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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의 마음

by 가치지기

불과 몇 년 전까지만 해도, 명절에 형제들이 모두 모이는 일은 솔직히 마음 한켠이 무거운 부담이었습니다.


처음 만났을 때는 기분 좋게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가도, 술을 좋아하시는 아버지와 형제들이 몇 잔 주고받다 보면, 어린 시절 부모님께 느꼈던 서운함이 잠재의식 속에서 조용히 올라와, 온 집안의 분위기를 어수선하게 만들곤 했습니다.


어릴 적에는 한 번도 “섭섭하다”거나 “서운하다”는 말을 꺼내지 못했던 형과 누나가, 부모님이 기억조차 못하는 작은 이야기들을 이제 와서 꺼내는 것을 보면, 오랜 세월 마음속에 켜켜이 쌓였던 서운함이 얼마나 깊었는지, 자신도 모르게 마음을 괴롭혀 왔음을 알 수 있습니다.


한때 인기를 끌었던 드라마 폭삭 속았수다에서,

“부모는 미안했던 것만 사무치고, 자식은 서운했던 것만 사무친다.”라는 대사를 들었을 때, 우리 집만 그런 것이 아니구나 하는 작은 위안을 얻었습니다.


이제는 조금 달라졌습니다. 쏟아내고 나니 사라진 것인지, 시간이 흘러 모두 중년을 넘어 철이 들어서인지, 아니면 스스로 부모가 되어 부모의 마음을 조금은 이해하게 되어서인지 모르지만, 지금은 제법 화목한 명절을 보내고 있습니다. 그때의 원망과 서운함이, 결국 젊은 날의 한때였음을 느끼며, 마음이 한결 가벼워집니다.


그 시절 부모님도 다르지 않았습니다. 아버지는 학생 시절 새벽부터 밤늦게까지 나무를 캐어 돌아가신 친할머니께 드리면서도, 단 한마디 칭찬조차 듣지 못하셨습니다. 그래도 묵묵히 효심을 다하셨지요. 어머니는 장녀로서 어린 동생들을 돌보며 자라셨고, 큰아들만 귀히 여기던 집안에서 “딸은 고등교육까지는 필요 없다”는 가풍 속에, 하고 싶던 공부조차 마음껏 하지 못하셨습니다.


부모님의 세대를 억지로 이해할 필요는 없습니다. 우리 세대 역시 말할 수 없는 차별과 서운함을 겪었지만, 그 원망으로 자신을 병들게 할 필요는 없습니다. 그저 “그럴 수밖에 없었겠지” 하며, 마음의 짐을 훌훌 털고 일어나면 됩니다.


이제는 서로의 마음을 충분히 나누었고, 빛바랜 사진을 다시 사진첩 속에 조심스레 넣어둘 시간입니다. 오랜 세월을 지나, 서로의 마음을 이해하고 내려놓을 수 있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폭삭 속았수다의 대사 중 이제는 유독, “부모는 미안했던 것만 사무치고”라는 말만 마음에 남습니다.


그 부모님의 마음을 이제는 똑같이 느끼며, 자식 앞에서 그저 미안하고, 더 잘해주지 못했던 젊은 날이 아쉽기만 한 나이가 되어버렸습니다.


그래서 이제는, 그 마음을 담아 조금 더 따뜻하게, 조금 더 세심하게 사랑을 전하려 노력합니다.


부모와 자식 사이의 마음은 말로 다 전해지지 않아도, 삶 속에서 서로 느끼고 이어지며, 결국 다시 서로를 보듬는 힘으로 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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