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곱교회에 보내는 편지 2
두아디라 교회를 이은 로마 가톨릭이 이세벨의 교훈을 받아들였다면, 버가모 교회에는 니골라 당의 교훈을 따르는 사람들이 있었고, 또 발람의 가르침을 따르는 자들이 있었습니다.
또한, 악한 사람을 용납하는 자들도 있었습니다.
자칭 사도라 하는 자들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자칭 유대인이라 하지만, 실은 사탄의 집단에 속한 자들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에베소 교회는 그들을 용납하지 않았고 그들의 교훈을 시험해서 거짓을 밝혀냈습니다.
즉, 에베소 교회에 있었던 그 분별력 역시 여전히 살아있어서 교회 역사를 지키고 있습니다.
또한, 니골라 당의 분리, 발람의 가르침, 악한 자를 용납하는 관용, 자칭 사도의 권위, 자칭 유대인의 혈통은 모두 하나님의 말씀을 왜곡하고, 하나님의 백성을 속이는, 하나님과 교회의 대적 자입니다.
그들 중에서 발람이라는 자는 이스라엘의 출애굽 당시의 인물로 그의 영적 권위가 메소포타미아에서 시나이 반도까지 알려져 있었습니다.
그의 영적 지식은 초대 교회 시대에 까지 이르러 니골라로 이어지는데, 다시 말하면, 발람의 오랜 후손이 니골라 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 발람의 신앙에 대해 이해하려면, 발람이 무엇을 했는지부터 살펴보게 됩니다.
민수기 25장 1~18절
"이스라엘 사람들이 싯딤에 머물러 있을 때, 그들은 모압 여자들과 음란한 짓을 하기 시작했다.
그 여자들이 이스라엘 사람을 자기 신들의 제사에 초대했고, 이스라엘 사람들은 그들의 제물을 먹고 그 신들에게 절했다."
"이와 같이 이스라엘 사람들이 모압의 바알 신을 섬겼으므로 여호와께서는 그들에게 몹시 분노하셨다."
이스라엘이 싯딤에 있을 때, 모압 여자들이 이스라엘 남자들을 유혹해 음란을 저지르고, 우상숭배를 하게 하고, 제사 제물을 먹도록 해서 이스라엘이 하나님 앞에서 죄를 범하게 했습니다.
그 일로 ‘거룩하라’ 명하셨던 하나님께서는 진노하셨고, 이스라엘 진영에는 전염병이 퍼져 사람들이 죽어 나가기 시작했습니다.
그 절망적 상황에서 ‘아론의 손자, 엘르아살의 아들 비느하스’가 의분을 일으켜 이스라엘 음행의 주요 인물인 ‘시므온 지파의 시므리와 미디안 족장의 딸 고비스를 창으로 죽였습니다.’
그의 의분을 보신 여호와께서 진노를 거두시고 전염병을 그치게 하셨습니다. 그 사건으로 죽은 자가 2만 4천 명이나 되었습니다. 그의 의분이 아니었다면 얼마나 더 많은 이스라엘이 죽었을지 모를 일입니다.
그 비극을 설계한 자가 브올의 아들 발람이었습니다.
그리고 그의 계획에 미디안 족의 여자들이 주동이 되었고, 모압의 여자들과 같이 이스라엘 남자들을 유혹해 음행과 우상숭배로 그들을 더럽힌 것입니다.
'그 사건으로 죽어간 이스라엘 2만4천에 대한 보복'이 '민수기 31장의 역사'입니다.
하나님의 보복 명령으로 이스라엘이 무장해서 미디안을 쳤고, 모든 남자들을 죽였습니다. 그리고 그 전투에서 죽은 자 중에 발람도 포함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미디안 여자들은 생포해서 모세 앞에 데려왔습니다. 살아있는 그들을 본 모세는, '미디안 여자들이 이스라엘 남자 2만 4천 명을 죽게 했다는 것을 기억하지 못하느냐'고 호통을 쳤습니다.
민수기 31장 14~16절
"그러나 모세는 전쟁터에서 돌아온 지휘관들에게 화를 내며 이렇게 말했다."
"어째서 귀관들은 여자들을 모두 살려 두었소? 이들이 바로 발람의 조언에 따라 브올에서 이스라엘 백성을 유혹하여 여호와께 범죄 하게 하고 그들 가운데 전염병이 퍼지게 한 장본인들이 아니오."
그 비극의 배경에는 '발람의 영적 지식이' 저변에 깔려 있습니다.
22장에서 25장까지의 기록을 보면, 발람이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또 순종하는 모습이 많이 등장해, 마치 하나님의 선지자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그의 정체는 ‘유프라테스 강 근방의 브돌에 살던 점쟁이’였습니다.
