낮아짐을 대하여

by 김해경

"오늘 주일 예배는 잘 드리고 왔니? 리아는 오늘도 그 오빠와 잘 놀았니?"

"엄마, 예배는 잘 드렸어요. 그런데 오늘 리아가 그 오빠에게 환영받지 못한 것 같았어요. 밥 먹는데 갔더니, 그 또래의 다른 남자아이가 있었나 봐요. 리아가 밥 먹다가 갑자기 뛰어와서 '엄마, 안아줘요!' 하더니, 다시 뛰어가더라고요. 마음이 좀 아팠어요."

"아이고, 그런 일이 있었구나! 나도 마음이 아프네!"


리아는 호주에 있는 첫째 딸의 아이로 외국 나이로는 3살 6개월이고, 옛날 한국 나이로 하면 5살 여자아이이다. 오빠라는 아이는 호주의 같은 교회에 다니는 남자아이로 6살, 즉 한국나이로는 8살 되는 아이인 것 같다.


그런데 얼마 전, 리아와 같이 잘 놀던 여자친구가 함께 놀고 있던 다른 여자아이에게

"이제 리아랑 놀지 말자"란 말을 했고, 리아는 큰 충격을 받고 엄마에게 뛰어와, 울면서 이 말을 했다는 것이다.


엄마, 아빠, 그리고 할머니, 할아버지에게 사랑을 듬뿍 받던 이 아이는 거절감이란 새로운 감정을 만나, 자신의 인생이 뒤흔들리는 큰 격동을 겪은 것 같았다.

"그래서 리아에게 어떻게 했니?"

"나도 처음에는 듣고 당황했지만, 리아에게 '친구가 무엇 때문에 그런 말을 했는지 모르지만, 다시 친한 친구 사이가 될 거야. 너무 속상해하지 말고 좀 기다려보자'라고 했어!"


그 일이 있은 후, 그 여자친구가 잠시 한국에 나간 사이, 어린아이 답지 않게 리아에게 잘해주는 6살짜리 오빠에게 리아는 큰 위로와 기쁨을 느끼는 것 같다고 딸이 말해, 나도 한편으로는 마음이 흐뭇하고 기뻤다.


그런데 오늘, 또 사달이 난 것이다. 그 오빠는 또래 친구와 논다고 리아에게 소홀히 한 모양인데, 예전 같지 않은 대우에 리아가 잠시 당황한 것 같았다.

"아이고, 그러면 못 가게 막지 왜 그냥 놔뒀니?"

"엄마, 나는 그래도 리아가 대단한 것 같아. 보통 그러면 아이들이 풀이 죽어 되돌아오는데, 나에게 와서 힘 받고 다시 갔어. 리아도 이제 부정적인 감정에도 대처하는 법을 스스로 알아가도록 해야 할 것 같아! 다양한 감정을 만날 때 슬기롭게 대처하는 아이가 되도록 말이야! 기도밖에 없는 것 같아. 내가 해줄 수 있는 것이 없어. 하나님이 지혜 주셔서, 리아가 스스로 잘 감당하는 사람으로 성장하기를 바라!"


어리디어린 3살짜리 여자아이를 두고, 모녀가 이런 대화를 나누며, 결국 하나님을 의지하는 믿음으로, 기도로 나아가자는 결론에 이르게 된다.


대학교 5년, 고등학교 1년 6개월, 중학교 15년 6개월, 초등학교 2년을 있으면서, 유치원 빼고는 모든 단계를 다 경험했다.


대학교는 일단 편했었다. 그 시간만 가르치면 성적 산출 외에는 별로 신경 쓸 거리가 없었다. 그런데 성적을 제출하는 그 시간이 되면 나는 너무 괴로웠다. 교양영어라는 이 과목은 낙제점수를 받으면 졸업이 안 된다. 학생들과 개인적인 만남이 없으니 개인사정을 알 수 없고, 성적은 객관적으로 산출하면 되지만, 때로는 내가 맡은 과가 전체적으로 영어성적이 부진했어, 어느 정도 성적을 상향조정할 필요가 있을 때도 있었다. 얼마를 올려줘야 할지, 그런데도 기준점에 미달인 학생들은 어떻게 해야 할지, 항상 고민에 고민을 거듭했다. 가르치는 것은 좋은데, 시험성적을 내는 작업이 힘들었던 기억이 생생하다.


