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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Tony C Oct 19. 2023

교회의 대적

일곱 교회에 보내는 편지 1

어린양 예수 그리스도 & 일곱 교회


 맥락

그리스도께서 보이신 계시에서, ‘특정 단어나 어휘보다는 [그리스도 교회의 역사가 상징으로 묘사된] '전체 문맥’에 대한 이해가 절대적으로 중요합니다. 때문에, 세부적인 것들 하나하나를 살피는 과정은 뒤로 미루고 [굳이 필요 있나? 싶기도 하고], '주님께서 모든 교회에게 전하신 메시지의 맥락'을 정리해 봅니다.


‘어린양 예수님의 권위’, 

‘교회를 칭찬하는 인정’ 

‘교회의 잘못을 지적하는 책망’ 

‘회개하라는 권고’ 

‘회개하지 않을 때 받을 징벌의 경고

‘현실의 교회가 받을 상급’ 

‘주께서 다시 오셔서 주실 하늘 상급’ 


일곱 교회 각각에게 보내신 주님의 편지에는 이와 같은 문맥의 구조가 공통적으로 있습니다.

이런 카테고리를 프레임으로 두고, 각각의 편지를 살펴야 합니다. 우선은 계시록 2장의 두아디라 교회에게 전하신 책망과 권고와 경고를  먼저 살펴보고, 일곱 교회 모두에게 전하신 책망, 권고, 경고들 가운데서 '하나님의 말씀을 왜곡하고 각종 이단 사상의 뿌리가 된 거짓 주장들을 살펴봅니다.' 


주께서는 먼저 주님께서 '교회의 주 되신 권위'를 보이십니다. 

그리고, 모든 것 아시는 주님께서 '교회의 잘한 일을 인정하십니다.

주께서 주시는 '현실 교회가 받을 상급'과 '재림 후에 주실 하늘 상급'을 알려주십니다. 

또한 '교회의 잘못과 범죄를 안다 하시면서 책망하시고', '회개하라는 권고와 함께 돌이키지 않을 때 받게 되는 징계가 어떠한지를 경고하십니다.'

일곱교회들에게 보내신 편지에 담긴 그와 같은 어린양 예수 그리스도의 판단을 보면서 교회와 성도는, '그리스도의 분별하심이 어떠한지에 집중'해야 할 것입니다.



두아디라 교회에 대한 주님의 경고

'음녀' 2022

요한계시록 2장 21~23절 [현대인]

내가 그 여자에게 [이세벨] 회개할 기회를 주었으나, 그녀는 자기의 음란한 짓을 회개하려 하지 않았다."

"보라. 내가 그녀를 병상에 던질 것이다. 

그녀와 더불어 음란한 짓을 하는 자들도 회개하지 않으면, 큰 고통을 당하게 하겠다.

또, 내가 그녀의 자녀들을 죽일 것이니, 

모든 교회가 나는 사람의 깊은 생각까지 살핀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나는 너희가 행한 대로 각 사람에게 갚아 줄 것이다.”


‘회개하지 않는 교회들이 받는 형벌’을 통해 ‘그리스도께서 사람의 깊은 생각까지 살피는 분임을 모든 교회가 알게 된다’고 하셨습니다. 

그녀가 받는 형벌은 ‘병들어 눕게 되고, 자녀들이 죽임 당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세벨의 악하고 거짓된 교훈을 쫒아서 그녀와 함께 음란한 짓을 하고 주님을 모독하는 거짓 성도들 역시, '그들 각자가 행한 대로 되갚음을 받아서 큰 고통을 당한다' 하셨습니다.

그러나, 경고에 앞서서 보이신 하나님의 은혜는 '성도를 속이고 악을 행하게 한 그 이세벨에게도 회개할 기회를 주셨다'는 것입니다. 


이세벨

이세벨은, BC 800년대, 북 이스라엘 왕 아합의 아내였습니다. 

출신은 페니키아로, 지금의 '영어 알파벳'과 '고대 그리스-로마 알파벳'의 기원인 '페니키아 알파벳'을 만든 민족입니다. 성경에서는 '시돈 민족'이라 합니다. 그들은 똑똑했으나 파괴적이었으며, 지적이었으나 신성모독자들이었습니다. 그리고 그리스-로마 문명의 시조입니다.

