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창작의 품격, 인용의 태도에 대하여
“좋아서 옮겼을 뿐인데, 그게 저작권 위반인 줄은 몰랐습니다.”
어느 날, 인터넷에서 우연히 마주친 시 한 편이 유독 가슴에 와닿았고, 그 감동을 많은 사람과 나누고 싶었습니다. 시인의 이름과 출처도 함께 적었기에 문제없을 거라 생각했지요. 잊힌 시를 다시 알리는 일이 시인에게도 도움이 되리라 믿었습니다. 그렇게 설레는 마음으로 그 아름다운 시를 내 블로그 화분에 옮겨 심었습니다.
그런데 며칠 뒤, 뜻밖의 댓글이 달렸습니다. 시인이 직접 남긴 글이었습니다.
“그 시는 원문 제목이 아닙니다. 수정 부탁드립니다.”
순간 머릿속이 하얘졌습니다. 인터넷에 올라온 정보를 그대로 믿은 것이 후회되고 부끄러웠습니다. 저는 곧바로 시인께 메일을 보내 사과드렸고, 블로그에도 공지를 올려 제목 오류를 알렸습니다. 조치 내용을 정중히 안내드리며 다시 한번 고개 숙여 사과드렸습니다.
그날 시인으로부터 받은 답장은 이러했습니다.
“깊은 이해 속에 바로 수정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제목만 바로잡고 게시하시면 됩니다. 시는 읽는 이의 것이기도 하지요. 이번 경우는 잘못된 정보를 믿고 따른 것이니 님의 잘못은 아닙니다. 시를 사랑하시는 마음으로 늘 행복하시길 기도합니다.”
초보 블로거는 이 따뜻한 답장을 받고서야 비로소 안심할 수 있었습니다.
그날 이후, 저는 어떤 시든 인용 전 반드시 원 시집을 찾아 원문을 확인하는 습관이 생겼습니다. 출처가 명확하지 않으면 인용을 피하고, 아무리 감동적인 문장이라도 함부로 공유하지 않게 되었습니다. 창작에 대한 태도도 달라졌습니다. 좋은 글은 널리 퍼져야 한다는 믿음은 여전하지만, 그 확산은 반드시 창작자에 대한 존중과 저작권 이해를 바탕으로 이루어져야 한다는 것을 배웠습니다.
저작권은 단순한 ‘법적 소유’가 아니라, 창작자의 노력과 감정, 정체성이 담긴 결실입니다. 이를 존중하지 않는 인용은 단순한 실수가 아닌, 창작자에 대한 무례가 될 수 있습니다.
오늘날 우리는 누구나 콘텐츠를 만들고 퍼뜨릴 수 있는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SNS, 블로그, 유튜브 같은 디지털 플랫폼은 표현의 문턱을 낮추었고, 많은 이들에게 창작의 기회를 열어주었습니다. 그러나 동시에, 저작권에 대한 이해 부족으로 인한 분쟁과 오해도 잦아졌습니다. 순수한 감동의 표현이 때로는 법적 책임으로 이어지는 현실은, 창작자와 이용자 모두에게 부담이 됩니다.
특히 저작권 위반은 형사 책임과 민사 배상을 수반할 수 있는 중대한 사안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이들이 이를 가볍게 여기거나, 반대로 표현 자체를 주저하는 ‘창작의 눌림’을 겪습니다. 이는 건강한 창작 생태계라 보기 어렵습니다.
그래서 저는 한 가지 제안을 드리고 싶습니다. 저작권의 경미한 위반에 대해 ‘세 번의 기회’를 부여하는 것입니다. 사전 경고 제도와 저작권 교육을 연계하여, 창작자와 이용자 모두가 자연스럽게 법을 배우고 실천할 수 있도록 하는 것입니다. 위반자는 저작권법 교육을 이수하고, 온라인 테스트를 통과하도록 하면 됩니다. 이를 통해 자신의 행위가 왜 문제가 되었는지 이해하고, 법적 기준과 윤리적 감수성을 갖춘 성숙한 창작자로 성장할 수 있을 것입니다.
창작은 자유로워야 합니다. 그러나 그 자유는 타인의 권리를 침해하지 않는 선에서만 진정한 의미를 가집니다. 그 균형을 지키기 위해, 우리 사회는 저작권에 대한 이해와 공감의 문화를 함께 만들어가야 합니다. 그 시작은 ‘좋아서 옮긴 것’이 ‘존중하며 인용한 것’으로 바뀌는 순간이라 믿습니다.
한 시인의 배려가 제 창작 인생을 돌아보게 했습니다.
한 번의 권고, 한 번의 수정 요청이 누군가에겐 소중한 배움이 될 수 있습니다.
저는 여전히 시를 좋아하고, 누군가의 문장에서 위로받습니다. 그러나 이제 그 감동을 나누는 방식은 달라졌습니다.
창작자에 대한 예의, 법적 이해, 진심 어린 인용. 이 세 가지가 건강한 창작 문화를 이끄는 첫걸음임을 믿습니다.
창작의 자유는 무한하지만, 그 무한함은 책임을 동반합니다.
내가 오늘 쓰는 한 문장이 누군가의 권리를 침해하고 있지는 않은지 돌아보는 태도.
그 태도가 우리가 함께 만들어갈 품격 있는 창작 문화의 시작이라 믿습니다.
이 아름다운 저작권의 숲에서,
저마다의 빛깔을 지닌 새들처럼
허락된 삶 안에서 자유롭고 즐겁게 지저귀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