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cr 검사를 하며
"3일 동안 조심하셔요. 무리하게 움직이지 마시고. 혹 무슨 이상이 있으시면 바로 연락하시면 됩니다."
15분간 앉았다가 나오는 나에게 한 간호사의 말들이 굴렁쇠가 되고, 나는 이를 발길로 걷어차면서 집으로 돌아왔다.
부스터 샷, 즉 코로나 3차 접종을 한 뒤, SNS에 떠돌아다니는 수많은 부작용들에 대한 생각의 문빗장을 단단히 걸어 잠그고, 푹 자고 나면 내일은 어제와 동일한 하루가 시작되리라는 믿음으로, 일찌감치 잠자리에 들었다.
맞은 팔이 약간 욱신거렸지만, 대충 먹던 아침 대신, 오늘은 조금 더 신경 써서 아침도 챙겨 먹었다.
John Burningham(존 버닝햄)의 "John Patrick Norman McHennessy, The Boy Who Was Always Late(항상 지각하는 소년, 잔 패트릭 노만 맥헨시)"의 유명한 문구인 'John Patrick Norman McHennessy set off along the road to learn.( 잔 패트릭 노만 맥헨시는 배우기 위해 길을 떠난다)'처럼 나는 가르치기 위해 길을 떠났다. 학교에 도착해서 컴퓨터를 확인하니, 1학년 수업은 온라인으로 변경된다는 메시지가 떠 있다.
'오늘이 목요일인데, 한 주의 시작인 월요일도 아니고, 무슨 일이 있었나?'
의아하게 생각하는 중에 전화벨이 울린다. 보건 선생님의 전화이다.
"선생님, 어제 1학년 학생 중에 확진자가 나왔어요. 선생님이 그 학생과 접촉하셨는지 확인 차 전화했습니다."
"그래요? 그 학생의 번호가 홀수인가요? 짝수인가요?"
나는 이번 주에는 짝수반을 담당하고 있다.
"짝수예요, 선생님."
"네? 짝수라고요? 몇 반 누구인지 혹시 알 수 있을까요? 그래야 제가 밀접 접촉을 했는지 안 했는지 알 수 있을 것 같은데"
보건 선생님은 잠시 망설이시더니만, 누구라고 알려주신다.
갑자기 머리를 한 대 맞은 기분이다. 화요일 마지막 시간인 7교시에 본 아이다. 그날따라 조금 일찍 도착한 그 아이는 '선생님, 제가 뭐 도와드릴 것이 없나요? '라며 사무실에 들어온 아이이고, 수업시간에는 바로 내 코 앞에 앉아있던 아이이고, 팝송 몇 곡을 들을 때 신청곡을 종이에 적어 나에게 주며 꼭 틀어달라고 요청한 아이이다.
"저, 밀접 접촉한 한 것 같은데~"
"선생님, 빨리 공가 내시고 코로나 검사를 하시기 바랍니다. 결과 나올 때까지 자택에서 대기하셔야 합니다. 선생님의 이름을 보건소에 등록하겠습니다."
기운이 쑥 빠진 목소리로 '알겠다'라고 대답했지만, 당장 눈앞에 닥친 수업 때문에 1,2교시를 온라인으로 수업한 후, 나머지 수업을 홀수 담당 선생님에게 부탁하고 학교를 나섰다. 지금 모든 1학년 담당 선생님은 코로나 검사 후 재택근무 중이시고, 온라인으로 수업하고 있는 중이라는 사실도 보건 선생님을 통하여 알게 되었다.
'아니 난 왜 아무것도 알지 못했지?'
폰의 학교 카톡방을 확인해 보니, 어제 오후 확진자 발생 소식과 재택근무와 pcr검사를 받으라는 메시지들이 먹구름같이 두둥실 떠올라 있었다. 어제 일찍 잔다고 메시지를 전혀 확인하지 못한 것은 나의 불찰이다.
'어제 괜히 3차 접종을 했나? 만약 이 아이의 바이러스가 지금 내 몸 안에 들어와 있다면(화요일) 나는 지금 바이러스를 더블로 몸에 넣고 있는 것 아니야?' 하는 걱정과
'아직 6개월도 안 되었는데 왜 벌써 3차 접종을 하려고 하지?(4개월이 지났다) 겨울방학 때나 좀 조용할 때 접종하면 안 될까? 지금 학기말이라서 한창 바쁘다고 했잖아?'라는 남편의 말에
'3개월 지났다고 지금 계속 접종 권유 문자가 오고 있어. 혹시나 내가 아이들에게 피해를 주면 안 되잖아.'라며 고집을 부린 나의 후회와
'아이들에게 영향을 줄까 봐서 코로나 이후 정말 아무 곳에도 가지 못 했어요. 마트, 학교, 집. 이게 다예요.'라는 나의 말에 '무슨 그런 바보 같은 소리를 하세요. 저번 주에 제주도에 가보니 사람들이 바글바글 합디다. 돌아다닐 사람은 다 돌아다닙디다'라고 말하던 지인의 말에 대한 내 심정의 억울함이 겹쳐서, 선별 진료소로 가는 내내 마음이 무거웠다.
