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절이 다가오면 사람마다 잊을 수 없는 장면들이 있으리라 생각된다. 그 장면들이 물론 즐거운 장면이 될 수도 있고, 가슴 아픈 장면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나의 경우에는 돌아가신 엄마가 많이 생각난다.
옛날 어려운 시절에는 추석, 구정이라는 이 큰 대명절에만 새 옷을 얻어 입을 수가 있었다. 동네의 모든 아이들이 그날 밖으로 나와 새 옷 자랑을 하고, 새 옷을 못 얻어 입은 아이들은 그런 아이들을 바라보며, 부러움, 시샘의 감정과 새 옷을 주지 못한 부모님을 향한 원망과 불평의 감정이 서로 뒤엉키는 날이 되곤 했다.
우리 엄마는 바느질 솜씨와 뜨개질 솜씨가 좋으셨다. 그 솜씨가 태생적이었다면, 나에게도 그런 소질이 다분히 유전되었을 것인데, 그렇지 않은 것을 보면, 어려운 환경에 어떤 모양으로든 살아남기 위해서 후천적으로 계발된 솜씨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어쨌든 새 옷을 기대하며 추석과 구정날에 눈을 뜨면, 머리맡에는 언제나 뜨개옷이 놓여 있었다.
"엄마, 제발 뜨개옷 그만! 이 실, 언니가 입던 윗도리 옷이었잖아! 싫어! 나 새 옷 입고 싶단 말이야!"
언니, 오빠 다음으로 막내인 나의 옷은 언제나 언니, 오빠가 입던 뜨개옷을 풀어 뜨거운 김을 쐬어, 실을 다시 소생시킨 후, 밤새도록 엄마의 바쁜 손놀림을 거친 후, 나의 옷으로 재탄생되는 과정을 거쳤다.
지금 생각하면 이 세상에서 하나밖에 없는 옷, 엄마의 정성과 사랑이 가득 담긴 옷이었는데, 어린 마음에는 그 당시 유행하던 나일론 소재의 알록달록한 옷이 그렇게 부러울 수가 없었다.
나이가 들어 내가 시집간 후에도, 엄마는 관절염으로 고생하시면서도, 간혹 뜨개옷을 만들어 나에게 보내셨다. 옷이 귀한 시대가 아니어서, 옷에 대한 갈증이 없는 당시인데도, 엄마는 어린 시절의 옷이 아닌 어른 옷을 만드시느라 더 많은 날들을 고생하셨을 텐데, 그 옷을 받아 든 나는 시큰둥한 반응을 보인 것이 아직도 마음이 많이 아프다. 엄마는 나를 향한 사랑을 그렇게 표현하셨는데, 나는 그 큰 의미를 알지 못했고, 감사하지 못했고, 그 옷을 사랑하지 못했다.
흰머리가 희끗희끗한 지금에야 엄마의 그 사랑이 절절히 다가오니, 나는 참 늦되는 것 같다.
친정부모님 다 돌아가시고, 시댁어르신들 다 돌아가시니, 명절에 딱히 꼭 가봐야 하는 곳이 없어졌다. 물론 형제분들에게 가 뵐 수도 있겠지만, 사람이 모이면 먹어야 하고, 먹이기 위해서는 수고해야 하는 과정을 뻔히 알기에, 찾아뵙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러나 주일날 교회식구들의 점심(2월 15일)을 위해 명절 장을 보러 나섰다. 가까이 마트가 있는데도 불구하고, 좀 떨어진 하나로마트까지 가기로 생각한 것은, 내 잠재의식 속에 북적이는 명절 분위기를 느끼고 싶은 마음이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입구 멀리에서부터 밀리는 차 행렬 속에서 '아이고, 잘못 왔구나!' 하는 후회를 해도, 이미 오도 가도 못하는 처지가 되어 있었다. 겨우 입장해서 주차를 하려는데, 주차공간이 없다. 그런데 한 차가 빠져나오길래 그쪽으로 가려고 하는데, 정리요원이 그쪽으로 돌아가는 것은 역주행이니 다시 나갔다고 들어오라고 한다.
