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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의미 Mar 10. 2021

누가 지어준 별명이니

공동육아의 별명과 반말문화에 대하여


공동육아사회적협동조합이 만든 공동육아어린이집에서는 교사와 부모가 별명을 사용한다. 그 별명은 모두 아이들이 지어준 별명이다. 이 세상에 존재하는 온갖 곤충, 바다생물, 꽃, 동물, 과일, 식물, 풀, 벌레, 동화 속 인물, 사물 등등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다양한 별명을 지어주는데, 신기하게도 그 별명과 사람을 놓고 보면 참 기가 막히게 잘 지었다고 감탄을 하게 된다.     


나에게도 아이들이 별명을 지어준 그 날이 기억난다. 우리 첫째가 처음 어린이집에 등원하던 날이었다. 삐이익. 터전(어린이집을 부를 때 공간적인 의미로 쓰는 말) 대문을 열고 들어가니 새로운 친구를 궁금해 하는 아이들이 얼굴을 빼꼼 내민다. 누가 왔을까? 호기심 어린 눈빛이 반짝거린다. 아침 모둠을 하려고 터전 방에 쪼르륵 동그랗게 앉아있는 아이들은 새로운 친구와 함께 온 엄마인 나를 보고 설레어하는 모습이다. 우리의 자기소개가 끝나자 이제 기다리던 별명 짓기 시간이 돌아왔다. 오디션을 보러갔다면 이런 느낌일까? 매의 눈으로 스캔하듯 나를 쳐다보던 아이들이 한명 씩 손을 들고 말한다.     


“블루베리요!”

‘어, 블루베리도 나쁘진 않군.’ 속으로 내심 안도했다.

뒤이어 다른 친구가 손을 든다.

“사자요!”

‘뭐라고? 사자라고? 오마이갓. 내가 사자가 된다면 앞으로 모든 교사와 부모, 아이들이 나를 볼 때마다 사자라고 부를 텐데. 이거 어쩌나?’ 

정말 낭패다. 사자가 된다면... 그 뒤는 상상하고 싶지 않았다.

이어서 참외, 딸기, 체리, 미어캣까지 나왔다.

미어캣까지 나온 마당에 나는 자포자기의 심정이 되어버렸다.

그래 너희들이 지어주는 별명을 내 온전히 받아들이리라.     


등원한지 30분 만에 앞날의 운명이 결정되는 순간이 되었다. 내가 여기에서 얻게 되는 별명은 향후 어린이집 생활, 조합 생활을 하는 동안 나의 이름과 얼굴이 되는 것이다. 겸허히 받아들이자며 마음을 내려놓자 곧 투표가 시작되었다.          


앞서 후보에 오른 6개의 별명을 두고 아이들은 진지하면서도 깔깔깔 웃으며 재미있게 투표를 진행했다. 

“블루베리가 좋다고 생각하는 친구~ 손~”

3명이다. 생각보다 저조한 숫자였다. 가슴이 두근거린다.

“사자가 좋다고 생각하는 친구~ 손~”

5명이다. 안심할 수 없었다. 이러다 사자가 될 수 있겠구나.

“체리가 좋다고 생각하는 친구~ 손~”     

11명이다. 하늘이 나를 도왔구나.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사자와 미어캣의 박빙의 순간이 될까 노심초사했던 마음들이 흩날리며 사라졌다.

이날은 수능 날보다 더 떨렸던 중요한 순간으로 기억에 남아있다. 


아이들이 지어준 ‘체리’는 이날 이후로 나의 모든 일상에 함께 하고 있다.

“체리 안녕?”

아침에 어린이집에 등원하며 만난 아이들이 나에게 인사를 해준다. 

“체리 오랜만이에요. 어떻게 지냈어요?”