즉, 하나님께서 그에게 직접 말씀하신 것은 이스라엘을 지키기 위한 것이었지, 그가 하나님의 선지자이기 때문이 아니었습니다.
그리고 그는, ‘육체가 저지르는 범죄가 사람의 영을 더럽힐 수 있다는 것과, 그 결과는 하나님 앞에서 저주와 심판을 받게 되는 것임을 알고 있었습니다.’
다시 말해, 모압의 장로와 미디안의 장로들이 그를 만나 이스라엘을 저주해 달라는 요청, 곧 모압 왕 발락의 그 요청은 하나님의 직접적인 개입으로 성사되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의 범죄를 유도해 결국은 하나님으로부터 저주를 받고 죽임 당하게 할 수는 있었던 겁니다. 발람이 그 방법을 모압과 미디안에게 알려줬고, 이스라엘 2만 4천이 죽은 것입니다.
이것이 '발람의 교훈'이고 그 결과입니다.
'악한 지식인 발람의 교훈'이 초대 교회에 이르러, ‘영은 선하고, 육은 악하다 말하는 영지주의적 영-육 이원론’과 결합해 차츰 등장하는 이단 교리들의 기원이 됩니다.
그 교훈을 들여다보면, '사람이라는 존재는 육체와 영으로 구분된다'라고 개념화합니다. 그 둘은 완전히 독립적인 정체성을 가진다는 것이 '이원론'입니다.
이 지점에서 필자도 역시 혼란스럽긴 하지만, '영과 육에 대한 성경적 인식'과 '철학적 인식'을 구분해 봅니다. 정통과 이단을 분별하기 위함입니다.
성경적 관점
창세기에서 규정하는 ‘사람’은 ‘영적 사람’ 그리고 ‘육적 사람’으로 구분하는데 즉, 하나님의 영이 거하는 자, 아니면 사망의 영이 거하는 자의 구분입니다. ‘영과 육체가 각각 따로 구별된다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사람을 지으실 때, ‘하나님의 생기’가 지음 받은 그 육체에 호흡으로 불어넣어져 살아 숨 쉬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스가랴 12장 1절에 “~사람 안에 심령을 빚으신 이가 이르시되,”라는 언급이 있습니다. 즉, '사람의 영이나 육체는 하나님께서 따로 분리하지 않고 지으신 하나'라는 것이 '사람에 대한 성경적 인식'입니다.
달리 말하면, ‘하나님께서 빚으신 사람의 영’은 하나님과 하나 되어 소통하는 ‘독자적인 사람의 영으로서, 육체와는 하나입니다.’
타락 이전의 아담과 하와의 모습이며, 그에 대하여 ‘생령’이라고 번역-표현되었습니다.
그리고, ‘육신 또는 육체’라는 단어로 번역-표현된 사람의 정체성은, ‘하나님의 영이 떠나고 대신, '사망의 영이 함께하는 자연적 살덩어리'라는 의미입니다.’ 그 관점에도 역시, 영과 육체를 구분하는 것이 아니라, 분리됨이 없는 물질적 존재로써의 자연인'을 묘사하고 있습니다. 타락 이후의 아담과 하와의 모습입니다.
철학적 배경
그러나, 철학적 이원론의 관점에서는 사람이라는 존재를 이루는 ‘영 그리고 육을 독립적 개념으로 나눕니다.’ 그런 ‘영-육 이원론적 관점’이 곧 교회에서는 이단이 지속적으로 성장하는 밑거름입니다.
또한, 성경 번역에서 그러한 분별이 적용된 경우와 그렇지 못한 경우가 혼재해 있기 때문에 헷갈리는 경우가 다반사라서 그에 대한 분별도 역시 쉽지 않습니다.
그러나, 창세기에 기록된 영적 존재로서의 사람 곧, ‘생령’ 그리고 ‘육신[육체]’의 구분 기준이, ‘영적 존재로서 하나님의 영이 거하는 사람 그리고 사망의 영이 거하는 사람으로 구분하는 그 관점’을 인지하면 다른 모든 영과 육에 관한 기록들을 상황에 맞춰서 분별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 또한 사람의 해석이고 이해임을 분명히 해야 합니다.
이런 해석이나 분별과는 전혀 다른, ‘사람의 영과 육에 대한 하나님의 관점’이 있을 것이 분명하고, 사람에게 주어진 관련 정보는 단편적인 몇몇 단어와 어휘뿐이기 때문입니다. 그것만으로 사람의 영과 육체를 하나님의 관점으로 명확히 규정한다는 것은 불가능입니다.
때문에 사람의 본질에 관해서 언급할 때 ‘하나님의 신비에 있는 영역’이라서 정확한 인식이 어렵다는 ‘사람의 관점’을 가지는 것이 필수입니다.
