승부욕

요리를 배우며

by 김해경

"쓱쌋 쓱쌋, , 툭툭 탁탁"

양 옆에 서 있는 두 사람의 분위가 전쟁터에서 칼을 휘둘러대는 사람들의 모습과 흡사하다.

'자, 내가 지금 쓱싹 썰고 있다. 내 속도가 더 빠르지? 내가 더 잘하거든.' 이런 그들의 내면의 목소리가 도마 위에서 양념을 다지는 툭툭 탁탁하는 소리에 섞여 은근히 나를 자극한다.

'아! 괜히 말했네. 그냥 편하게 할 수업을 이렇게 긴장해서 하는 수업으로 만들다니' 나는 어쩔 수 없는 분위기에 휘말리며, 나의 가벼움, 나의 자랑질에 스스로를 자책한다.


"여러분, '밑반찬 실무 조리반'에 잘 오셨어요. 이제 집밥의 반찬에 대해서는 한시름 놓으셔도 됩니다. 이 수업은 한 달, 즉 28일 동안 계속될 거고요. 여러분들은 결석 없이 성실하게 참석해 주시기를 바랍니다."

작고 아담한 몸집의 선생님은 50대 초반이다. 조금 전 평복을 입고 왔다 갔다 하실 때에는 너무나 평범한 아줌마이더니만, 하얀 조리사복을 입고 선 선생님에게서 요리 선생님으로서의 카리스마가 살아난다. 제복의 위대함을 보는 순간이다.

" 자, 오늘 첫날이니까 돌아가면서 자기소개를 부탁드립니다."


나는 작년 꼭 이맘때, 즉 작년 겨울방학 때가 저절로 생각이 났다. 21일간의 '한식 조리 기능사 자격반' 강좌를 듣고, 필기, 실기시험을 치른 그 피 말리는 순간들이 주마등같이 눈앞을 스쳐 지나갔다.


요리를 전혀 배운 기억이 없어서, 대강 요리하고 대강 끼니를 때우며 살았다. 그런데 몇 년 전부터 먹방 방송이 전파를 타기 시작하고 맛집 탐방 프로그램이 우후죽순처럼 생겨날 때, 나는 그러한 방송을 볼 때마다 상대적 박탈감에 시달렸다. '아! 저 사람들은 무슨 팔자가 저렇게 좋아서 전국 맛집을 순례하면서 입을 호강시키고, 나는 저런 사람들의 모습을 보면서 부러워하다니, 참으로 나 자신이 측은하구나.' 이런 생각이 모닥불에 김 올라오듯, 솔솔 올라오기 시작했다. 특히 코로나 전, 학교 선생님들과의 대화 중에서도 '어느 어느 맛집에 다녀왔는데 그 맛이 어떻다'는 등, 그들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그런 곳에 같이 돌아다닐 사람도 없거니와 그럴 시간적, 물질적 여유도 없는 나는 세상의 어느 한 부분을 잃어버리고 사는 느낌마저 들 때도 있었다. 궁하면 통한다든가. 그래서 생각해 낸 방법이 '내가 배워서 직접 해 먹어보자'였다.


요리도 배우고 자격증도 딸 수 있는 반이 있다는 설명에 '와~ 이 반은 꿩 먹고 알 먹고 반이네'라고 생각하면서 '한식 조리 기능사 자격반'에 등록을 했는데, 이는 나의 무지의 소산이었다. 첫날, 첫 시간. 모든 재료는 몇 cm로 정확하게 잘라야 하고, 정해진 시간 내(50분~1시간 20분) 두 가지 요리를 제출해야 한다는 선생님의 설명을 듣자마자, 나는 '이거 완전히 잘 못 들어왔구나'라는 심한 낭패감에 사로잡혔었다. 나는 '입 속으로 들어가면 그게 다 그거지'라는 생각의 소유자여서, 재료도 '내 마음 내키는 대로 자르면 되지, 이걸 무슨 규격에 맞추어 몇 cm로 자른다는 거야. 이건 정말 미친 짓이구먼'이라는 말이 목구멍까지 올라와 할딱대는 것을 억지로 억누르며, 억지 미소를 짓고 열띤 설명을 하고 계시는 선생님을 바라보곤 했다.


그런데 등록한 20명의 처녀, 총각, 아줌마 학생들의 열의가 굉장했다. 선생님이 그날 할 요리 두 가지에 대한 설명과 어떻게 만드는지 설명을 하신 후, 재료 분배가 시작되고, 또한 시간 측정이 시작된다. 그때부터는 긴장된 숨소리, 재료 써는 소리, 가스레인지에 올려진 음식들의 익어가는 소리, 간혹 잘 못해서인지 '아!'라는 짧은 탄식소리가 실습실 안의 공기를 마구 휘젓기 시작한다. 나는 선생님의 설명을 듣고 재료를 받아 드는 순간, 항상 이렇게 마음속으로 부르짖었다. '하나님, 저 살려주세요! 이 요리해낼 자신이 없습니다. 도와주세요!' 20명의 학생들 가운데 열등생으로 낙인찍히기는 죽기보다 싫었다.


