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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연숙 Dec 25. 2016

나의 삶을 기록으로 남기는 행복

얼마 전에 아름다운 동행이라는 신문사에서 주최한 제5회 감사 이야기 공모전에서 으뜸상을 받았다. 목사님의 권유로 큰 기대 없이 응모했는데 뜻밖의 결과에 놀라고 감사했다. 10주년 기념식과 함께 진행된 시상식은 생각보다 성대했고 그 주인공이 된 것 같아 자랑스러웠다. 응모할 글을 쓸 수 있었던 것은 사실 큰아들을 키우면서 느꼈던 것을 적어 두었던 메모 덕분이었다. 벌써 9년이라는 세월이 흘러 큰아들 출산 당시의 기억이 가물가물해져 가던 차에 예전에 쓴 메모를 보며 기억을 더듬어 써보았다. 그렇게 쓴 글이 누군가의 가슴에 닿아서 당선되었다는 것이 가슴 벅찼다. 글을 쓴다는 것이 쓸 때는 쓸 때 나름대로, 쓰고 난 후에는 또 이렇게 생각지 못한 방식으로 내 삶에 유익을 가져다주는 것을 생각하니 기록의 은혜가 크다.




1년 전쯤 ‘아티스트 웨이’라는 책을 한 권 만났다. 교회의 작은 도서관에서 시집을 읽으려고 찾고 있다가 제목에 끌려서 빌렸다. 저자는 인간의 내면에는 창조성이 있으며 그것을 개발하기만 한다면 누구나 예술가로서 자신을 충분히 표현하며 깊이 있는 삶을 살아갈 수 있다고 말하면서 내면의 아티스트를 깨우기 위한 두 가지 방법을 제시했다. 하나는 잠들기 전에 질문을 하고 아침에 일어나 세 페이지 정도의 ‘모닝 페이지’를 쓰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자신의 내면에 있는 아티스트와 매주 두 시간 이상 정기적으로 ‘아티스트 데이트’를 하는 것이다. 글쓰기에 대한 저자의 제안이 마음에 들어 실천해보기로 했다. 아침마다 잠에서 완전히 깨기 전에 의식의 흐름을 적는 일은 쉽지 않았지만 쓰고 나면 뿌듯했고, 그저 펜 가는 대로, 마음 가는 대로 글을 쓰다 보니 정화도 되고, 정돈도 되었다. 희로애락의 장을 노트 위에 펼친다고나 할까, 뇌 청소라고나 할까? 시간이 흐른 후에 이전에 쓴 글을 읽어보면 ‘아! 내가 그때는 이런 일로 고민을 했었구나. 그때는 이렇게 느꼈었지….’ 하며 과거와 현재를 들여다보고 새로운 미래를 그려보게 된다. 


글로 남기지 않은 시간은 그냥 내 곁을 스쳐 지나간 것만 같아 소중히 담아두고 싶은 것일수록 글로 남겨 두고 싶다. 욕심인지는 모르겠지만 그렇게 나는 이 세상에 존재했고 고민했으며 좀 더 사랑하지 못했음을 안타까워하다가 갔음을 알리고 싶다. 글을 쓰면 거기에 내 태도가 묶이게 됨도 느낀다. 감사 이야기를 쓰고 난 후 내 글에 대한 책임을 져야 한다는 생각에, 불평이 머리를 들다가도 수그러드는 것을 몇 번이나 경험했다. 100가지 감사를 적은 이들이 그 삶에 큰 변화가 있었음을 고백하는 것과 같은 맥락이라고 할까. 가끔은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듣고 시를 써보기도 했다. 한때는 삶이 괴롭고 힘든 이의 이야기를 듣고 시를 써주기도 했는데 읽고 몹시 기뻐하시는 모습을 보고 흐뭇하기도 했다. 시라고 하기에는 부끄러운 것이었지만…. 그렇게 글은 나 자신과 이웃과 소통하는 도구가 되어주었다. 내 삶의 보물이라고 할까. 내세울 것 없는 내게 소박한 나의 글은 동무가 되어주기도 하고 위로와 격려를 아끼지 않는 멘토가 되어 주기도 했다. 


기록하지 않았다면 망각의 은사를 받은 나는 좀 더 긴 시간을 거쳐서 감사에 이르는 삶을 살아가고 있을 것이다. 내 삶에 어려움이 닥칠 때 지난 시간의 기록 속에서 내게 닥쳤던 고난과 은혜를 다시금 들춰본다. 얼마나 힘들었고 괴로웠는지, 주변 사람들은 어떻게 다가와 위로와 사랑을 전했는지, 나는 또 어떻게 더 큰 사랑을 결단했는지. 내 삶의 기록들은 나를 더욱더 신속하게 감사의 샘으로 인도한다. 


큰아들이 갖고 있는 코넬리아 드 랑게 증후군은 잘 알려지지 않은 희귀병이라서 사람들이 잘 모른다. 환아들은 원래부터 작은데다가 소화기관이 좋지 않아 잘 먹지 못해서 성장 속도가 상당히 늦다. 한 환아의 부모는 2년 동안 아이에게 포카리스웨트만 먹일 수밖에 없었다고 한다. 환아 중 한 명이 갑자기 하늘나라로 가게 되었을 때 경찰이 부모의 학대를 의심해서 조사했다고 하는 글을 보면서 부모의 마음이 어땠을까 생각해본다. 돈을 줄 테니 집값 내려가니까 본인의 동네에 장애인을 위한 특수학교만은 짓지 말아 달라는 사람들, 큰아들의 초등학교 입학을 앞두고 특수학교에 자리가 없어 일반 학교에 다니며 아이들에게 놀림을 받지나 않을까 노심초사하는 나….


이 땅에서 고통받으며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좀 더 관심을 가지기를, 특수학교가 생기면 왜 집값이 내려가는지 이해할 수 없지만 소외된 이들의 삶에도 좀 더 마음 문 열어 주기를, 아픈 아이 학교에 보내고도 걱정하지 않는 사회가 되기를 기도하며 나의 마음을 담은 책 하나 내고 싶다. 큰아들이 가진 희귀병도 사회에 알리고 나이 차는 많이 나지만 서로 사랑하므로 행복하게 살아가는 내 소박한 이야기를 들려주고 싶다. 그 소소한 기록이 읽는 이들의 마음에 사랑으로 다가서기를 바라면서. 


폐암으로 고생하시던 아버지를 떠나보내고, 십 년이 훨씬 넘게 차이 나는 연하남과 결혼에 이르기까지, ‘코넬리아 드 랑게 증후군’이라는 희귀병을 가진 큰아들을 키우는 동안, 돌아보면 내 삶에서 특별히 힘들었던 시간에 탈출구가 되어 준 것은 글이었다. 머릿속에 맴도는 잡다한 생각을 글로 써내려가면 나도 모르게 내 생각은 ‘감사’라는 출구를 향하고 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 그리고 그 출구에서 어느새 나는 작은 행복을 느끼고 있었다. 감사와 행복을 가져다주는 글 쓰기, 글을 쓸 수 있었던 시간에 감사하며 새해에도 글과 동행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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