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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Tony C Oct 18. 2023

그리스도의 계시

개요 1

요한 계시록 개요


'하늘 문 넘어의 예배소' 2021

그리스도의 역사

요한 계시록은, 하나님의 선하심과 사랑과 공의가 드러난, '사람의 역사를 상징으로 요약한 ‘그리스도의 계시’입니다. 


‘그리스도까지 이르는 이전 역사[Before Christ]와, 이어지는 이후의 역사[Anno Domini]’ 

‘그리스도 이후부터 다시 오시는 그날까지 있을 연약하고 탄압받는 교회의 역사

‘재림하신 주께서 그리스도 안에서 죽은 모든 자를 다시 살리는 첫 부활’ 그리고 ‘심판주로 오신 그분께서 ‘타락한 세계와 모든 대적자들에게 행하실 ‘어린양의 심판

‘그 심판 이후, 주께서 온 땅을 새롭게 하시면서 세워지는 그리스도의 왕국, 1천 년 역사

‘그 1천 년의 마지막에 있을 ‘둘째 부활’과 ‘둘째 사망이 판결될 최종 심판

‘그리고 펼쳐질 새 하늘, 새 땅에 새 예루살렘이 이르면서 최종 성취되는 하나님과의 영원한 사랑의 회복


성경적 역사관 전체를 한 단어로 함축하면 ‘그리스도의 역사 His story’가 됩니다. 

그 역사를 보이는 그리스도 계시의 큰 맥락’에는 ‘사람의 선과 악, 죄인과 의인을 구별하고’, ‘구원 그리고 심판의 대상자를 지목’합니다. 

그 배경에는, 절대 선이신 하나님께서 아담의 모든 자손을 죄인으로 본다는 관점이 있습니다. 때문에, 주께서 ‘의인이 없으되, 하나도 없도다'라고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근본 ‘하나님의 공의’에 따르면 예외 없이 모든 자는 ‘구원 없는 사망의 심판’을 받아야 합니다. 마치, 거짓의 아비 옛 뱀과 자기 자리를 지키지 않은 천사들에게 구원 없는 심판을 선포하신 것처럼 말입니다.

그러나, 그럼에도, 자비하신 ‘하나님의 사랑에 의해 구원의 길이 열렸습니다.’


완벽한 구원의 완성을 위해, 주께서는 모든 아담 자손 가운데서 '한이 맺힌 주님의 그 관점에 동의하고 스스로 죄인임을 인정하는 자’와 함께 ‘자칭 의인’이라 하는 자를 따로 구별하지 않고 '동일한 사랑으로 보살피십니다.'  

그 보살핌 속에는 또한, ‘시작과 끝이 있는 역사의 허무를 견디는 인내의 연단’이 동일하게 있습니다.

그 연단을 통해서, 최종 구원에 이를 자에게는 자신이 ‘하나님의 예정 안에 있는 자’ 임을 자각하게 하십니다. 그리고, ‘자칭 의인이라 주장하는 자’는 자신의 능력대로 살도록 그냥 내버려 두십니다.


그러나, 그것이 하나님의 사랑임에도, 자칭 의인이라 하는 자들은 그 사랑을 악용해 신성모독을 아무렇지 않게 저지릅니다. 심지어 '하나님은 죽었다'라고 모독했고, 그의 사상과 교묘한 말재주에 넘어간 많은 사람들은 지금도 여전히 하나님을 모독하고 비방합니다. 


따라서, 최종적으로 그 두 그룹은 각자가 완벽하게 구별되었음을 자인하게 됩니다. 즉, 구원에 이른 자는 ‘어린양의 심판에 동참하는 권세’를 가지게 되고, 최종 심판의 대상임을 스스로 선택한 자는 ‘둘째 사망’을 기다리게 됩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정의’입니다. ‘사람의 정의'로 할 수 있는 일은 복수밖에 없지만, 하나님의 정의는 ‘상실된 모든 것을 회복합니다.’


그리고, 읽는 자에게 그리스도의 계시는 ‘공개된 비밀’입니다. 과거의 필자처럼 ‘읽고 또 읽어도 전혀 이해 못 하는 사람이 많다’는 것입니다. 

즉, 그 상징은 암호 코드가 아닙니다. 만약 암호 코드라면, 그것을 푸는 자는 예수 그리스도와 동격으로 사람들 위에 서서, 예수님의 섬김과 사랑이 전혀 없는 군림만 하게 될 것이 분명합니다. 

때문에, 주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누가복음 21장] 

"너희는 속지 않도록 조심하라. 많은 사람이 내 이름으로 와서 말하기를 '내가 그리스도다' 하거나, '때가 가까이 왔다' 할 것이다. 그러나 그들을 따라가지 말아라."