나는 '또 그 지겨운 행렬 속으로 들어가야 하나?' 생각하다가, 하나로에서 운영하는 주유소에 가서 기름을 넣고 오면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마침 눈, 비 때문에 더러워진 차를 세차도 할 겸, 나는 주유소로 차를 돌렸다.
일반적으로 동네 주유소에서 주유를 하면 5만 원 이상일 경우, 세차 할인권을 준다. 우리 동네에는 두 개의 주유소가 있는데, 예전에는 세차장에 사람이 서 있어서, 비눗물을 묻힌 큰 막대걸레로 차 뒷면을 한번 문질러 주고, "오른쪽으로, 왼쪽으로 핸들을 꺾으세요!" 하면서 차가 세차선로 위에 잘 정착되도록 도와주었는데, 두 집 다 세차장 개조를 하더니만 세차장이 정말 달라졌다.
이 두 집 다 "24시간 세차, 영하 30도에도 세차 가능!" 이란 간판을 붙인 무인 세차장이 되었다. 요금도 5만 원 이상 주유 시 주는 세차할인권 가격으로, 8천 원에서 만원으로 올랐다. 그리고 세차하는 모든 과정을 직접 입력하고, 알아서 운전해, 세차장으로 들어가야 한다.
주인은 인건비 절약에 세차비 상승(아마 기계 설치비 때문에 가격 상승이 이루어진 것 같다)으로 이윤창출 구조를 극대화했는지 모르지만, 나는 아무도 도와주는 사람이 없어서 내가 지금 똑바로 세차장에 들어가고 있는지, 항상 불안했다. 그러니 이 하나로주유소는 아직도 옛날 기계를 사용하고 있기 때문에, 안심하며 세차할 수 있다는 마음이 들어 기꺼이 주유하고 세차하고 싶었다.
그런데 차에 기름이 어느 정도 좀 남아있다. 일단 할인금액인 5만 원을 입력하고 주유를 하면서, 차의 순서를 지휘하고 계시는 분에게 물었다.
"오늘(2월 14일 토) 세차할 수 있나요?"
"오늘부터 구정연휴기간 동안 세차 안 합니다."
"아~ 네! 그럼 이 영수증이 있으면 다음에 세차 시 사용할 수 있나요?"
"사용은 가능한데, 오늘 얼마를 주유하셨나요?"
"5만 원요!"
"꽝입니다.(거기 서 계시던 분이 정말 이대로의 표현을 사용했다!) 여기는 6만 원 주유 시 3천 원 할인으로 세차값 5천 원을 내시면 됩니다"
"네?"
주유기를 들고 서 있던 나는 약간 당황했다. 일부러 5만 원을 주유했는데, 지금 4만 5천 원 정도의 기름이 들어가니, 더 이상 기름이 들어가지 않고 기계가 헛돌고 있는 것이 눈에 보이기 때문이다.
겨우 다시 마트로 들어왔다. 주차장이 아니라 길 도로 중앙에 꼬리를 문 주차행렬 제일 뒤의 한 자리에 차를 주차했다. 그런데 마트 앞에 항상 늘어서 있던 카트가 한 대도 없다.
"에고! 이게 또 무슨 일인고?"
마침 어떤 아줌마가 장보기가 끝났는지, 빈 카트를 밀며 오고 있었다.
"아줌마, 이 카트, 저에게 주실래요? 백원 드릴께요. 백 원은 들어있죠?"
"네!"
나는 백 원을 건넸다. 이 하나로마트는 아직도 카트를 사용하는데 백 원 동전을 넣어야 한다.
물건값이 참 많이 올랐다. 쉽게 손이 가지 않는다. 그래도 내일이 명절 앞 날인데, 교회식구들이 맛있게 먹을 먹거리를 준비해야 한다. 마트 안을 이리저리 돌면서 이걸 살까, 저걸 살까, 고르고 있는데 전화가 욌다.