어린이집 하원을 하며 만난 아마(아빠와 엄마의 준말)들과 대화를 나눈다. 공동육아어린이집에 다니기로 결심한 순간부터 새롭게 맺어진 공동체는 나에게 또 다른 삶을 열어주었다. 아이가 태어난 후로 개개인의 이름보다는 누구엄마, 누구아빠로 불리며 살아오던 부모들은 아이들이 붙여준 별명으로 조합에서의 삶, 어린이집에서의 일상을 보내고 있다.     


공동육아 현장에서는 별명과 더불어 어른과 아이들 간의 평등한 관계를 위해 반말을 쓰고 있다. 아이들은 교사를 선생님이라는 호칭 대신 별명으로 부르고 반말을 한다. 부모들도 예외가 없다. 아이들은 친구의 부모에게 스스럼없이 다가가 별명을 부르고 인사를 한다.      


아이들이 어른을 일반적인 호칭 대신 별명으로 부르고 반말을 하는 것은 보수적인 교육현장에서 볼 때 상당히 파격적이라고 볼 수 있다. 한편으로는 적지 않은 우려도 있다. 어린이집에서야 반말로 쓴다고 해도 사회에 나가서도 아이가 다른 어른들에게 반말로 말하면 어떻게 할까? 하는 걱정이 들기도 한다.      


등원하는 첫 한 달간은 아이도 나도 이러한 별명과 평어문화에 익숙하지 않아 애를 먹기도 했다. 어느 선까지 말을 해야 할지 난감하여 서로의 얼굴을 쳐다보며 무언의 메시지를 주고받았던 기억이 있다. 그동안 어른들에게는 존댓말을 써야 한다고 가르치던 나의 교육과도 반하는 상황이었다. 아마 존댓말과 반말에 대한 확고한 신념이 있는 부모라면 고민이 많이 들기도 할 것이다.      


아이는 2년간 생활하면서 몸에 익히고 있었다. 어린이집 내에서는 교사도 부모도 평등한 관계로 지낸다는 것을. 말하고 싶은 것이든, 원하는 것이든, 표현하고 싶은 것이든 의견을 내는 것에 있어서 참 자유하다. 서로 평등하면서도 존중하는 관계는 존댓말이 아니라고 해서 불가능한 것은 아니었다. 또한 반말을 쓰는 것이 상대의 인격을 무시하고 무례한 행동을 용인하는 것은 아니라는 걸 분명하게 이해하고 훈련하는 시간들이 있었다.     


어른과 아이 간의 자유롭고 평등한 관계를 맺고자 하는 의도를 갖고 시작된 별명과 반말은 이제 공동육아 전체 어린이집의 고유한 말법처럼 사용되고 있다. 공동육아의 별명과 반말쓰기는 아이들이 어른들과의 관계에서 더욱 자유롭고 대등한 위치에 서게 하며, 생동감 넘치며 자기표현을 더욱 쉽게 할 수 있도록 한다. 공동육아어린이집의 반말 문화에 적응하는 과정에는 어린이집 안과 밖의 언어규범 문화가 다름을 인식하고 이 두 가지 언어 패턴에 적응하는 경험이 모두 포함된다. - ‘공동육아 문화의 교육적 해석’ 중에서     


아이들이 행복하게 자라나기 위해서는 공동체 안에서 관계맺음이 자연스럽고 건강하게 이루어져야 한다. 이는 결국 어른들이 아이를 얼마나 인격적으로 존중하는지에 따라 달라진다. 아이와 어른이 상하수직의 관계에서 평등한 관계로 존중받을 때 관계는 빛이 난다.     


공동육아 3년차가 된 지금 아이들이 터전에서 쓰는 반말에 대한 걱정은 기우였다고 안심하게 된다. 아이들은 터전 내에서 교사와 스스럼없이 친밀하게 지내며, 오가며 만나는 아마들에게도 마음을 잘 내어준다. 자기의 생각과 표현을 나타내는데 망설임 없이 자유로운 모습을 볼 수 있다.     


오늘도 우리 아이들은 아침에 터전에 들어서면서 환하게 인사를 한다.

"귀염둥이 안녕~ 고사리 안녕~ 장미 안녕~ 바람개비 안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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