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다 보면 문득 자신에게 지칠 때가 있습니다.
최선을 다했다고 자신 있게 말할 수는 없지만, 그래도 이만큼 살아왔는데 예전의 나와 지금의 내가 크게 다르지 않다는 생각이 들면 마음이 무거워집니다.
수많은 실수를 통해 자신을 돌아보고 반성했음에도, 한동안 잠잠하던 과거의 내가 불쑥 고개를 들 때면 스스로가 한없이 부족하게 느껴집니다.
돌아보면, 내가 달라진 것이 아니라 세월이 흘러 머리가 희어지고 사회적 위치가 바뀌면서, 사람들이 나를 대하는 태도가 달라진 것뿐이었던 것 같습니다.
그런 변화 속에서 나는 스스로를 ‘성장했다’고 착각했던 것은 아닐까요?
어느 날, “깊고 지혜로우며 우아하고 명철하며, 온화하고 공손하며 진실하고 독실하다”라는 순임금을 묘사한 문장을 읽었습니다.
짧은 문장 안에 인간이 도달할 수 있는 최고의 품성이 담겨 있었습니다. 그 구절을 읽는 순간 마음이 울렸습니다.
‘나도 조금이라도 이런 사람에 가까워질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 한마디가 내 안에서 오랫동안 울림으로 남았습니다.
요임금의 뒤를 이어 왕위에 오른 순임금은 덕성이 뛰어난 인물로 전해집니다.
그는 깊고 지혜로운(濬哲, 준철) 사람이며, 총명하고 품위 있는(文明, 문명) 성품을 지녔고, 온화하고 공손하며(溫恭, 온공), 진실하고 독실한(允塞, 윤새) 덕을 갖추었다고 합니다.
‘깊고 지혜로우며 우아하고 명철하고, 온화하고 공손하며 진실하고 독실한 사람’—이 얼마나 고매하고 아름다운 인격입니까.
그의 말은 담백하면서도 품격이 있었고, 겉과 속이 하나였을 것입니다.
그런 사람의 향기는 오래 남습니다.
무엇보다 마음에 와닿았던 것은, 그 덕목들이 추상적인 개념이 아니라 구체적인 단어로 표현되어 있다는 점이었습니다.
濬哲(준철)
- 깊고 지혜로우며 명철하다는 뜻으로, 사려 깊고 현명하며 상황을 깊이 통찰하는 덕입니다.
文明(문명)
- 우아하고 밝다는 뜻으로, 품위와 기품을 지니고 사물을 분명하게 꿰뚫어 보는 통찰력을 말합니다.
溫恭(온공)
- 온화하고 공손하다는 뜻으로, 부드러운 마음과 예의, 타인을 향한 배려의 마음입니다.
允塞(윤새)
- 진실하고 독실하다는 뜻으로, 성실하고 믿음이 있으며 마음에 거짓이 없는 상태를 의미합니다.
순임금은 어떻게 이런 덕성을 지닐 수 있었을까요?
그의 생애를 살펴보면, 평탄하지 않은 가정환경과 고난의 시간 속에서도 하루하루를 진심으로 살아냈음을 볼 수 있습니다.
그의 덕성은 하루의 삶을 성실히 쌓아 올린 결과, 시간 위에 새겨진 진심의 결실이었습니다.
성경은 이러한 덕목을 다른 방식으로 이야기합니다.
지혜와 명철, 온화와 공손, 진실과 독실함으로 드러나는 인격의 근본을 한마디로 요약합니다.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 지혜의 근본이요, 거룩하신 자를 아는 것이 명철이니라”(잠언 9장 10절). 즉,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이 지혜와 명철의 뿌리라는 것입니다.
또한 성경은 온화와 공손을 성령의 열매로 말합니다.
“오직 성령의 열매는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 참음과 자비와 양선과 충성과 온유와 절제니라”(갈라디아서 5장 22–23절).
온유함이란 부드럽고 겸손한 마음으로, 다른 이를 배려하고 자신을 낮추는 태도입니다.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그리하면 너희 마음이 쉼을 얻으리라”(마태복음 11장 29절).
진실은 말과 행동이 하나 되는 삶이며, 독실함은 하나님을 향한 신앙과 정성이 깊은 상태를 뜻합니다.
하나님과 사람 앞에서 신뢰를 잃지 않는 삶, 그것이 바로 진실하고 독실한 인격입니다.
이 모든 덕목을 아우르는 한 단어가 있다면, 그것은 바로 경건(敬虔)입니다.
경건은 하나님의 거룩한 성품을 닮아가는 삶, 하나님을 공경하며 자신을 삼가는 태도입니다.
야고보서 1장 26–27절은 진정한 경건의 본질을 이렇게 말합니다. “누구든지 스스로 경건하다 생각하며 자기 혀를 재갈 물리지 아니하고 자기 마음을 속이면 그 경건은 헛것이라. 하나님 아버지 앞에서 정결하고 더러움이 없는 경건은 곧 고아와 과부를 그 환난 중에 돌보고, 또 자기를 지켜 세속에 물들지 아니하는 그것이니라.”
성경이 말하는 경건은 단순히 형식적인 신앙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뜻을 적극적으로 구하며, 어려운 이웃을 돌아보고, 자신의 삶을 절제하며 성실히 살아내는 태도입니다.
디모데전서 4장 7–8절에서도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몸의 훈련은 약간의 유익이 있으나, 경건의 훈련은 모든 면에서 유익하니, 이 세상과 장차 올 세상의 생명을 약속하느니라.”
경건은 하루아침에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기도하고 예배하며 말씀을 묵상하는 일상이 반복되어 습관이 될 때, 그것이 우리의 인격을 빚어갑니다.
진정한 경건은 형식과 내용, 겉과 속이 일치하는 삶입니다.
욕망을 절제하고,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삶을 향해 자신을 다듬는 것입니다. “의와 경건과 믿음과 사랑과 인내와 온유를 좇으라”(딤전 6:11)는 말씀처럼, 경건은 하루의 삶 속에서 끊임없이 이어져야 할 여정입니다.
삶으로 드러나는 경건은 향기롭습니다.
그 향기는 하나님께서 흠향하시는 거룩한 향이 되어 하늘로 올라가는 예배가 됩니다.
그래서 경건한 사람의 삶은 그 자체로 하나님께 드려지는 제사요, 세상 속의 향이 됩니다.
너무 큰 소망 같아 망설여지지만, 그럼에도 마음 깊이 바라봅니다.
“깊고 지혜로우며 우아하고 명철하고, 온화하고 공손하며 진실하고 독실한 사람.”
비록 그 완전함에 다다를 수 없더라도,
그 길을 향해 한 걸음씩 나아가는 삶 —
그것이 향기롭고 경건한 삶이 아닐까요?