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생님"
"왜?"
"속에 천불이 나 죽겠어요."
"왜? 만불이 나지 않고? 뭐 때문인데?"
요즈음 상건이와의 전화 통화는 대부분 이렇게 시작된다. '응, 그래, 아이고, 그랬구나.'의 긍정 멘트가 이젠 '상건아 또 시작이구나. 너 언제 좀 바뀔래?' 하는 안타까움으로 인한 역공 멘트로 바뀌었다.
"제가 아는 핸드폰 가게 삼촌이 저보고 일자 무식꾼이라고 말하잖아요. 나참, 기가 막혀서."
"상건아. 너 일자 무식꾼 맞잖아. 너 학교 다닐 때도 책 한 장 넘기지 않았고, 너 요즈음도 드라마만 보잖아. 너 머릿속에 든 거 하나도 없잖아. 너 일자 무식꾼 맞아."
"선생님! 제가 아는 게 얼마나 많은데요. 저 일자 무식꾼 아니에요!"
"아이고, 상건이가 유식한가 보네. 상건아, 제발 드라마만 보지 말고 운동 좀 하고 책 좀 보고해라"
"알겠어요. 선생님"
"다음에 통화하자. 나 지금 수업해야 해."
"네, 선생님"
김상건. 지금 30살. 내가 고등학교에 근무할 때 만나서 14년간 인연을 이어오고 있는 아이이다.
지적장애아로 (이 학교에는 장애인 특수반이 있었으나 상건이는 한 번도 특수반에서 공부한 적이 없고 일반 학생들과 함께 수업을 했다. 즉 이 말은 상건이가 일반학생보다 조금 모자라는 아이이지 완전히 뒤떨어진 아이는 아니라는 의미이다) 주로 교사실에서 선생님들과 노는 아이. 특히 내가 있던 교사실은 체육선생님과 음악, 미술 선생님. 그리고 학생 해외교류담당자인 나와 원어민이 있던 곳이었다. 체육선생님들은 상건이를 친구인 듯 친숙하게 대하면서도 상건이를 약간 놀리는 분위기였는데, 상건이는 이 교사실을 제집 드나들듯이 드나들었다. 그리고 나에게는 늘 사탕을 달라고 한 아이였다.
상건이는 내가 그 학교에서 옮긴 뒤에도 늘 나에게 전화를 했다. 아마 이 아이의 전화번호부에는 딱히 전화를 걸 수 있는 상대가 한정되어 있는 것 같았다. 심지어 어떤 경우에는 하루에 네다섯 통씩 전화를 하는데, 뚜렷한 용건이 있는 것도 아니다.
"선생님, 지금 뭐 해요?"라고 하는 질문을 할 때도 허다했다. 몇 년 전만 해도 '이 바쁜데 이 아이가 왜 이러나'하는 약간의 짜증이 나기도 했었는데, 많은 세월이 흐르고 나도 나이가 들어감에 따라 아무 때나 시도 때도 없이 전화해서 "지금 뭐 해요?"라고 물을 수 있는 상대가 어찌 되었든 나라는 것, 나도 부모님이 모두 돌아가시고 나자 상건이 같이 시도 때도 없이 전화할 수 있는 상대가 점점 줄어들고 있다는 것을 느끼다 보니, 이 아이의 전화가 이제 내 생활에서 양념같이 느껴졌다.
상건이의 유일한 취미는 드라마 보기, 희망은 드라마 작가. 이 아이는 말만 하지, 드라마 작가가 되기 위해 행동으로 옮기는 아이는 절대 아니다. 늘 드라마를 보다 보니 드라마의 대사에 익숙해 있어 말은 차단지 같이 잘한다. 말이 거의 드라마 대사 수준이다. (이 아이는 특히 고부간의 갈등과 같은 가정 드라마를 즐겨 보는 것 같았다. 그래서 사용하는 표현들이 그런 여자들의 대사를 그대로 사용한다. 그리고 이상하게도 상건이가 좋아하는 연예인들이 다 나이가 많은 여자 연예인이다. 아마 그 아이의 이러한 성향도 나에게 꾸준히 전화하는 이유가 되지 않았을까 하고 나는 생각하고 있다. )
이 아이를 통해서 우리나라의 복지제도를 알게 되었다. 청년들의 실업자 수가 날로 증가하는 현실에서도 그 아이는 무풍지대에 살고 있었다. 장애인 고용센터에서 늘 이 아이를 책임지고 일자리를 구해준다. 장애인 고용 센타라는 설립 취지에 맞게 엄청나게 일을 잘하고 있는데, 문제는 이 '김상건'이에게 있다. 이 아이는 한 직장에서 오래 버티지를 못 한다. 길어야 5개월이다. 그리고는 그만두고 드라마만 보면서 집에서 빈둥거린다. 그러면 곧 얼마 있다가 또 고용센터에서 일자리를 구해주고 조금 다니다가 또 그만두고. 이러한 사이클이 반복되다 보니 상건이는 대학병원의 안내원, 병원의 거즈 접기, 병원 식당에서 식기 정리하기, 공장에서 간단한 부품 넣기, 종이봉투 붙이기 등 잡다한 일을 다 해봤다. 상건이는 간단한 일의 직종에서는 경험이 풍부한 아이가 되었다.
