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남에 대하여
"나에게 말 시키지 마세요. 지금부터 집중해서 공부해야 해요."
남편에게 이렇게 말하고 나서, 나는 책상 앞에 앉는다.
책상 앞에 앉기까지가 힘이 든다.
'오늘 갑자기 약속이 있다고 메시지를 보내고 하루 쉴가?'라는 생각이 계속 머릿속에서 꿈틀대고 있으니, 마음은 갈피를 잡지 못하고, 자연히 행동은 딴짓을 하게 된다.
'지불한 수업료가 얼만데, 안되지 안돼'
지불한 수업료가 아까워 마음을 다잡고 수업 준비를 한다. 그러면서 '이번 달만 하고 이제 스트레스받지 말고 끝내야겠다'라는 생각을 한다.
그러나 수업료를 지불할 시기가 되면, 요즈음 세실 선생님은 이렇게 말한다.
"It's time to pay for the tuition. By the way, could you give me two months' worth? This is helpful to me. (수업료를 지불할 시기가 되었어요. 그런데 두 달치, 즉 다음 달 치를 함께 주시겠어요? 이것이 제게 도움이 되어요.)"
얼마 전에 남편을 심장병으로 잃고, 세 아이의 엄마로 그들의 부양을 책임지고 있는 세실 선생님. 오로지 한국사람들에게 영어회화를 가르쳐서 큰 딸을 의과대학에 보내었고, 중학생인 둘째 딸과 초등학생인 막내아들의 교육과 생계를 책임져야 하는 필리핀 영어 선생님. 수업 도중 하는 대화에서 자신의 아버지가 미국에서 일해서 자신과 형제들을 대학에 보내었다는 사실을 아주 자랑스러워하는 세실 선생님. 그래서인지 그녀의 발음은 미국식 영어와 많이 닮아 있는 세실 선생님.(옆에서 발음만 들은 남편은 미국 사람인 줄 알았다고 했다) 그러나 연이어 있는 스케줄 때문에 피곤에 지쳐있는 그녀는 간혹 수업시간에 꾸벅꾸벅 졸기도 한다. 그럴 때면 세실 선생님과 학생인 나의 위치가 뒤바뀌는 순간이 되고, 나는 그녀가 조금이라도 쉴 수 있도록 내가 교재와 질문을 다 읽고 내가 다 대답을 말한다. 그러면 그녀는 순간순간 눈을 뜨고 "Good job!"이나 " Right!"를 외친다. 나는 그녀의 눈꺼풀에 얹힌 삶의 무게를 안타까운 마음으로 바라보면서, 수업시간에 조는 나의 학생들을 이해하려고 노력한다. (그런데 나의 학생들은 컴퓨터 게임을 하느라고 날밤을 쇠는 것 같다)그래서 차마 목구멍까지 올라온 "그만두겠다"는 말을 꿀꺽 삼키게 된다. 그렇게 목이 꿰어 세실 선생님과 수업을 한 지 1년 5개월이 지났다
세실 선생님을 힘들게 하지 않으려면 내가 수업 준비를 철저히 해야 한다. 25분 말하기 수업을 위해서 거의 1시간 30분을 준비해야 막힘없이 술술 말할 수가 있다. 그러니 학교에서 퇴근하고 오자마자 급히 저녁을 먹고, 수업 준비를 한다. 8시에 시작하여 25분간의 말하기 수업을 끝내고 나면 거의 8시 30분! 나는 날아갈 것 같은 기분이 되고, 이때부터 진정한 자유의 시간을 누리게 된다. 야~호!
코로나가 시작되기 전까지 매 일요일(주일) 오후마다 노인 요양 병원을 방문했다. 병실을 다니면서 할머니, 할아버지와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며, 격려할 분은 격려하고, 위로할 분은 위로를 드렸다. 그 8년이라는 기간 동안 참으로 많은 분들을 만났다. 한국 최고의 기업에서 높은 자리에 계셨던 분도 세월과 병마 앞에서는 아주 초라한 모습으로 죽음을 기다리고 있는 나날들을 볼 때, 명예도 부도 스쳐 지나가는 옷자락임을 보았다. 잠시 내가 걸쳐던 옷, 입었을 당시에는 화려해 보이고 대단해 보이지만 반드시 벗어야만 하는 유통기한이 있는 그 옷을 그분은 입으셨다고 병간호를 하는 그의 부인이 말해주지 않았다면, 일자 무식꾼도, 시장잡배도, 누구나 입는 똑같은 환자복을 입은 모습으로는 그가 화려한 비단옷 자락을 걸쳤던 분인지를 도무지 가늠할 수가 없었다. 오히려 비단옷 자락의 그 부드러운 촉감을 잊지 못해 그분은 약간의 우울증까지 겪고 계신 상태였다.