작년 5월, 남편의 수술 후 병간호 때문에, 병원에 들어갈 때마다 3일 이내의 pcr 음성 확인서를 제출한 경험이 있기 때문에, 이번에도 검사는 간단히 끝날 것이라고 생각을 했다.(실제적으로 작년 5월, 선별 진료소에서 검사를 할 때, 사람들이 많지 않았고, 거의 20분 내에 끝난 경험이 있다.) 그러나 학교를 출발하려고 할 때 홀수 담당 선생님께서 '어제 pcr검사를 하러 선별 진료소에 갔으나 너무 줄이 길어 못 하고 돌아왔으며, 자신은 검사를 받지 않아도 된다고 해서 다행이다'라고 한 말이 생각이 났다. 경험상 행정기관의 주차장에 차를 세우는 것은 너무 힘든 일이라는 것을 알기 때문에 밖 도로변에 잠시 세우려다가, 혹시 시간이 많이 걸릴 경우를 대비해서 지하주차장으로 내려갔다. 아니나 다를까 꽉 찬 주차장에 빈자리가 없다. '다시 나가야 하나'하고 망설이고 있는데, 참으로 다행히도 한 차가 출차하려고 하고 있다. 그래서 그 앞 쪽에서 기다리고 있는데, 뒤
따라 들어온 차에서 한 여성이 내려 쪼르르 달려가더니만 '아저씨, 나가실 거죠? 이 자리에 넣을게요' 하더니만, 나를 제치고 쏙 차를 집어넣는다. 기다리고 있던 나는 하도 어이가 없어서 창문을 내리고 '지금 제가 기다리고 있었는데요'라고 말했지만, 그들은 들은 체도 하지 않고, 주차 후 계단을 향해 나가고 있다.
'무엇이 사람을 저렇게 수치를 모르는 사람으로 만들었까?' 생각하면서, 나는 이 행정기관에 대한 묵은 감정까지 치솟아 올라오는 것을 막을 수가 없었다.
이 행정기관의 맞은편, 즉 도로 건너편에 도서관이 서 있다. 이 지역이 조성되면서 도서관부터 지어졌다. 나는 내심 기뻐하면서 '그래도 행정기관이 좀 바뀌었네'라며 대한민국을 자랑스러워했다. 그런데 몇 달 후 지어져 가는 구청의 규모를 보고 깜짝 놀랐다. 도서관 규모의 3배 이상의 크기였다. 무슨 일이 그렇게 많기에 저렇게 큰 구청을 지어야 하는지 도대체 이해가 되지 않았다.
도서관과 구청을 딱 바꾸어야 한다는 나의 지론은 이 두 건물을 지나칠 때마다 "미친놈들"이라는 내 나름대로의 욕설을 하게 되었고, 아직도 어설픈 행정기관에 대한 아쉬움은 선진 대한민국 어쩌고 저쩌고 하는 행정인 및 정치인들에게 '제발 입 좀 다무세요'라는 반응으로 대응하게 된다. 그런데 그렇게 크게 지어진 구청이면 주차장이라도 많이 만들 것이지, 규모에 비해 턱없이 작은 규모의 주차장을 만들어 놓고, 구청 주변에는 '주차 시 과태료 부과'라는 입간판을 줄줄이 세워 놓은 것은 도대체 누구의 머리에서 나온 발상인지, 그래서 조금 전의 너무나 평범한 엄마들을 얌체족으로 만드는 그들이 하도 돼먹지 않아서 나는 울화가 치밀려 올랐다.
주차장 한 곳에서 나는 한참을 주차하고 있었다. '다시 나가야 되나, 어찌할까?'를 망설이고 있는데, 저 건너편에서 출차하려는 차가 보였다. '이번에는 가능할까요?'를 중얼거리며 가까이 다가갔다. 다행히도 들어오는 차가 없어서 주차를 했다. 그런데 꽤 오랜 시간을 주차장에서 머물렀기 때문에 은근히 주차요금도 걱정이 되었다.
"주차요금은 어떻게 되나요?"
"30분 무료이고, 나가면서 계산하세요." 주차장을 나가면서 계단 옆에 서 있는 청년에게 묻자, 모두가 물어보아서인지, 그 청년은 시큰둥하게 대답을 한다. (그렇게 잘 세우는 입간판이 왜 이곳에는 하나도 없을까? 주차요금에 대한 안내가 하나도 없다) 끝까지 불친절한 이곳이다.
구청 옆 야외에 길게 줄 선 두 무리의 사람들이 있다. 한 곳은 "선별 진료소: 밀접 접촉자, 해외 여행자, 병약자"라는 종이가 천막 안에 붙어 있고, 다른 한 곳에는 "임시 선별 진료소"라는 종이가 붙어 있다. 그런데 임시 선별 진료소의 줄은 끝이 보이지 않고, 선별 진료소의 줄은 그래도 끝이 보인다.