상건이는 인간관계에서 꼭 문제가 생긴다. 1~2주는 룰루랄라 하며 잘 다닌다. 그런데 3주 정도 되면 꼭 마음에 들지 않는 사람이 슬그머니 생긴다. 위의 매니저든지, 아님 같이 일하는 선배, 혹은 후배든지, 그 사람이 싫어서 매일이 괴롭고, 그 사람이 미워서 날마다 나에게 전화해서 이런저런 말들을 한다.
"상건아, 너 마음에 꼭 드는 사람들만 이 세상에 있는 것 아니야. 마음에 안 들더라도 그러려니 하고 다녀야 한다. 너 지금 그 직장, 선생님이 보기에는 괜찮은 것 같은데, 또 미운 사람이 생겼구나. 이런 사람, 저런 사람 다 있다. 제발 마음을 넓혀라."
그런데 이런저런 사람들을 받아들일 만큼 마음이 되지 않나 보았다. 며칠 지나지 않아 또 직장에서 나왔다고 전화가 온다.
" 너, 또 어쩌려고 그래?"
"고용센터에서 또 연락 올 거예요."
상건이는 든든한 후견인을 가진, 어떤 의미에서는 직장에 대한 걱정이 없는 마음 편한 아이일 수 있다.
"선생님, 저, 모텔에 이틀 동안 감금되어 있었어요."
며칠 동안 전화가 뜸하더니 또 이게 무슨 소리인가?
"무슨 일이냐? 왜?"
"동네의 동생 친구들이 저를 모텔에 감금했어요."
"왜? 무엇 때문에? 왜 따라갔어?
"돈 많이 벌게 해 준다고 했어요. 그런데 내 핸드폰을 빼았어요."
"너 거기서 어떻게 나왔어?"
"엄마가 경찰서에 신고하고, 동생이 여기저기 알아보다가 여기에 있는 것을 알게 되었대요."
"아이고 상건아. 너 멸치잡이 배에 끌려갈 뻔했다. 무슨 돈 욕심이 그렇게 많아? 앞으로 절대 누구든지 따라가면 안 된다."
"네, 선생님"
상건이는 돈 욕심이 많다. 그리고 드라마를 늘 보다 보니 최신 핸드폰에 엄청난 관심이 많다. 돈이 생기면 하는 유일한 행위가 최신 핸드폰으로 바꾸기와 강화도에 있는 드라마 세트장(백 년의 유산) 방문이다.(납치될 당시에도 최신 핸드폰을 가지고 있었다) 그 동네의 나쁜 고등학생들이 돈 많이 벌게 해 주겠다고 하면서 청년 김상건이를 납치해서 모텔에 가둔 것이다. 상건이의 핸드폰을 뺏고, 또 돈을 빌리는데 상건이의 명의로 사용해서 거의 300만 원 정도의 빚을 지게 되었다고 한다. (그 일로 상건이의 엄마는 신경을 많이 써서 병원에 입원하셨다.)
은희는 중학교에서 만난 아이이다. 중1 첫 영어시험에서 전교에서 유일하게 0점을 받은 아이이다. 친구도 거의 없다. 자연히 나 혼자 있는 어학실에 자주 놀러 왔다. 그런데 은희는 영어를 좋아했고 또 내 말을 잘 따랐다. 늘 어학실에 오면 영어 표현을 이것저것 물었고 이를 또한 암기하려고 노력했다. (은희도 상건이 처럼 또래 학생들과 친하기보다 선생님들을 더 많이 찾아다녔다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중3 졸업할 때에는 은희의 영어 수준이 보통 수준까지 올라가서, 지금까지 내가 가르친 학생들 중에서 가장 기적의 학생이라고 생각되었다. 실업계의 특성화고로 진학한 은희는 중간고사, 기말고사를 치르고 나면 꼭 전화해서 영어점수를 알려주곤 했는데, 점수가 70~80점대로 괜찮은 수준이었다. 그리고 고등학교에서는 친구도 어느 정도 잘 사귀는 것 같았다.
은희가 고3이었을 때에 전화를 했다.
"선생님, 지적 장애가 무슨 말인가요?"
"왜, 은희야?"
"학교에서 검사를 했는데 담임선생님이 저를 불러서 지적 장애로 결과가 나왔다고 했어요."
"뭐라고? 지적장애라고? 은희야, 그런 말 신경 쓸 것 없어. 너 지금 잘하고 있어. 그냥 이대로 쭉 하면 돼"
"알겠어요, 선생님"
은희는 바리스타가 되는 직업전문학교로 진학을 했다. 그런데 첫 3월이 조금 지나 전화가 왔다.