"저 떡집인데요. 왜 찾으러 오지 않으셨어요? 가게 영업이 오늘 끝났습니다."
"네? 12시 넘어서 오라고 하셨잖아요? 저 장 보고 지금 가려고 하는데요?"
"토요일은 3시에 마감합니다. 미리 주문해 놓으셨던 떡도 다른 사람에게 다 팔았어요!" 제가 마감시간을 말하지 않았던가요?"
"아뇨 그런 말씀 없었어요. 그럼 저 어떡해요? 내일 선물을 해야 하는데"
"내일은 정상영업을 하니까, 내일 아침에 오세요"
"몇 시에 가면 되나요?"
"8시부터 시작합니다"
"네, 알겠어요!"
교회식구들에게 떡 한 상자씩을 명절선물로 준비했는데, 분명 예약할 때 그 사람은 마감시간을 말하지 않았다. 아마 너무 바빠서 본인이 말하지 않았는데도 말했다고 착각하는지 모르겠다. 나는 주일날 아침 일찍 떡을 가지러 가야한다는 생각에 조금 힘이 빠졌다.
대충 장을 보고 나오니, 아직도 카트가 없다. 딱 한대가 묶여있는데, 그 카트 뒤에 넣어서 연결해야 백 원을 뺄 수가 있다. 마침 한 사람이 다가오더니, 나의 카트를 기다리고 있다. 그런데 그 사람은 나에게 카트를 달라고 하지 않는다. 그냥 백 원 받고 카트를 인계하면 일이 쉬워지는데, 그 사람은 이상하게도 옆에서 내가 하는 행위를 보고만 있지, 달라고 하지를 않았다.
"철거덕"
"어! 돈이 없네!" 나는 정말 깜짝 놀랐다. 전혀 생각지도 못한 일이 일어난 것이다.
이 마트를 올 때면 꼭 필요한 백 원짜리 동전을 찾아 다시 차 안에 간수해야 하는 또 하나의 숙제가 생긴 것이다.
기분이 그래서인지 집으로 돌아오는 길의 신호등도 내 차 앞에서 자꾸 끊기는 것 같았다. 그래서 약간 기진맥진해서 교회에 도착했다.
교회청소를 하며, 순탄치 못한 오늘 하루 일들을 되돌아보는데, 카트의 백원사건은 나에게 의문이었다. 차림새를 보니 못 사는 사람 같지도 않았고, 또 백 원을 받을 때도 조금도 거리끼는 기색이 없었다. 요즘 초등학생도 별로 대수롭잖게 여기는 그 백 원에게 왜 그 아줌마는 양심을 팔았을까?
오늘의 모든 어그러진 일의 정점에 마치 그 아줌마가 있는 것 같이, 나는 모든 화풀이를 이 양심없는 아줌마에게 하고 싶은 마음이 들기도 했다.
그러다가 번쩍 한 가지 생각이 들었다.
'아! 그 사람도 나처럼 카트를 누군가로부터 넘겨받은 사람일 수 있겠구나. 오늘 하루 종일 붐빈 걸 보니, 누군가 다른 사람이 그 아줌마를 속인 경우일 수도 있겠구나!'
그런 생각이 드니, 오늘 주유소 일, 또 떡집 일, 그리고 이 카트의 일까지 모든 사건이 한 줄로 꿰어졌다.
'나는 세심하지 못하구나. 주유 시 할인권에 대해 물어보지 못한 일, 떡집의 종료시간을 물어보지 못한 일. 카트를 직접 열어 확인하지 못한 일. 이 모든 것이 세심하지 못한 나의 부실함 때문이구나. 또한 엄마의 사랑도 그 당시 깨닫지 못한 것을 명절마다 후회하는 것은 엄마의 마음을 헤아리지 못한 나의 세심하지 못한 마음 때문이었겠구나!'
그래서 나는 이런 결론에 도달했다.
'똑똑한 사람은 세심한 사람이구나. 거꾸로, 세심한 사람은 똑똑한 사람이구나!'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