. 가장 작은 소자에게 한 것이 나에게 한 것이고, 가장 작은 소자에게 하지 않은 것이 나에게 하지 않은 것이라는 사실을 명심하거라.
남편목사는 아내를 원망하는 마음을 버리고, 흘기는 눈으로 바라보지 말라. 나는 내 교회를 사기 위해서 내 생명을 버려 나의 피값을 주고 샀었다. 너는 내가 준 네 소시의 짝인 네 아내에게 네 생명을 버려 피값을 주었느냐? 네가 그리하였다면 지금 너의 목회가 성공하였고, 너의 평강이 강물과 같이 흘렀으리라.
사모는 남편을 불평하는 마음을 버려라. 너의 혀의 말이나 생각대로 네 남편을 죽였다면, 수천번의 남편의 목숨이라도 부족하였으리라. 이것이 내게 가증하고, 너는 원수에게 너희 부부 사이에 크나큰 틈새를 주는 기회를 주었느니라.
이제 금식으로 너희들에게 막혀있던 물꼬가 조금 트였다. 너희들의 옛 행실인 더러운 신발을 벗고, 내가 준 복음의 새 신을 신고, 그 강물 안에 너희의 발을 담그라. 그리고 강 건너에 내가 너희들을 위하여 마련한 축복의 땅을 바라보며, 그 강으로 발을 내밀 수 있는 결단을 하여라.
그리하면 내가 반드시 너희들에게 가시와 엉겅퀴를 제거하고, 너희들에게 복을 주며, 약속의 땅으로 인도하리라. 너희의 결단이 필요하다. 반드시 둘이서 손을 잡고 함께 그 강물로 발을 적시거라. 그리고 손을 잡고 함께 건너가라. 이것이 오늘 내가 너희들에게 명하는 축복이고 계명이다."
자신들의 필요한 바를 구하는 금식이 아니고, 오직 나를 사랑하기에 내 얼굴을 찾는 금식이기를 바란다. 그것이 너에게 아름답고 합당한 이유가 될 것이다. 이것이 내 신부가 하는 금식의 참된 이유가 되었으면 한다.
너는 무례한 자들에게 같이 무례한 마음을 품지 말고, 그들을 용서하며, 미소를 돌려주는 너그러운 마음을 가져야 한다. 바깥 환경으로 인해서 네 마음속에 있는 평안과 화평을 잃으면 안 된다. 너는 어떠한 환경에라도, 오직 내 계명을 지키고 나만을 사랑하는 데에만 초점을 두어야 한다. 네가 화가 난 불쾌한 마음을 가짐으로써, 마귀에게 참소할 거리를 주지 말거라.
네 육신이 원하는 것을 하지 않는 것, 이것이 내가 말하는 좁은 길을 걷는 것 중의 하나란다.
과부가 된 집사님에게
"나는 네가 좀 더 넓은 사랑의 마음으로 모든 내 백성을 품는 성도가 되었으면 좋겠구나. 네 주위의 사람들을 좀 더 품어주고, 허물을 덮어주어라. 제자들의 발을 씻기는 그리스도의 마음으로 그들을 섬기라. 나는 네가 나의 성전에 튼튼한 기둥이 되기를 원한다. 네가 여러 교회를 섬기는 것보다, 나는 네가 한 교회에서 그 성전의 기둥이 되어서, 목회자가 있든 없든지 간에, 나와 함께 피값을 주고 산 우리의 교회를 버티고 서 있는, 성전의 기둥이 되어주기를 바란다. 이것이 너에게 있어서 가장 큰 천국의 상급이 될 것이고, 이것이 내가 너에게 주는 너의 사명이다. 그리고 다른 사람이 하는 말과 행동에 시험들 필요가 없다. 항상 입술에 파수꾼을 세워서, 은혜 끼치는 말만 하도록 힘을 쓰라. 네가 끝까지 죽도록 충성할 때에, 마지막 날에 너의 천국문을 입성할 때, 반드시 그 좁은 길 끝에서 내가 너를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믿음의 사람들에게 그들의 삶의 가치관과 습관들이 바뀌는 것이 가장 중요하단다. 그러나 수많은 사람들 중에 나와 참 동행을 하고 있는 자들은 진실로 작은 숫자란다. 나와의 참 동행은, 자신이 가진 모든 것으로부터 자유로워져야 한단다. 돈, 물질, 명예, 중독이나 그 어떤 것으로부터 자유롭게 되어야 한다. 사람이 적신의 발가벗은 몸으로 다시 태어나기 전에는 결코 동행의 시작이 가능할 수가 없다. 이것은 그들의 선택이다. 이 선택이 없이는 나와의 동행은 없다. 오직 모든 것을 내어버린 한 사람과 그리고 나, 둘만이 되었을 때에야 동행이 시작될 수 있는 것이란다. 쟁기를 잡고 뒤를 돌아보는 자는 내 나라에 합당하지 않은 자이다.
우리 주님 되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에는 우리 사람의 머리로는 상상할 수 없는 놀라운 기적의 힘과 능력이 있다. 우리의 믿음과 그분의 이름의 권세가 합쳐지면 반드시 귀신들이나 악한 영들이 쫓겨 나갈 수밖에 없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크리스천이라고 할지라도, 설령 목회자라고 할지라도, 여러 개의 어둠의 성품과 함께 귀신들이 그 속에 살고 있거나, 마귀에게 조종이나 지배를 받고 있다. 그러나 축사가 끝난 사람들의 공통점은 자신들의 머리가 깨끗하고 맑아졌다고 하면서, 몸이 날아갈 것 같다고 한다. 그리고 회개를 한 이후에 주님의 뜻대로 살겠다고 선택과 결단을 하면, 마음이나 성품이 조금씩 바뀌기 시작한다. 귀신이 들어있을 때에는 변화라고는 엄두도 못 내는 일들이었는데, 주님 안에서 삶의 습관들이 결국은 완전히 깨끗하고 새롭게 변화가 된다.
모일 때에는 항상 말을 조심하고, 입을 열 때에는 소금을 고루 치듯이 덕을 끼치는 말만 골라서 하거라.
P.S. 제시카 윤 목사님의 책, "잠근 동산, 덮은 우물, 봉한 샘, 생수의 우물(4권의 책)"은 저에게 큰 울림을 준 생명의 책이며, 영서입니다. 일어판, 영어판도 출간되었다고 합니다. 기회가 되시면 저의 요약이 아니라, 원본으로 읽어보시기를 강력히 추천합니다! 날마다 회개하며, 주님을 뜨겁게 사랑하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