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몫을 다하는 삶

"책임을 다하며 살아간다는 것"

by 가치지기
사랑하는 남편에게

벌써 20년이 되었네요. 사고로 남편 먼저 보냈을 때, 하늘이 무너지는 것 같았어요. 밤이 되면 아이들을 재우고 살아생전 부르던 남편 생각이 나 말없이 울었습니다. 없는 살림에 혼자 자식들과 살 생각을 하니까 참 기가 막히더군요. 밥 달라는 자식 굶길 수 없어 살다 보니 보고 싶은 마음 지금 여기까지 왔습니다. 여보, 나 당신 애들 다 결혼시켰습니다. 고생했다고 한 번만 말해줘요. 오늘따라 당신이 너무 보고 싶어요.

최종예 할머니


최종예 할머니의 친필 글

얼마 전, 우연히 오래전 읽었던 한 할머니의 편지를 다시 마주하게 되었습니다. 편지의 제목은 <사랑하는 남편에게>. 짧지만 깊은 울림을 주는 글이었습니다. 처음 읽었을 때의 감동이 여전히 가슴 한구석에 남아 있더군요.


그 편지는 배움의 기회가 없었던 할머니께서 늦은 나이에 한글을 배우고 처음으로 써본 글이라고 했습니다. 아무런 꾸밈도 없이, 오롯이 진심만 담긴 글이었기에 많은 사람들의 마음을 울렸습니다. 저도 그중 한 사람이었지요.


편지 속 할머니는 20년 전 사고로 남편을 떠나보내셨습니다. 남편을 잃고 홀로 자식들을 키우며 살아온 세월. 남편을 그리워하며 밤마다 몰래 눈물을 흘리셨을 할머니의 모습이 그려집니다. 그러나 슬픔에 머물지 않고 자식들을 위해, 자신의 책임을 다하기 위해 묵묵히 살아오신 할머니.


여보, 나 당신 애들 다 결혼시켰습니다.
고생했다고 한 번만 말해 줘요. 오늘따라 당신이 너무 보고 싶어요.


이 한 줄에 담긴 그리움과 헌신이 제 마음을 울컥하게 만들었습니다. 남편 없는 세상에서도 자식들을 굶기지 않고 키워내겠다는 마음으로 살아오신 할머니의 고된 삶이 그대로 전해졌습니다.


남편 곁을 떠나면서 남겨진 가족들을 위해 자신의 몫을 다했던 할머니는 이제 자식들이 모두 자리를 잡은 모습을 남편께 전하며 마지막 인사를 건넵니다. 이 편지는 단순한 러브레터가 아니라, 인생의 황혼기에 보내는 '완수의 편지' 같았습니다. 남편과의 사랑을 지켜왔고, 자신의 책임을 다했다고 조용히 자부하는 글이었습니다.


편지를 읽으며 스스로에게 묻게 됩니다.

나는 나의 몫을 다하며 살고 있는가?

풍족하고 편안한 환경에서 살아왔음에도, 정작 나 자신의 삶은 나태함 속에 흘려보낸 날들이 많았습니다. 하루하루에 감사하거나, 내게 주어진 책임을 묵묵히 해내려는 마음이 얼마나 부족했는지 돌아보게 되었습니다.


할머니는 남편과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그리고 무엇보다 자신에게 부여된 삶의 책임을 완수하기 위해 그렇게 오랜 세월을 견디고 살아내셨습니다. 그런 삶 앞에서 부끄럽지 않을 수 있을까요.


저도 할머니처럼 언젠가는 당당히 말하고 싶습니다. “나도 내 몫을 다했습니다.” 그 말을 할 수 있는 날이 오기를 바라며, 오늘도 제 자리에서 제가 할 수 있는 일들을 묵묵히 해내려 합니다.


할머니께서 지금쯤 남편 곁에서 미소 짓고 계실까요? 오늘따라 내리는 마지막 가을비가 조용히 작별을 고하는 듯합니다. 비 오는 창가를 바라보며 다짐해 봅니다. 남겨진 날들 속에서 저도 제 몫을 다하는 삶을 살겠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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