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건 마음먹기 나름입니다" – ‘일체유심조’의 삶
어제는 어버이날을 맞아, 일정상 미리 아내와 함께 처가 부모님을 찾아뵙고 인사를 드리고 왔습니다.
오랜만에 가족이 모여 이런저런 담소를 나누던 중, 거실 벽에 걸린 한 점의 서예 작품이 눈길을 끌었습니다. 이전에는 보지 못했던 글귀, ‘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라는 힘 있고 고요한 문장이었습니다.
장인어른께 그 글에 대해 여쭈니, ‘모든 것은 마음먹기 나름’이라는 뜻으로 풀이하시며, 삶을 대하는 태도에 대한 이야기로 대화는 자연스럽게 이어졌습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 장인어른의 말씀과 함께 그 문구가 오랫동안 마음에 남았습니다.
그리고 다시금 일체유심조에 대해 곱씹게 되었습니다.
‘모든 것은 오직 마음이 지어낸 것이다.’
짧지만 심오한 이 문장은, 불교의 핵심 사상을 담고 있는 부처님의 가르침 중 하나로 전해집니다.
우리가 살아가며 경험하는 세상, 만나는 사람, 마주치는 사건과 감정, 심지어는 삶의 굴곡까지도 결국은 우리 마음이 만들어낸 세계라는 의미입니다.
비 오는 날, 누군가는 흐린 하늘을 보며 우울해하고, 또 다른 누군가는 빗소리에서 위안을 받습니다. 같은 날씨, 같은 풍경 속에서도 전혀 다른 감정을 품는 이유는 결국 '마음'에 있었습니다. 마음이 밝으면 세상이 따뜻하게 다가오고, 마음이 어두우면 세상은 차갑고 거칠게 느껴집니다.
이러한 깨달음은 나 자신을 다시 들여다보게 만들었습니다. 진정한 행복이란 외부에서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나의 내면을 어떻게 다스리느냐에 달려 있다는 사실을 말입니다.
요즘 저는 ‘마음의 정원’을 가꾸는 연습을 하고 있습니다. 아침이면 짧은 명상으로 하루의 마음을 정리하고, 밤이 되면 하루 동안 감사했던 순간들을 되새기며 마음의 파동을 부드럽게 가라앉히려 합니다.
마음은 분명히 훈련할 수 있는 대상입니다. 물론 처음에는 쉽지 않지만, 반복하고 성찰할수록 우리의 내면은 조금씩 더 단단해지고 고요해집니다.
사소한 일에 덜 흔들리고, 타인의 말에 쉽게 상처받지 않으며, 감정의 파도에 휩쓸리기보다는 그 너머를 바라볼 수 있는 여유가 생깁니다. 그런 마음의 성숙이 쌓일수록, 세상은 점점 더 평온하고 따뜻한 얼굴로 우리 앞에 나타납니다.
불교의 《유식삼십송》에서는 “만법유식(萬法唯識)”, 즉 만물은 오직 ‘의식’의 작용이라는 말이 나옵니다. 우리가 인식하는 모든 것은 결국, ‘내가 어떻게 받아들이느냐’에 달려 있다는 뜻입니다.
또한, 《에크하르트 톨레》의 《지금 이 순간을 살아라》에서도 진정한 평화는 외부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지금 이 순간의 ‘내면의 상태’에서 비롯된다고 강조합니다.
고요한 마음이 평화로운 세상을 만든다는 이 지혜는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동일하게 흐르는 진리인가 봅니다.
결국, ‘일체유심조’의 길은 나를 찾아가는 여정입니다.
외부의 조건을 바꾸려 애쓰기보다, 나의 내면을 살피고 마음의 결을 정돈하는 삶의 방식입니다.
그렇게 마음을 돌보고 다듬다 보면, 어느 순간 조용히 웃고 있는 나 자신을 발견하게 됩니다. 특별한 일이 없어도 괜찮은, 있는 그대로의 삶이 고맙게 느껴지는 순간이 찾아옵니다. 어쩌면 그것이야말로 진정한 행복이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세상은 우리가 어떤 마음을 지니느냐에 따라 달라집니다.
오늘도 저는 내 안의 평온이 내가 살아갈 세상의 모습을 만든다고 믿으며, 마음을 다듬고 길들이고 있습니다. 이러한 노력은 거친 날에도 내면의 고요함을 잃지 않게 해 줄 것이라 기대합니다.
평온한 마음으로 세상을 바라볼 때, 삶은 더 이상 고통의 연속이 아니라, 지금 이 순간을 온전히 살아갈 수 있는 소중한 선물임을 비로소 깨닫게 될 것입니다.
그렇게 고요한 마음이 머무는 자리에
비로소 ‘진짜 삶’이 피어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