그녀는 잔혹하고 음란한 고대 신 ‘바알과 아세라 여신 숭배자’였고, 비록 분열되어 있지만 유일신 하나님의 나라 이스라엘에 자기 민족의 우상과 풍습과 종교를 널리 전파한 인물입니다.  

그녀는 자신의 권력으로 여호와의 선지자들을 탄압 살해했고, 하나님의 예언자 엘리야와의 갈멜산 대결에서 수치를 당하자 그 마저 죽이려 했습니다. 

아합이 나봇이라는 사람의 포도원을 탐내자, '지계표[토지 경계]를 옮기지 말라' 하신 하나님의 율법을 무시한 채, 음모를 꾸며 나봇을 죽였고 그의 포도원을 빼앗았습니다. 


그랬던 그녀의 죽음은 참혹이란 말도 부족할 정도였습니다. 

남편 아합이 죽고, 그의 아들 아하시야도 즉위 2년 만에 죽었고, 아합의 다른 아들 요람이 통치하고 있을 때, 엘리사의 예언에 따라 '예후'가 반란을 일으켰습니다. 

예후가 반란군을 이끌고 이세벨의 궁에 도착했을 때, 그녀는 화장을 고치고 도도하게 내려다보며 예후를 비난했습니다. 

예후는, '내 편이 될 자가 누구냐?'라고 외쳤고, 이세벨의 시녀들은 그녀를 창 밖으로 내 던졌습니다. 

그녀의 몸이 추락하면서 피는 사방에 튀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전하신 예언 대로 개들이 몰려와 그녀의 살을 뜯어먹었고 얼마 지나지 않아 머리, 손발 뼈만 남았습니다. 

그 뼈가 생전에 누구 것이었는 지도 알아볼 수 없었다고 합니다.


이세벨은 생전에 '페니키아의 음탕하고 난잡한 풍습'과 '잔혹한 숭배의식'을 이스라엘에서 행하고 전파했으며, '모략과 음모를 꾸며 약하고 궁핍한 자를 탈취하고 살해'했으며, 하나님의 말씀과 율법과 예언을 멸시하고 제거했으며, 하나님의 예언자들을 수없이 죽이는 등, 말로 다 할 수 없는 악행을 저질렀습니다. 

그녀의 악은 북 이스라엘의 멸망을 앞당기는데 그치지 않았고, 그녀의 딸이 남 유다로 시집가면서 남 유다까지 악으로 병들게 했습니다. 



이세벨을 용납한 교회

'그 이세벨을 용납한 교회'가 어느 교회인지는 교회 역사에서 확연히 드러납니다. 

500여 년 전, 종교 개혁가들이 지목한 '로마 가톨릭'입니다. 

주 후 4세기, 로마 황제 콘스탄티누스 대제 이후로 제국의 권력층에 오른 로마 교회는, 우민화 정책의 시행과 함께 민중들이 성경을 읽을 수 없게 했고, 성경 필사를 금지하고 말씀 양육을 끊었으며, 성경 번역을 금지해 복음 전파의 길을 막았습니다. 

그들의 선교는 그리스도 복음의 전파가 아닌 교황권의 확대였고, 교황의 수위권은 황제의 권력과의 경쟁구도를 만들었습니다. 

그런 작태를 비판하는 신실한 자들은 순교자로 죽임당했고, 2백여 년 간 이어진 십자군 전쟁을 비롯한 수많은 전쟁들의 중심에 서서 하나님을 대적하고, 양민을 학살하고, 형제 비잔틴 문명을 파괴했습니다. 그들의 범죄가 이세벨의 범죄와 다르지 않다는 것은 그 전쟁 역사의 원인에 초점을 맞춰 살펴보면 분명하게 드러납니다. 


그러나, 1천 년 뒤, 하나님께서는 종교개혁가들과 그들과 함께하는 민중의 목소리에 힘을 주셨고,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악을 행하는 그 교회에게는 그 개혁의 외침이 ‘회개할 기회’가 되게 하셨습니다. 

