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를 처음 만난 시점은 나와 남편이 결혼하고 나서 3년 살던 시 지역에서 군 지역으로 옮긴 곳에서였다.
그곳은 사과농사가 주된 소득원인 곳으로, 5일마다 장이 섰으며, 몇몇 상점이 서 있는 짧은 거리가 그 지역의 중앙통으로 시까지 나가 볼일을 보지 않으려면 그곳에서 모든 필요를 채워야 하는 지역이다. 그 당시 3살, 5살인 나의 두 딸은 그곳에서 봄이면 돋아나는 새싹을 보고, 여름이면 강가에 나가고, 가을이면 사과를 맛보고, 겨울에는 눈을 뭉치는 시간을 보내었다. 특히 5살이던 첫째 딸은 등에 작은 가방을 메고 그 중앙통을 쉼 없이 돌아다녀서 그 지역의 모든 사람들이 첫째 딸을 알아보는 유명 인사(?)이기도 했다. 그때 그녀도 3명의 아이들의 손을 잡고 거리를 쏘다녀서 나름 알려진 인물이었다. 자연스럽게 교제가 시작되었고 그녀의 사정을 알게 되었다. 제일 작은 남자아이는 그녀의 아들이고, 다른 두 아이, 즉 제일 큰 여자아이와 그다음의 남자아이는 이혼한 시숙(남편의 형님)이 부모님에게 맡긴 조카들이었다. 그녀의 남편은 그곳에서 조금 떨어진 시로 나가 돈을 벌고 있었고, 남편 없는 시댁에서 중풍 든 시어머니를 3년 수발한 후 장례를 치르고, 시아버지와 두 명의 조카, 자신의 아들을 건사하고 있었다. 나보다 두세 살이 어린 그녀가 정말 나에게는 대단한 인물로 보였다. 저 어린 나이에 어찌 저런 대단한 일을 생색내지 않고 즐겁고 기쁘게 할 수 있는지, 나에게는 신비한 존재였다. 그녀는 늘 웃는 얼굴이었고 남을 돕고자 했으며, 토요일에는 심지어 산으로 들로 나가 한아름 꽃을 꺾어 교회의 꽃병을 장식했다. 그리고 저녁예배 시 교회의 반주자가 없을 경우 더듬거리면서도 기꺼이 반주로 예배를 섬겼다.
지금은 사진보다 오히려 비디오로 결혼을 기념하는 것이 일반적이지만, 그때는 대문짝만 한 결혼사진을 방에 걸어놓는 것이 아주 당연한 때였다.
"결혼사진이 너무 보기 좋아요."
"그래요? 큰 액자로 만들어 주길래 안 걸어 둘 수도 없고, 오히려 걸어두는 것이 안 걸거적 거려서 좋네요."
"저도 저런 결혼사진이 있다면 좋겠어요."
"네? 그럼 아직 정식으로 결혼을 하지 않았나요? "
정식으로 결혼도 하지 않은 시댁에 와서 저렇게 시어른과 조카를 섬기고 있다니, 놀라운 일이었다.
남편에게 그녀의 이야기를 하니, 남편도 놀라워하며 정식으로 결혼식을 치를 어떤 방법이 없을까를 고민하게 되었다.
온 교회 사람들이 힘을 모아 조촐한 결혼식을 준비했다. 집에 있는 여러 가지 물건들을 가져오고, 음식을 만들고, 교회를 장식하며 모두 힘을 보태었다. 우리는 우리의 약혼반지를 그들에게 양도함으로 결혼식의 모든 구색을 갖추게 되었다. 결혼사진을 찍으면서 신랑과 함께 함박 웃는 그녀의 모습은 정말 아름다웠다. 그녀 곁에 선 아들까지도 결혼의 의미를 더욱 부각하는 아름다운 사랑의 열매로 당당히 빛나 보였다.
그러고 나서 곧 남편과 나는 서울로 올라오게 되었고, 그녀와의 소식은 끊어지게 되었다.
그런데 어느 날 새벽기도를 하는 중에 내가 만난 많은 사람들 가운데서 정말 가장 아름다운 사람이 누구인지를 생각하는 마음을 주셨는데, 그 옛날의 그녀가 불쑥 떠올랐다.
여기저기 수소문하여 그녀의 연락처를 알게 되었고, 드디어 전화연결이 되었다.
"정말 오래간만이에요. 잘 지내고 계시나요?"
"아이고, 정말 반갑습니다. 한번 연락을 드리려고 했는데, 먼저 연락을 주셨네요. 잘 지내셨나요?"
그녀와 거의 30여 년간의 세월의 공백 기간에 있었던 일들을 나누게 되었다.
우리가 그 지역을 떠난 후, 그녀는 남편과 더 시골 지역으로 들어가 살게 되었으며, 우연한 기회로 초등학교의 방과 후 피아노 선생님으로 거의 20여 년 가까이 학생들을 섬겼다고 한다.