"그날은 온 땅에 사는 모든 사람에게 이를 것이다." 

"그러므로 너희는 앞으로 일어날 이 모든 일들을 겪지 않고 내 앞에 설 수 있도록, 언제나 정신을 차리고 기로하라."


그리고, 어린양, 만 왕의 왕, 내 주께서는,

“귀 있는 사람은 성령님이 여러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으라.” 하셨습니다.



그리스도 계시의 시작

아시아 일곱 교회에 보내는 편지’로 그리스도의 계시는 시작됩니다. 그 편지에 주께서 중요하게 강조하시는 ‘메세지’가 있고, 그 메세지에는 ‘전체 계시의 핵심이 함축되어 있습니다.’ 


‘그리스도의 계명과 사명, 나아가 그의 모든 말씀을 행하거나 행할 노력조차 않으면서, 단지 ‘그리스도의 복음을 마음으로 믿는 것’ 만으로도 모든 죄가 사함 받고 구원에 이를 수 있다는', 그런 허황된 기대 따위는 아예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오직 믿음으로 구원받는 것이 끝이 아니며, ‘그런 단순 믿음만으로는 구원에 이를 수 없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 ‘온전한 믿음으로 구원에 이른 자’는 그리스도께서 보이시고 가르치신 ‘인내와 사랑 같은 모든 계명 덕목’을 지킴으로써 자신이 '신앙의 승리자임을 확증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리스도께서 하나님과 자기 백성 앞에서 보이신 그 순종처럼, 자기 이웃과 하나님 앞에서 자발적으로 자신을 증거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참 그리스도인의 삶’에서 마땅한 것은, 그리스도께서 가르친 ‘할 것과 하지 말아야 할 것’을 분별해서 행하고, ‘사랑과 믿음과 봉사와 인내를 실천하는 신앙의 승리자가 되는 것입니다. 


또한 유념할 것은, 주님의 편지가 ‘교회 밖에 있는 비 신앙인’에게 가 아니라, ‘믿는 성도와 교회와 교회 지도자들에게’ 보내셨다는 것입니다. 

주님의 편지에는 일곱 교회 각각에게 있는 ‘범죄와 타락 그리고 의와 사랑’을 안다' 라고 하셨습니다. 또, 권고와 책망과 경고를 하셨으며, 세상에 있는 교회에게 주실 증거와 상급 그리고, 주께서 다시 오실 그날에 주실 하늘 상급을 밝히셨습니다. 

이를 다른 각도에서 보면, 성도의 연약함으로 인해 성령님께서 좌정하신 교회 안에는 ‘대적자와 그의 교훈, 그리고 그에게 속아 대적자의 종으로 전락해 버린 거짓 성도’가 ‘참 그리스도의 성도들과 함께 공존한다’는 것입니다. 그 공존 속에서 하나님 사랑과 공의의 완전함이 드러납니다.



성부 성자 성령, 성삼위일체 하나님께서는’ 창세기에서 요한계시록까지 하나님의 백성이 마땅히 ‘행해야 할 것’과 ‘행하지 말아야 할 것’을 ‘모세의 율법’과 ‘선지자의 강령’과 ‘그리스도의 계명’과 ‘사도들의 증거를 통해서 하나님의 백성 모두를 거룩하게 지키고 계십니다. 

때문에,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하라.’ 하신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 말씀의 본 뜻에 초점을 맞추지 않으면 ‘사람의 연약함과 악한 본성은’, 그것을 그냥 ‘식상한 윤리도덕으로만 취급’하고 맙니다. 그 여파로 교회에 공존하는 ‘악하고 거짓된 교훈들을 분별해서 제거하지 못하고 그냥 그대로 그것들과 어울려 살아갑니다. 

필자의 이런 판단은, 나 자신에게도 동일하고 분명하게 적용되고 있음을 주님께서 알게 하셨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주님께서는 교회 안에 있는 대적자와, 거짓 성도와, 참 그리스도인 모두에게 ‘회개할 기회를 동등하게 주셨다’고 말씀하십니다. 


요한계시록 2장 21절, “내가 그 여자[이세벨]에게 회개할 기회를 주었으나, 그녀는 자기의 음란한 짓을 회개하려고 하지 않았다.


그 은혜의 말씀대로, 대적자라고 해서 또는, 거짓 성도라 해서 ‘회개할 기회’마저 없는 것은 아닙니다. 

다만 그들에게 ‘들을 귀’가 있는지, 없는지가 그들의 구원여부에 관계될 뿐입니다.

