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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연숙 Jan 03. 2017

숨겨진 보물을 발견하는 눈

   장애가 있는 큰아들을 낳고 기르는 동안 정말 가치 있는 것이 무엇인지 하나둘 깨닫게 되었다. 무엇보다 작은 것 하나하나가 얼마나 소중하고 감사한 것인지를 배웠다. 감사를 통해 나를 둘러싼 모든 것에 숨겨진 보물을 발견하는 눈을 갖게 되었다. 살아서 희로애락을 함께하고 있는 누군가가 곁에 있다는 것의 빛나는 아름다움을 발견하게 되었다.      


  몇 년 전 어느 장애인 선교단체에서 했던 크리스마스 공연 중에 들었던 노래가 생각난다. 추가열의 ‘정말 행복해요’라는 곡이었는데 남편과 나는 그들의 춤과 노래를 눈물로 보고 들었다.  

    

숨 쉴 수 있어서 바라볼 수 있어서 만질 수가 있어서 정말 행복해요

말할 수도 있어서 들을 수도 있어서 사랑할 수 있어서 정말 행복해요

이 중에서 하나라도 내게 있다면 살아있다는 사실이죠 행복한 거죠

살아있어 행복해 살아있어 행복해 니가 있어 행복해 정말 행복해요

...

죽은 이의 그토록 바라던 소원은 숨 쉬는 오늘이 바라던 내일이죠

살아있어 행복해 살아있어 행복해   

   

  그들의 춤과 노래는 평생 못 잊을 것 같다. 한마디로 자유로웠다. 남들의 시선과 자신을 얽어매고 있는 육체와 정신의 모든 고통에서 벗어나 그 시간 진정한 자유와 해방을 만끽하고 있었다. 작은 일에도 감사할 수밖에 없는 상황을 겪어본 사람만이 느낄 수 있는 행복을 노래하는 모습에 진정한 기쁨이 넘쳤다. 살아있어 행복하다고 말할 수 있는 시간이 과연 얼마나 될지 모르는 시대를 살아가고 있지만 니가 있어 행복하다고 말할 수 있는 사람들을 떠올리며 오늘도 삶을 위한 힘겨운 씨름에 힘을 내본다.     

 

  2017년 새해를 앞두고 과거를 기억해보는 것은 나의 감사가 또 무디어져 가고 있는 것은 아닌지 되돌아보기 위함이다. 9년 전 폐암으로 고생하시던 아버지를 보내드리고 어렵사리 결혼을 했다. 아버지가 살아계셔서 마흔을 넘긴 큰딸의 결혼식을 보았다면 얼마나 좋아하셨을까 하는 아쉬운 마음을 달래며 결혼 초에 썼던 글을 보니 감회가 새롭다.      


  남편과 함께 ‘바보’라는 영화를 보았습니다. 보면서 정말 많이 울었습니다. 사랑하는 아버지가 떠올랐기   때문입니다. 아버지는 바보는 아니었지만 내게는 이 영화의 주인공 ‘바보’와 같은 분이었습니다. 바보의   희생으로 주변 사람이 생명을 얻을 수 있었던 것처럼 아버지의 희생으로 지금 나, 여기, 이렇게 행복한   삶을 살아가고 있기 때문입니다. ‘바보’의 주변 인물들이 바보가 살아있을 때 그 존재의 가치를 몰랐던   것처럼 나 역시 아버지 살아계실 때는 몰랐습니다. 그분의 사랑과 헌신과 희생이 어떤 것이었는지를….    이제 아무리 “내가 그의 여동생이며 그가 나의 오빠”라고 외쳐도 살아 돌아오지 않는 사람을 더 이상 헛   되이 부르지 않고 그의 희생을 가슴 한가득 별로 새겨두고 살아갈 여동생 지호처럼, 나 역시 아버지의 귀   하신 사랑을 가슴에 아로새기고 남은 길을 가고 싶습니다. 바보의 환한 웃음이 아버지의 미소처럼 해   게 다가오니 나의 눈물을 닦고 사랑하는 이의 손을 잡고 일어섭니다.   

   


  아버지가 살아계실 때는 몰랐다. 우체국 한구석에서 세계 곳곳에서 온 편지에 묻은 온갖 먼지를 마셔가며 가족들을 위해 일하셨던 그분의 인내가 어떤 것이었는지를. 내 똥 기저귀 빨아 널면서도 행복하셨고 자녀들에게 줄 장난감 사 들고 오시던 발걸음이 가벼웠던 것을. 가기 싫은 직장이지만 눈이 오나 비가 오나 일터로 향하셔야만 했던 무거운 마음을. 그저 술 취하신 모습이 싫어서 피하고만 싶었던 아버지가 지금 이토록 그리운 것은 자식을 낳아 길러보니 철이 들었기 때문인 걸까. 바보같이 살고 싶다. 너무 많은 것을 알고 있고 또 알려고 하지만 결국 사랑만이, 내 곁에 있는 사람들을 아껴주고 인내해주고 작은 도움을 손길을 내미는 단순한 마음만이 행복에 이르는 길이 아닐까. 

  직업 때문인지는 몰라도 아버지는 폐암으로 밤낮 쉴 새 없이 기침하시면서 고통스러워하다가 암이 발견된 지 일 년이 채 안 되어 하늘나라로 가셨다. 가시고기처럼 그렇게 네 자녀가 부화할 때까지 곁에 계시다가 뼈만 남은 앙상한 모습으로 가셨다. 하루라도 더 사랑하는 가족과 함께하고 싶은 마음을 간절한 소원을 간직한 채. 

  멀리서 나를 지켜보시며 응원하고 계실 아버지께 감사의 마음 전하고 싶다. “아빠, 정말 감사합니다. 저 결혼도 하고 아이도 둘이나 낳아 기르고 있어요. 큰아들은 장애가 있어서 몸이 좀 불편하지만 사랑스럽고 정말 예뻐요. 저에게 많은 것을 가르쳐주는 아이예요. 아빠의 환한 미소가 보고 싶어요. 고통 없는 곳에서 잘 계시는 거죠. 저도 좀 더 사랑을 배우고 갈게요.”      


  살아계실 때 제대로 감사의 마음을 전하지 못한 안타까운 마음을 글로 달래보며 아버지로부터 받은 생명과 사랑이 나를 통해 또 누군가에게 전해지기를 바라며 새해를 맞이한다. 감사를 통해 새해에는 또 어떤 보물을 캐게 될지 기대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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