고등학교는 대학입시가 코 앞에 있어서, 온 신경이 성적에 가 있다. 잘 가르치기만 하면 된다. 대학입시를 포기한 학생과 대학입시를 준비하는 학생 간의 구별도 뚜렷하다. 그러나 안타까운 것은 대학 입시를 포기한 학생은 나의 영어시간에 자신의 인생시간을 낭비하고 있다는 것이다. 엎드려 있거나 딴짓을 한다. 차라리 자기 계발을 위해 조퇴하고 기술을 배우던지 하면 내 마음이 편할 것인데, 그렇지 않으니, 나는 어떻게 하든 설득해서 영어공부를 시키려고 노력하게 된다.

"ㅇㅇ야, 살아가다 보면 영어는 꼭 필요하단다. 영어공부 좀 해보지 않을래? 너는 선생님이 주는 이 단어만 좀 보면 어떨까?"

그런데 이 아이들은 대학입시를 포기한 것이 아니라 인생전체를 송두리째 포기한 사람처럼, 도대체 의욕이 하나도 없다. 만사가 귀찮다는 태도이다.


그리고 영어시험 문제를 만드는 작업이 장난이 아니다. 예민한 성적과 연관되어 있고, 또 기출문제와 구분이 되어야 하기 때문에, 시험문제를 내는 기간 동안 모든 선생님들이 완전 초긴장하고 있다. 내가 마지막에 있었던 고등학교는 그래도 공부를 좀 하던 학교여서, 시험문제를 내기가 특히 쉽지가 않았다. 그 당시 다른 두 명의 영어선생님에게 나는 많이 의지했고, 내가 별로 도움이 되지 못했던 기억이 있다.


가장 오래 있었던 중학교는 그 중학교가 어디에 위치하고 있느냐에 따라 희비가 갈리는 곳이다. 가장 오래 있었던 중학교는 처음에 갔을 때 '무슨 이런 아이들이 다 있나?' 할 만큼 거친 학생들이 많았다. 영어를 가르치는 것보다 학생지도가 더 힘들었다. 수업시간에 집중하지 않으니 다양한 교수방법을 고민하게 되고, 흥미를 유발하는 방법으로 수업을 이끌어가야 했다. 이런 환경이다 보니, 나 스스로의 수업의 만족도를 높이기 위해, 끊임없이 연구하고 자기 계발을 하게 되어, 지나고 보니 이 학교가 나를 온전한 영어선생으로 만든 학교이기도 했다. 계속 수업을 고민하며 연구하다가, 이 학교에 있으면서 유명교과서의 연구위원이 되었고, 그 교과서의 홈페이지에 나의 수업내용을 올리는 기회를 가지게도 되었다. 그리고 이 중학교에 있으면서, 참 많이 여러 연수를 들으러 열심히 쫓아다닌 기억도 있다. 그 연수들이 나중에 나에게 피가 되고 살이 된 것이다.


그런데 세월이 흐르고, 이 중학교의 주변환경이 변화되었다. 다닥다닥 붙어있던 집들이 우후죽순으로 들어서는 아파트로 변화되면서, 가정환경이 괜찮은 아이들이 들어오게 되고, 학습분위기는 확 달라졌다. 거칠었던 아이들이 온순한 아이들로 바뀌게 되자, 학교에 가는 것이 아주 즐거운 일이 되었었다. (소득 수준이 아이들을 결정하는 것보다, 아무래도 삶의 여유가 있는 부모들의 사랑과 관심이 아이들을 변화시키는 중요한 요인이 아닐까 하고 생각한다.)


그리고 참으로 우연찮게 초등학교에 근무하게 되었다. 초등교사 자격증이 아니라 중등교사 자격증을 가지고 있어서, 나에게 초등학교는 넘사벽이었다. 그런데 이런 행운의 기회를 가지게 된 것이다.


내가 지금 있는 이 초등학교는 중산층의 중, 상 정도 되는 동네에 위치해 있다. 그래서인지 아이들이 너무 잘 훈련되어 있다. 이 초등학교에 와서 내 교육경력 상, 가장 행복한 시간을 보낸 곳이라고 말할 수도 있다. 학원을 열심히 다녀서인지 영어공부를 딱히 못 하는 아이는 별로 없다. (물론 한 학년 전체에 3~5명 정도는 있다) 그리고 구성원인 관리자와 선생님들이 너무 좋으시다. 학교에 오는 매일매일이 행복했다. 오후시간에는 2년 동안 배드민턴을 열심히 배우고 쳤다. 중, 고등학교에 있을 때에는 수업준비에 정신이 하나도 없었는데, 이곳에서는 여유가 있다. '사범대에 가지 말고 차라리 교육대에 갈 걸'하는 후회하는 마음까지도 든 적이 있다.