그녀는 산골짜기 중의 산골짜기인 그 동네에 있는 아이들이 안타까워 무료로 자신이 조금 가진 재능인 피아노를 가르치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런데 어느 날 마을에 있는 초등학교에서 전화가 왔다고 한다.
"저 선생님, 저희 학교 방과 후 교사로 학생들에게 피아노를 좀 가르쳐 주실 수 있으신가요?"
"네? 무슨 말씀이신가요?"
"시에서 들어오신 피아노 선생님이 오늘 하루 수업을 하셨는데, 갑자기 사정이 생겨 못 오시게 되었다고 연락이 왔습니다. 갑자기 교사를 구할 수도 없고. 그래서 수소문 해 보니 지금 동네에서 무료로 아이들에게 피아노를 가르쳐 주고 계신다면서요? 학교의 방과 후 교사로 좀 일해주셨으면 해서 전화를 드립니다."
"저, 자격이 될지 모르겠네요"
"일단 내일 학교로 와 주시기를 부탁드립니다."
교장선생님을 만난 그녀는 고등학교 졸업자임을 말씀드렸다고 한다. 그러자 교장선생님께서는 일단 방과 후 프로그램이 조직되었으니 먼저 수업을 맡아주시고, 빨리 대학교 자격증을 땄으면 좋겠다는 말씀을 하셨다고 한다. 그래서 그녀는 얼떨결에 온라인과 오프라인이 결합된 형태의 음악대학에 입학하여 몇 년 후 학위를 받게 되었고, 그런 와중에 옆의 다른 초등학교에서도 오카리나 수업을 맡아 재미있게 수업을 하게 되었다고 한다.
그녀는 학부모 봉사단원으로, 방과 후 강사로 바쁜 삶을 살았으며, 지금은 지역 노인들을 직접 찾아가 돌보는 사회복지사의 삶을 기쁘게 살고 있다고 했다. 그곳에 가서 낳은 또 한 명의 아들과 내가 기억하고 있는 그녀의 첫째 아들은 모두 우수한 대학을 졸업하고, 첫째 아들은 사회인으로, 둘째 아들은 군대에서, 지금 자신의 역량을 마음껏 발휘하고 있으며, 두 조카도 잘 성장하였다고 했다. 그리고 지금은 그 산골동네의 섬김이로 모든 사람들의 사랑을 받고 있는 행복한 사람이라고 자신을 소개했다.
그녀가 며칠 전, 우리 집을 방문했다.
첫째 아들을 결혼시키고 아들 집을 방문하면서, 남편과 함께 우리 집에도 들렀다. 30년여 년이 지났는데도 그녀는 온화한 자태를 간직하고 있었다. 웃으면서 내민 상자 속에는 그 옛날 그녀의 결혼식에서 단단히 한몫을 한 나의 약혼반지가 고이 간직되어 있다고 했다.
"아니, 아직도 이 반지를 간직하고 계셨나요? 우린 전혀 생각도 나지 않았는데"
" 네, 이 소중한 반지를 언젠가 되돌려 드려야겠다고 생각하고 잘 간직하고 있었어요."
"완전히 드린 것이니까, 필요하시면 계속하셔도 되어요."
"지금 좋은 반지를 가지고 있답니다. 이제 본 주인에게로 돌려드려야죠."
"아이고, 이렇게 고마울 수가. 고맙습니다. 잘 받을게요."
그리고 상자 뚜껑을 연 순간
" 앗! 이럴 수가!"
나이가 드니까, 나도 이제 반지 하나쯤은 필요하지 않나 생각하던 요즈음이었다. (결혼반지는 또 다른 연유로 다른 사람에게 흘러가게 되었다) 그런데 비싸고 좋은 반지가 아니라 내가 예수님을 믿고 있다는 표시를 은근히 우리 학생들에게 보여줄 수 있는 반지나 목걸이가 필요했다. 즉 십자가 표시가 있는 반지나 목걸이가 필요했던 것이다. 그런데 하도 오랜 세월이 지나서 나의 약혼반지가 어떤 모양인지 기억도 나지 않았다. 받아 든 상자를 여는 순간 나는 깜짝 놀랐다. 바로 내가 원하던 그런 반지였다. 그걸 어떻게 아시고 이 반지를 다시 나에게 보내셨는지, 내심 정말 신기했다.
요즈음 나는 이 반지를 열심히 착용하고 있다. 귀한 사연을 간직한 반지, 아름다운 그녀와 오랜 세월을 같이한 반지, 그래서 더욱 아름답게 보이는 이 반지가 나는 요즈음 너무 좋다. 그리고 가장 적절할 때 나에게 다시 보내주신 하나님이 너무 멋지시다!
여기 시 한 편을 소개한다.
"값진 삶을 살고 싶다면"
-프리드리히 니체-
그대가 값진 삶을 살고 싶다면
날마다 아침에 눈뜨는 순간
이렇게 생각하라
'오늘은 단 한 사람을 위해서도 좋으니
누군가 기뻐할 만한 일을 하고 싶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