논쟁이 아닌, 같은 견해를 가진 이들과의 토론이라면 얼마든지 이런저런 자기 견해를 말하면서 서로 소통하고 더 발전시킬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견해 차이가 분명한데, 논리적인 설명이나 설득을 위해서 ‘성경적 관점이 아닌 어떤 다른 관점을 끌어들이는 상황이 된다면, 그때는 그냥 모른다면서 침묵하는 것이 이단사상과 구별되는 길이라고 봅니다.
그리고, 그런 태도를 흑백 논리로 본다면 또 다른 철학적 모순에 빠지게 됩니다.
그리고, 초대 교회의 집사들 중의 하나인 ‘니골라’가 그 시작점에서 나타났습니다.
예수께서 12제자를 비롯, 많은 제자들에게 가르친 '하나님의 말씀과 진리'는 주님의 음성으로 직접 들은 자들도 금방 이해하지 못한 '공개된 하늘의 비밀'입니다. 율법학자들 역시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그 비밀은 인간 이성이나 논리나 철학의 어떤 것으로도 설명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럼에도 초대 교회 시대에는, 니골라와 같은 자들의 배경지식인 '인본주의적 헬라 철학의 논리'에 따른 각종 해석들이 난무했습니다.
달리 보면, 자연인이 어려운 문제를 접했을 때 보이는 당연하고 자연적인 반응입니다.
그가 풀어낸 해석과 논리를 보면,
영은 선하고 육신은 악하다.
인간의 자유의지는 선하다.
신자는 그리스도의 공로에 의해 율법에서의 자유를 얻었으므로, 율법을 거스르는 육신의 연약함은 하나님의 정죄 또는 심판 앞에서도 자유하다.
신자의 영은 육신의 행위와 무관하다.
그리스도를 믿으면 행위와 상관없이 구원받는다.
그와 같은 주장을 얼핏 보면, 바울이 가르친 내용들과 유사해 보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영과 육을 독립적으로 분리하고 있는 그의 사상적 배경'은 ‘주께서 가르치신 것’과 ‘성경적 관점의 사람에 대한 이해’와는 확연히 다릅니다. 주님의 가르침을 논리적으로 서술한 바울의 가르침과도 다릅니다.
그 차이는 곧 ‘하나님의 말씀’이 아닌 ‘사람의 말’이라는 것에 있습니다.
“~ 우리의 사랑하는 형제 바울도 하나님께 받은 지혜로 이와 같은 편지를 여러분에게 써 보냈습니다. 그의 모든 편지에서도 그는, 이와 같은 말을 했는데, 그 가운데는 알기 어려운 말이 더러 있습니다.
무식하고 믿음이 약한 사람들이 다른 성경처럼 그것도 억지로 해석하여 스스로 멸망을 불러들이고 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그러므로 여러분은 이것을 알고 늘 조심하여 악한 사람들의 꾀임에 빠지지 않도록 믿음을 굳게 지키십시오.”
사도 베드로가 ‘베드로 후서 3장’에서 이와 같이 권고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이 '니골라의 당'이 되어 그리스도의 복음이 아니 자신들의 주장을 널리 전파했습니다.
그들의 영지주의와 이원론적인 관점은 각종 이단들의 사상적 배경이 되어, 에비온파, 몬타누스주의, 마르시온주의, 아리우스파, 펠라기우스파 등의 이단으로 발전했고, 지금도 여전히 교회 안에 자리 잡고 있습니다.
자칭 사도, 자칭 유대인 또는 자칭 그리스도 라 하는 자들을 하나님과 교회 앞에서 주님을 높이는 것이 아니라, 자기 자신을 교회에서 높이고 그리스도의 권위에 도전하는 자들입니다.
초대 교회 시대에 있었던 그런 자들은 사도나 유대인 또는 그리스도를 질투하는 마음이 있어서 자신을 높이려 한 것이지만, 그 결과는 하나님을 대적하는 도전이었습니다.
오늘날에도 그와 같이 '자칭하는 자들이' 있다고는 하지만, 시편 2편 말씀 밖에는 떠오르는 것이 없습니다.
어째서 이방 나라들이 떠들며, 민족들이 헛된 일을 꾸미는가?
세상의 왕들이 들고일어나며, 지도자들이 함께 모여 여호와와 그의 기름 부은 자를 대적하여,
“자, 우리가 그의 사슬을 끊어 버리고, 그의 속박에서 벗어나자” 하는구나.
하늘에 계신 여호와께서 웃으시며, 그들을 비웃으시는 도다.
그리고 분노하사 그들을 꾸짖고, 놀라게 하며,
“나의 거룩한 산 시온에 내 왕을 세웠다.” 하시는 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