"선생님. 저 영어시험에서 전체 학생의 1% 안에 들었다고 교수님이 칭찬해 주셨어요."
" 와~ 은희, 너 대단하다. 너 정말 잘하고 있어!!"
은희가 얼마 전에 전화를 했다.
"선생님, 저 기쁜 소식이 있어요."
"응? 무슨 일이지?"
"저 경기도 바리스타 대회에서 1등 했어요."
"와~ 은희가 대단하네. 너 정말 축하한다. 대단하다!!"
"선생님, 사진 보내드릴게요. 이제 전국대회 준비를 해야 해요."
"그래. 잘할 거야. 힘내!"
"교수님이 일자리도 알아봐 주신데요."
"그래, 정말 좋은 일이다. 축하, 축하. 은희야"
"선생님. 제가 나중에 취직하면 꼭 커피 드시러 오세요. 맛있게 만들어 드릴게요."
"고맙다, 은희야. 그런데 선생님이 커피를 못 마신단다. 잠이 안 와서."
"그래요? 그럼 다른 것 만들어 드릴게요, 선생님."
"그래, 고마워, 은희야."
카톡으로 네 장의 사진이 들어왔다. 은희는 메달을 목에 걸고 상장과 꽃다발을 들고 2,3등 가운데서 당당히 서 있다.(사진을 자세히 보니 "2021년도 수도권 발달장애인 기능 경기대회-금상 50만 원"이라고 적혀 있다 )
상건이와 은희는 아주 비슷한 지적 수준이다. 그런데 두 아이의 현실의 삶은 왜 이렇게 다를까?
상건이는 늘 제공해 주는 직업 현실의 장에서 사람이라는 장애물을 뛰어넘지 못하고 있다. 삶이 다람쥐 쳇바퀴 돌듯이 똑같은 사이클을 되풀이하면서 세월을 보내고 있다. 반면에 은희는 계속 발전하고 있고 삶의 지경을 넓혀가고 있다.
상건이의 전화통화와 은희의 전화통화 중 유일하게 다른 점 하나는 나와 은희의 대화 중에서는 꼭 하나님을 높인다는 사실이다. 은희네 가족도 다 예수님을 믿는 크리스천 가정이다. 그래서 은희와 통화할 때는 꼭 은희가 먼저 하든 혹은 내가 먼저 하든 "와~ 정말 하나님의 은혜이다. 하나님이 너에게 지혜와 명철을 주시는구나."라고 말하면서 서로 공감한다는 것이다.
골로새서 2장 3절에 "그리스도 안에는 지혜와 지식의 모든 보화가 감추어져 있느니라"라고 되어 있다.
이 말씀을 실감한 적이 있다. 아주 오래전 시골에 있을 때, 새벽기도 하시는 85세 정도의 할머니가 한 분 계셨는데, 성경구절은 줄줄 읽으시는데 막상 다른 한글은 전혀 읽지 못하시는 것이었다. 아마 교회를 오래 다니셔서 성경을 줄줄 외워서 그런 것 아니냐고 할지 몰라도, 사실은 그렇지도 않았다. 그런데 교회에서 예배드릴 때는 그 성경구절이 자신도 모르게 알게 된다는 것이었다. 정말 그 당시 할머니는 교회 사람들 간의 신비였다.
지금 되돌아보면 나도 내 두 딸에게 한 유일한 도움은 저녁에 자기 전 성경을 읽어주고, 아침에 학교에 갈 때에 두 딸을 안고 기도해 준 것이 전부라고 할 수 있다. 두 딸을 키울 때, 경제적인 여유가 별로 없어서 뒷받침을 잘해주지 못했다. 두 딸이 남편과 나에게 많이 한 말 중 하나가 "엄마, 아빠는 우리가 컸는데 별로 해 준 것이 없어요. 하나님이 우리를 키웠어요."이다. 맞는 말이다. 나의 두 딸을 보면서도 이 성경구절을 한번 더 생각해 본 적이 있다.
지혜와 지식! 모든 사람들이 추구하는 바이다. 그러나 지혜로운 사람이 많지 않고 지식이 풍성한 사람도 많지 않다. 보통 사람들보다 2~3배만 뛰어나도 우리는 그를 대단한 사람으로 여긴다. 그런데 다니엘은 당대의 사람들보다 10배나 뛰어났다고 기술되어 있다.
"왕이 그들에게 모든 일을 묻는 중에 그 지혜와 총명이 온 나라의 박수(왕의 조언자, 즉 박사)와 술객보다 십배나 나은 줄을 아느니라(다니엘서 1장 20절)"
"따르릉"
상건이가 또 전화를 한다.
상건이를 생각하면서, 또 나의 남은 삶 동안 살아가는데 꼭 필요한 지혜와 총명을 생각하면서, 상건이에게도 이 지혜와 총명이 부어져 그 아이의 삶의 쳇바퀴가 깨드려 지기를, 또한 나도 남은 삶을 지혜롭게, 총명하게 살아갈 수 있기를 간절히 기원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