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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의미 Mar 11. 2022

아끼다 똥 된다.

초콜릿 케이크가 불러온 사유(思惟)


저녁을 먹고 배가 두둑해진 아이들은 거실에서 놀고 있었다. 딸은 요즘 한창 재미있게 보는 만화책을 들고 소파에 벌러덩 누워서 읽고 있었고, 아들은 로봇 두어 개를 가지고 싸움놀이를 하고 있었다. 그 사이 나는 한바탕 전쟁같이 치른 식탁을 치우고, 밥풀이며 김치 국물이며 잔뜩 묻어 있던 그릇들을 물에 씻어 식기세척기에 집어넣었다. 가족들 저녁밥도 먹였겠다, 설거지도 했겠다, 이제 나도 좀 쉬자 싶어 부엌 한편에 마련한 나의 책상 의자에 앉았다. 도서관에서 빌려온 책은 책상 위에 널브러져 있었고, 그중 끌리는 책 한 권을 집어 들었다. 한숨 고르고 막 펼쳐서 읽으려던 순간이었다.     


아들이 로봇 장난감을 내려놓고 나에게 달려왔다.

“엄마~ 저번에 내가 먹다 남긴 초콜릿 케이크 어딨어?”

나의 짤막한 자유시간을 비집고 아이는 초콜릿 케이크의 행방을 물었다.     


“초콜릿 케이크?”

나는 아들의 말을 되물으며 생각했다.

아! 그 초콜릿 케이크. 내가 진즉에 한 입 쏙 먹어버린 후였다.

“미안, 엄마가 다 먹어버렸어.”라고 말하면 아이는 “내 초콜릿 케이크~~” 절규하며 울 것이 뻔했다.    

  

머릿속은 분주하게 돌아갔다. 이 사태를 어찌 넘길지, 어떻게 하면 아이가 크게 낙심하지 않고 넘어갈지 번뜩이는 아이디어를 찾아 잠시 눈을 감았다. 그래! 이거야. 섬광처럼 갑자기 이 말이 떠올랐다.     


“예준아, 그 초콜릿 케이크 말이야. 예준이가 나중에 먹는다고 남겼지? 그 사이 곰팡이가 피어서 엄마가 어쩔 수 없이 버렸어.”

대사가 여기에서 끝나도 되었을 텐데, 아이의 표정을 보자 나는 쐐기를 박고 싶었다.     


“예준아! 아끼면 똥 되는 거야.”

이런 신박한 표현을 처음 들어본 두 아이는 ‘똥’이라는 단어에 두 눈이 땡그래 졌다.

왜 하필 이런 말을 했을까? 나도 모르게 내뱉은 표현이 고작 이거라니.

순식간에 공기 중에 흩어져 버린 말... 똥.. 똥.. 똥...     


멀리서 듣고 있던 남편이 빵 터졌다.

“얘들아~ 엄마가 좋은 거 가르친다 ㅋㅋㅋ 아끼면 똥 된대~~~”

웃는 건지, 비웃는 건지 남편은 연신 배꼽을 잡고 깔깔거렸다.     


내가 뭐 못할 말을 했나 싶었는데, 뒤늦게 올라오는 부끄러움은 나의 몫이었다. 여기서 부끄러워하면 내가 더 우스운 꼴이 될 것 같아서 보란 듯이 당당하게 어깨 펴고 큰 소리로 얘기해줬다. 


“이 표현은 사람들이 자주 쓰는 표현 맞아~ 맛있는 음식 아끼느라 먹지 않으면 결국 곰팡이 나서 버려야 하지? 옷도 아끼느라 입지 않으면 결국 작아져서 입을 수가 없게 돼. 이럴 때 쓰는 표현이야. 아끼면 똥 된다!”

내가 뱉은 말이지만 설명을 더하다 보니 그럴듯했다. 

‘역시 괜찮은 표현이었어’ 하고 만족스러워했다.     


그런데 생각지도 못한 일이 생겼다.

다음날, 딸기를 씻어 접시에 담아 식탁에 올리자 두 녀석들이 달려들며 서로를 향해 이렇게 말하는 것이다.     

“예준아~ 빨리 먹어! 아끼다 똥 된다~”

제법 진지했다. 정말 이 딸기가 조금 시간이 지나면 똥이 될 것처럼 얘기하며 아이들은 마구 먹어댔다. 순식간에 딸기는 증발해버렸다.     


저녁 식사 시간에도 이 표현은 빠지지 않고 등장했다.

“누나~ 아끼다 똥 된대~ 빨리 먹어.”

반찬으로 나온 돈가스를 보자 둘째가 첫째에게 말했다.    

 

뭔가 아차 싶었다. 학교에 가서, 유치원에 가서 친구들에게 이렇게 말하는 게 아닐지 뒤늦게 걱정이 됐다. 어제의 그 자랑스러움은 사라지고, 창피함이 올라왔다.     


‘아, 다른 표현으로 알려줄 걸...’

좀 더 고급진 표현을 가르치지 못했다는 후회가 밀물처럼 밀려들었다.      




내게 주어진 것들을 아끼지 않고 지금 이 순간 누리는 것이 중요하다고 본다. 아이들에게 예시로 든 상황이 먹을 음식과 입을 옷이었지만 살면서 그러한 상황에 자주 놓일 때가 있다.      


내게 주어진 기회, 

내게 주어진 시간, 

내게 주어진 인연, 

내게 주어진 건강 등등      


살아가면서 얼마나 많이 흘려보냈나 모르겠다.      


지금 잡지 않더라도 다음에 또 기회가 있겠지.

지금 쓰지 않더라도 다음에 또 시간이 있겠지.

지금 가꾸지 않더라도 다음에 또 인연이 있겠지.

지금 돌보지 않더라도 다음에 또 건강이 있겠지.     


하지만 결코 다시 되돌릴 수는 없다. 

아이가 먹다 남긴 초콜릿 케이크가 버려진 것처럼 내가 미루고 외면한 모든 것들은 쓸모가 없게 되었다.      


‘아끼면 똥 된다.’      

표현은 좀 서툴고 세련되지 못하지만 충분히 메시지를 주는 표현이었다고 마무리를 지어야겠다. 

그래도 아쉬운 마음이 불쑥 올라오기는 한다. 

좀 더 매끄러운 다른 표현은 없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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