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다정한 이별'을 준비하는 마음
다음 주면, 그동안 함께 일해 온 타 부서의 한 직원과 이별하게 됩니다.
그는 하나를 이야기하면 열을 헤아리고, 그 안에 자신만의 생각과 열정을 꾹꾹 눌러 담아 묵묵히, 때로는 깊은 밤까지도 불평 없이 함께 애써주었던, 요즘 보기 드문 좋은 사람이었습니다.
더 좋은 곳으로의 이직이라는 명분 앞에 그를 붙잡을 수는 없지만, 그렇게 정이 깊이 들었던 사람과 이별하는 일은 여전히 어렵기만 합니다.
그럴 때면, 자연스레 젊은 시절의 제 모습이 떠오릅니다. 한창 열정을 불태우며 일하던 그때, 함께했던 팀원들의 얼굴이 하나씩 그려집니다.
당시 저는 일밖에 모르던 사람이었습니다.
카리스마와 고집으로 팀을 이끌며, 강한 훈육이 강한 팀원을 만든다고 믿었습니다.
지금 돌아보면 꽤 서투른 신념이었지만, 그럼에도 그 순한 팀원들은 호랑이 같던 저를 따뜻하게 믿고 따라주었습니다.
세월이 흐르며 그들과도 하나둘 이별했습니다. 그때마다 저는 심한 몸살을 앓곤 했습니다.
아무렇지 않은 척 퇴근하던 저녁이면, 집에 바로 들어가지 못하고 호프집에 들러 마음의 상처를 술로 달래기도 했습니다. 그들은 몰랐겠지만, 저는 그렇게 정을 끊어내는 일이 유난히 힘든, 서툰 사람이었습니다.
시간은 흐르고, 사람은 익숙함에 적응합니다.
아파도 일은 해야 하고, 매일 쌓이는 업무에 쫓기다 보면, 기억은 조심스럽게 뒤로 밀려납니다. 그리고 그제야 비로소 그들을 향한 추억을 조용히 내려놓을 수 있게 됩니다.
누군가는 말합니다.
직장에서의 관계는 거리를 두어야 하며, 가족처럼 대하면 안 된다고. 언제라도 이별이 이상하지 않을 만큼 냉정해야 한다고 말입니다. 하지만 저에게 그 말은 아직도 쉬운 일이 아닙니다.
마음에 드는 사람이 있으면, 성과금을 받았을 때 혼자 가지지 않고 소외된 팀원과 나누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가진 것이 많지 않았지만, 말로 다 전하지 못했던 진심을 그렇게라도 전하고 싶었습니다. 도움을 주고 싶었고, 함께 성장하고 싶었습니다. 그래서였을까요. 어느날 갑작스럽게 떠나는 통보를 들을 때면, 저는 배신감과 허탈함 사이에서 오래 머물렀습니다.
이제는 조금 달라졌습니다.
이제는 직장이든 관계든 상관없이, 나를 가장 우선에 둡니다. 내가 없으면 일도, 관계도 의미를 잃기 때문입니다. 남들의 시선은 더 이상 중요하지 않습니다.
제가 만들어온 가치와 태도에 따라 조용히, 자연스럽게 흐르는 삶을 선택하고 있습니다.
그 가치와 태도는 회사가 명분 삼아 만든 비전이나 전략과도 크게 다르지 않기에, 굳이 새로운 다짐이 필요하지 않습니다. 그저 하루하루를 성실히 살아내는 것에 집중할 뿐입니다.
회사 사람들과 마주할 때는 밝고 정중한 태도로, 진심 어린 웃음으로 대하려 합니다. 그 순간만큼은 나의 직책이나 지위를 의식하지 않으려 합니다.
좋아하는 사람이 있으면, 당연히 나를 불편해하거나 험담하는 사람도 있기 마련입니다. 그들에게까지 내 마음을 내어줄 필요는 없습니다. 하루를 버텨내는 데 필요한 에너지를 지키는 것이 더 중요해졌습니다.
이제는 관계를 넓히려 애쓰지 않습니다. 회사에서의 관계가 아무리 넓어져도, 언젠가는 나 역시 이곳을 떠나게 될 것을 알기 때문입니다.
붙잡을 수 없는 관계에 마음을 지나치게 내어주지 않습니다.
그저 편한 사람과, 좋은 에너지를 주고받는 사람과 잠시 쉬어가듯 조용히 함께합니다.
일을 함께할 때는, 상대의 나이도 지위도 배경도 중요하지 않습니다. 서로를 존대하며, ‘함께’라는 가장 큰 가치를 향해 나아가고자 합니다.
상대방이 어수룩하더라도 가르치려 하지 않고, 부족한 부분이 있다면 제가 먼저 방향을 제시하고, 그가 부족한 손을 내밀 때 저의 손을 더하려 합니다.
이런 방식으로 살아가는 삶을 조금만 더 일찍 실천했더라면, 지금보다 더 건강하게, 더 젊게 살아갈 수 있었을지도 모릅니다. 아쉬움은 있지만, 지금이라도 이렇게 살아가고 있음에 감사할 따름입니다.
앞으로 얼마나 더 많은 이들과 작별하게 될까요. 아니면 언젠가, 내가 먼저 이별을 말해야 할 날이 오겠지요.
이제는 ‘이별’이라는 단어가 정(情)을 끊어내는 고통으로 다가오지 않기를 바랍니다.
이제는 다시 만날 수 있다는 기대도, 내가 누군가의 기억에 오래 남기를 바라는 마음도 내려놓습니다.
오늘,
나는 그에게, 그는 나에게
조용히 편안한 사람이 되어주면 그만입니다.
있는 듯 없는 듯,
그러나 언제나 곁에 있는 공기처럼.
그렇게, ‘정’이란,
붙들지 않고도 흘러갈 수 있을 때,
비로소 오래 남는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