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oices in the classroom

(교실의 목소리들)

by 김해경

Voices in the park(Anthony Brown)이란 작품이 있다. 공원이라는 같은 공간, 같은 시간대에 네 명의 사람이 등장한다. 고릴라 아줌마와 그녀의 아들 Charles(찰스), 고릴라 아저씨와 그의 딸 Smurdge(스머쥐), 그리고 각 집의 개 두 마리가 등장하는 이야기이다. 아줌마는 권위적이며, 다른 사람들은 다 하찮은 존재이고, 자신이 항상 옳다고 생각하는 인물이다. 경제적으로 부유해서 그녀의 개도 족보가 있는 개다. 그녀의 아들 Charles는 엄마의 권위에 눌러서 항상 힘이 없고 의기소침하고 약간 우울하다. 친구도 없다. 엄마와 아들, 그리고 개가 공원으로 산책 가는 장면을 보면 엄마와 개는 돋보이는데 아들은 보일락 말락 한 모습으로 그려져 있다. 이 장면은 그 집안에서 아들의 존재감이 어떠한지를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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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 있던 아들이 사라지자 아들을 부르는 그녀의 말투는

"Charles, come here. At once!"(찰스, 이리 와. 즉시!)

그러나 개를 부르는 그녀는 이렇게 말한다.

"And come here please, Victoria."(그리고 이리로 오려무나, 빅토리아)

아들과 개를 부르는 방식이 바뀐 모습이다.


고릴라 아저씨는 지금 실직 상태이다. 딸 Smurdge와 개를 데리고 공원으로 산책을 나간다. 이 가정은 경제적으로 빈궁하지만, 딸은 그늘 없이 명랑하고 쾌활하여 아빠의 처진 기분을 위로해 드리고 그의 기분을 회복시켜 드린다.


내용에서 자녀와 개를 지칭하는 순서를 보면

고릴라 아저씨는

"I need to get out of the house, so me and Smurdge took the dog to the park"(나는 밖으로 나갈 필요가 있다:실직해서 오랫동안 밖으로 나가지 않았음을 의미한다. 그래서 나와 스머쥐는 개를 데리고 공원으로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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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표현은 고릴라 아줌마의 산책 문장과 비교가 된다.

"It was time to take Victoria, our pedigree Labrador, and Charles, our son, for a walk." (Labrador(덩치가 큰 맹견의 일종) 족보를 가진 빅토리아와 우리의 아들 찰스를 데리고 산책을 나갈 시간이다)


공원의 같은 벤치에 약간 떨어져 앉게 된 두 가정에서, 먼저 개들끼리 친하게 된다.

고릴라 아줌마는 자신의 고귀한 개가 꾀죄죄한 잡종 개와 어울리는 것이 몹시 못 마땅하다. 그래서 억지로 이 둘을 떼어놓으려 하나 쉽지가 않다. 얼마 후 찰스와 스머쥐까지 같이 어울려 논다. 아줌마는 아들 찰스가 rough looking(험상궂은 얼굴:아줌마의 생각이다)의 스머쥐와 어울려 노는 것도 마땅치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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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항상 외롭고 축 처져있던 찰스는 에너지 넘치는 스머쥐를 만나 생동감을 회복하게 되고, 둘은 신나게 놀면서 행복감을 느끼게 된다. 제일 마지막 장면에서

"When I got home I put the flower in some water, and made Dad a nice cup of tea."

(집으로 돌아와서 나는(스머쥐) (찰스가 꺾어준) 꽃을 물에 담그고 아빠에게 멋진 차 한잔을 타 드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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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의욕을 회복한 찰스는 그 상태를 유지하는지, 고릴라 아저씨는 취직을 했는지, 처음부터 끝장면까지 모든 사람들(아저씨, 찰스, 스머쥐)과 개까지 치유되고 회복되지만, 전혀 변하지 않는 고릴라 아줌마는 개 외에는 누구와도 소통되지 않으면서도 자신이 가장 잘 났다고 생각하는 그 아집이 사라질는지, 작가는 그 나머지를 독자의 상상력에 맡기고 있다.


공원에 울러 퍼진 네 개의 목소리를 작가는 담아내면서, 생명력이 넘치는 스머쥐를 통해 아빠와 찰스가 회복되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사람을 살리는 것은 요즘 현대인들이 그렇게 소중히 여기는 경제력이 아니라 개인이 가진 생명력 즉 공감력, 사랑의 마음, 이해의 마음, 긍휼히 여기는 마음, 돕고자 하는 마음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보여주는 책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나는 이 책을 중학교 1학년 학생들과 읽으면서 "나는 과연 다른 사람에게 생명력을 주는 존재인가, 아님 남들과 소통하지 못하고 자신의 생각 속에 갇힌 존재인가"를 함께 생각해 본 적이 있다. 특히 한 교실 안에 있는 32명의 다른 아이들의 내면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는지, 그리고 그들에게 도움을 주고 있는지도 생각해 보는 시간을 가졌다. 그러고 나서 학부모 중 엄마 두 분, 아빠 두 분에게 익명으로 중 1 아이들, 특히 자신의 자녀에게 하고 싶은 말을 녹음해 보내주시라고 부탁을 드렸다.


수업 시간에 그 네 분의 목소리를 들으면서 나는 마음이 울컥했는데, 무슨 이유인지 모르지만 마음이 굳어져 전혀 공감하지 못하는 몇몇 아이들을 안타깝게 바라본 기억도 있다.


코로나 19 때문에 더욱더 갇혀 지내는 현대인. 그들은 혼자만의 시간이 많아졌기 때문에 자신의 내면의 목소리는 잘 듣고 있는지, 한 걸음 더 나아가 어쨌든 얼굴을 맞대고 있는 가족들의 내면의 목소리는 잘 듣고 있는지, 그리고 일로 혹은 여러 가지 관계로 부딪히는 사람들의 내면의 목소리도 듣고 있는지, 또한 단지 듣고 있는 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생명력이 있어서 이들을 치유되고 살리는데 도움이 되고 있는지를 생각해 보게 된다.


한 학년이 마무리되어가는 시점이라서 그런지, 중1 나의 아이들은 요즈음 부쩍 이성문제, 친구 문제로 고민을 많이 한다. 나에게 찾아와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고 나는 그들의 내면의 목소리를 듣고자 노력하고 있다. 너무 심각한 아이에게 "누구야, 이거 다 지나가는 거야."라고 말하기도 하지만, 지금 현실에서 그 문제를 안고 있는 그 아이에게는 그 문제가 아주 커 보이고 인생의 모든 것이 걸려 있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는 사실을 나도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아니다. 한 문제, 한 문제를 건너면서 정신적으로 더욱더 성숙해지고 또 지혜로워질 우리 중 1 아이들에게, 나는 과연 생명력이 있어서 그들을 살리고 있는지를 또한 생각해 보게 된다.


그러나 나의 부족함 때문에 나는 오늘도 "I can do all things through Him who strengthens me. (Phil 4:13)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빌립보 4:13)" 이 말씀을 묵상하면서 능력의 근원이 되시는 나의 주님을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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