한 할머니는 자식 자랑이 대단하신 분이셨다. 한 아들은 미국에서 교수이고, 한 아들은 파리에서 교수를 하고 있다고 늘 자랑하셨다. 아주 잘 키운 아들들인데 너무 멀리 있어, 옆 침대 할머니의 농사짓는 아들보다 아들 노릇을 잘하지 못했다. 옆 침대 할머니의 아들은 수시로 먹을 것을 들고 찾아와 그 할머니를 기쁘게 했다. 이 할머니가 아들 자랑을 할 때면, 옆 침대의 할머니는 입을 꾹 다물고 계시다가, 아들이 찾아와 음식 보따리를 할머니 앞에 풀어놓을 때면 얼굴 만면에 함빡 웃음을 띄시면서 흐뭇해하셨다. 나는 이 모습을 바라보면서 '그래서 인생은 공평하다고 하는구나'라는 생각을 했다. 자식 자랑하시는 할머니는 오랫동안 그 잘난 아들들로 인해 많은 사람들의 부러움과 질시를 받았고, 이제 가난한 환경 때문인지 아님 애초에 공부에 관심이 없었든지 간에 농사를 짓는 아들에 대해 그동안 자랑하지 못했던 이 할머니가 이제는 그 병실 안에서 가장 부러움의 대상이 되는 것을 보았다.
9월 1일(수요일) 2차 코로나 백신 주사를 맞고 다음날(9월 2일 목요일) 재택근무와 단축수업으로 1시 15분에 모든 수업이 끝난 후, 나는 오후 한나절 내내 침대에 누워있어야만 했다. 온몸이 욱신거려서 움직이는 것 자체가 귀찮고 성가셨다. 책을 읽을 수도, 컴퓨터로 글을 쓸 수도, 집안일을 할 수도 없는 상황이라 오직 이런저런 생각을 하며 시간을 보내었다.(집에 TV가 없고, 유튜브 보는 것을 즐겨하지 않아 생각 외에는 마땅히 시간 보낼 거리가 없었다)
그런데 여러 생각 가운데서 그날 저녁 아프다고 취소한 세실 선생님의 영어회화 수업이 생각났다. 나는 세실 선생님에게 나 자신이 약간의 도움을 주고 있다고 생각했다. (경제적 + 전혀 가르칠 필요 없이 꼬박꼬박 준비를 잘하는 학생인 나) 그러나 생각하면 할수록 세실 선생님보다 내가 보는 이득이 더 많은 것 같았다. 수업료 때문이든 아니든 간에 꼬박꼬박 준비하는 과정에서 늘어난 나의 영어실력과 자신감. 그리고 영어 활용 능력이 녹슬지 않도록 늘 기름칠을 하고 있는 나 자신이 대견해졌다. 만약 이 공부가 공짜였다면 나는 일찌감치 그만두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까지 들었다. 또한 세실 선생님이 늘 피곤해서 세세히 말해주지 않음으로 인해 내가 그 부분까지 다 찾고 준비함으로 오히려 덕이 되면 되었지 전혀 손해 될 것은 없다는 생각도 든 것이다.
또한 요양병원 방문도 나는 아주 큰 봉사활동을 하고 있다고 예전에는 생각했었다. 그러나 지금 그곳을 방문하지 못하는 상황에서 그 시절을 되새겨 보니, 나는 그때 인생에 대해 많은 것을 생각했고, 그분들의 삶에서 많은 것을 배웠다는 생각이 든다. 그분들에게 작은 간식과 대화 상대라고 하는 것을 주고 살아가는 것이 무엇인지를 생각하는 기회를 받은, 되로 주고 말로 받은 소중한 경험이라는 생각이 든 것이다.
그래서 모든 만남에는 이유가 있고, 그 만남을 어떤 시선에서 바라보느냐에 따라 내 인생에 살과 뼈가 될 수도 있는 것이다.
누구나 알고 있는 소크라테스의 아내, 크산티페를 그 예로 들고 싶다.
늘 무언가를 생각하며 제자들과 이야기를 나누는 소크라테스에게 불만이 많았던 그녀가 하루는 너무 화가 나서 마구 소리를 지르며 물 한바가지를 들고 나와 소크라테스의 머리 위에 붓자
'번개가 치고 천둥이 울리면 비가 오는 법이지'라고 하면서 주위의 놀란 제자들과는 아랑곳없이 대수롭잖게 여기는 소크라테스. 꼭 결혼을 해야 하느냐고 묻는 제자들에게 '결혼은 꼭 해야 되고, 좋은 아내를 얻으면 행복할 것이고 나쁜 아내를 얻으면 자신처럼 철학자가 될 것'이라고 말하는 소크라테스. 나쁜 아내와 헤어지면 되지 않느냐고 묻는 제자들에게 '그런 아내와 잘 살 수 있다면 세상 누구와도 잘 지낼 수 있다'라고 말하는 소크라테스는 진정으로 만남을 그 자신의 뼈와 살로 만든 케이스가 아닌가 생각된다.
물론 어떤 만남보다 나에게 뼈가 되고 살이 된 만남은 예수님과의 만남이지만, 오랜 세월 살아오면서 만난 무수한 사람들과의 만남도 또한 나에게 뼈가 되고 살이 되었음에 오늘 그들에게 감사한 마음을 전하고 싶다.
모든 행동을 멈추고 꼼짝없이 가만히 있어야만 하는, 무행동의 순간도 간혹은 필요하다는 생각이 든다. 생각의 실타래를 풀 수 있는 시간으로 인해 내 삶의 속살은 좀 더 우윳빛을 띄게 되었다고 생각되기 때문이다.
가을 문턱에서 풀어낸 실타래로 겨울을 대비하는 따뜻한 마음 옷을 짜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