'아! 나는 밀접 접촉자이지.' 주차 때문에 밀려났던 생각이 다시 제자리로 돌아오면서 걱정도 함께 몰고 왔다. 제일 끝에 가서 줄을 선다. 바람은 왜 이리 불어대고 기온은 왜 이리 추운지. '줄 서 기다리다가 감기 드는 것은 아닐까'하는 염려 하나가 걱정의 보따리 속으로 스멀스멀 기어들어 온다. 내 앞에는 유치원 아이들 몇 명과 그 엄마들이 서 있다. 아마 그 유치원에도 확진자가 발생하였나 보다. 아이들은 천방지축으로 줄 사이를 이리저리 뛰어다니며 장난을 친다. 그리고 쉼 없이 까르르 댄다. 이곳에 선 사람들은 모두 표정이 좀 어두운데, 이 아이들은 아랑곳하지 않고 마구 밝음을 내뿜는다. 때로 밝음은 어둠을 물리치기도 하지만, 장소에 어울리지 않게 너무 생경스러운 밝음은 어둠을 당황하게 만들고 차즘 짜증 나게 만들기도 한다. 마치 장례식장에서 밝게 웃는 웃음소리처럼. 그러나 그 아이들의 엄마들은 오히려 이 무거운 분위기를 자신의 아이들이 가벼움의 조미료를 치고 있다고 생각을 하는지 별로 신경 써는 모습이 아니다. 빨리 벗어나고 싶었다.
우주복 같은 차림새의 직원이 다가와 내 바로 앞의 사람에게 묻는다.
"어떻게 오셨죠?"
"해외여행 입국자입니다."
'아니 이 사람은 공항에서 모든 일을 처리하고 입국하지 않았나?' 하는 의문을 가지고 있는데, 그 직원이 나에게도 질문을 한다.
"어떻게 오셨죠?"
"학교에 확진자가 발생했는데 밀접 접촉자라서 검사받으러 왔습니다."
"그래요? 그럼 보건소 문자를 보여 주세요."
"네? 그런 문자가 있나요? 받은 적이 없는데."
"그럼 저기 임시 선별 진료소에 가서 다시 줄 서세요."
"네?"
당황해서 머뭇거리는 나에게 그 직원이 다시 설명을 한다.
" 이곳은 보건소에서 검사받아야 한다고 통보한 문자를 가진 사람들이 검사받는 곳이에요."
어쩐지 이곳의 줄이 좀 짧다고 생각했는데, 그런 이유였나 보았다. 나는 또 분통이 터지려는 것을 가까스로 참았다.
'아니 그러면 종이에 "보건소 문자 통보받은 사람"이라는 말은 왜 한 자도 적혀 있지 않지? 이곳에 줄 선 사람들은 이미 여기에 대한 선지식이 있다는 거야? 아님 그전에 확진자와 접촉해서 이곳에서 검사를 받아본 경험자들이 또다시 재수가 없어서 또 접촉되어서 또 왔다는 말이야? 모두가 알고 있는 사실을 왜 나만 모르고 있는 거지? 나만 바보였나?" 도대체 아무것도 모르는 나 자신에게 이젠 화가 치밀어 올랐다.
나는 임시 선별 진료소라는 곳의 긴~ 줄 꽁지에 가서 다시 줄을 섰다. 한 시간 이상을 기다린 기다림이 물거품처럼 사라지고, 다시 몇 시간을 기다려야 할지 모르는 긴 줄 뒤에 가서 서는 나 자신이 세상 물정 모르는 사람인 것 같아 한없이 초라하게 느껴졌다. 검사고 뭐고 이젠 아무 생각이 없고 '제발 감기가 걸리지 않아야 하는데'하는 생각과 '의사가 3일간은 조심하라고 했는데'하는 생각만이 다람쥐 체바퀴 돌듯 머릿속에서 윙윙 소리를 내며 맴돌고 있었다.
'참으로 이상한 일이다. 도대체 접종이 거의 되지 않았던 지난 5월에는 거의 20분 만에 끝나던 검사가 80% 이상 접종 완료라는 정보와는 판이하게 왜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이 추운 야외에서 줄울 서야 하며, 2시간 이상을 왜 이렇게 기다려야 하는지? 그 많은 접종들은 왜 아무 효과가 없는지? ' 나는 풀리지 않는 의문을 품고서, 코 속을 쑤셔대는 직원의 얼굴을 쳐다본다.
그리고 그날 밤, 나는 지쳐 쓰러져, 오늘 하루 동안의 내 모든 생각들을, 내 모든 염려와 화남과 자책을 기억의 저편 속으로 떠나보내며, 죽은 듯이 잠에 빠져 들었다. 참으로 기나긴 힘든 하루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