또한, 참 그리스도인이라고 해서 ‘회개할 죄가 없는 것도 아닙니다.’ 어떠하든지 ‘그리스도의 책망과 징벌’이 있을 때는, 즉시로 아니면 최대한 빨리 자기 죄를 자복하고 회개해야 합니다. 


그리스도의 사랑받는 제자 요한은, 예수께서 체포될 때 다른 제자들과 다를 바 없이 그분을 버리고 도망쳤지만, 다른 제자들 누구보다 빨리 뉘우치고 돌아와 베드로와 함께 주님의 뒤를 따랐고, 그가 본 그리스도의 모든 것을 증거하는 증인이 되었습니다. 또 그리스도의 사도가 되어 예루살렘교회의 수립에 동참했고, 교회의 한 기둥이 되어 많은 교회를 섬겼으며, 그가 남긴 기록은 2천여 년이 지난 지금의 필자와 모든 사람에게 그리스도의 증거가 되고 있습니다.

그러나 가룟 유다를 보면, 그가 은 30에 자신의 주님을 판 것은 작은 죄로 만들어 버리는 무거운 죄가 있습니다. 그 것은 ‘회개하고 주께로 돌아오지 않은 죄’이며, 그 범죄는 자신의 육체를 갈기갈기 찢어 놓으면서 둘째 사망에 이를 것을 확정해 버렸습니다.



그런데, 어떤 자는 ‘그리스도와의 첫 만남에서 한 번의 회개가 있었다면, 과거 현재 미래의 모든 죄가 다 청산되었다고, 그래서 거듭해서 회개할 필요는 없다.’라고 교묘한 거짓 주장을 합니다.

‘오직 믿음으로 구원받는다’고 한 사도 바울의 단 한마디 말만 진리로 받아들이고, 바울의 다른 모든 소중한 증거와 권유는 외면한 채, 그에 더해 하나님의 율법과 그 율법의 완성인 그리스도의 계명마저 등한시하면서 차지도 덥지도 않게, 그렇게 회개도 없이 살아갑니다.


그러나, 일곱 교회의 성도들은 너나 할 것 없이 모두 ‘뼈아픈 그 한 번의 회심[회개]의 과정’을 거쳤고, 또 ‘그리스도의 첫사랑을 진실되게 경험한 신실한 성도들’이었습니다. 

그런 그들에게 주님께서는 아직 남아 있는 그들의 타락상을 그 편지에 낱낱이 지적하시면서 ‘회개하라’라고 명하고 계십니다.

즉, 거짓 성도 이든지 참 그리스도인 이든지, 누구에게나 주님께서는 죄가 드러날 때마다 회개의 기회를 주시고, 구원에 이르는 문을 열어 두신 것입니다.

다만 ‘대적자는 그 기회를 자기 발로 차 버린다는 것’이 ‘주님의 한탄’입니다. 


그런 세태는 거짓 교리와 이단 사상에 속은 상태에 교회가 있기 때문입니다. 교회와 성도의 연약함이 거기에 있습니다. 즉, 초대 교회에서부터 있어온 ‘율법폐기론 이단사상’을 받아들인 교회가 끊임없이 이어져 왔고, 여전히 그럴듯한 말들로 가르치고 있습니다. 지금의 ‘구원파가 그들의 후손’입니다. 

그들의 거짓 교훈에 속아서 자신들이 참 그리스도인이라 스스로 믿고 있지만, 그들은 세속인과 구별됨이 전혀 없고, 죄에 둔감합니다. 죄를 짓는 순간에도 '사랑의 하나님이 나를 버리실리 없어' 하면서 자위하고, 주님께서 '말씀을 읽고 하나님이 하나님 되심을 알라' 하는데도 성경은 교회 갈 때만 손에 듭니다. 

말씀을 읽어도 자신이 좋아하고 유명한 구절만 읽고, 하나님 모든 중요한 가르침에는 관심도 없습니다. 

또 어떤 이는, 은혜 가운데 자신이 회개해야 하는 죄인임을 자각했지만, 일상의 염려와 말씀 앞에 게으른 습관과 하나님 앞에 서는 것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마치 아담처럼 또는 가룟 유다처럼 자복하고 회개하지 못합니다. 그래서 그들이 보기에 교회의 모든 성도가 자신과 같은 것처럼 보게 됩니다. 

그러므로 더욱 분명해지는 것은, ‘거짓 아비에게서 난 자’ 그리고 ‘회개하지 않는 자’는 ‘주님의 예정’ 안에서 ‘참 아브라함의 후손’과 뚜렷하게 구별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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