그 기회의 시기가 하나님의 은혜임을 악한 교회가 깨닫게 하기 위해서, 그리스도의 계시로 경고하신바 대로 유럽 땅에는, ‘흑사병이 창궐하고 끔찍한 기근과 한파가 이어지는 등, 이세벨이 받는 형벌이’ 그들에게 임하게 하셨습니다. 그런 ‘회개의 기회와 함께 주어진 형벌’을 통해서 그들은 ‘하나님께서 그들의 중심을 보고 계심’을 뉘우쳐 알아야 했지만, 그러나 회개하지 않았고, 오히려 개신교도들을 탄압 살해하고 그들과의 전쟁을 지속했습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하나님의 뜻'이라는 전쟁의 명분에 휘둘린 개신교회 역시 분별력을 상실한 채 전쟁에서의 육적 승리를 위한 분투를 하게 되면서, 하나님의 말씀은 오리무중이 되었습니다.

두 진영이 전개한 수많은 전쟁에서 ‘많은 자손들이 죽어갔고, 특히 1618년부터 30년 동안 지속된 ‘30년 전쟁’에서는 ‘신성 로마제국의 인구 3분의 2가 사라지는 충격적인 사태’까지 벌어졌습니다. 회복하는데 100년이 넘게 걸렸다고 하니, 그 참상이 어떠했을지는 말로는 다 풀어낼 수 없을 겁니다.


그 과정에서 ‘로욜라’라는 테러리스트가 ‘교황에게만 충성하면서 교황을 대적하는 개혁가들을 숙청하기 위해 '예수회'를 창설했습니다.’ 그들은 교황의 적대 세력을 암살하고 수많은 테러를 일삼았으며, 교황의 전폭적 지원으로 더욱 성장한 그들은 세계선교에까지 발을 뻗어 국제 외교관계에서도 중요한 역할들을 수행했습니다. 

1592년 임진왜란에 참전한 ‘고니시 유키나가[세례명: 아우렐리우스 아우구스티누스 히노넨시스]도 예수회에 의해 교황의 통제 아래로 입교했습니다. 

그들의 선교는 '복음전파가 아닌 교황 권력의 확대'였습니다. 여전히 지속되는 그들의 사명은 많은 사상가들을 지원하고 문화 예술인을 양성하면서 또한 지역별 국가별 분쟁과 전쟁을 야기하고 개입하는 것입니다. 


또한 개신교, 플로테스탄트의 논리정연한 주장들에 대응하기 위해 20년이 넘도록 수 차례의 트리엔트 공의회를 열었고, 성경에 무식했던 자신들의 약점을 바로 잡고 대응할 교리를 가다듬었으며, 그 과정에서 '각종 이단 교리들을 정통 교리로 둔갑시키고 뒤섞어 버렸습니다.’ 

그들이 만든 교묘한 거짓 교리들은 개신 교회들 마저 차근차근 변질시켰고, 지금에 이르러서는 개신교회 안에서도 ‘얽히고설킨 정통과 이단 교리들이 중구난방 가르쳐지고 있습니다.’ 

결국, 혼합된 교리들의 근본을 분별하지 못하고 정통 교리에 어두운 교회들이 더욱 많아졌습니다. 


혹시, '세계 각지의 분쟁과 대다수 전쟁의 명분이 종교 차이'에 있으므로 평화와 화합을 위해 '종교 통합을 해야 한다’고 외치는 WCC와 로마 가톨릭의 그 주장들이 '바른말'로 들린다면, 언급한 '전쟁의 역사를 다시 정밀하게 돌아봐야 할 것'입니다.

개신 교회가 발흥하자 보편교회 가톨릭은 통합을 외치며 그들을 파문했습니다. 그리고 이어진 것은 길고 참혹한 전쟁이었습니다. 그 내면을 보면, '종교적 진리를 명분으로’ 내세웠지만, 그러나 근본 원인은 '이권 경쟁'이었습니다. 

즉, '전쟁 명분이 아니라 전쟁 원인'을 제거하는 것이 '영구적인 평화를 추구하는 인류가 해결해야 할 문제의 핵심'입니다.


그러므로 '지금의 개신 교회'가 주의 깊게 귀 기울일 주님의 말씀은, '이세벨과 그녀의 교훈을 용납하고 그녀와 함께 음란을 행하는 자에게 선포하신 경고'에 있을 것입니다. 

필자 역시, '주님을 향한 경외심과 나 자신의 연약함에 대한 두려움' 속에서 이 글을 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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