어떤 상황 속에 던져지면, 나는 강한 승부욕을 드러낸다. 차를 운전하는 순간에도 항상 목표를 정한다. '저기 옆 차선에 가고 있는 저 차는 따라잡아야지' 내 옆선의 차 한 대, 한대를 따라잡다 보면 어느덧 학교에 도착하게 된다.


방학 후 이틀 동안 언어 연수원 주최의 영어교사 연수가 있었다. 영어교사 연수는 연수시간 내내 영어로 말해야 한다. 언어 연수원 소속의 외국인 선생님들의 강의 도중에 하는 질문에 대한 답변, 교사들의 소그룹 활동과 돌아가면서 소그룹의 내용을 발표하는 발표시간 등등에서 모두 영어로 말해야만 한다. 영어 말하기가 능통하지 않으면 고통의 시간이 되기도 하고, 영어회화에 익숙한 선생님에게는 영광의 시간이 되기도 하는 양면의 칼을 가진 연수이다. 그런데 나는 요즘 젊은이들처럼 영어에 많이 노출된 세대도 아니고, 영광을 떠안을 능력도 없는 주제에 매번 연수를 신청하고, 연수가 시작되는 순간 매번 후회하는 이상한 습관을 가지고 있다.


'흠. 이번 연수에는 어떤 선생님이 가장 영어를 잘하나 한번 보자. 그래 한 번 붙어보자. 나도 절대 지지 않을 거다.' 이런 이상한 오기와 헛된 자존심으로, 우리 학교의 영어 정교사, 아무도 신청하지 않는 연수를 나 혼자 덜컹 신청한다. 그리고 며칠 후회하면서, 긴장의 칼을 간다.


연수 중 나도 제법 영어로 발표를 하고, 특히 조별 토론에서는 다양한 아이디어를 내어 조금 주목받기도 하고, 그래서 '나, 너희들 정교사, 젊은 선생님들에게 조금도 꿀리지 않거든.'이라는 자기만족과 위안을 가지고 연수를 마치면서 안도하는, 일종의 승부욕을 발동하는 습관이 있다. (되돌아볼 때 이 연수들이 자극이 되어 영어 회화실력에 많은 도움이 된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그만큼 고통스러운 시간, 긴장된 시간을 가진 것도 또한 사실이다.)


나의 이런 승부욕, 지기 싫어하는 습관은 '한식 조리 기능사 자격반'에서도 역시 발휘되었다. 31가지의 실기 시험 메뉴를 한 번씩 조리해 본 후, 작년 2월 9일 전체 평균 45.4% 합격율의 필기시험을 통과하고, 3월 6일 양주의 어느 대학에서 전체 평균 34.1%의 합격율을 통과하여 자격증을 손에 쥐게 되었다.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많은 시험(대학시험, 대학원 시험, 학교 면접시험 등)을 치렀지만, 나는 이 자격증을 가장 소중하게 여기고 있다. 너무 힘들게, 정말 얼토망토 않게 딴 자격증이기 때문이다.


이왕 시작한 요리, 좀 더 능숙해지기 위해 이번 겨울 방학 때는 아무 부담 없는 '밑반찬 실무 조리반'에 등록을 했다. 이제 정말 느긋하게 요리를 즐기면서 배우고 싶었다. 그런데 첫날 자기소개 시간에 나는 엄청난 실수를 했다.

" 저 한식 조리 기능사 자격증을 작년 이맘때 따고, 이번에는 재미있게 배우려고 이 반에 들어왔습니다."

이 말을 듣는 몇몇 사람들의 얼굴빛이 바뀌면서, 질문 공세가 이어졌다.

" 한 번에 합격하셨나요? 메뉴로는 뭐가 나왔나요?"


알고 보니 11명 중 4명의 아줌마가 다음 달 18일에 실기 시험을 치를 예정이다. 그들은 밑반찬 실무를 배우면서 조리 감각을 계속 익히고 있었다.


두 시험생 아줌마(그들은 나보다 훨씬 요리를 잘한다. 한 아줌마는 아예 프로급인 것 같다.) 사이에 내 자리가 있다. 그들은 조리하면서 계속 나를 휠긋휠긋 바라본다.

'뭐냐, 합격생인 주제에 손이 나보다 빠르지 않구먼. 저렇게 해서 어떻게 합격했지? 별거 아닌 거 아니야?'


나는 그 한식 조리 기능사 자격증이 너무 자랑스러워 자랑을 좀 했더니만, 밑반찬 수업이 편안한 수업이 되기가 쉽지 않게 되었다. 신경을 곤두세우고 경쟁 모드로 들어가 합격생의 체면을 유지하느냐, 아니면 '합격생이 뭐 별거 아니네'라는 말을 들으면서 체면을 구기느냐의 기로에 나는 서 있다.


이 11명 중 30세 된, 이번 8월에 결혼하는, 그래서 신부수업을 받으러 온 아가씨가 있다. 그녀는 모든 과정이 서툴고 어색하다. 수업시간에 일찍 오지도 않는다. 나는 그 아가씨의 재료를 그녀의 조리대 위에 가져다 주기도 하고, 내 요리가 끝난 뒤 가서 도와주기도 한다. 그러면서 스스로에게 말한다.

"너 여유롭게 즐기기 위해서 온 수업이잖아. 이렇게 여기 이 아가씨도 좀 도와주고 하렴. 그 승부욕 제발 좀 내려놓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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