그런데 딱 한 가지, 학부모들의 간섭이 많다. 나는 담임이 아니어서 그나마 학부모의 전화에 시달린 적이 많지는 않은데, 담임인 경우, 학부모를 잘못 만나면 일 년이 괴로운 시간이 된다.


얼마 전, 학폭이 무위로 끝난 사건이 있었다. 고학년 여자아이들 간의 사건으로, 여러 명이 놀다 보니 고의적이 아니었는데, 한 학생이 따돌림을 받는다고 느꼈고, 학폭으로 교육청에 문제를 제기한 사건이었다. 같이 놀던 학생들은 '아닌 밤중에 홍두깨'격이 된 것이다. 교육청에서 조정위원이 나오는 일이 일어나고, 몇 달간 지루한 감정싸움이 학부모간에, 또 학부모와 선생님 간에 있었다. 담임선생님과 학폭담당 선생님, 그리고 관리자 분들이 많이 고생하셨다.


귀한 내 자식이다 보니, 인간 간의 부정적인 감정에 나와 내 딸처럼 매우 민감하게 되는 것은 당연한 것 같다. 그런데 그 처리방법에서는 사람마다 자신의 가치관에 따라 확연하게 다르다. 부모가 직접 나서서 아이의 상처를 회복시키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대수롭지 않게 무시하는 사람도 있다.


부모가 나서서 문제를 해결하는 경우, 그 아이는 부정적인 감정을 다루는 법을 알지 못한다. 그때마다 부모가 나서야 하는지 의문이 드는 경우이다. 그렇다고 무시하면, 아이는 상처투성이가 되어 자존감이 1도 없는 사람이 되기 쉽다.


여러 가지 감정에 잘 대처하는 마음의 근력을 키우는 방법이 무엇일까? 아이를 격려하면서, 아이 스스로 대처하는 방법을 익히도록 보살펴야 되지 않을까? '아이 스스로'라는 말에 큰 의미가 있다. '아이 스스로'가 되지 않으면 어른이 되어서도 큰 상처를 받고, 심지어 자신의 삶을 마감하는 경우도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성경을 보면, 하나님이 사용하시는 사람은 다 큰 어려움을 겪은 인물들이다. 그러면서 '스스로 자신과 남을 다룰 줄 아는 사람'으로 변화된 경우이다.


야곱은 형을 속인 자신보다 훨씬 더 자신을 속이는 라반에게 20년간 죽을 고생을 하고 난 후, 고향으로 돌아오는 길에 하나님을 만나 자신의 연약한 본성을 벗게 되었고, 요셉은 총애의 대상에서 노예로, 죄수로 떨어지면서, 하나님을 더 의지하고, 약한 자를 이해하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변화되었고, 다윗은 목동에서 갑자기 왕으로 기름 부음을 받은 날로부터 사울왕에게 쫓기며 도망 다니는 신세가 되고, 하나님을 사모하다가, 원수까지 사랑하는 사랑의 사람으로 거듭나게 된다.


나 자신의 약함, 자녀의 약함, 환경의 어려움은 어쩌면 하나님이 나를 다루시는 방법인지도 모른다. 그로 인해 하나님께 가까이 나아가게 되고, 하나님의 만지심으로, 환경을 이기고 자신을 이기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거듭나게 되는 것처럼 말이다.


하나님의 도움 없이는 누구도 변화되지 않는다. 변화된 것같이 보이지만, 환경이 나를 옥죄여올 때면 모든 가면이 벗어지고, 자신의 민낯이 확 드러난다. 그러니 믿음의 사람은 기도하지 않을 수가 없다. 자녀를 위하여, 또 나 자신을 위하여. 좋으신 하나님은 우리의 기도를 들으시고, 움직이신다.


나 자신이, 또 자녀가 낮은 자리에 내려가는 것은 인간적으로는 너무나 힘들다. 그러나 하나님의 시선에서 바라본다면, 하나님을 찾고 만나는 복된 시간이 될 수도 있다. 하나님을 찾는 자에게 하나님은 지혜와 명철을 주시고, 사랑의 마음을 부어 주신다. 모든 것을 넉넉히 이길 수 있는 힘을 주시는 것이다.


"리아야, 힘내! 모든 사람이 너를 좋아하는 것은 아니야. 그건 교만한 마음이야. 오히려 어떤 사람이든지 긍휼히 여기고 품는, 사랑의 마음을 주시려고, 너를 다루시는 거야. 하나님이 너를 사랑하시고, 하나님이 너를 아름다운 하나님의 사람으로 만들어, 너를 사용하실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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